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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목사님 스크랩 온양 풍기 교회 사도학교
김정미 추천 0 조회 26 13.11.20 18: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온양 풍기 교회 사도학교

 

여러분, 성경 아는 것을 기독교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바울이 제일 고상하게 여긴 것은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는 지식은 성경 지식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는 지식이 아니고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진짜로 사랑하고 그분을 실제로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과 시간을 보냄으로서 그분 자신을 아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여기고 가장 귀중하게 여긴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든지 신자든지 가장 고상한 것은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실제로 아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알고는 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라고 다 훌륭한 것이 아니고 신학대학교 교수라고 다 성자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변화가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데 생명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모든 비결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아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성경만 상고하지 말고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실제로 알고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쫓고 많은 권능을 행했는데도 주님께서 그 사람들을 모른다고 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말씀 말씀하면서 이 성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말씀 공부 열심히 해야 하고 성경에 입각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기도 많이 하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고치고 귀신 쫓아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른다.” 했으면 예수님부터 지옥가야 됩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것은 종교입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입니다. 그런 기준 때문에 그 말씀을 들이댄다면 예수님도, 바울도, 베드로도, 선지자들도 다 지옥가야 됩니다. 위의 성구는 예언사역을 터부시 한 것도 아니고 은사나 기적을 평가절하 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누구에 관해서 아는 것은 일방적으로 아는 것이지만 진짜로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서로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기도 많이 해 가지고 능력 받고 은사 받아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했지만 예수님을 실제로 모른다는 겁니다. 예수님하고 실제로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버림받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에 정통한 사람이든지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이든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성경교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멈추지 말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에 관해서 알았으면 이제 예수님 앞에 직접 나가십시오.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설교만 듣지 말고 여러분이 회개하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직접 예수님께 나가서 예수님을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아, 저는 예수님을 잘 압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태초부터 계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다 알고 고백해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 가는 사람들도 그것 잘 아는 사람 많습니다. 귀신들도 다 압니다. 그것이 아니고 여러분, 예수님을 진짜로 얼마나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아는 만큼 변화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 주님의 형상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성경교로 만들기 때문에 지옥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지옥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교와 기독교는 다른 것인데 교회가 정말 예수교가 되어야 하는데 성경을 아는데서 멈췄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예수님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멸망 받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교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여러분의 구원자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 안에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있으면 우리는 천국 가는 것이고 우리 속에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지옥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천국 문 앞에 설 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를 보시지 않고 딱 한 가지를 보십니다. 천사들이 서 있다가 예수님이 그 안에 있나, 없나를 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보십시오. 라오디게아교회도 교회입니다. 미지근하게 신앙생활해서 그렇지 이단도 아니고, 이단사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주일예배를, 십일조를 안 드리는 데도 아니고, 찬양대가 없는데도 아니고 교회입니다. 교회인데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셔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예수님이 그 안에 없잖아요. 이게 교회 안에서 지옥 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라오디게아교회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시대 구분하는 것이 꼭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 시대의 교회의 상태들을 보면 라오디게아교회 시대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교회들과 성도들의 상태가 미지근합니다. 정말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고 미지근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적용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예수님에 관해서 알고 신앙을 고백하고, 영접기도를 따라하는 그런 종교놀음, 종교놀이하지 말고 예수님을 실제로 마음에 모셔 들이십시오. 예수님을 실제로 아는 자가 되십시오. 예수님을 실제로 따르는 자가 되십시오. 그래야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래야 천국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예수님께 초점 맞추십시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고 평생을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목표 삼았던 것처럼 점점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하면 모든 것이 다 배설물입니다. 말씀도, 은사도, 교회부흥도 다 배설물입니다. 돈, 명예, 권세만 배설물이 아닙니다. 돈, 명예, 권세가 얼마나 좋은 건데 왜 배설물입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하니까 배설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은사가 아무리 좋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예수님께 비하면 다 배설물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의 차이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는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은사나 부흥이나 사역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치는 절대적이고 예수님의 가치는 초월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치는 무한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아는데 생명을 거십시오! 예수님을 아는데 목숨을 거십시오! 종교 놀음하지 마십시오! 교회 놀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을 아는데 목숨을 거십시오! 예수님을 아는데 여러분의 인생을 거십시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정통했다 해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천국 가서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질그릇에 다른 무엇보다도 보배로운 예수님을 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제가 의도적으로 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도 마지막 시간에 사도학교를 해 봤는데요. 사도학교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 의지와, 의도와 아무런 상관없이 꼭 제일 처음에는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지, 주님이 얼마나 보배롭고 귀하고 놀라운 분인지를 증거하게 하십니다.

