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
* 류 근 홍
이른 새벽 어둠 뒤로 솟아오르는 먼동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무심천 서쪽 제방둑길의 긴 가로등 불빛은 멀리서 보니 길가에 핀 흰 새벽 꽃이다. 우암산 너머 구름 속의 붉은 새벽태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그려본다. 11월의 새벽 찬바람은 생각보다 매섭다. 까치내 미호강 둔치 체육공원의 파랬던 잔디가 이제는 노랗다.
여기저기서 형형색색의 야광 파크골프공이 도깨비불처럼 새벽어둠을 휘저으며 날아 제 집을 찾아가듯 홀컵으로‘땡그렁’하고 떨어진다. 맑고 고운 튕기는 듯 한 깔끔한 공 소리에 새벽정신이 맑아진다. 하루를 시작하는 고요하고 생동감 있는 깨끗한 새벽의 소리이다. 어느덧 파크골프 입문 1년 6개월째이다.
2년 전 아침 해장국집에서 앞자리의 나이 드신 손님 네 분이 파크골프에 대한 각자의 자랑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도 아침 식사내기 새벽운동을 하고 온 듯하다.
모두가 자기 경험을 자랑한다. 운동이후 허리병과 관절염이 나았다느니, 식욕이 좋아졌고 소화도 잘되며 잠도 잘 잔다고 하며, 침침했던 눈까지도 건강해졌다고 한다.
듣고 있는 나는 마치 파크골프가 만병통치 운동인 듯 솔깃했다.
분명 그분들은 새벽운동으로 생활에 활력이 있고 건강하고 열정적인 자신감으로 노년의 삶이 행복해 보였다. 다소의 허풍스런 자랑인 듯 싶지만, 그럴싸한 재미의 허풍도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이다.
그분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아 지금에 내가 필요한 것이 파크 골프 운동이구나’싶었다.
지난해 봄부터 나는 허리에 디스크 증상이 있었고, 신체검사에서도 확인이 되었다. 의사는 경미한 초기증상이니 우선은 적당한 걷기운동이 좋다고 권했다.
망설이면 못할 듯 싶어 그날 오후 나는 청주시생활체육회를 통해 파크골프협회를 안내받아 입회를 하고‘한마음 클럽’으로 배정을 받아 몇 일간의 기본교육도 받았다.
그리고는 지정된 짝수 날에는 새벽 5시부터 6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에는 4시부터 약 한 시간 정도 하루 두 차례씩 열심히 연습을 했다. 초보자이기에 무조건 배우는 자세로 잘하시는 분들에게 먼저 다가가 한수 지도를 부탁하며 배웠다.
다행히 갈수록 재미가 있어 열심히 노력하니, 자연스레 실력도 향상 되었다. 하루하루 사람들과 나누는 정에 주변의 자연환경까지 더해지니 운동의 즐거움이 배가(倍加) 되었다.
어린시절 시골집 바깥마당에서 친구들과 나무 막대기로 자치기하던 생각과 마당에 돌을 세워두고 멀리서 돌을 던져 넘어트리는 비석치기 놀이와 구슬치기도 생각난다.
파크골프를 치면서 선후배는 물론 예전부터 사회에서 친분이 있던 많은 분들을 다시 만나 노후 재회의 인연으로 만들어가니 즐겁다.
청주 파크골프장은 도심 외곽지인 무심천과 미호강이 합수(合水)되는 삼각점의 경치 좋은 미호강 보(洑) 옆 까치내(옛지명) 둔치에 자리하고 있다. 넓은 골프장은 한여름에는 푸른 잔디와 주변 환경만으로도 건강해질 정도로 풍광(風光)이 좋다. 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지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대단위 대파와 배추 재배단지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지만,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미역 감고 어레미(얼기미)로 물고기 잡으며 고운 모래사장에서 뛰어놀던 그때 그 시절 그 모습은 여전히 선하다.
골프장 주변은 자연그대로의 커다란 화원(花園)이다. 새벽운동을 하는 우리들도 모두가 가을꽃이다.
파크골프 운동은 남녀노소 상호간에 예의와 존경으로 서로가 함께 격려하고 화합하며, 소통하는 운동으로 모두가 한 가족이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파크골프운동을 자랑하고 권한다. 어느덧 내가 파크골프의 예찬론자이며 전도사가 되었다. 처음 나를 파크골프로 인도한 해장국집에서 만난 그분들보다 더 열정적이다.
매 홀마다 판단력과 집중력으로 분석하며 자신만의 신중한 자세로 운동에 열중하는 나이든 청춘들을 보니 멋있다. 먼동이 트는 초저녁 같은 새벽에 세 코스를 다 돌고 나니 온 몸이 가을 땀에 젖는다. 새벽운동 시작이후로 나의 하루는 26시간이 되었다. 집안 식구들 모두가 좋아한다. 특히 구순의 어머니는 볼 때마다 칭찬이다.
어머님께서도 50대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20여 년간을 새벽에 아버님과 우암산을 산책하고 베드민턴 운동으로 건강을 다져오신 터라, 나의 새벽운동을 무척 반기신다. 어머님은 젊어서부터 삼시세끼 밥과 꾸준한 운동이 보약이라며,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늘 말씀해 오셨다. 게으르면 병이 된다며 기왕 시작한거면 건강을 위해 꾸준히 열심히 하라며 볼 때마다 내게 말씀하신다. 칠십이 다된 외아들에 대한 변함없는 자식사랑이다.
