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예방접종
강 문 석
계절에 관계없이 해마다 감기로 고생한 것은 기초체력이 약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 아래위로 딸을 둔 어머닌 해마다 절반 가까이나 눈에 파묻히는 홋카이도에서도 아들만 두꺼운 포대기에 싸서 키웠다는 걸 자랑처럼 자주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러한 육아법은 오히려 면역력 저하의 요인이 되기도 했을 터이다. 그런데다 동란 이후 맞닥뜨린 신산스러운 삶은 인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마저도 공급하지 못하여 제대로 된 체력을 갖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감기에 걸려서라도 술꾼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따끈한 정종이나 소주에다 고춧가루까지 타서 마셔댔으니 이보다 더 미련한 짓으로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 사람이 있을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감기란 병명에다 ‘홍콩’을 갖다 붙인 걸 접하면서 이제 인간들이 별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때였지만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찾아갈 홍콩을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발생한 독감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1968년이었다. 그 해는 공교롭게도 태어나서 가장 먼 여정을 소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지역을 자주 옮겨 다닌다는 것은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으로선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도 그땐 그랬다. 4월초 의정부 미1군단을 출발하여 대구의 50사단을 거친 것이 시작이었다. 그달 중순에는 복직한 직장에서 창원으로 배치를 받았고 11월엔 다시 부산에 발을 디뎠으니 9개월 동안 무려 네 군데 지역을 떠돌았던 것이다.
주로 아열대 지역인 홍콩과 중국 남부에서 겨울과 여름에 발생하는 홍콩독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두 번째는 바로 작년인 2015년 겨울이었다. 사스나 메르스와는 달리 독감은 항바이러스제인 예방백신이 개발되어 있어서 치료와 예방이 가능한 질병이란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독감은 치사율이 1퍼센트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홍콩에서 육칠월 두 달 동안 독감으로 입원한 성인 140명 중 103명이 사망했다니 결코 만만하게 볼 병은 아니었다. 독감은 주로 공기를 매개로 전염되기 때문에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분비물을 접촉하거나 바이러스가 묻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을 때 감염된다고 한다.
35도 이상의 고열이나 두통이 발생하기도 하고 구토나 설사가 동반될 수도 있다고 국민안전처는 알려준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방접종만으로도 7할 이상 예방할 수 있고 증상이 있더라도 48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그 증상을 완화시키면서 합병증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작년부터 국가에서 시행하는 예방접종대상에는 65세 이상 노인도 들어있었다. 아내는 그 정보를 신속하게 알려주었지만 응하지 않고 미적대다가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그까짓 접종 하나로 얼마나 예방효과가 있을까 하고 시피 보았던 것이다. 금년에도 아내는 때가 되자 또다시 예방접종 타령을 하고 나섰다. 그 독려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거기 소아과 맞죠? 독감 예방주사 때문에 찾아가려고요. 위치 좀 알 수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그냥 바로 오시면 허탕을 칠 수도 있으니까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수화기 저쪽은 간호사일 터인데 상담전문가나 백화점 점원처럼 친절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읽혀졌다. 그의 말속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대하듯 밝고 상냥한 웃음까지 섞여있었다. 기다려보라는 것은 주사약이 딸랑딸랑해서였다. 첫해인 작년에 보건소에서만 접종하다보니 불편하다는 민원이 있어서 올해는 병의원까지 접종장소를 확대했던 것이다. 인구 30만 도시에선 무려 70군데의 병의원에다 주사약을 준비해놓고 겨울이 닥치기 전 40여 일간 접종을 실시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늘어난 때문인지 20여일 만에 주사약은 거의 동나고 말았다.
보건소를 찾아가 주사약이 남아 있는 몇 군데 병원을 알아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해당병원을 찾아가야만 무료접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산신도시 한복판의 마트건물이라고 해서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등에 땀이 밸 정도로 상가건물을 돌고 돌아서 겨우 찾아들어간 소아과엔 갓난아기로부터 꼬맹이 환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웠다. 환절기에 감기를 않는 아이들 같았다. 소아 환자들에 바쁜 중에도 간호사는 친절하게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의사는 문을 닫지 않고 환자를 보고 있어서 자지러지는 아기환자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밖으로 새어나왔고 진료실은 의외로 넓었다. “원장님 면담 후 주사를 맞아야하지만 지금 환자가 밀려서 제가 그냥 놓아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간호사가 물어왔다.
접종은 왼쪽 어깨에 주사바늘을 콕 찌르는 것으로 금세 끝났다. 나이가 들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병원투어도 늘어난다. 그럴 때마다 병원 접수창구는 노인에게 스트레스를 팍팍 안겨준다. 아파서 병원을 찾은 사람을 어떻게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묻기 때문이다. 어차피 담당 의사를 만나면 다 말해야할 증상을 미리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의사가 그렇게 접수토록 시킨 것 같지만 답한 것을 차트에 꼼꼼하게 기록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냥 습관적으로 묻는 것 같았다. 귀찮아서 그냥 “아파서 왔다”고 짧게 대답하면 십중팔구 다시 묻는다. 치과일 경우엔 바로 입안 전체 엑스레이사진을 찍게 되고 피부과는 환부를 의사에게 까발려야하는데도 그렇다. 전립선처럼 남자끼리도 밝히기 민망스러운 부위까지 간호사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공기업에 몸담아 일한 덕분에 자연스레 고객봉사를 익힐 기회가 있었다. 백화점처럼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도열해서서 머리 숙여 인사하는 법을 훈련했던 것이다. 처음엔 서로 마주보고선 자체가 어색해서 킥킥거리기도 했지만 친절교육은 서서히 몸에 배어들었다. 반복해서 익힌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경상도 사내들의 거칠고 무뚝뚝했던 언행이 점차 사라지고 매너 있는 응대자세가 전화통화에서까지 나왔던 것이다. 재직 때 몸소 실천하면서 몸에 달라붙은 친절감각은 이제 불친절을 만나면 참 답답해진다. 개인병원 간호사들은 그러한 소양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불친절하다고만 생각해왔는데 그것이 편견이란 걸 오늘 두 간호사는 생생하게 증명해 보였다.
감기를 달고 살면서도 독감은 말 그대로 좀 더 독한 감기인줄로만 알았다. 이번 예방접종을 통해서 독감은 일반 감기와는 원인과 병의 경과가 다른 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독감은 급성 호흡기 질환이기 때문에 상부 호흡기계인 코와 목과 하부 호흡기계인 폐를 침범하여 갑작스런 고열과 두통 근육통 전신 쇠약감과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까지도 터득했다. 독감은 전염성이 강하면서 노인이나 소아는 물론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걸리면 사망률이 증가하면서 합병증도 발생하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한다. 이제 노인들의 10월은 독감예방접종으로부터 시작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빚쟁이처럼 닦달하는 반려자의 채근이 있기 전 스스로 병원을 찾아나서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