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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신라 중대 6두품 출신 후궁과 왕후에 대한 의문
Europa decem milia et tria 추천 0 조회 1,322 13.05.06 04:0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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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5.06 12:25

    첫댓글 본문에 빠뜨렸는데 진평왕의 후비 보량궁주 설씨의 자매인 보라궁주 설씨 또한 같은 가문인데
    진골귀족인 김춘추와 혼인했습니다(물론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와 또 혼인을 하죠).
    설씨는 성씨 자체론 6두품이 분명한데 미실의 실존여부에 대해선 제쳐두고서라도 설씨가 모계 쪽으로 진골 혈통을 이어받았으니
    진골에 편입되었다고 봐야될까요? 어찌되었든 귀천상혼의 전형적인 케이스네요.
    아니면 아예 보라 궁주가 6두품이니 김춘추의 전실 자식 또한 6두품이었다고 봐야할까요?
    물론 문무왕 법민과 외교관이자 수상으로 활약한 김인문은 보희 출생이긴한데.

  • 작성자 13.05.06 12:38

    또 김춘추의 첫째 딸 고타소는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6두품인 첫 부인 보라궁주 설씨에게서 낳은 6두품 핏줄인데
    대야성 함락으로 유명한 진골 김품석과 혼인했습니다.
    선덕여왕대에 이르러 김춘추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하나
    6두품과 결혼한 김품석은 자신의 후손들 신분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제 보니 진골과 6두품의 귀천상혼이 당장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하네요.
    이들을 원칙에 따라 다 신분격하를 시킨다면 문제가 있었을 것 같군요.

  • 13.05.06 11:53

    요즘엔 성골을 진평왕 직계가 자신들을 높이기 위해 조작한 체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저 정도는 극적 허용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 작성자 13.05.06 12:21

    극적 허용이라고 보기엔 해당 설정으로 신라 왕실의 가계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애초에 6두품 출신 후궁들이 있었고 그 자손 또한 있었던 건 사실인 만큼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하는가가 의문이 듭니다.
    학사 전공자 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설명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3.05.06 12:30

    오전에 다시 한번 구글링을 했는데
    [성골이 평민 혹은 성골이 아닌 귀족과 결혼하면 그 자손은 무조건 진골로만 하락한다]고 설명하는 포스팅도 있네요.
    이 설명이 맞습니까?

    이 설명이 맞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진흥왕 차남 진지왕
    장손 진평왕 - 차손 국반
    에서 진지왕은 진평왕에 의해 폐위되고 일찍 죽고
    국반 또한 진평왕에 앞서 죽은 뒤 성골남진이라 하여 성골인 덕만과 국반의 딸이자 덕만의 사촌인 승만(승만 왕후와 다른 진덕여왕인 승만)만 남는데
    보로 전군은 6두품 보량궁주 설씨와의 혼인으로 성골 진평왕의 진골 아들로 설정되어 계승권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극적 허용의 범위 내에 있다고 해석이 될 수는 있겠군요

  • 작성자 13.05.06 12:33

    그래도 위 설명은 보로 전군과 승만왕후까지만 설명이 되고

    진골과 6두품의 귀천 상혼에 대한 의문점이 가시지 않습니다.
    물론 위 설명 자체가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사학과나 사범대 역사교육과 다니는 회원 분들 빨리 도와주세요~

  • 13.05.06 12:15

    6두품출신 왕후나 후궁은.... 뭐 흔한 경우가 있잖습니까? 중앙귀족들 견제하거나 외척을 설치는거 막으려고 일부러 뽑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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