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2부 -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지나갈 때
시골에 있는 명문고인 거창고등학교 강당에는 이상한 직업선택의 십계명이 걸려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은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서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쏟는 풍토에서 이런 엉뚱한 가르침은 시대와 맞지도 않고 언뜻 수긍하기도 힘들다. 어느 날 몇몇 학생들이 이 계명을 만든 전성은 교장을 찾아와 십계명을 이제 그만 떼어버리자고 했다. 그러자 전성은 교장은 그 계명을 실천하여 우리 학교로 부임한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시는 동안에는 불가하다고 했다. 사실 그도 대학교수직을 마다하고 시골고등학교의 선생님을 택한 사람이었다.
이 십계명의 공통점은 기꺼이 고통과 고난의 길을 택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전성은 교장은 그의 부친인 전영창 선생의 평소 가르침을 토대로 이 십계명을 만들었는데, 이 십계명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No Cross, No Crown 으로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고난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세상을 사는 인간에게 고난과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한국인 최초로 미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정책 차관보에 오른 강영우 박사가 있다.
그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195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이듬해 친구가 찬 축구공에 맞아 실명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쓰러져 돌아가셨고, 가장이 된 누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사망한다.
졸지에 가장이 된 그는 생계를 책임질 수가 없었다. 결국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그는 시각장애인 재활원으로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온가족이 뿔뿔히 흩어지던 날,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동생들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이 불과 중학생이었던 4년 동안에 모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학교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매우 심했다. 그의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그는 연세대를 문리과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그의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박사가 되고 싶어했지만 맹인을 받아주는 대학원은 없었다. 결국 그는 1972년 도미하여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고,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상원 인준을 거쳐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임명된다. 강영우 박사는 백악관 정책차관보로 6년 동안 일하면서 미국 5400만 장애인을 대변,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
그의 장남 강진석는 30만번 이상 백내장 굴절수술을 집도해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슈퍼닥터’에 뽑혔으며, 차남 강진영은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법률고문으로 임명되어 아버지를 이어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중책을 맡았다.
ⓒ강영우박사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편안함과 안락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이다. 사람은 편안하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그 편안함에 매몰되면 그저 의미없는 인생을 살게된다. 고난과 시련이 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어진 환경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하다고 할 지라도 낙심하면 안되다. 지혜로운 사람은 극심한 불운속에서도 엄청난 기회를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엄청난 기회속에서도 불운만을 볼 뿐이다.
현대철학의 서막을 연 니체는 안락만을 바라는 인간에게 '안락이라는 것은 인간의 목표가 아나라 종말'이라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행복한 사람이란 고통과 고난속에서도 행복할 줄 아는 초인이다.
강영우 박사는 췌장암으로 68세의 나이로 2012년에 사망했다. 수술을 권하는 의료진들에게 나는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할 시간도 허락받았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처음에 강영우 박사가 왜 수술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68세에 죽었지만 그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누나가 죽은 중학교시절에 이미 죽었다. 그 이후의 그의 삶은 그저 신이 주신 덤으로 산 세월이다. 십대에 끝났어야 할 삶이 육십을 넘게 이어졌고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인생을 살았는데 무슨 후회와 회한이 남겠는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삶의 에너지는 죽음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죽음을 인식하는 자만이 삶에서 모든 껍데기를 떨쳐 낼수 있다. 강영우 박사는 그의 불우한 환경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이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덤으로 얻은 신의 선물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죽음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려 하는 인간의 본능이라 했다. 죽음은 생물계가 무생물계의 정상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본(default) 값이 죽음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뜻하지 않는 고통과 고난이 닥쳐왔다 해도 근심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고통이야 말로 인간을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출처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