 

이건 제가 준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 얘기를 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교회 사도학교는 매주하니까 꼭 그렇지는 않지만, 제가 외부에 가서 사도학교하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저를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몰고 나가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너무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것이 너무 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들이 너무 그것을 모르고 초점을 거기 맞추지 않기 때문에 성령께서 항상 거기로 몰고 가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반드시 소화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는데 목숨 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발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에 있어서 성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도학교 한 시간 전까지 사도학교에서 제가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조금 있으면 사도학교 합니다. 무슨 얘기를 해야 되는데 예수님, 무슨 얘기할 것을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제가 '예수님~ 예수님'하는데 제 목이 아니고 제 영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해서 제 영이 예수님을 부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사랑하는 예수님~ 사모하는 예수님~ 저 조금 있다가 사도학교 합니다. 예수님 제게 무슨 말할 것을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몰려오는데, 질문만 받기는 싱거운 것 같고 얘기할 것을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게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 됐다. 오늘 이것 얘기하면 되겠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 영에게 주신 말씀부터 먼저 나누고 시간나면 여러분의 질문도 받고 그 다음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거룩에 대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주님을 보려면 의롭다함을 받을 뿐 아니라 거룩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을 이뤄가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완전히 거룩해야 주님을 뵙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거룩함을 좇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충격적인 것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회자들까지도 얼마나 거룩하지 않은가가 아니고 얼마나 거룩에 관심이 없는가? 얼마나 거룩을 좇지 않고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 충격을 느끼고 강력한 의분을 느낍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목회자들이 거룩하지 않는 것은 둘째고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가? 여러분, 확실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은 다 가짜입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했든지 성경을 얼마나 알든지 직분이 뭐든지 신앙생활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아무리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데 열심을 낼지 모르겠지만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신자들 중에서도, 목회자들 중에서도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100% 가짜고 지옥 갑니다. 그 사람들은 다 삯꾼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아무도란 말은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도,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도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함을 좇고 있습니까? 거룩함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거룩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은 정말 거룩해지기 위해서 바울처럼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킵니까? 여러분의 관심이 정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관심이 큰 교회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입니까? 이것부터 점검해 보시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반드시 거룩함을 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거룩하지 않아도 좋아요,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선한 사람을 싸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 절대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첫째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고 사망의 부활이기 때문에 다 지옥 가는 것인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거룩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깨닫고 거룩을 추구하고 거룩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반드시 거룩해져야 되겠는데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느니라." 이것은 식사 기도입니다. 문맥에 의해서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과 상관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우리가 거룩해지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문맥은 어떻게 됐든지 실제적으로 이게 우리가 거룩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거룩해집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사"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거룩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기도를 통해서 거룩해집니다. 제가 어제 밤에 숙소에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의 제목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재발견」입니다. "네가 복음의 기초에 대해서 많이 전했지만 네가 이것을 다시 설교로 준비해라. 「바울이 전한 복음의 재발견」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설교로 준비하고, 그 다음에 이것을 책으로 쓰라." 저는 책을 쓸 때 거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씁니다. 