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 시래기 2
나는 텔레비전 시청에 둔감하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연속극은 뭐가 방영되는지 관심 밖이다. 출근 시간대 아침뉴스정도는 눈길을 보낸다. 그것도 그날의 날씨를 전하는 기상 게스트다. 가끔 퇴근 후 ‘6시 내 고향’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의 흙 내음은 간접으로 맡는 편이다. 몇 해 전 강원도 양구에서 무청 시래기를 말려 농민들에게 좋은 소득원이 된다는 소식은 인상 깊게 본 적 있다.
어느 해 정초 생활권과 떨어진 의령 적교에서 창녕합천보를 건너 현풍 곽재우 묘역을 찾아간 적 있었다. 그날 여정 마지막은 강변을 계속 걸어 도동서원까지 올라갔다. 도동서원을 앞둔 들녘은 모래밭에서 키운 무청을 노천에서 가득 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두 집이 아니고 온 동네가 무청 시래기를 말렸다. 아마 전문식당이나 식자재 화사와 계약 재배한 무청 시래기였지 싶었다.
나는 봄부터 여름까진 들녘을 나가거나 산자락에 올라 들나물 산나물을 채집해 밥상에 즐겨 올린다. 들나물로는 냉이나 쑥을 비롯해 달래나 돌나물 등이다. 산나물로는 취나 바디나물이나 두릅이나 다래나무 순 등이다. 나는 창원 근교 웬만한 들녘이나 산자락의 지형지물을 훤히 꿰차고 있다. 주말 여가 시간에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서 발품을 팔면 귀로엔 뭔가를 가득 채워오기 일쑤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지인 텃밭을 순례하면서 신선채소를 조달 받는다. 때로는 씨앗을 직접 심거나 김을 매주기도 한다. 그래야만 내 소유 지분이 없어도 지인의 텃밭에서 생산되는 푸성귀를 가져와도 마음이 편하다. 우리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나 친구에게도 보내기도 한다.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학교 동기는 농담이긴 했지만 언제는 뭐가 빠졌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철이 철이니만큼 산나물이나 푸성귀는 조달에 문제가 있다. 봄에서 여름까지 산나물이 넉넉할 때 묵나물로 말려 놓지는 않는다. 그저 일용할 찬거리를 확보해 그때그때 식탁에 올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통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을에 일찍 싹이 돋은 냉이는 땅이 얼기 전 캐서 봄 향기를 누구보다 먼저 맡는 편이다. 올 겨울 들녘에 절로 자란 냉이를 두 번이나 캐 왔다.
동지 무렵 북면 갈전마을 어귀에서 냉이를 캤다. 농장주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시든 고춧대가 서 있고 김장 배추를 뽑아간 밭뙈기였다. 그 밭에 자란 냉이는 한갓 잡초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에게 채집되는 순간 좋은 찬거리로 변신했다. 올 겨울은 빈가 잦고 날씨가 따뜻해 소한 무렵에도 땅이 얼지 않았다. 용추계곡을 들어 진례산성을 넘어 긴 임도를 걸어 송정마을에서도 냉이를 캤다.
들녘에서 채집하는 냉이는 마트에서 파는 냉이와 다른 점이 있다. 검불은 가리면 되지만 흙이 많이 붙어 털고 씻는데 공이 그만큼 더 든다. 냉이뿌리가 시중에 파는 것보다 훨씬 굵어 향기가 더 진하다. 냉이 잎맥은 본디 파릇한데 겨울이 되면 암녹색으로 바뀐다. 냉이를 다듬고 씻어 끓는 물에 데치면 파란 물이 번져 나온다. 냉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이 삶은 물에 그대로 비친다.
다시 무청 시래기 얘기로 돌아가련다. 겨울이면 뭐니 뭐니 해도 무청 시래기의 계절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무는 겨울 양식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무김치, 동치미 주재료이고 무밥이나 무채나물로 자주 먹었다. 무청은 볏짚으로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아 두고 새봄이 돌아올 때까지 두고두고 찬거리로 삼았다. 무는 밭에다 구덩이를 파 묻어두면 바람이 쉬 들지 않아 오래 보관이 되었다.
나는 지난 연말 밀양의 지인 농장을 찾아 시래기를 제법 가져왔다. 그 시래기는 삶아 껍질을 까 냉동을 시켜 시나브로 먹고 있다. 엊그제는 북면 지인 농장에 들렸더니 지인은 내 몫으로 상당한 시래기를 챙겨주었다. 지인이 달포 전 무를 뽑고는 무청을 농막 천정에 매달아 놓고 말려가는 시래기였다. 작년까진 네 집에서 나누었는데 올해는 인기가 있어 일곱 등분으로 나눈다고 했다. 17.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