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은 KBS의 주말 사극 대왕의 꿈을 보다가 든 의문입니다.
신라 시대를 살펴보면
원효대사(속명 설사)에 재가해 6두품 설총을 낳은 요석공주,
성골임에도 진골인 김서현과 혼인하여 진골인 김유신을 낳은 만명부인 등
그 혼인에 있어선 귀천상혼의 기본적인 원칙이 신라에서도 지켜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극 중 이영아 분이 연기하는 승만왕후는 본래 손씨로 신라 6부 수장가의 사람으로
6두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어째서 극 내의 김숙흘종 등이 승만에게 왕자를 생산할 것을 계속해서 얘기하는지요?
사기 원전의 기사를 직접 찾아볼 수 없어서 확실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후비든 정비든 간에 승만이 진평왕의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6두품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은
골품 등급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 있을텐데요.
또한 진평왕은 승만 뿐만 아니라 후비 보량궁주도 있어서 보량을 통해 보로전군을 낳죠.
이 보량궁주도 설씨로 유력 귀족이라고 하나 또한 왕족인 김-박-석 진골 왕족이 아닙니다.
보로 전군 자체에 대해서도 전군(후궁의 왕자를 칭함) 신분임에도 덕만 공주가 왕재로 키우려고 하는 묘사가 나옵니다.
성골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들이 많지만
성골이 왕궁 내의 직계 왕족에 의한 혼인으로 태어난 자식이라는 유력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6두품이 아니라 진골이더라도 후계를 위한 왕자를 생산하기 위한 요건에
해당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으니 6두품은 겨우 후궁에나 들 정도로
임금과 성골 왕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천한 신분인데 왕자를 낳아봤자
유럽 중세를 다룬 CK2의 사생아만 못한 의미가 있을텐데요(CK2는 그나마 legitimate을 할 수 있죠).
결론적으로 2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1. 위에 제가 제기한 문제는 역시 단순히 극의 타이트한 전개를 위한 오류라고 봐야할지요?
아니면 제작진의 무지라고 보기엔 서강대학교 이종욱 총장의 고증자문이 허투로 들어가진 않았을진데...
2. 또 6두품 부인에게서 낳은 보로전군은 전형적인 귀천상혼에 따른 자식이니
역시 그 신분 또한 어미인 보량궁주를 따라 6두품으로 봐야할까요?
아니면 멘델의 중간유전 마냥 성골과 6두품 반반 참작해서 중간인 진골로 갈까요?
아 물론 명확한 케이스론 이미 진지왕과 골품이 불명확한 사량부의 도화녀에서 낳은 김비형이 있습니다.
* 내용이 길어지는데, 비형랑의 케이스도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사에서 도깨비마냥 묘사되기 때문에
실존여부가 불분명하지만 진평왕이 불러들여 집사부의 벼슬을 내렸다고 하죠.
구체적인 관등의 등급이 나와있지 않지만 역시 몇 두품에 해당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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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보량 궁주로 출연한 이시원 분은 서울대 경영 학사 출신이네요
대학 내일 커버 모델로도 나왔던 적이 있네요 허허허.


홑거풀의 눈이 동안인 얼굴과 잘 어울려 귀엽네요.
첫댓글 본문에 빠뜨렸는데 진평왕의 후비 보량궁주 설씨의 자매인 보라궁주 설씨 또한 같은 가문인데
진골귀족인 김춘추와 혼인했습니다(물론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와 또 혼인을 하죠).
설씨는 성씨 자체론 6두품이 분명한데 미실의 실존여부에 대해선 제쳐두고서라도 설씨가 모계 쪽으로 진골 혈통을 이어받았으니
진골에 편입되었다고 봐야될까요? 어찌되었든 귀천상혼의 전형적인 케이스네요.
아니면 아예 보라 궁주가 6두품이니 김춘추의 전실 자식 또한 6두품이었다고 봐야할까요?
물론 문무왕 법민과 외교관이자 수상으로 활약한 김인문은 보희 출생이긴한데.
또 김춘추의 첫째 딸 고타소는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6두품인 첫 부인 보라궁주 설씨에게서 낳은 6두품 핏줄인데
대야성 함락으로 유명한 진골 김품석과 혼인했습니다.
선덕여왕대에 이르러 김춘추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하나
6두품과 결혼한 김품석은 자신의 후손들 신분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제 보니 진골과 6두품의 귀천상혼이 당장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하네요.
이들을 원칙에 따라 다 신분격하를 시킨다면 문제가 있었을 것 같군요.
요즘엔 성골을 진평왕 직계가 자신들을 높이기 위해 조작한 체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저 정도는 극적 허용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극적 허용이라고 보기엔 해당 설정으로 신라 왕실의 가계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애초에 6두품 출신 후궁들이 있었고 그 자손 또한 있었던 건 사실인 만큼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하는가가 의문이 듭니다.
학사 전공자 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설명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전에 다시 한번 구글링을 했는데
[성골이 평민 혹은 성골이 아닌 귀족과 결혼하면 그 자손은 무조건 진골로만 하락한다]고 설명하는 포스팅도 있네요.
이 설명이 맞습니까?
이 설명이 맞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진흥왕 차남 진지왕
장손 진평왕 - 차손 국반
에서 진지왕은 진평왕에 의해 폐위되고 일찍 죽고
국반 또한 진평왕에 앞서 죽은 뒤 성골남진이라 하여 성골인 덕만과 국반의 딸이자 덕만의 사촌인 승만(승만 왕후와 다른 진덕여왕인 승만)만 남는데
보로 전군은 6두품 보량궁주 설씨와의 혼인으로 성골 진평왕의 진골 아들로 설정되어 계승권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극적 허용의 범위 내에 있다고 해석이 될 수는 있겠군요
그래도 위 설명은 보로 전군과 승만왕후까지만 설명이 되고
진골과 6두품의 귀천 상혼에 대한 의문점이 가시지 않습니다.
물론 위 설명 자체가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사학과나 사범대 역사교육과 다니는 회원 분들 빨리 도와주세요~
6두품출신 왕후나 후궁은.... 뭐 흔한 경우가 있잖습니까? 중앙귀족들 견제하거나 외척을 설치는거 막으려고 일부러 뽑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