저는 무슨 책을 쓰겠다하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 그냥 주님께서 "너 이거 책으로 쓰라"하시면 책으로 씁니다. 책으로 쓰라는 말씀이 없으면 그냥 목회만 하고 잠잠히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의 재발견」은 설교도 하고 책으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 전한 말씀과 통하는 말씀인데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이런 말이 퍼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구원은 절대로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직 믿음이란 단어는 쓸 수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쓴다면 성경에서 벗어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을 주장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바울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으니까 바울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오직 믿음을 가르쳤는데 마르틴 루터가 그것을 재발견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 이렇게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착각입니다. 여기 제 선배님이 앉아계시는데 선배님은 원어에 정통하시고 성서신학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성서신학이란 교리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보면서 문맥을 통해서 진짜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만 순수하게 추구하는 신학이 성서신학입니다. 그것을 선배님이 말씀해 줘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의 말씀에 의하면 요즘 성서신학자들 속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직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들이 성서신학자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정직하게 보니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아니, 아까 바울이 오직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하박국 2장 4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거기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원어 성경을 보면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번역자가 더한 것인데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한국 성경에만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있고 세계 어느 나라 성경에도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제가 영어 성경도 확인해 봤고, 멕시코에서 복음을 전할 때, 통역자를 통해서 멕시코 성경도 확인해 봤는데, '오직'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원어에 오직이라는 단어가 없으니까요. 번역자들이 오직 믿음이라는 말에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원어에 없는 것을 이것을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번역한 것이지 성경 원본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바울이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 얻으리라.” 그냥 믿음 하나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오직 믿음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을 똑바로 보셔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건 오직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오직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 하면 사도행전 5장 30절, 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구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구주로만 만드셨으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단순히 구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구주로 모셔 들이는 것은 십자가 보혈 공로와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구주가 되실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주이기 이전에 임금이십니다.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이 말은 예수님이 누구의 임금이 되지 않으면서 누구의 구주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임금이 아니면서 누구의 구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먼저 그의 임금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주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임금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전같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달라졌는데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고 내가 그분의 종이 되었는데 이전하고 똑같이 산다면 내가 자유인이지 그분이 나에게 주인일 수 없고 내가 그분에게 종이 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죄사함은 그냥 예수님을 믿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는데서 죄사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할 때 죄사함이 주어지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만 똑바로 봐도 얼마나 구원론이 이 시대에 엉터리로, 제 멋대로 가르쳐지고 있는지 눈이 번쩍 뜨이고 깨달아질 수 있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구주가 아니라 임금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 뿐 아니라 회개가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는 주(主)라는 단어는 있는데 개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의미는 없고 문자만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은 주가 무엇인지 분명히 압니다. 황제에게만 주(主)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황제 외에 주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란 말을 우리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주라는 말은 황제라는 말입니다.