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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은 영상을 적절하게 잘 설명해줄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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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6년 멕시코 월드컵과 차범근.
글쓴이 김유석(roby10) 조회수 4822
작성일 2002-05-29 추천수 40 추천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차범근의 활약은 어땠었나? 라는 글은
예전부터 제가 독분비관에 올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더랬습니다
제가 예전에 '차범근의 현역 시절 플레이' 라는 글을 독분비관에 올릴 때
이 내용도 넣으려고 했었거든요.
그저께인가 독분비관에 이와 관련된 내용의 글이 몇 개 올라
와 있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읽어 보니까 당시 게임을
못 보시거나 기억을 잘 못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들을 위해 당시 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에서 어떻게
경기를 했으며 차범근의 활약은 또 어땠는지를 한번 되짚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차범근 대표팀 합류 문제를 놓고
꽤나 우여곡절이 많았었습니다.
차범근 합류에 대한 찬반 양론이 갈렸었거든요.(이 부분은 명예의 전당
차범근 편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여러분들께 이 이야기부터 먼저 해 드리겠습니다.
아래에 cancerh(한재원)님께서 올리신 글을 읽어보니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더군요.
'아직까지 기억나는 장면....
월드컵 장면은 아니지만.. 당시 미주 전지훈련때였던 걸루 기억합니다.
상대팀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미국팀이었던가???? ^^;;;
암튼.. 그때 측면에서 센터링이 날라옵니다.
이때 먼저 뜨는 차범근... 헤딩하는 척하며 수비수와 골키퍼를 완벽히 속이고
바로 뒤에서 약간 늦게 뛰었던 최순호가 그 센터링을 받아서 골을 넣는 장면...
예술이었죠...... ^^
지금까지 한국이 낳은 대표적 공격수들인 차범근과 최순호가 같이 뛰는 모습을
봤다는거.. 그것만으로도 행복할듯.... ^^ '
위의 ' ' 부분의 글은 한재원 님이 올리신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한재원님께서도 그 경기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대단히 반갑습니다. (*^&^* )
그 경기는 월드컵을 앞둔 우리 대표팀이 미주 전지 훈련 중에 페루 프로팀과
벌인 친선 게임이었습니다. 장소는 LA 메모리얼 콜로시움이었구요.
이 게임을 통해서 국내 축구 팬들은 빨간색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차범근의 모습을 무려 7년여 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아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요. 저는 그 때 가슴까지 뭉클했었습니다.
차범근은 아주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를 했습니다.
물론 백넘버는 당연히 11번을 달았구요.
이 게임에서 차범근과 최순호는 투톱을 섰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사상 최강의 투톱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었지요.
국내 언론에서는 이 들 투톱을 'C C 포'라고 불렀습니다.
이 게임에서 첫 골을 차범근이 멋진 다이빙 헤딩 슛으로 성공시켰습니다.
일요일 아침 위성 중계를 시청하던 국내 축구 팬들은 이 장면을 보고
'역시 차범근!!' 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만불 짜리 헤딩 슛이었으니까요.
두 번째 골은 재원님께서 올리신 글 그대로 입니다.
오른 쪽 측면에서 빠른 센타링이 올라갔는데 앞 쪽에 있던 차범근이
점프를 하며 헤딩을 하는 척 하다가 고개를 숙입니다. 그 볼을 뒤에 있던
최순호가 헤딩 골로 연결했지요.
차범근과 최순호가 완벽한 콤비네이션을 이룬 것입니다.
'C C 포'의 득점으로 페루 프로팀을 2 대 0 으로 누르며 대표팀의
사기는 오를 때로 오르게 됩니다.
이 경기 후에 우리 월드컵 대표팀이 멕시코에 들어가게 되지요.
