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가리켜 베테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 제목을 자세히 보면 그냥 베테랑이 아니라 '베테랑의 몸'을 가리킨다. 소위 사무직에 종사하는 화이트 칼라와 같은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직에 종사하는 블루 칼라의 노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분도 있지만 그늘진 곳에서 시간과 싸우고 자신의 몸과 싸우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몸에 저자는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책에는 여러 직군들이 등장한다.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 하나같이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신체의 일부분을 사용하는 세공사, 안마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식자공도 있지만 온몸을 사용해야 하는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마필관리사, 배우도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온몸을 사용해야 그 직업에서 베테랑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고되고 힘든 일들을 해 오는 분들이다.
베테랑의 몸에는 일한 흔적이 확연히 보인다. 로프 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생계를 이어가는 로프공은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그의 작업 공간인 높은 건물은 위험 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 평범하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전시기획자 정도면 고급 기술을 가지고 화려한 일을 할 것 같은데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기획서를 쓰는 일을 밥 먹듯이 하고 작업을 끝내기까지는 잠도 자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필관리사는 말과 사람이 혼연일체 되어야지만 안전하게 맡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의 뒷발차기에 차여 금방이라도 구급차에 실려 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말을 관리하는 직업은 보기보다 쉬운 직업이 아님을 구직자의 이동 사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안마사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시력을 잃으신 분들이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직업이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기도 쉽지 않은데 그들은 다른 이들의 몸들을 꼼꼼히 살피며 회복시키는 일에 매진을 한다.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근육의 결만 보더라도 어디가 아픈지 안다고 한다. 세신사들이 때를 밀려온 사람들의 몸만 보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알아맞히는 것처럼.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베테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통된 답안을 말하지 않는다. 마필관리사는 사람보다 말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이 베테랑의 조건이라면 수어통역사는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잘 전달해 가는 과정이 베테랑이라고 말한다. 조산사는 애를 잘 받는 것을 넘어 순적하게 자연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산모를 도와주는 과정을 베테랑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베테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베테랑임을 드러낼 수 있는 몸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