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임금과 구주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되기 때문에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믿음이 단순히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회개가 그 안에 전제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도행전 20장 21절의 바울의 고백에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어느 한 구절만 보고 말할 것이 아니라 바울은 단순히 믿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을 전한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루터처럼 오직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회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대한 회개인가? 회개는 돌이키는 것,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회개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세 가지 병행 비유를 말씀하면서 “땅에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탕자 비유는 분명히 회개의 비유이지요? 그런데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회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멀리 이방인의 나라로 갔습니다. 외국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는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창기와 함께 자기 재산을 먹어버리고 제멋대로 살려고 그런 것입니다. 나중에 탕자가 돌아옵니다. 우리는 탕자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단순히 그렇게 오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면서 오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날 때 자기가 왜 떠났는지 압니다.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죄지으려고 떠난 것입니다. 이건 바꿔 말해서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은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지옥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은 아버지의 권위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멋대로 살려고 아버지를 떠났던 사람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 부인할 수 없잖아요? 하나님께 대한 회개, 그리고 탕자의 비유, 이것은 성경을 찢지 않는 이상 어떻게 부정할 수 있습니까? 회개는 자백이 아닙니다. 회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이제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 회개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만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이렇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가짜라 말입니다. 여러분, 회개하셨습니까? 교회 다니는 것 말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셨습니까? 아버지께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큰 일 납니다. 여러분이 진짜 그런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믿음에 대해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방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다.”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이게 단순하면서 이렇게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구주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인류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단순히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하나님께서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을 통해서 주님이 되신, “하나님이 임금으로 세우신 주 예수를 믿으라.”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믿는 것으로 착각했는데 믿음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말 그대로 아는 것인데 복음을 다 들어서 복음의 내용을 아는데 안 믿어집니다. 그것은 지식적인 믿음이니까 가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게 다 믿어집니다. 그러니까 ‘나는 진짜 믿으니까 구원 받았다.’ 아니오. 이건 마귀의 자식입니다. 이게 지옥 가는 자입니다. 이거 가지고는 천국 못 갑니다. 이게 “믿음이 있노라”하는 것입니다.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진짜 믿는다. 나는 진짜 믿어진다.’ 이게 “믿음이 있노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복음 진리가 다 믿어지는데 행함이 안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들이 다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이것들이 다 쭉정이들이고 교회 안에서 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믿음은 믿는 것이 아니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첫날에 했습니다. 설교하는데 제가 알고 있던 얘기가 아니라 갑자기 성령의 계시가 제게 임해서 제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것도, 다시 오실 것도 믿습니다.' 이게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내 바깥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무슨 연구의 대상처럼, 예수님을 무슨 지식의 대상처럼, 예수님은 바깥에 있으면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고, 구주이신 것을 믿고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부활을 믿는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믿음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바깥에 있으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다, 어떤 분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가짜입니다. 믿음이 뭔가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되셨습니다. 이제 단순히 구주가 아니라 이분이 임금이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선택이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돈을 선택할 것인가, 예수님을 선택할 것인가? 내 멋대로 사는 나를 선택할 것인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냥 예수님을 바깥에 두고 예수님에 관해서 전부 알고 ‘내가 그것을 믿습니다.’ 이게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선택이요, 결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임금이 되셨는데 그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내가 선택할 것이냐, 그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려고 내가 결단할 것이냐?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너희가 오늘날 섬길 자를 택하라." 