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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현대경제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대상
파밭 / 엄경순
하얀 다리를 걷어 올린 푸른 대궁
채마밭 굵은 파들이 쑥쑥 자란다
대궁 안은 한 숨 두 숨 잔뜩 부풀었는데
속내를 알 수 없는 통통한 옆구리를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발가락으로 간질인다
세상을 머금은 듯 단단히 여민 대궁
아무리 흔들어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꺾지 않으면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속을 보려고 대궁을 꺾을 수도 없다
대궁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세상
가만히 숨죽여 귀 기울이면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끙끙 속을 태우며 들어앉았다가
말문이 터지듯 어느새 쑤욱 답을 밀고 올라와
파바밭! 꽃대 위에서 하얀 꿏망울로 터진다
파밭에서는 꽃이 필 때마다
나비랑 벌 무리 좋아라 야단법석이다
대궁은 여전히 무슨 궁리 그리 깊은지
하얀 꽃 속 까만 씨알이 응어리처럼 영근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던가
작은 세상이 일일이 영그는 이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백제의 향로 같은 깊은 침묵이 피워 올린 꽃대는
푸른 속내흘 감추며 더욱 단단해져가고
꽃씨는 벌써부터 파 밭 파 밭 아우성인데
나는 생각이 여무는 그 침묵이 좋아라
발뒤꿈치 들고 조용조용 서 있는 파뿌리들
엄경순.1977년 충남 청양 출생
2014 동서문학상 가작, 2020 동서문학상 동상
우수상
새벽배송 공작소 / 김선욱
잠든 사람이 더 많을 열두 시 반
작고 노란 봉고차에 이형화물처럼 올라타서
접이식 의자를 펼치고 졸음과 함께 앉아서
로켓도 쏘아 올릴듯한 기지에 도착해서
거대한 명령과 굉음에 쪼그라들어서
너도 나도 그냥 입고 온 대로 입고서
무심한 컨테이너벨트 앞에 서서
잘못 거드린 도미노처럼
쏟아지는 토트박스 토트박스
왼손은 청기 오른손은 백기
청기 백기 함께 올려
청기 백기 함께 내려
반복하다가 가끔
청기가 어딘가에 끼어서
박스와 박스사이라거나 선반의 틈,
깜빡하고 가져와버린 마음에도 끼어서
십오 분의 쉬는 시간에
끼었던 손을 빤히 바라보는 것
내가 나한테 이래도 될까
하고 물어보는 것, 그때
여러분은 이곳에 돈 벌러 온 것 이라며
줄줄 새는 욕으로 우리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하게
청기백기 청기백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능숙한 백기를 든다
집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너무 큰 옷을 입은 물품들이
롤테이너에 실려 도크 밖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새벽이 닳아간다
병렬로 놓인 무수한 트럭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든다
혹지 꼭 안가셔도 되는 분 있습니까
조금 더 일하실 수 있는 분 있습니까
힘 빠진 청백기 대여섯 개가 죄처럼 들려지고
나는 옆 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그 사람도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우리가 우리한테 이래도 될까
김선욱ㆍ1989년 전북 익산 출생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https://naver.me/5130xzvd
심사평
함축된 언어와 유려한 문장 탁월
정화되고 함축된 언어와 시심을 엿볼 수 있는 엄경순 작가의 「파밭」과 삶의 현장을 떠돌며 삶의 살아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김선욱 작가의 「새벽배송 공작소」.
시 부문을 심사한 방민호 문학 평론가는 대상 수상작인 「파밭」에 대해 “파밭은 시인의 시의 언어에 함축된 정화된 시심, 탈속한 심성을 한껏 맛볼 수 있게 한다”며 “요즘과 같은 혼탁한 시대를 맑게 씻어낼 수 있는 감성의 시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고 강조했다.
우수상 수상작인 「새벽배송 공작소」에 대해서는 “시가 현실에 보다 밀착돼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새벽 배송 작업 현장이나, 문래동, 공덕역 같은 삶의 현장을 ‘떠돌며’ 오늘의 삶의 살아 있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챗GPT해설(참고로만)
파밭/ 염경순
1. 제목의 의미
"파밭"은 파가 자라는 공간을 의미하며, 생명이 자라고 비밀스러운 속내가 응축되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는 자연의 섭리와 존재의 비밀을 담아내는 장소로 해석된다.