(사실 이 경기는 큰 관심을 모은 경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질 않더군요. 제 주위에 딱 한 사람 기억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와중에 재원님께서 이 경기를 기억 해 주시니 그져 반갑고 고마울
다름입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 대표팀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감독: 김정남
코치: 김호곤
선수
GK: 조병득, 오연교
DF: 조영증, 정용환, 박경훈, 김평석, 조민국, 정종수, 유병옥
MF: 조광래, 박창선, 허정무, 노수진, 김삼수, 김용세, 강득수
FW: 변병주, 김주성, 최순호, 이태호, 김종부, 차범근
* 1차전.
대 아르헨티나(결과는 3 대 1로 패배)
중계는 KBS(캐스터: 원종관, 해설: 박병주)
한국의 베스트 11
GK 21번 오연교
DF
14번 조민국
5번 정용환
2번 박경훈
17번 허정무
MF
10번 박창선
12번 김평석(전반 중반 무렵 김평석 빼고, 4번 조광래 투입.)
20번 김용세(후반에 김용세 빼고, 19번 변병주 투입.)
FW
9번 최순호
16번 김주성
11번 차범근
아르헨티나는 GK 18번 품피도를 비롯해
2번 바티스타, 5번 브라운, 19번 루게리, 7번 브루차가, 8번 클라우센,
17번 파스쿨리, 10번 마라도나, 11번 발다노등이 나왔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은 빌라르도였습니다. 빌라르도는 산부인과 의사
자격증이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분이지요.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은 새벽 3시
KBS 생중계였는데 현지와의 위성 연결이 제대로 안되서 전반전엔
스튜디오에 있는 서기원 아나운서와 장경환 선생이 실감나지 않는 중계를
했습니다. 화면만 연결된 것이지요. 시작부터 맥이 그대로 풀리더만요.
후반전엔 현지 원종관 아나운서와 박병주 해설위원이 연결 되었습니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졸전을 펼친 경우를 예를 들어 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 아르헨티나와의 전반전 경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답답했었어요.
사실 그 시절엔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축구
강국과 한국의 수준 차가 과연 어느 정도 나는 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일반 팬들은 더더욱 몰랐지요.
그렇기 때문에 축구 팬들은 아시아 최강인 한국이 축구 강국과도 웬만큼은
하지 않겠느냐?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강의 멤버로
구성 되었던 터라 더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11명 대 11명의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너무나 긴장을 한 나머지 평범한 패스와 트래핑
조차도 제대로 하질 못했고, 그냥 우왕 좌왕 했습니다.
전반전에는 아이야 하프라인을 거의 넘어가질 못했으니까요.
또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개인 기량 뿐 아니라 체격도 우리 선수들을
압도했습니다. '남미 선수들은 개인기 위주의 축구를 하기 때문에 체격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게 큰 착각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브라질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아르헨티나 선수들 대부분은 신장이 180cm이 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수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는 당시 한국 프로 리그에서
대인 방어의 일인자로 정평이 나있던 '족쇄' 김평석(당시 현대소속)이 전담
마크했는데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한 반칙을 하지 않고는
마라도나를 잡기가 불가능했어요. 마라도나는 축구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담구는' 수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김평석이 안 되니까 그 후부터는 깡좋은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마크했는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파울이 이어졌습니다.
192cm의 김용세와 조민국도 여러번 허정무를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비상식적인 태클을 당하더라도 주심에게 항의를
하지않고 그져 어이가 없다는 표정만 짓더군요.
아마도 마라도나가 82년 스페인 월드컵 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퇴장 당한
후 '절제' 하는 방법을 기르고 나왔던 게 아닌가 보여졌습니다.
한국 수비진은 마라도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다른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에 대한 마크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장신 스트라이커 발다노(현재 레알 마드리드 제네럴 매니져), 미드필더
브루차가, 파스쿨리등에게 계속 뚫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결국 전반전 초반에 두 골, 후반전 초반에 각각 한 골씩 먹었습니다.
세계적 수비수 루게리에게도 헤딩 골을 허용했지요.
반면에 한국의 공격은 거의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후반전에 가서야 조금씩
경기가 풀렸습니다.)