그게 믿음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섬기고 살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살 것인가? 이것이 영접입니다. 영접기도를 따라하는 종교 놀음 말고요. 그런 가짜 영접 말고요. 그런 영접기도나 따라하니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속에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나의 주인으로 결단하고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영접기도 따라하고 신앙고백하지만 이게 다 천국 가는 자가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믿음은 내 밖에 있는 예수님이 어떻다는 것을 예수님에 관한 것들을 그냥 믿어주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정말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고 이런 사람들만이 천국 갈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걸 생각하면 여기 지옥 갈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정신 차리셔야 됩니다. 진짜 회개해야 됩니다. 진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복음의 기본적인 진리부터 제대로 알고 회개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해지고, 그래야 거룩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초부터 잘못되어가지고 루터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깊이 씨름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오직 믿음, 오직 믿음’하니까 신앙상태가 그 모양 아닙니까? 여러분, 달라져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성경대로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이 되지 마시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대해서 말할 것이 너무 많지만 핵심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만 알아서는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거룩해집니다. 말씀만 알아서는 거룩을 목표로 삼을 뿐이지 거룩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말씀만 알아서는 거룩해질 수 없고 기도해야 거룩해집니다. 기도만 해서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쫓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선지자 노릇하려면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데 예언의 은사가 거저 옵니까? 기도를 아주 많이 해야 옵니다. 병 고치는 것이, 귀신을 내쫓는 것이 거저 옵니까? 그런 은사와 능력들은 기도를 아주 많이 해야 옵니다. 기도를 아주 많이 해서 예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는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모른다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말씀을 몰라 가지고 그냥 은사만, 능력만 구한 것입니다. 그냥 기도만 많이 한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만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거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룩이요, 사랑이다.”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핸들과 같다면 기도는 엔진과 같습니다. 기도 아무리 많이 해도 말씀이 없으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그냥 은사만 구합니다. 예언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귀신 쫓는 은사만 구하고, 체험만 구하고 그것 하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지만 회개를 안 하고 참된 믿음을 가지지 않고 거룩해지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러니까 사람들 중에는 유명해졌는지 몰라도 나중에 예수님이 “너 누군데?” 그럽니다. “너 아냐? 나 모르겠는데.”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만으로 거룩해질 수 없는 것이고, 기도만으로 거룩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먼저 바르게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지적인 신앙은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강해설교하고 제자훈련하고 성경공부하면서 기도는 별로 안 하는 것. 이것은 망조입니다! 이것은 영혼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범적인 것이 아닙니다! 건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알았으면 말씀을 아는 만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강해설교 한 시간 빼먹고 한 시간 기도하게 했으면 한국교회는 변화되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 때 강해설교 했으면 저녁은 꿇어 엎드려 기도하게 했으면 한국교회는 달라졌습니다. 기도는 자꾸 형식이 되어버리고 철야기도를 하더라도 밤새도록 설교 듣고, 늘 듣던 설교 왜 또 듣습니까? 주일 낮 듣고, 주일 밤 듣고, 수요일 밤 듣고, 기도회까지 듣고, 지겹게 듣고 성도들이 설교 듣는 기계입니까? 무슨 설교를 또 듣습니까? 또, 목회자들도 그만 혹사 시켜야지 목사들이 설교하는 기계입니까? 저는 큰믿음교회 아니면 목회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일주일에 그렇게 설교 많이 못합니다. 아니 설교하는 로봇입니까? 주일 낮 설교하고, 주일 밤 설교하고, 수요 예배, 금요 기도회, 새벽 예배 설교하고, 심방 설교하면 목회자가 스트레스 받아서 살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가 균형을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말씀을 먹습니다. 교인들이 주일 낮 설교를 아구아구 먹고, 주일 밤 설교, 수요예배 설교, 금요기도회 설교, 새벽예배 설교, 성경공부까지 교인들이 먹느라고 한국교회가 비만이, 비대증이 걸려서 숨이 차서 기도를 못합니다. 숨이 차서 전도를 못하고 봉사를 못합니다. 이것 고쳐야 합니다. 이걸 계속 먹어대면 고혈압 옵니다. 한국교회가 영적 비만에, 영적 고혈압에, 영적 당뇨병에, 영적 암에 걸린 것을 아십니까? 왜냐하면 끊임없이 먹어대기 때문입니다. 말씀 말씀 병에 걸려서 영적 식탐이 들어서 끊임없이 먹어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균형을 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데 주일 낮도 말씀, 주일 밤도 말씀, 수요예배도 말씀, 금요기도회도 말씀, 새벽기회도 말씀, 구역예배도 말씀, 이것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말씀을 볼 뿐 아니라 기도해야 됩니다. 설교해야 될 뿐 아니라 기도해야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볼 뿐 아니라 깨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거룩해집니다. 그래야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가 됩니다. 그래야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거룩해집니다.