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주일설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25-33절)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말씀 하신 대로 삼일 만에 죽음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영원토록 충만한 은혜로 날마다 역사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날들이지만 우리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생명의 문으로 담대하게, 당당하게 한걸음씩 나아가셔서 우리 주님이 반겨 맞아 주시는 영원한 그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면류관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종려 주일, 그리고 고난 주간은 비통함과 슬픔의 시간이었지만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비통함은 기쁨의 눈물이 되고, 슬픔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야 말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완전한 승리라는 말 이외에 부활을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부활 승리의 영광을 다 누리며 살아가도록 자세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저도 몇 번 읽고 묵상 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이 땅에 남겨진 우리를 향하여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해 주셨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의 미래를 열어놓으신 말씀들을 들어 보시면서, 부활의 영광과 소망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느껴 보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를 돌리며 살아가는 믿음의 회복이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요 16:33)”이라는 말씀을 길고도 자세하게 설명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지는데, 성령이 오시면 발생될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먼저 25절~27절을 읽어 드립니다.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아멘. 예수님은 곧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것이기에 제자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5절에, 예전처럼 알쏭당쏠한 비유로 말씀하지 아니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겠다고 하십니다. 알아 듣기 쉽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하겠다는 뜻입니다. 26절 “그 날에”는 성령이 오시는 날을 뜻합니다. 성령이 오시는 그 날이 오면, 너희들 스스로가(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더 이상 내가 너희(제자들)을 위해서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 아나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기 전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요 14:6),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요 17:9),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위함이니이다(요 17:15), ”아버지여 ~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라는 식으로 제자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럼 성령이 오시면 나는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너희들 일은 너희들이 그냥 알아서 하라는 말씀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디모데 전서 2장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중보자로 계십니다.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가 영생의 소망을 잃지 않도록 아버지께 구하여 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중요한 포인트는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이겁니다.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직접 소통 하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의 은밀한 일까지 다 아뢸 수가 있습니다. 27절에,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기도하는 당사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고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의 하나님이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내 이름을 친히 기억해 주시고 나와 상대 해 주신다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곧 뜨거운 사랑의 공급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임을 알아 듣기 어려운 비유로 하지 아니 하시고, 직설적으로, 단도 직입적으로 분명하게 말씀 하신 겁니다. 직접 기도에 나서라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으실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나는 왜 기도하는 것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나는 왜 성령 받았음에도 위로 받고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는 기도의 마음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가? 나는 왜 예수 이름에 구원의 은혜가 있음을 알면서도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왜 그렇게도 소홀히 하는가?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승천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신 겁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당연히 기도로 살아가야 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기도하는 일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어야 합니다. 부활절 이후에, 성령 안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전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소망으로 승리하시는 샘물교회 부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앞선 말씀에서 기도가 중심이었다면 여기에서는 믿음이 중심입니다. 28절에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라고 하시자 제자들의 반응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비유가 아니여서 잘 알아듣겠고, 우리가 더 이상 추가적인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즉시 대답이 나왔습니다. 부활절 이후에 우리의 삶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이제는 너희가 아주 잘 믿는구나” 이런 칭찬과 응원을 받으며 살아가셔야 합니다.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내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며, 주신 사랑, 받은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이제는 너희가 아주 잘 믿는 구나”라는 말씀을 내려 주신 것은, “이제는 너도 믿음의 독립을 해야지, 이제는 너도 진짜 믿음 있는 자처럼 폼나게, 당당하게, 거룩하게 살아가야지, 이제는 나와 함께 갈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자 함께 생명의 좁은문으로 걸어가자” 라고 우리를 부활 영생의 소망으로 인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부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린도 전서 15장에서는,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이고,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우리의 믿음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소문만을 듣고 헛것을 믿는 가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성령의 감동주심으로 깨닫게 되어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진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이제는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가 결단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우리 주님의 인도하시는 음성에 즉각 반응하여, 오직 믿음으로, 오직 부활 영생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앞만 보고 전진하시는 칭찬 받고 인정받는 믿음의 자녀들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샘물교회 모든 성도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부활 영생을 굳게 믿고 붙잡는 자들이 되셔서, 오직 천국 소망을 향해 날마다 승리를 선포하며 담대히 전진해 나가시기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세상을 다 이기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