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림사 (鶴林寺)
수락산 학림사는 거금(距今) 1300년전 신라 문무왕 67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그후 고려 공민왕 때는 나옹화상(羅翁畵商)이 일신중수 하여 기도와 수도도량(修道道場)으로 그 혜명을 이어 왔으나 불행스럽게도 조선선조30년 서기1597년 정유병화로 소실 되었던것을 인조 2년 서기 1624년에 무공화상이 중수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차례 걸쳐 보수가 이루워 졌지만 현재 주석하고 있는 도원,덕호 두 스님이 일신중수 불사를 이룩하였다. 일찌기 본 학림사는 마치 학이 알을품고 있는 학지포란(鶴之抱卵) 형극이므로 학림사라 명명하였다. 특히 이곳은 나한도량으로 유명하며 조선초기에 봉안한 약사 여래불이 모셔져 이곳에서 기도를 봉행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 된다는 영험이 있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학림사 일주문 ▼
학림사 경내 ▼
2.용굴암 (龍窟庵)
" 용굴암의 연혁(龍窟庵沿革) "
수락산 용굴암은 신라법흥왕 13년 서기526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고종 15년서기 1878년 에 중수되어 수행납자 스님네들이 지금 자연동굴 나한전에 16나한불상을 모시고 기도정진을 하는 자그마한 토굴로 내려오다가 구 한말 서기1882년 고종19년 임오년에 대원군의 섭정에 밀려난 명성황후 민비가 이곳에 와 숨어있을때 칠일기도 치성을 드리고 가셔서 다시집정을 하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하사금으로 현재 대웅전 자리에 법당을 지었다고 합니다.이러한 기도 도량의 사찰이 6.25동란을 격고 폐사위에 있다가 요즘에야 사찰면모를 가추게 되었습니다만 지금도 미비하여 현재주지로 재직중인 서각연 스님이 원율세워 제반불사에 임하고 있는 나한 도량으로 서울 노원 제 9-5호로 지정된 전통 사찰이다..
3 .석림사(石林寺)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7번지에 위치한 수락산 석림사는
서기 1671년 이조현종(李朝顯宗)12년 辛亥에 석현화상(錫賢和尙)과 그의 제자 치흠(致欽)이 수락산
서쪽 양지바른 산록(山麓)에 아담한 석림암를 창건하였다. 이 암명은 당시 통진(通津) 현감(縣監)을
지낸바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이 지었다고 전 한다.(西溪 朴世堂 先生 文集에 記錄이 있음) 후기
서기 1676년 丙辰 七月에 化主 裕淡 和尙이 三笑閣을 지었으며, 서기 1698년 肅宗 24년 戊寅 2월에
대홍수로 인하여 모든 寺宇가 유실된 것을 朝家에서 梅月堂을 모시는 淸節祠를 세우고 그 옆에 祝願
堂으로서 石林庵을 복원 하였다.그후 서기 1745년 英祖 21년 乙丑 7월에 역시 홍수로 유실된 것을
匿名의 스님이 복원하고 석림사라 개칭하였다.
서기 1950년 5.25사변으로 인하여 전소된 것을 서기 1960년 相仁比丘尼가 上佐寶覺과 함께 들렸다가 重舍의 원을 세우고 성현의 가필을 빌어 단월을 찾아 다니면서 수년간 근고한 보람으로 서기 1963~서기 1965년까지 3년간의 환하여 전화의 옛터에 극락보전을 38평과 칠성각 4평 독성각 3평 요사이동 14평 창고 5평 동 사등 신축하고 불보살상 3존을 조성봉안하고 법당 앞 도장에는 석탑을 건립하였다. 상인스님은 서기 1973년 계축 5월 28일 세록을 버리어 법납39는 세수 78세 였다. 그 의 상좌 보각스님이 주지로서 그 뒤를 이어 서기 1979년 봄부터 다음해 10월까지 퇴락한 요사들을 폐합하고 35평의 숙묵당을 신축하였으며 전기와 전화를 가설하고 협소한 진입로 870m 폭 5m로 확장하고 시멘트 포장을 하였으며 호환 축대를 축성하여 도장을 확장 정리 미화하는 등 모두 불사의 숙념하여 오늘에 이루고 있다. 불기 2530년 병임 4월 8일 봉선사 월운 사문찬 석림사의 연혁
첫댓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