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사도들이 사도행전 6장 4절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 했습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으로, 중보기도자들이 목사들을 위해서 설교 잘하라고 기도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도 사실은 복음 전하는 것이지 이런 설교가 아닙니다.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기도에 전무했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기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구나. 가짜였구나. 설교만 잘하고 책이나 펴내고 내가 가짜였구나. 내가 기도를 너무 안 했구나.’ 그래서 며칠 전부터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벌써 제가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큰믿음교회가 굉장히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 부흥하고 성도들이 엄청 은혜 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기도를 시작하니까 아직 되게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진짜로 기도하기로 작정하니까 제가 바뀌고 있습니다. 목회는 기도하는 것이요,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장로님의 첫 번째 사명도 당회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당회가 없습니다. 저는 당회가 비성경적인 것으로 봅니다. 왜? 모든 것은 전문가가 하는 것입니다. 병은 의사가 고치고 재판은 판사가 하고 농사는 농부가 짓는 것이고 공연은 연기자들이 하는 것이지 장로님들이 어떻게 목회의 전문가입니까? 장로님이 의사든, 건축가든 장로님은 장로님이지 장로님이 목회에 대해서 뭘 압니까? 저는 우리교회에서 장로들이 목회에 관여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장로는 장로고, 장로는 성도다. 앞서가는 성도로서 모범이 되고 교회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일은 할 수 있어도 당회에 참석하지 말아라. 큰믿음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당회에 참석 못한다. 당신들은 성도고, 목회는 목회자들에게 맡겨라. 목회에 대한 결정을 목회자가 알지 장로가 어떻게 알겠는가?’ 한국교회에서 장로의 권위가 너무 세졌어요. 무슨 장로가 총회장이 되고 노회장이 됩니까? 보통 거꾸로 된 것이 아닙니다. 장로는 성도로서 어른이고 목회자는 목회자입니다. 다 자기 전문 분야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가서 의사나 변호사 노릇할 수 있습니까? 저는 성경을 통해서 목회는 목회자들이 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교역자 회의는 있어도 당회는 일절 없습니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은 목사님이 성경적이니까 그렇게 하시겠지 하고 거기 대해서 전혀 관여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 잘하십니다. 우리교회는 좋은 교회, 만만세입니다. 한국에 장로님 때문에 가슴앓이하고 제동 걸리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장로님들이 배워야지 장로님들이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압니까?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성경을 알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목회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결정하는데 이런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제도 자체가 교단적으로 볼 때는 합법이지만 성경 말씀을 볼 때는 불법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사탄이 많이 틈타고 한국교회가 당회 때문에 시끄러운 교회가 한둘이 아닙니다. 목사가 마귀하고 싸워야 하는데 장로하고 싸우느라고 머리털 다 빠져버리고, 목사하고 기도하면서 마귀하고 싸워야 하는데 장시간 회의하면서 장로들하고 싸우느라고, 여러분, 목회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각자 자기 전문가로서 전문 분야에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병원에, 법원에 가서, 농사짓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웃기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웃기는 일이 어떻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목사들이 눈이 어두워서 어떻게 그런 법을 만들었는가? 무슨 당회라는 것을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책임을 주셨으면 제대로 책임을 지고 목회하고 나가면 되는 것이지, 아무튼 목회자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장로의, 안수집사의 첫 번째 사명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양 팀의 첫 번째 사명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양 팀이 노래 잘 부르고 악기 잘 다루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고 찬양 팀이 찬양을 부르면 하나님의 임재가 쫙 깔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노래는 잘 부르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짜 찬양을 안 해서 그렇습니다. 노래하고 있어서, 앞에서 공연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앞에서 찬양 인도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교회는 찬양 인도 못합니다. 우리교회 찬양 팀들에게 기본으로 가르치는 것이 ‘앞에 나가서 찬양 인도하지 말고 다윗처럼 찬양해라. 기름부음은 머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찬양을 앞에서 인도할 때는 네가 머리다. 네가 진짜로 다윗같이 찬양했으면 그 찬양의 기름부음이 회중을 강타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에 임하는 것이고 그 임재 속에서 찬양하면서 성도들이 천국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도들이 새로워지고 병이 치유되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모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찬양의 채점표는 음정, 박자, 악기를 잘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의 채점표는 ‘그 시간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주님의 임재가 있었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 잘 하려고 하면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것을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 팀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역장들의 첫 번째 사명은 구역예배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구역예배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모든 봉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방송 팀인데요. 저는 주차관리하고 교회 청소하는데요.’ 