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續東文選卷之十 / 七言絶句
題永川君遊長源亭詩卷[제 영천군 유 장원정 시권]
권건(權健)
五百年來王氣終。오백년래왕기종
繁華消盡市朝空。번화소진시조공
王孫何處尋遺跡。왕손하처심유적
落日頹垣木葉重。낙일퇴단목엽중
오백 년 임금 기운 예서 사라지고
번화는 꿈이런가 시가는 비었고나
왕손의 끼친 자취 어디에서 찾으련고
떨어지는 날 허물어진 담장에 나뭇잎만 싸였더라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頹垣퇴원=허물어진 담.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강(叔强)·태보(殆甫).
증조부는 권근(權近)으로, 할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권남(權擥)이며, 어머니는 이원(李原)의 딸이다.
중종의 열한번째 아들인 전성군(全城君) 이변(李邊)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2년(성종 3) 진사가 되고, 147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직강이 되어 사가독서하였다.
이듬해 감찰을 거쳐, 교리·응교·전한·예조좌랑 등을 지냈다. 1479년 응교로 있을 때
시폐책(時弊策)을 제목으로 홍문관원들에게 시험을 치렀는데, 일등을 하여 안마(鞍馬)를 하사받았다.
1481년 부제학이 되고, 주문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484년 도승지가 되었다. 1490년 예조참판, 이듬해 대사헌·한성부좌윤·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동지사를 역임하고, 1500년 병조참판으로 성현(成俔) 등과 함께
『역대명감(歷代明鑑)』을 편찬하였다. 이듬해 병으로 사임하였으나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명이 높았으며, 『동문선』에 시문이 10여편 전한다.
저서로는 『권충민공집(權忠敏公集)』이 있다. 시호는 충민(忠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