전방에 나가있는 차범근과 최순호에게 볼이 좀처럼 연결이 안됐습니다.
완전히 미드필드를 장악 당했던 것이지요.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불리우던
한국 미드필더들도 아르헨티나 선수들 앞에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차범근 한 사람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차범근이라면 무조건 다 될 줄 알았던 것이지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구요.
중계를 맡았던 원종관 아나운서는 '우리의 차범근은 지금 왼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차범근은 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라고
여러차례 차범근 위치를 얘기 해 주었습니다. 그마만큼 차범근에게 거는 기대가
컸었던 것입니다.
우리 수비수들이나 미드필더들 역시도 간혹 볼을 잡게 되면 무조건
전방에 있는 차범근에게 연결 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였어요.
그러나 차범근은 전방에 혼자 고립이 되어 있었고, 설사 차범근이 볼을
잡게 되더라도 차범근에게 접근해 주는 우리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공격이 이루어질 못했지요.
제 기억으로는 아르헨티나 전에서 차범근이 세 번 정도 슛을 날렸는데
완벽한 슛팅 챤스에서 때린 것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차범근에게 결정적인 챤스가 단 한차례도 안 왔었어요.
대신 두 ~ 세 차례 보여준 파괴력있는 측면 돌파는 압권 중의 압권이었습니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빠른 돌파는 아르헨 수비수들을 나자빠지게
했지요. 특히 후반전 중반 왼쪽 측면에서 김주성의 패스를 받은 후 무서운
스피드로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리고 가운데로 센타링 한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그 좋은 센타링을 우리 공격수들이 받아주질 못했습니다.)
또한 차범근은 한국이 수세에 몰렸을 때는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었어요.
그 때 차범근 나이가 만 32세였을 겁니다.(차범근은 53년 생입니다.)
그 나이면 체력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연령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차범근은
젊은 선수들 보다 오히려 더 많은 운동량을 보여주었습니다.(독일에 진출 하기
전엔 사실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해설을 맡은 박병주 위원은 '전방에서 우리 차범근 선수 혼자만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 쓰럽습니다', '차범근 선수의 빠른 스피드를 우리 선수들이
따라가 주질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여러 번 얘길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원종관 아나운서는 '차범근과 같은 선수가 우리 팀에 3명 정도만 있으면
정말 좋겠다' 라는 말까지 했었어요.
비록 차범근은 아르헨티나전에서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플레이를
한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후반전에 기용된 변병주의 활약도
대단했었어요. 변병주의 빠른 발은 아르헨티나 수비진이 따라오질
못했습니다. 후반에 변병주가 들어오면서 부터 게임이 풀렸거든요.
또한 막내둥이 김주성의 활약도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김주성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대담하게 볼을 찼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최순호가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전방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고, 거의 뛰질 않았어요.
특히나 전반전에는 아이야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후반전에 가서야 조금 활약을 했는데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그 게임 후, 최순호는 매스컴을 통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요.(결국 최순호는
불가리아와의 2차전 경기에 나오질 못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순호만 비난 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이미 차범근은 유럽에서 선진 축구를 익혔기때문에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개념을 알고 있었겠지만 국내 선수들은 그러한 개념 조차 없었겠지요.
아르헨과의 1차전 경기는 아쉬움 보다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 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한국팀 득점은 주장 박창선이 후반전에
올렸습니다.)
* 2차전.
대 불가리아(결과는 1 대 1 무승부)
중계는 MBC(캐스터: 송재익, 해설: 이우현)
한국 팀 베스트 11
GK 21 번 오연교
DF
8번 조영증
5번 정용환
2번 박경훈
17번 허정무
MF
4번 조광래(후반에 조광래 빼고 14번 조민국 투입)
10번 박창선
13번 노수진(후에 노수진 빼고 7번 김종부 투입)
FW
11번 차범근
16번 김주성
19번 변병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치루어진 대 불가리아전에서는 차범근이
가장 큰 활약을 보여 주었습니다.