2. 주제
파밭의 생명과 성장을 통해 자연의 비밀과 삶의 이치,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찰과 성숙을 탐구한다.
3. 상징의 분석
대궁: 성장과 내면의 비밀을 품은 존재. 무언가를 껴안고 있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삶의 복잡성을 상징.
청개구리: 세상을 간질이며 궁리를 자극하는 존재로, 자연의 호기심과 생명의 상호작용을 나타냄.
하얀 꽃: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성숙과 깨달음을 상징.
파뿌리: 침묵 속에서 서 있는 존재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성숙해가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
4. 연단위 분석
"하얀 다리를 걷어 올린 푸른 대궁
채마밭 굵은 파들이 쑥쑥 자란다"
푸르게 자라나는 파의 대궁은 성장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대궁은 강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단단히 속내를 감추고 있다. 이는 비밀스러운 내면을 품은 인간과도 유사하다.
"대궁 안은 한 숨 두 숨 잔뜩 부풀었는데
속내를 알 수 없는 통통한 옆구리를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발가락으로 간질인다"
대궁은 내면에 무엇인가를 품고 있으며, 청개구리는 호기심과 탐구를 자극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대궁은 스스로의 비밀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내면의 무게를 버티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세상을 머금은 듯 단단히 여민 대궁
아무리 흔들어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꺾지 않으면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속을 보려고 대궁을 꺾을 수도 없다"
비밀을 품고 있는 대궁의 단단함은 삶의 신비와 닫혀 있는 내면을 상징한다. 삶의 이치와 내면의 비밀은 억지로 드러낼 수 없으며, 자연스러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대궁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세상
가만히 숨죽여 귀 기울이면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끙끙 속을 태우며 들어앉았다가
말문이 터지듯 어느새 쑤욱 답을 밀고 올라와
파밭! 꽃대 위에서 하얀 꽃망울로 터진다"
대궁 속의 작은 세상은 삶의 복잡성과 내면의 고뇌를 나타낸다. 긴 침묵 끝에 답이 터지듯, 자연과 삶은 기다림 속에서 성숙과 해답을 만들어낸다. 이는 대궁에서 하얀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으로 상징된다.
"파밭에서는 꽃이 필 때마다
나비랑 벌 무리 좋아라 야단법석이다"
파밭에서의 꽃은 삶과 자연의 기쁨과 환희를 상징한다. 이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풍요로움을 드러낸다.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생명은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대궁은 여전히 무슨 궁리 그리 깊은지
하얀 꽃 속 까만 씨알이 응어리처럼 영근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던가"
꽃이 피어도 여전히 내면의 궁리는 계속되며, 이는 삶의 끊임없는 성찰과 내적 성숙을 상징한다. 자연의 비밀과 삶의 복잡성은 단번에 알 수 없으며, 시간 속에서 응축되고 영글어간다.
"작은 세상이 일일이 영그는 이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백제의 향로 같은 깊은 침묵이 피워 올린 꽃대는
푸른 속내를 감추며 더욱 단단해져가고
꽃씨는 벌써부터 파 밭 파 밭 아우성인데"
삶의 신비와 비밀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침묵은 삶의 성숙과 내면의 힘을 상징하며, 꽃씨는 새로운 시작과 번영을 암시한다.
"나는 생각이 여무는 그 침묵이 좋아라
발뒤꿈치 들고 조용조용 서 있는 파뿌리들"
침묵 속에서 성숙해가는 내면을 좋아하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발뒤꿈치를 들고 서 있는 파뿌리는 삶의 뿌리를 내려 성숙과 희망을 준비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5. 결론
이 시는 파밭을 통해 삶의 비밀과 내면의 성숙,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장과 성찰을 탐구한다. 대궁과 꽃, 파뿌리는 각각 삶의 신비, 성숙,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며, 화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과 삶의 이치를 음미하고자 한다. 삶의 비밀은 시간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며, 성숙한 내면은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