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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비스 사실은] 화류계를 찾아서··· | ||
아니 남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두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화류계란 매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말 정도로 알려져 있지, 그에 대한 연원이나 그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고 있다.
“여자의 성기를 곧잘 꽃으로 비유하는데, 꽃을 파는 곳이래서 화류계라 그러는 게 아닐까?” 과연 여자의 성기를 꽃에 비유해서 화류계라 하는 것일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화류계(花柳界)의 어원에 관해서이다. 젊은애들 보고 맨날 미스 수(手)하고만 놀라고 할수도 없고…” 여자들이 총 인구수에서 40%도 안 됩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장가를 보냅니까?” 여자 한명이 남자 서너명씩 상대하면 되겠네.” 그 이전에도 매매춘은 존재하였지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유곽을 만들어 서비스를 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쩌겠냐? 여자가 부족한데…그렇다고 백날천날 미스 수(手)하고만 놀 수도 없잖냐? 여하튼 그런줄 알아라.” 이 공창제는 그 후 300여년 가까이 이어져오다가,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에 돼서야 폐지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때 완전히 공창제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창제 폐지 이후에도 ‘적선지대’라는 것을 만들어 명맥을 이어온 일본정부는 1958년 4월 1일 매춘방지법을 통과시킨 이후 공창제를 완전히 없애게 된다. (그래도 민간에서 할 건 다 한다)
자자, 각설하겠다. 어쨌든 공창제를 통해 급한 불을 끈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런데 유곽이 어째서 화류계로 불리게 된 것일까? 교토 야나기초에 유곽을 만든 히데요시…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이 되자 야나기초에 있던 유곽을 통째로 뽑아 시마바라(島原)로 옮겼던 것이다. 조선으로 침공을 준비중이던 상황에서 집결한 병력들의 욕구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 화류계란 어원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으니, 이 단어가 어떻게 한국으로 넘어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 시시각각으로 조선에 대한 마수를 들이밀던 일본! 일본군과 일본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1904년 10월에 쌍림동 일대에 제일루(第一樓 : 조선 최초의 유곽이란 뜻이다)란 걸 차리면서 조선 땅에 그 ‘화류계’란 단어를 퍼트리게 된 것이었다.
제일루가 이 땅에 자리 잡은 얼마 뒤 조선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제일루를 기점으로 해서 수많은 일본식 유곽들이 자리 잡게 된다. 이 대목에서 일본인의 철저함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는데, 1945년 8월 천황의 공식적인 항복 이후 조선은 꿈에 그리던 해방이 된다. 문제는 미군이 38도선 이남의 일본군들에 대한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상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조선총독부가 내린 신속한 결정 중 하나가, 미군들이 ‘건전한’ 일본 여성들을 성폭행 하면 안 된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대비를 하기 바란다.” 화류계란 단어에는 인생역정의 서글픔과 함께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던 것이다.
출처:스포츠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