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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라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건널때는 언약궤를 메고 앞장 세웠더니 요단강이 갈라졌다
엘리야도 물을 건너는데 물이 갈라졌다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위를 걸어다니셨다. 아무것도 없이,,,
기독교는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하였으니 이 세상 만물은 창조주의 뜻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을 하고 있어 신의 뜻으로 가는 이들에게는 바다나 강이 갈라져 마른땅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위를 걷기까지 했다. 천사는 날개가 있으나 천사보다 위인 하나님 아들인 예수는 날개 없이 지팡이도 없이 언약궤도 없이 그냥 물위를 걸어 다니셨다.
기독교의 자연관은 강이나 바다는 신의 창조물이므로 대리인인 인간은 이들을 관리하고 바꿀수 있다는 생각을 한듯 하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배를 연결해 부교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려고 하니 바다가 거칠어 바다에 태형 300대를 때리게 하였다 한다
크세르크세스의 바다 태형
서양인들의 자연에 대한 생각을 알수 있는 좋은 예인듯 하다
우리나라의 신화 속을 살펴보면
견우와 옥황상제의 딸인 직녀는 은하수를 건너는데 일년에 겨우 하루 그것도 까치와 까마귀가 대머리가 되는 수고를 해야만 간신히 건너 만날수 있다.
옥황상제의 딸도 강은 함부로 못건넌다. 새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즉 아무리 옥황상제라도 동물을 존중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두고 있는것 같다 .
고구려 시조인 주몽도 도망치다 강이 가로막혔을때 하백의 손자라고 밝히며 도와 달라고 하소연하니 자라와 물고기들이 모여들어 다리를 만들어 주어 무사히 건널수 있었다. 그냥 물이 갈라져주면 될텐데 하백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없었나보다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물이 갈라지거나 걸어가면 쉬웠을텐데,,,
고려의 윤관 장군이 여진족에 쫒겨 도망갈때는 잉어들이 몰려와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윤관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강을 걸어 건너가게 해주는건 안되었나 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홍건족에게 쫓겨 안동으로 피신했을때는 까치 까마귀 자라 잉어에게 버림 받았는지 아무도 돕지 않아 고려의 여인들이 들고 일어나 인간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했다. 이때는 하늘이 돕지 않은 경우가 된듯 하다. 하늘이 안도우면 백성들이라도 일어나야한다는 사례인듯 하다
아래는 조선의 그림중 물을 건너는 신선들의 수단을 한번보자
이백이 잉어를 닮은 고래를 타고 물을 건넌다는 그림
신선이 새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달마대사는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오셨다는 그림
게를 타고 다니는 신선
거북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신선
두꺼비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신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너가 세웠다는 일본을 보자
가야를 세운 수로왕의 막내딸은 거북을 타고 바다를 건너 규슈에 가서 나라를 세웠다
거북을 타고 용궁에 다녀왔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는 서양은 자연을 인간이 지배하고 정복할수 있다는 사고 방식을 가졌는듯 하고 우리 조상들은 인간은 자연의 협조를 얻어야 하고 같이 공존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듯 하다.
옛 정원을 봐도 서양은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재단하려는 듯 하고(특히 프랑스, 이슬람 정원)
우리는 자연을 큰 변화없이 받아들이려고 한듯 하다. 일본은 신라의 통일후 갈라져 간지가 오래 되어서인지 자꾸 자연을 울타리 안에 축소해서 담으려고 한다. 우리보다 조금더 작위적인게 강해진듯 하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만 봐서 중동지역은 서양의 관점과 유사한듯해 서양에 포함시켜 보았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