차범근은 기가막힌 논스톱 패스와 정확한 헤딩 패스로 여러차례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선수들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주질 못했습니다.
차범근은 불가리아와의 게임에서도 변함없이 엄청난 운동량을 보여 주었어요.
정말 경이적인 체력이었습니다.
(최순호는 아르헨과의 경기에서의 부진으로인해 불가리아전에는 나오질
못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전반 초반 불가리아 미드필더가 왼 쪽에서 한국의 페널티 에이리어
안으로 높게 센타링(아주 평범한 센타링) 을 했는데 이 볼을 GK 오연교가
튀어나오며 펀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볼이 그만 페널티 에이리어 근처
우중간에 서 있던 불가리아의 11번 게토프라는 x끼 앞으로 떨어지고 말았지요.
GK 오연교의 펀칭 미스였습니다. 이 때 11번 게토프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한번 바운딩 된 볼을 그대로 골문 안으로 차 넣었습니다.(솔직히
게토프의 슛은 일품이었어요.)
오연교가 골문을 비운 걸 게토프가 본 것이지요. 참으로 어이없는 순간이
었습니다. 오죽해야 골을 먹은 후 스위퍼 조영증이 오연교에게 소리 소리를
질러댔겠습니까!
그러나 이 후부터 한국의 줄기찬 공격이 시작됩니다.
한국은 경기 초반을 제외하고는 거의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관계로 정상적인 플레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양 팀
모두 킥 앤드 러쉬였어요.
한국은 노수진을 빼고 장신 김종부가 들어 가면서 제공권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차범근의 원터치 패스는 단연 '군계일학'이었습니다.
헤딩 연결도 완벽했구요.
후반전 중반 쯤에 한국에게 절호의 챤스가 왔습니다.
김종부의 기가막힌 다이빙 헤딩 패스를 받은 변병주가 오른 쪽에서
골키퍼 미하일로프와 1 대 1 상황을 맞는데 변병주가 강슛한 볼이 그만
골 포스트를 맞고 튀어 나옵니다. (저는 그 때 거의 쓰러질 뻔 했습니다.)
사실 그 때 변병주가 그대로 슛을 때리지 말고 가운데로 낮게 깔아서
센타링을 해 주었다면 차범근이 가볍게 골을 넣을 수가 있었어요.
차범근이 골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볼이 골 포스트를 맞고
나오자 차범근은 땅을 쳤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후에 김종부가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센타링 올라 온 볼을
가슴으로 트래핑 한 후 오른 발 슛으로 동점 골을 터뜨리긴 했지만
그 이전에 변병주가 그 골을 넣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불가리아는 한국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 게임에서 슛팅수도 한국이 많았을 겁니다. 공격을 압도 했으니까요.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차범근의 활약이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수비수 조영증의 활약도 좋았구요. 몸 싸움에 있어서 만큼은
불가리아 놈들도 조영증한테는 안 되더군요.
박창선, 조광래 두 미드필더의 활약도 눈물겨웠습니다.
조광래의 좌, 우로 벌려주는 패스는 일품이었고, 주장 박창선의 기동력또한
뜨거운 박수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불가리아의 GK는 미하일로프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요?
미하엘로프는 원래 대머리인데 94년 미국 월드컵에는 가발을 쓰고 참가했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불가리아전 무승부가 지금까지 한(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불가리아를 이겼다면 본선에서의 첫 승은 물론 16강에도 오를 수
있었지요.
* 3차전.
대 이탈리아(결과는 3 대 2 패배)
(중계는 KBS, MBC 따로따로. 저는 MBC를 본 것 같습니다.)
한국 팀 베스트 11
GK 21번 오연교
DF
8번 조영증
5번 정용환
2번 박경훈
17번 허정무
MF
4번 조광래
10번 박창선
FW
9번 최순호
11번 차범근
16번 김주성(후반에 김주성 빼고 3번 정종수 투입)
19번 변병주(후반에 변병주 빼고 7번김종부 투입)
세계적 명장인 베아르조르 감독이 이끄는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는
GK 갈리를 비롯해
2번 카브리니, 6번 시레아, 8번 비에르초흐, 10번 바그니
13번 데 나폴리, 16번 콘티, 18번 알토베리등이 선발로 나왔습니다.
