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5/2)
-생(生)이 곤고한 것은-
‘곤고하다’라는 것은 ‘어렵고 고생스럽다’라는 뜻이다.
얼마 전 어느 젊은 청년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30대 중반의 젊은이인데 생이 너무 힘들다고 한다.
왜 힘이 드는지 왜 힘겨운지는, 모든 면에서 그러다보니 무작정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 것 같다. 젊은이로서 결혼만 하더라도 쉽지 않고 또한 살아가려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이 곤고하다보니, 어느 여인이 나이 드신 시어머니를 향하여 한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 이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그 여인의 살아가는 생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시어머니께 저렇게 물었을까 생각해 본다.
생은 참 복잡하다. 그래서 더욱 곤고한 것 같다. 꼬이고 꼬여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모른다.
이 꼬임의 원인이 나로부터 출발했다면 또 괜찮다. 내가 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다른 이 혹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에게서 꼬였는데도 그것이 나에게 작게 혹은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생이 곤고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만약 돈이 없어 곤고하다면, 돈이 있는 사람은 곤고하지 않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생이 무작정 곤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생’(生)이 곤고한 이유는 진리(眞理)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진리가 되신다. 그가 진리이시므로 어두운 인생에게 길과 생명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답이 없는 인생에게 정답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예수 믿음 없는 인생은 이 땅에서의 곤고함 뿐만 아니라 생의 마침 후에는 더욱 큰 곤고함이 온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1:18)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자의 울부짖음을 들으신다고 하신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22:24)
하나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향하는 자에게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얼굴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즉 누구든지 예수께로 오는 자를 영접하신다는 뜻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