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故김성우 일병입니다...
이 사진은 훈련 중에 불의의 사고로 숨지기 이틀 전에
부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1984년 3월, 故김성우 해병은 그렇게 갔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이던 1984년 3월초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희 해병대 제1상륙사단은 해안방어에 필요한 일부병력만을
사단에 잔류시키고는 거의 모든 부대병력이 참가한 가운데
팀스프리트 훈련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3월까지 지속되던 강추위 속에서 늦은 밤 시간대에 군사열차에
병력을 탑승시키고 포항역을 출발하여 10시간정도 지난 후에
다음 날 오전에 원주역에 도착을 했고...
그 때부터 약 보름간에 걸쳐서 우리는 작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문막 일대에 진지를 구축했던
저희 해병2587부대는 가상적인 적을 향하여 방어와 공격작전
임무를 수행하면서 당시 부대원들과 동고동락하는 가운데
작전에 임하는 강훈을 하게 되었지요.
도무지 3월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물마저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추위와 싸우면서도 어느 한 순간도 해병대다운 기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대원들을 독려하는 가운데 밤낮 구분 없이
가상적인 적을 격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같은 지역에서 훈련에 임하던 미군들과 육군병력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해병대다운 용맹성을 보여주면서 모든 작전은
드디어 성공리에 마쳤었습니다.
그리고 팀스프리트 훈련에 참가하여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해병대 제1상륙사단 병력들은 그로부터 이틀에 걸쳐서
부대 복귀를 위한 철수작전에 들어갔고...
사건은 그 때에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대 역시 130여명의 병력 가운데 선발대 10명을 먼저
복귀시키라는 대대장님의 지시를 받고 하사 2명을 포함한 10명을
선발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고참 병장 한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신병 가운데 1명이
눈에 부상이 생겼다면서 먼저 복귀 조치토록 부탁을 하더군요.
아마 선임 해병으로서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소대장인 저에게
부탁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신병의 눈의 부상정도를 직접 확인하고는 1차 선발대로
복귀토록 조치하는 것이 상처 입은 눈의 치료를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눈 부상 중이던 그 신병을 포함시킨 1차 선발대 10명은
본대에 앞서 하루 먼저 포항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그 1차 선발대 가운데 1명이 그만 사고로 숨졌다는 비보를 다음 날
새벽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훈련을 잘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도중에 사고라니...
다름 아니라 원주역에서 출발하는 장비수송 열차에
우리 부대의 훈련장비를 결박하던 도중에 기관사들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그만 열차를 움직이게 되었고 갑자기 흔들리는
상황에서 작업 중이던 많은 병력이 열차 아래로 순간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거대한 디젤기관차 열차바퀴를 피하기에
급급했는데...
그 가운데 눈을 부상당했던 그 신참 해병만은 그만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관계로 방향 감각을 잃으며 밑으로 뛰어 내리게
되었고...
그 순간 메고 있던 방독면 끈이 그만 열차에 걸리면서
너무도 끔찍하게도 그는 열차 바퀴 속으로 휩쓸리며 들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신체가 바퀴에 깔리면서
50여 미터나 끌려갔던 모양입니다.
직접 그 모습을 목격한 부하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너무도
한 순간에 발생된 사고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부대원들의 오열을 뒤로 한 채 그는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을 주며 먼저 한줌의 재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저는 그 당시의 사건을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가 숨을 거두게
된 몇 가지 원인 가운데 소대장이었던 저도 원인제공자 일수도
있다는 가슴 아픔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라도 저가 당시에 부상당한 그의 눈을 보고도
"졸병이 기합이 빠졌어..!" 하면서 차라리 그의 눈상처를 무시
해버리고 1차 선발대에만 포함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는 살아 있었을 겁니다. 아니 분명히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살아있더라면
그 신참 해병은 올해 아마 40대 초반 나이가 다 되었을 겁니다.
한 쪽 눈에 눈가리개를 한 채로 강원도 문막 일대의 작전지역에서
항상 M16소총을 들고 뛰어다니면서도 자신의 눈 부상을 말하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훈련에 임했던 그 해병은
이제 고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20년 전의 그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故김성우 일병입니다..!
故김성우 일병!
정말 미안하다. 어쩌면 내가 널 살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 사실 때문에 당시에 오랫동안 무척 고통스러워했었다.
주변 상관과 동료들 그리고 부하들이 모두가 어쩔 수 없었던 우
연한 사고라고 위로도 했었지만...
나는 오랜 세월을 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너의 상관으로서
고통을 간직한 채 살아야만 했어...
故김성우 일병!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국립묘지의 차가운 땅바닥에
그는 묻혀있지만... 그의 영혼은 해병혼이 되어 우리 부대원들의
가슴에 살아있을 겁니다.
당시 해병2587부대 18중대 중위 김경호
첫댓글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슴이 찡해옵니다,
가슴아픈 사연이네요 ..김경호중위님의 대원들사랑이 잘나타나 있습니다...고 김성우선배님의 명복을빕니다
김경호중위님의 부대원사랑하심에 고 김성우해병은 좋은곳에서 편히쉬고있을것입니다,,마음에 짐을벗어놓으세요
가슴아픈 사연입니다...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그 어느 부하가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가슴을 아리게 하던 후임이 더 생각나는 것은 인지 사정일까요 가슴에 묻은 부하의 넋은 해병혼이 되어 오늘도 우리 곁에 있을겁니다 잊지 않는 부하사랑 그것이 진정한 해병혼 일겁니다 삼가 고인 의 명복과 유족의 위로가 영원하기길 기원 합니다
너무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김성우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필승~~~~고김성우해병님을 명복을 빕니다...^&^
사진을보니 몸에 찡하게 전율이 전해집니다 저의 동기입니다 해마다 현충원을 찾아 그의 부모님을 뵈면서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이친구 말고도 백령도에서 순직한 김기중 동기의 가족들도 현충일날 대전현충원에서 매년 만나고 있습니다. 고구려후배님 !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걸사비우님 탱큐입니다.해병!!
선배님..수정조치하였습니다..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