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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생활의 본질
1. 정 의
수도승 생활이란 무엇인가? '수도승 생활'이란 말은 희랍어 'ՌՏՍՏՓ'(홀로)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이를 단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으며 또한 실제 학자마다 여러가지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수도승 생활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정의는 바로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 할 수 있다. Elio Gambari는 수도승 생활의 핵심을 '홀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느님을 찾는 일은 전(全) 수도승 생활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겠다. 수도승은 하느님만을 찾기 위하여 수도승적인 삶의 양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수도승은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투신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함으로서 수도승을 하느님을 찾도록 일반적인 소명을 받은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인들과 구별짓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는 삶인 수도승 생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당신의 전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바로 자아포기 또는 비하의 삶이었다. 강생에서부터 십자가 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자아포기의 삶을 통하여 예수는 부활의 영광을 입게 되었고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자아포기의 삶을 본받음으로서 그분의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러한 자아포기의 삶을 철저하게 사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삶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마태 16,24). 이처럼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또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아포기가 전제된다. "포기는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첫째이며 근본적인 힘이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매일의 삶 안에서 복음을 증거함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수도승은 더욱 완전하고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수도승 생활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이 세례의 소명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이는 바로 '자아포기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포기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곧 가난,정결,순명의 복음적 포기의 생활이다. 수도승은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따르기 위하여 이러한 세가지 복음적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도승은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 부정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서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그분의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자 한다." 이에 머튼은 "수도승 생활은 포기의 생활이며...하느님께 대한 전적이고 직접적인 예배의 삶"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빠꼬미오 전통은 수도승 생활을 고독과 침묵 속에 있는 그리고 곤궁과 박해 심지어는 죽음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된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본받는 삶으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 생활은 결국 자아포기의 삶이며 이는 가난,정결,순명의 세가지 복음적 포기로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수도승 영성은 흔히 순교의 영성으로 표현되어 왔다. 수도승 생활은 하느님을 위하여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를 죽이는 제 2의 순교인 것이다.
2. 동 기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 운동은 원래 복음에 적대적이었던 시대와 장소 안에서 복음적 권고에 따라 생활하고자 하는 평범한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서 생겨난 하나의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의 교계제도와 독립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운동은 313년 종교자유 이래 점차 세속화,제도화 되어 가는 교회에 대한 하나의 반항인 동시에 변천하는 시대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새롭게 실천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처럼 "수도승 생활은 그 기원부터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수도승 생활은 결코 세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감 또는 다른 어떤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도피나 현실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수도승 생활의 가장 큰 동기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사막이나 광야에서의 수도승 생활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이 사랑 때문에 초기 수도승들은 세속을 등지고 사막이나 광야로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 깊은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이러한 운동은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조용히 묵상과 기도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과의 더욱 깊은 일치를 위한 종교적인 열성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도승 생활의 근본 동기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이러한 은둔생활은 결코 이웃사랑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수도승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손노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였고 전염병이 만연할 때는 사막이나 광야에 있는 자신들의 은둔처를 떠나 병자들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단이 풍미할 때에는 도시로 나가서 이단을 거스러 열성적으로 설교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영적인 조언을 듣기 위하여 사막이나 광야로 쁹아갔다. 그들은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였으나 이웃사랑이 그들의 수도승 생활의 첫 번째 동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 대한 강렬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이 그들을 사막이나 광야로 이끌었던 것이다.
3. 목 표
우리가 앞에서 수도승 생활을 하느님을 쁹기 위한 자아포기의 삶이라고 정의하였듯이 수도승 생활의 목표는 당연히 하느님과 연관되어질 수 밖에 없다.
요한 가시아노(AD 360-430)는 <담화집>제 1.9.10에서 수도승 생활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에집트 전통으로 부터 가시아노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수도승 생활의 목표는 '수도승 생활의 목표가 무엇인가'묻는 제자의 질문에 대한 모세 아빠스의 다음의 대답 안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서원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 또는 하늘나라이나 직접적인 목표는 마음의 순결이 다. 이 마음의 순결이 없이는 아무도 서원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담화집1,4).
이처럼 수도승 생활의 목표는 크게 궁극적 목표와 직접적 목표로 나누어 지는데 그 궁극적 목표는 장차 올 '하느님 나라'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수도승들이 끊임없는 기도의 수행에 몰두할 때 이미 현세에서 어느정도 실현된다. 그들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순수한 기도에 인도되고 성령의 유대로 성부와 성자와의 일치에로 인도된다. 따라서 가시아노에 의한 수도승 생활의 긍극적 목표는 바로 기도와 일치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이다.
그리고 수도승 생활의 직접적 목표는 '마음의 순결'로서 이는 궁극적 목표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순결이란 직접적 목표는 밭에서 곡식이 자라는 동안 잡초를 말끔히 제거하는 것과 같다. "가시아노는 수도승이 먼저 마음의 순결에 이르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음의 순결은 하느님 나라와는 다르다. 즉 그것은 하나의 인간적 덕행의 상태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지금 여기서 실현가능한 것이다." 마음의 순결은 수도승 생활과 규율 전체의 존재이유이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승 생활의 모든 규율은 바로 '마음의 순결'이란 하나의 목표에로 방향지워진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처럼 "수도승 생활에서 행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나 다 마음의 순결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수도승은 마음의 순결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가시아노는 마음의 순결에 이르는 수단으로서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마음의 순결이 이 두가지의 수행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에집트 수도승들로 부터 배웠던 것이다. <담화집>제3,6에서 가시아노는 수도승의 포기의 삶에 있어 세단계의 포기를 묘사하고 있다. 첫째 단계는 '외적인 포기'로서 이는 세상의 모든 부와 재물을 가벼히 여기는 것이며, 둘째 단계는 '내적인 포기'로서 과거의 삶이 방식을 거부하고 영혼과 육신의 모든 격정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관상적인 포기'로서 이는 현재의 것들과 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이탈시켜 오로지 장차 올 것들만을 관상하고 볼 수 없는 것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순결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수도승은 이러한 포기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수도승의 이러한 포기는 결국 끊임없는 기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 안에 기초한 그리고 전적이고 근본적인 예수 그리스도 추종에로 이끄는 이러한 포기 없이는 열심한 기도생활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도승 생활의 본질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의해 하느님만을 찾고자 스스로 선택한 자아포기의 삶으로서 마음의 순결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얻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