여러분,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인상 찌푸리고 인상이 더러워서, 교회 왔는데 마음이 상해서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청소하는 사람도 주차관리하는 사람도 첫 번째 사명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사같은 얼굴로 청소도 주차관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부흥회를 하면 보통 부흥회 시간 세 시에서 다섯 시간 전에 교회 본당이 꽉 차버립니다. 사람들은 ‘왜 안 들여보내주느냐?’ ‘본당이 다 찼는데요.’ 그 사람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도 봉사하는 사람들은 방긋방긋 웃습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온유하고 사랑이 충만하니까 오는 사람들이 놀랍니다. ‘와, 저 교회는 달라. 저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의, 차량 안내하는 사람들의 얼굴 봤어? 저 사람들의 얼굴이 천사 같다.’ 우리는 연극 안 합니다. 우리는 '방긋방긋 웃으세요.'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백화점입니까?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차관리 팀도 기도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충만하니까 방긋방긋 웃으면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사명의 기초는 기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모든 일에 실패하게 됩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 가르치는 학교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 기도원이 많은데 좋은 일도 되지만 나쁜 일도 됩니다. 기도원이 왜 필요할까요? 왜 기도하는데 기도원에 올라가야 할까요? 왜 목욕탕이 있는데 목욕하러 냇물에 가려고 할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있는데 기도하러 교회 안 가고 왜 산으로 가려고 합니까? 교회가 타락해서, 교회가 본분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당이 되어버리고, 학교가 되어버렸으니까 가서 예배는 드릴 수 있어도, 성경공부는 할 수 있어도 교회 와도 교회 분위기가 냉냉해서 기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타락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든지 강도의 굴혈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는 기도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대형교회의 부유한 집사님이 자기도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섬기려고 조용한 산지에 아주 크고 근사한 기도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큰믿음교회를 알고 난 후로는 그 기도원에 청소나 하러 가지 거기 갈 일이 없답니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큰믿음교회 오고, 목요일도 금요일도 토요일도 주일도 큰믿음교회 오다가 등록해 버렸습니다. 왜? 이분이 기도원에 가는 것보다 큰믿음교회에 오니까 기도가 더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더 깊이 되고 영이 더 살 것 같고 기도원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원을 잘 지었다 해서 저도 두 번 가봤습니다. 그 집사님이 '목사님 자주 오셔서 기도하세요.' 하시는데 저는 갈 마음이 별로 없어요. 왜?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훨씬 좋은데 교회가 훨씬 더 뜨겁고, 임재가 강하고 앉아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되는데 왜 거기 가겠습니까? 경치가 좋으니까 어쩌다 한번 쉬면서 기도할 때나 갈까… 여러분, 기도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교회가 기도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선교 역할을 감당 못하니까 선교단체가 생겨나는 것이고 교회가 기도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기도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도원이 되어야 되고, 일반 기도원의 일곱 배 뺨칠 정도로 뜨거워야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우리교회는 월, 화, 목요일, 매주 삼일, 삼사백 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다섯, 일곱 시간, 여덟 시간씩 기도합니다. 지금 기도가 들불처럼 번져가지고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고 있습니다. 저도 참석하니까 이제 다 참석한 것입니다. 조만간에 우리교회는 1, 2, 3층이 매일 철야 기도하는 사람으로 가득 찰 것으로 믿습니다. 릭 조이너가 예언한대로 ‘서울에서 기도의 핵폭탄이 터진다’고 했는데 서울에서 기도의 핵폭탄이 터질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기도원을 능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때는 마지막 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심히 임박한 때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기도해야 되는 때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때는 기도해야 될 때임을 믿습니다. 지금은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왜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들림 받지 못하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들림 받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들림 받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열 처녀 비유의 결론은 마태복음 25장 13절에 "그런즉 깨어있으라."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깨어있는 자는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합니다. 깨어있는 자는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바울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자고 있느냐?” 우리가 깨어있어야 되는데 깨어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강해설교가, 제자훈련이, 성경공부가, 경배와 찬양이, 다른 프로그램이, 부흥회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회는 붕 떴다가 팍 가라앉는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변화 받을 것 같아도 일주일 지나면 약발 다 빠지고 이번 부흥회에도 은혜 받는 것 같아도 길게 가야 한 달되면 다 원상복구 됩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것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깨어있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36절에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있으라.” 이게 이 시대의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도 안 되던데요.’ 기도를 조금해서 그렇습니다. 죄를 이기려고 기도해서 그렇습니다. 기도하려고 기도해 보십시오. "마지막 때는 기도의 때다." 그러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죄를 이기게 됩니다. 