나이가 들어가니 명절의 맛도 퇴색되어 간다. 내인생에 있어서 명절이 그리도 즐거운 때가 있었다면 결혼 전 20대였던 것 같다. 그당시 남들보다 일찍 취업하여 명절이 다가오면 몇개월 전부터 설레임으로 가득차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 길지도 않는 명절 휴가를 받아 고향길을 갈 때면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명절이 되어도 크게 맛있는 음식이 없을 터인데 고향을 가면 입맛이 돌아 밥맛이 꿀맛이였다. 그런 나만의 명절 낭만때문에 결혼을 하고서도 연년생 아이를 데리고 명절휴가를 모두 채우고 돌아온 그때를 생각하면 집사람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집사람은 신경이 예민하여 아직까지도 집을 나서면 어디에서나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금년으로써 결혼한지 38년이 접어든다. 집사람도 여태까지 자신이 과민성 체질때문에 우리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명절 후유증에 대한 트라우마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코로나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작년 구정때는 멋모르고 지나갔지만 금년엔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집안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형님댁에서 차례를 지내나 이번 구정은 정부시책(4인이상 집함금지)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역시도 내 자녀들에게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손주들 보고픈 마음이 내 젊을 때 명절 낭만과도 같은 것이지만 참아야 했다. 내가 그러하듯 내조상님들도 이번 명절은 참으로 서운했으리라 본다.
이자리를 빌어 깊은 사죄를 드린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번 구정 명절 분위기를 애써 잊어 보려고 하지만 처음이라 적응이 안되는 것은 나만 그런것이 아닐 것이다. 구정 휴가도 내일까지 5일간 인지라 유독 길게 느껴진다. 구정전에는 휴가기간 동안 평소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맘껏하고 잠도 푹 자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넘치니 긴장이 풀려 그런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은 참으로 묘한것 같다. 시간이 너무 많아도 탈이고 너무 적어도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명절을 통해 느낀 것은 가족들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시간이 많은 것보다는 약간 모자란듯한 시간속에서 긴장된 삶이 내겐 맞는 것 같다.
말이 씨가 된다는 고사성어를 난 믿는 편이다. 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든다고 했을까?? 이번 구정이 그것 중에 하나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이번 명절을 맞아 웬지 허전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고생한 시집살이 며느님들의 보상으로 받아 들이고 싶다.
세상이 변해 맛있는 음식도 차고 넘친다. 옛날에 명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이 지금은 언제 어디서라도 먹을 수 있다. 입맛이 변해도 어릴 때 구정때만 먹었던 뻥튀기 장수가 만들어 준 쌀강정과 청마루에서 얼린 엄마표 전통식혜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이번 구정에는 이음식들의 유사품인 오꼬시와 단술을 먹지 못했지만 내년이면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이유는 내년 구정전에 코로나가 종식되고 대통령께서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주지 못한 심정을 토로할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언제나 그랬둣이 우리 국민성은 참으로 선하고 강하기에 내년 구정에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번 구정을 떠올리면서 서로 웃을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