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가나 시내에는 수많은 당구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1때 처음으로 당구장 출입을 했었는데 제 기억에 광주 삼양백화점 內에 있는
당구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당구 치기 경험을 시켜준 철규 형에게 감사
드립니다. 질풍노도시기를 겪기 전까지 저는 에스컬레이터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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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삼양 백화점이라는 곳에 가서 이렇게 큰 슈퍼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 비싼 곳을
드나들려면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것인가? 가 계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아버지 심부름으로 해동 주조장에서 받아오라는 막걸리를 연탄불에 끊여서
몇 번 먹어보았지 생맥주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철규 형이 마른 오징어에 생맥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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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줘서 촌놈 티 날까봐서 500한 잔을 단숨에 들이 키고 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탁곤 이는 언제 쳐 먹어 봤는지 한 잔 더시켜 먹더라고요. 아직 나이트 갈 시간이 안 돼서
삼양 백화점 앞에 있는 당구장을 들어갔는데 우리시대 전설의 우 다방이 지금은 우체국만
남아있습니다. 저는 이날 받은 문화적 충격으로 또 한 명의 우상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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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습니다. 철규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광주에서 여러 번 퇴학을 맞고 우리 학교에
들어 왔습니다. 사업을 하신다는 부자 아버지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시집간
누나를 형네 집에 갔다가 본적이 있습니다. 누난지 동거녀인지 모르겠으나 응쌍팔에서
성동일이 각시로 나오는 그녀를 닮았습니다. 핏기 없는 표정만 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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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가-다는 여자, 당구, 싸움, 옷걸이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옷걸이는 건달의
레벨을 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문에 불량학생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4관왕이 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어떤 녀석은 1800원 하는 아놀드 파마 양말을 사신기
위해 집에서 쌀을 퍼 다가 파는 녀석도 있었고,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를 짓지 않았던 저희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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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팔 쌀이 없어서 옷이나 당구 비를 대부분 빈대를 붙어 해결해야 했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당구장 게임 비를 벌려고 학교대신 알바 카운터를 본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문제 만큼은 용빼는 재주가 없어 늘 친구들이 하는 음담패설을 듣고서 내가
경험한 것인 것처럼 호기 양양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불량(羊)인 제가 성 스캔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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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지 않은 것은 기적입니다. 철규 형이 준 우산 양말을 학교 갈 때 신고 저녁에 빨고
어쩌다 외박을 하게 되면 빨아 널어놓고 움직일 정도였으니 나는 우산 중독이었지요.
어른이 돼서 양말 하나에 4만원하는 아르마니 양말부터 모든 브랜드를 컬렉트 했지요.
그리고 징역에서 먼 싱 양말 한 족을 하루도 안 거르고 신었더니 한 달 만에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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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라고요. 뭐든 내게 귀해야 소중한 것인데 속옷 장사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이젠
짐이 돼서 버리는 것이니 아까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라도 당구장을 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전교 1등을 했겠지요. 고삐리 때 이미 애버리지 200을 넘어 지금까지 250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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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땐 주로 4 구를 친구들끼리 겐 뺑이로 쳤습니다.
물론 친선경기는 악동들 체질에 맞지 않았고 3팀 중에 꼴찌가 몽땅 뒤집어쓰는 내기
당구가 스릴과 서스펜스 만 땅 아닙니까? 제가 24살 때 안 방학동 원 약국 앞 이층에서
다이 5개짜리 당구장을 해었고 45살에 송우리에서 앙상블 당구장을 그리고 작년에 운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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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박스 당구장까지 3번이나 했습니다. 요즘은 당구장이 청소년들에게 완전 개방이
되었는데도 썩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한때는 라인 볼, 식스 볼, 포켓볼이 유행하는 것도
같더니만 이젠 다 옛날 얘깁니다. 뿐만 아니라 볼링장도 탁구장도 예외 없이 사향길인데
전 지금도 가끔 당구를 때리려 갑니다. 아니 아직도 당구장 출입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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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불황을 견디기 위해 나름 긴축재정을 하고 있다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단골
손님이랑 당구를 치러 나왔습니다. 쓰리쿠션 1승, 4구1승,4만원을 땄더니 삼바 춤이 절로
춰집니다. 미치겠습니다. 이러다 또 백수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입니다.
제 경험으론 당구장에서 담배를 배웠고 노는 법을 터득했는데 4구-3구-카드,
그리고 새벽에 사우나 가는 것이 당구장 백수의 레퍼토리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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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죄악에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하옵소서.
내가 주를 의지하고 적군에 달리며 죄의 담을 뛰어 넘어설 수 있게
하시고 의로운 삶을 힘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특별히 제가 온전한 삶을 위하여 죽을 각오로 기도하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회복하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2016.10.16.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