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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사업의 시작과 끝, 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검찰이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 퍼즐,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의 폭로 진위 여부, 50억 클럽 중심의 로비 의혹 조각 모두 그를 거쳐야만 맞춰진다. 그래서 김만배 전 부국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
김만배 전 부국장은 침묵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진실공방 속에서도 말을 보태지 않는다. ‘검찰이 원하는 답’도 주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간에 말을 바꾼 다른 대장동 사업 관계자들과 달리 의혹이 불거진 직후 내놓은 입장을 고수한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치밀한 계산에 따른 전략적 침묵인지는 남은 검찰 수사와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은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진실공방에 말을 보태지 않는다. 그의 침묵에는 폭로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시사IN 신선영
“김용씨(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가 2021년 2월4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만난 뒤 현금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들고 가는 것을 봤다. 그 돈은 김만배씨가 2021년 1월에 유동규씨에게 줬다는 현금 1억원 중 일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 유동규씨한테 그 돈이 ‘428억원’ 중 일부라고 들었다. 김만배씨가 올해는 이것만 주겠다고 했다고 들었다. 그날 김용씨가 돈 들고 가는 모습에 영향을 받아 대선 경선 자금을 드리게 됐다.”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의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가 3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 한 말이다. 김용 전 부원장은 2021년 4~8월 남욱 변호사에게서 대선 경선 자금 명목으로 8억47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이다. 남욱 변호사 증언의 핵심은, 김용 전 부원장이 자신뿐만 아니라 김만배 전 부국장에게 추가로 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용 전 부원장이 2021년 2월 김만배 전 부국장의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장동 의혹 진실공방 핵심은 김만배
남 변호사가 말한 현금 1억원의 출처, ‘428억원’은 천화동인 1호의 배당금이다. 천화동인 1호는 대장동 개발사업을 총괄한 화천대유의 100% 자회사다. 서류상 천화동인 1호 소유주는 김만배 전 부국장이지만, 검찰은 이재명 대표 측이 실제 주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시사IN〉 제805호 ‘말 바뀌니 달라진 천화동인 1호 주인’ 기사 참조).
대장동 사업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직후 남욱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에서 천화동인 1호 주인은 김만배 전 부국장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말을 바꿔 이재명 대표 측 지분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남 변호사에 앞서 유동규 전 본부장은 대장동 사업 지분 구조를 짤 때부터 이재명 대표 측을 위해 천화동인 1호에 숨은 몫을 떼어놨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대장동 사업에서 특혜를 받는 대가로 ‘천화동인 1호 지분’이라는 열매를 주기로 약속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를 이재명 대표 측으로 지목했다.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본부장의 폭로와 주장에는 빈 공간이 있다. 428억원, 천화동인 1호 지분과 관련해 검찰과 법원에서 했던 주요 증언 대부분이 ‘전언(전문진술)’에서 비롯됐다. 유 전 본부장은 김만배 전 부국장에게 ‘들었다’고 하고, 남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을 통해 ‘김만배 전 부국장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한다. 전문진술은 진술한 사람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게 아니라 제3자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다른 직접 증거가 있거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남 변호사와 유 전 본부장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428억원’을 준다고 말했다는 김만배 전 부국장이 입을 열어야 한다.
'428억원 약정' 의혹과 관련한 남욱 변호사의 폭로 대부분은 '김만배 전 부국장이 한 이야기를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전해 들었다'는 취지다. 법원이 이 같은 전문진술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향후 재판의 관전 포인트다.ⓒ시사IN 이명익
김만배 전 부국장은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본부장의 주장이 자신의 ‘허언’이 낳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대장동 사업 수익배분과 비용 지출을 두고 사업 관계자들 사이 다툼이 생겼고, 김만배 전 부국장은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검찰 수사와 재판 등에서 ‘428억원’에 대해 말한 사실은 있지만 동업자들(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 등)을 달래거나 다툼을 모면하기 위한 발언이었고, 윗선은 없으며,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는 본인이라고 밝혀왔다. 정영학 회계사가 녹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일부러 더 과장하거나 허위 사실을 말했다는 주장도 했다. 김만배 전 부국장은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법원이 김만배 전 부국장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50억원(세후 25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1심 판결에서다. 곽 전 의원은 2월8일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허언’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그에게 말을 ‘전해 들었다’는 다른 관계자들의 전문진술 대부분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곽상도 전 의원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대장동 일당 사이에서 공통비 분담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자, 김만배 전 부국장이 공통비를 덜 내려고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곽 전 의원 아들을 통해 돈을 건네야 한다는 취지의 대화가 담긴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 남욱 변호사의 주장은 전문진술로 판단됐다. 1심 재판부는 남 변호사가 재판 초기에는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이후 상황이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주장은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3월2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핵심 혐의는 4895억원에 달하는 배임이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당선 뒤 정치적 자산을 만들기 위해 지역 민간사업자와 유착했으며, 이들에게 특혜를 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성남시가 ‘정상적으로’ 가져야 할 개발이익(4895억원)이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며 연일 폭로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428억원 약정'에 대해서는 '김만배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이재명 대표에게 적용된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①성남시가 이익을 내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이재명 대표가 ②성남시에 손해를 끼칠 고의를 갖고 ③대장동 민간사업자들에게 수익을 몰아준 것이 입증돼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고의’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 법원은 ‘동기’를 유심히 본다. 어떤 이유로 범행(배임)을 저질렀는지 따져보는 것인데, 검찰은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과 공소장에서 이를 ‘정치적 이익’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가 시장 재직 중 ‘성남1공단 공원화’ ‘개발수익금 환수’ 등 공약 이행을 위해 무리하게 대장동 개발사업을 추진했고 이 때문에 민간사업자에게 특혜를 줬다는 주장이다.
