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리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와 정문호 바르톨메오의 고향이다. 두 순교자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어려서 입교한 손선지 성인은 열심한 신앙으로 16세 때 샤스탕 신부로 부터 회장으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병인박해 때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정문호 성인은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했는데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조차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무렵에는 대성동 신리골에서 손선지 성인과 함께 살았다.
두 성인은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는 축복의 순간을 맞는 기쁨을 간직하며 칼을 받았다. 두 성인의 무덤은 같은 날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한재권 요셉 성인과 함께 천호 성지에 있다.
비신자로서 지석리에 살고 있던 손선지 성인의 종씨들이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선조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고 홍산 성당에 밭을 기증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손선지 성인은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여 30년 동안 전교 회장직을 맡아 어려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모범적인 삶을 통해서 신자와 비신자들로부터 존경받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하였다. 정문호 성인 역시 높은 학식으로 교리를 가르치며, 교우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인도했다.
성지 관할 본당인 홍산성당에서 성인의 유해를 만나볼 수있다. 제대 뒤편, 감실 아래의 유해대 안에 두 분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작년 12월 24일 오후 7시 가량 이곳에 도착하니 주위가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아뿔사, 이곳은 스탬프가 없고 본당에 있나보다" 하면서 진작 책자를 살피지 못한 나를 책망하며 차를 돌리고 있는데 스팸프 박스가 보인다. 스탬프 박스만 보일 뿐 칠흑같은 어둠이라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후레쉬를 키고 주변을 대충 본 기억이 난다. 오늘은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작년에 하지 못한 기도를 곱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