(후반 종반에 교체 멤버로 비알리가 기용됩니다. 이 때 비알리가 이태리
대표팀 막내였을 겁니다. 이 후에 비알리는 세계적 스트라이커가 되지요.)
그러나 82년 스페인 월드컵 득점왕 파울로 롯시는 나오질 않고 벤취를 지켰습니다.
사실 이 대회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언론에서는 '파울로 롯시를 집중 마크해야
된다' 라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 개쑈를 해댔으나 86년 월드컵에서 롯시는
단 한 게임도 안 나왔을 겁니다. 그마만큼 우리의 정보력이 뒤 떨어졌다는
얘기지요.(한국 축구의 정부력 부재는 이 때나 지금이나 별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날 이태리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거칠게 경기를 했습니다.
전반에 양측 선수들의 가벼운 몸싸움도 있었구요.
허정무의 태클에 걸린 10번 바그니가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허정무의 눈을
찌르며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 졌습니다.
(만일 허정무와 바그니가 1 대 1로 '맞짱'을 떴다면 바그니는 많이 터졌을
겁니다. 주먹하면 또 정무 형님 아니겠습니까! 영증이 형, 병득이 형도
인정되구요.....)
16번 브루노 콘티는 세계적 미드필더 답게 화려한 개인기로 한국 수비진을
농락했습니다. 또한 18번 알렉산드르 알토베리는 공포의 센타포오드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여 주었지요.
그렇지만 한국 역시도 이태리전에서는 초반부터 자신감 넘치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아무래도 불가리아와의 게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 큰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았어요. 특히 최순호는 경기 시작부터 아주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MBC 해설을 맡은 이우현 위원은 '최순호! 더 움직여야 해요. 더 적극적으로
뛰어야 됩니다' 라고 멘트를 했었습니다.
최순호가 1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얼마만큼 안 뛰었길래 해설하는 분이
이렇게 얘길 했겠습니까. 오죽하면요.....
차범근은 이태리의 체격좋은 스토퍼인 8번 비에르초흐에게 아주 타이트한
마크를 당했습니다. 차범근이 아마 본선 세 게임을 통틀어 대 이태리전에서
가장 심하게 마크를 당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태리에서는 차범근이 잘 알려져있는 스트라이커였기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겠지요.
(차범근을 전담 마크했던 비에르초흐는 한 3년 전까지 현역에서 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팀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SERIE-A 리그 하위권 팀이었을 겁니다.)
비에르초흐는 경기 내내 차범근을 따라 다녔어요. 차범근이 볼을 잡기 전에
무조건 강한 태클로 저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차범근에게 1차 저지선이 뚫렸을
때는 곧바로 세계적 스위퍼 시레아가 노련하게 뒤를 커버했지요.
(참고: 유럽 축구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젊은 후추인 여러분들은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라는 선수의 이름을 꼭 기억 해 두시기
바랍니다. 시레아 53년 생이구요, 70년 대 중반 ~ 80년 대 중반까지
유벤투스와 이태리 대표팀에서 스위퍼로서 명성을 날렸던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 입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지요.
프랑코 바레시 이전까지 이태리 대표팀 스위퍼를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시레아는 은퇴 후 곧바로 유벤투스 스카우터가 되었으나 유감스럽게
폴란드 여행 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범근은 비에르초흐의 타이트한 마크를 받으면서도 몇 차례 좋은 어시스트와
측면 돌파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전반전에 페널티 에이리어 안, 왼 쪽에서
밀집된 상황을 뚫고 이태리 골문 왼 쪽에 서 있는 변병주에게 왼 발 토킥으로
찍어 차 준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변병주가 헤딩을 실패했지만요.(비어호프였다면 100% 득점 했을 겁니다.)