여러분, 죄를 이기려고 기도하지 말고 기도하려고 기도하면서 마지막 때에 깨어서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중독이든지, 어떤 죄성이든지, 어떤 죄의 습관이든지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깨어서 영적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각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결단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혼자하지 말고 모여서 기도하십시오. 혼자하면 약합니다. 오순절에도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모여서 기도하자.' 그래서 여러 사람이 작정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모여서 기도하십시오. 이게 마지막 때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깨어있는 것이고, 그래야 들림 받을 줄 믿습니다. 지금은 성경공부만, 전도만, 구제만, 찬양만, 병 고치고 귀신 내쫓는 것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다른 것 다 해야 하지만 반드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가 중심이 되어서 해야 합니다. 심장이 뛰면서 손발이 움직이는 것처럼 기도가 중심에 있으면서 말씀도 배우고 기도가 중심에 있으면서 전도도, 봉사도, 다른 사역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기도를 중심으로, 심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라도, 장로라도, 안수집사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아무리 많이 알아도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아무리 부흥하고 있어도 기도해야 합니다! 은사가 아무리 많아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가 되고 변화가 되고 살고 쓰임을 받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죄가, 마귀가, 세상이 여러분을 이기지 못합니다!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이 집회 끝나면 집으로 안 가고 교회로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목요일이기 때문에 밤새워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기도하면 행복합니다.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기름부음이 저절로 옵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집니다. 기도가 저절로 됩니다. 제가 작은 자인 것을, 초라한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목사지만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약하고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이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그 기름부음의 흐름을 타고, 그 임재의 걸음을 타고, 그 성령의 강물을 타고 저도 휩쓸려서 기도합니다. 그것이 요즘 제 인생의 사는 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게 설교하는 것보다, 밥 먹는 것보다, 놀러 다니는 것보다, 부부간에 사랑하는 것보다, 경치 구경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호시탐탐 기도회에 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삼일동안 독수공방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저는 배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는 게 좋습니다. 아, 목사라고, 설교한다고, 유명해진다고 영이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교회 커진다고 영이 사는 게 아니고 저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교회는 점점 더 부흥하고 제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은 살아나지만 저는 죽어가고 있고 제 영은 목마르고 죄도 잘 못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기도하는데 도전받고 가서 기도하니까 달라지고 변화되고 살아나고, 사는 게 즐겁고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부흥의 마지막에 여러분의 기도생활이 시작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기도하셔서 들림 받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대강대강 말씀을 알아서는 큰 일 납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점점 깊이 알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기도를 통해서도 예수님을 점점 깊이 알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말씀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말씀하면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면서 영적 교만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적 교만, 영적 교만 다 위험합니다. 말씀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깊이 알고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깊이 알고, 예수님을 깊이 아는 자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압니다. 예수님을 깊이 아는 자는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이사야처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압니다. 자기의 죄를, 자기의 부족을 압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주님의 시각으로 자기를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애통하게 되고 탄식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간구하게 되고 부르짖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을 아시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알면서 주님을 아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주님을 아시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들은 말씀 생각하면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방향이 바르지 못하고 초점이 바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만 알고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 회개하고, 기도만 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것 회개하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해서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을 아는 것 외에는 사도 바울처럼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평생 초점을 분명히 하며 평생 마음이 변하지 않고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서 달려가는 우리들, 달음박질하는 우리들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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