요즈음의 생활체육은 장수시대에 건강과 장수의 생활운동으로 노후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파크골프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스포츠이며 경제적 부담이나 시간과 적당한 운동의 강도와 효율성 등을 감안해 볼 때, 특히나 노년층에게는 최고이며 최적의 운동이다. 어려서부터의 다양한 생활체육의 생활화가 곧 무병장수이며, 개인건강이자 사회건강이다. 누구든 은퇴 이후의 생활체육운동은 노후 건강을 위한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분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나는 그들의 연륜에서 인생철학도 배운다. 파크골프 운동을 시작한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나 역시도 몸이 많이 건강해졌다. 심리적인 자신감과 나이보다 젊은 샘솟는 열정은 이미 내 마음의 디스크 병부터 다 나은 듯하다. 언제나처럼 새벽운동으로 출발하는 오늘도 하루가 즐거울 것이다.<끝>
늦가을 공부
* 류 근 홍
11월 늦가을의 짙고 깊은 단풍이 나를 온순하게 보듬어준다.
시기적으로 혼자 여행하고 사색하며 독서하고 글쓰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늦가을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연말 정리 반성과 마무리 계획이 겹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계절나이로 인해 더 이상 내가 고민하거나 상처 받기가 싫다.
내 마음의 나이는 아직도 젊고 한여름으로 무덥다.
내년에는 보다 더 활력적인 삶을 위해 나이에 비례한 열정적인 또 다른 나를 찾을 것이다.
가을과 함께 해남 땅끝 두륜산줄기인 위봉산의 성도사를 찾았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바위산이 비경(秘境)이다. 성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대웅전은 거대한 바위와 동백나무숲 사이에 앞산의 여의주 바위가 숨겨놓은 천혜의 요새중에 요새 명당요새이다.
바위산과 오래된 동백나무숲의 정경(情景)은 평소 내가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니던가. 위봉산 정상부근의 커다란 바위 아래 터 잡은 사찰 성도사는 그냥 그대로가 바로 처마끝 제비집이다. 그 제비집 앞뜰이 다도해이니, 상상보다도 더 운치있고 아름답다.
가까이서 떠다니는 듯 한 남해바다의 다도해는, 내가 배를 타고 섬 사이를 항해하는 듯하다.
나는 동백나무터널 바위에 앉아 남해 다도해와 위봉산 바위산의 넘치는 아름다운 절경의 생생함을 메모한다. 글을 쓰기 위한 움직이는 소재들을 스케치한다.
그 사이 남해 바닷바람과 두륜산 산바람이 번갈아 나의 의지와 열정을 더 북돋아 준다. 그래서 두 바람 모두 계절에 비해 포근하고 시원하다.
산새들을 위한 식사인 듯 암자의 나지막한 담장기와 끝에 놓인 빨간 감 몇 개가 마치 활짝 핀 동백꽃 같다.
요즘 수필을 공부한다는 욕심과 핑계로 얼마 전부터 메모하는 습관과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 그리고 형상(形狀)에 대한 나만의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을 의식적으로 해본다.
다행이다 재미가 있으니, 가끔은 혼자서 내가 나한테 으쓱대고 으시댄다.
오늘도 무념(無念)에서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하니 어지럽고 생각자체가 뒤틀린다.
노란단풍 모자를 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여자 어린아이가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탑 앞에서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엄마에게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며 대답하는 듯 묻는다.
할머니는 아마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시는 선생님인가 보다라고 하신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엇이든 저렇게 열심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너도 나중에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일러준다. 아이는 다시 나를 본다. 순간 나는 얼른 모자를 고쳐 쓰면서 머리를 더 깊이 묻었다. 작가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 하는 것도 아니기에, 차라리 이참에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흉내라도 내보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혹시나 저 아이가 내게 말이라도 걸어오면 어쩌지 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조바심에 힐끗 어린아이의 눈치를 보며 나름 대비적 생각을 한다. 오히려 나는 곁눈질을 하면서 멋진 폼으로 더 열심히 쓰는 척을 했다. 저 아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실망을 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저 아이보다도 아이에게 말을 해준 엄마와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 나는 오늘 만큼은 저 아이에게서 열심히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보는 같은 풍경임에도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이라도 참 신기하고 그럴듯하다.
아름다운 비경과 나만의 사색(思索)에 취하다보니 반나절이 반시간 같았다.
쉬엄쉬엄 산을 오를 때 보다 더 여유를 갖고, 느리고 느린 걸음으로 산에서 보물을 찾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생각하는 걸음으로 하산한다. 너무도 조용해서 일까, 내가 밟는 낙엽소리에 나도 놀라고 낙엽도 놀란다.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나이 탓도 실력 탓도 하지 않으며, 차근차근 쉬엄쉬엄 높은 산을 오르듯 나만의 글공부에 정진하련다. 물론 시간이 그냥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어린아이와는 말 한마디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의 약속을 한 것이다.
미래의 나는 공부하고 글 쓰는 청춘노인일거라고....
서산으로 지는 해에 밀린 남해바다 섬들이, 저녁 맞이를 떠나는 건지 점점 더 내게서 멀어져간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