정치적 이익이라는 ‘범행 동기’는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적용한 배임죄 논리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사업자에게 고의로 수익을 몰아주면 시가 환수할 수 있는 개발수익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민간사업자들이 이익을 챙겨가는 만큼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이익이 작아지는 모순이 생긴다.
1500억원 걸린 침묵의 계산법
이재명 대표 기소 전날까지, 검찰은 배임 동기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천화동인 1호 배당금 ‘428억원’이다.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428억원을 받기로 약정했다는 것이 입증되면 배임 동기는 물론 뇌물죄까지 적용할 수 있다. 뇌물은 실제로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약속’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어서다. 약정의 주체가 이 대표 측근이라면 제3자 뇌물제공죄 적용 여부도 검토할 수 있었다.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쓰인 것이 확인되면 정치자금법 위반죄도 성립한다.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과 공소장에는 ‘428억원 약정’이 빠져 있다. 검찰은 유동규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달라진 주장을 토대로 주변 수사와 정황 증거를 수집했지만, 핵심 증거의 출발점인 김만배 전 부국장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김만배 전 부국장이 숨겨둔 재산과 주변 인물들 명의(차명)로 된 대장동 개발수익을 찾아내 동결하고, 범죄수익 은닉 혐의 등으로 김만배 전 부국장을 다시 구속해 재판에 넘기는 등 압박 전략을 썼다. 김 전 부국장은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오히려 김만배 전 부국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만원 들어 있는 계좌까지 뒤진다’며 불쾌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만배 전 부국장의 ‘허언’이 거짓이더라도, 그가 기존 진술을 뒤집는 것은 큰 실익이 안 되는 선택일 수 있다. 김 전 부국장이 ‘검찰이 원하는 답’을 내놓으면 배임과 뇌물 혐의가 적용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 경우 그가 얻은 1500억원대 대장동 개발수익(천화동인 1호 1213억원, 천화동인 2호 102억원, 천화동인 3호 102억원 등) 대부분이 범죄수익으로 환수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곽상도 전 의원 무죄 이유도 김만배 전 부국장이 침묵을 지킬 명분이 된다. 검찰의 압박도, 플리바게닝(형량 협상)도 김만배 전 부국장에게는 통하지 않는 셈이다.
검찰은 ‘428억원 약정’과 관련한 수사를 계속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다만 수사가 쉽지만은 않다는 뜻도 에둘러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인의 말만 갖고 수사하진 않지만, 당사자의 진술이 중요한 증거라는 점은 분명하다”라며 김만배 전 부국장의 침묵이 수사의 걸림돌임을 시사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 기소와 맞물려 ‘50억 클럽’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50억 클럽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지난 3월6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에서 검사 두 명을 각각 파견받은 데 이어 3월16일 추가로 검사 두 명을 더 파견받았다. 3월에만 검사 네 명이 증원되면서 부서 인원은 16명까지 늘었다. 50억 클럽 수사를 철저히 진행하기 위한 인력 보강이라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50억 클럽 의혹에서도 김만배 전 부국장이 핵심이다. 그가 대장동 민간사업자들과 개발사업, 이재명 대표 개인 등을 위해 박영수 전 특별검사, 곽상도 전 의원 등 법조계와 정치권 관계자들에게 50억원을 주었거나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이번 검찰 수사 확대는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의 특검 추진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428억원 약정’ 의혹 규명을 위한 또 다른 김만배 전 부국장 압박용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김 전 부국장이 대장동 사업, 또는 이재명 대표를 위해 로비했다는 사실이 수사를 통해 입증될 경우, 다시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칼날을 겨눌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