아마 차범근은 이태리전에서 발목(혹은 무릎)쪽에 부상을 입었을 겁니다.
최순호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의 부진을 만회라도 하듯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기어코 후반전 중반에 기가막힌 오른 발 강슛으로 동점 골을 터뜨려
줍니다. 최순호의 이 골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골(9위)에도 기록될 만큼
훌륭한 골이었습니다. 대포알 슛이었지요.
그러나 한국은 연이어 이태리에게 두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태리에게 세번 째 골을 먹었을 때는 알토베리의 득점이 아니라
조광래의 자살골이었습니다. 조광래가 알토베리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볼을
골문 안으로 끌고 들어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광래의 미스는 전혀
아니었지요. 한국은 후반전 종료 직전 최순호의 헤딩 어시스트를 받은 허정무가
두번 째 골을 터뜨리며 추격에 불을 당겨 보려 했으나 곧 종료 휘슬이 울리고
맙니다.
이렇게해서 한국은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세 차례 경기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이 대회 후, 김주성은 4년 후 90년 로마 월드컵을 빛낼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뽑히게 되지요.
비록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이 1무 2패로 예선 탈락은 했으나 대단히
선전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차범근에게 결정적인
챤스가 단 한 차례도 오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 경기 이후
단 한 번의 슛팅도 날릴 기회가 차범근에게는 주어지질 않았었습니다.
그마만큼 차범근에게 볼이 투입이 안 되었다는 얘기이지요.
사실 차범근에게 오로지 골 하나만을 기대했던 축구인들이나 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차범근 합류가 우리 대표팀에 별 도움이 되질 않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주위에서도 그렇게 얘길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차범근이 당시 대표팀에 합류 함으로써 우리 공격진에
엄청난 무게가 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차범근이
비록 기대했던 골은 터뜨려 주지는 못했으나 결코 월드컵 본선에서 저조한
플레이를 하진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 게임 테입을 늘어질 정도로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아래에 이와 관련되어 올라 온 글들을 쭉 읽어보니까 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서 '차범근이 매 게임 상대방 수비수 2 ~ 3명에게 샌드위치 마크를
당했다' 라는 내용의 글이 몇 개 올라와 있던데 제 지억으로는 차범근에게
2 ~ 3명의 수비수가 달라 붙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물론 다른 우리 공격수들에 비해 차범근이 타이트한 마크를 당한 것은 사실이나
매 게임 여러 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진 않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전 세계적으로도 수비수 2 ~ 3명이 달라 붙을 만큼의 공격수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설사 그러한 공격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2 ~ 3명의 수비수가 맨투맨
마크 하진 않았습니다. 천하의 마르코 반바스텐한테도 2 ~ 3 명의 수비수가
붙진 않았쟎아요. 유르겐 콜러 타입의 스토퍼 한 명이면 충분했으니까요.
아마 한국이 이번에 포르투갈하고 할 때도 피구를 2 ~ 3명의 한국 수비수가
맨투맨 마크를 하진 않을 겁니다.
여러분, 이번에도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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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차붐관련자료 다 끝났음...더 찾아낼 자료도 없고...
나중에 시간나면 최순호 플레이 모음이나 만들어 봐야지...
첫댓글 ㅎㄷㄷ
지금보다 잘하는거 같은데... 아닌가....
드리블이 정말 뛰어나네요. 한번도 차붐 플레이를 본적이 없어서 '치달 드리블'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볼컨트롤도 수준급이네요.
엠군에 제 스테이션(자비의 갓데발) 가면 저것말고도 차붐 동영상 상당히 많습니다. 아니면 제 닉네임으로 알싸 동게에서 검색해보시던가요. 지금까지 알싸에 계속 차붐관련자료 올리고 저게 마지막으로 찾아내서 올린겁니다.
최순호좀올려주세여ㅑ
좀 기다려주세요. 빠르면 다음주말쯤에 가능할것 같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