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羊)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박하고 어질고 인내심 많은 동물로 통한다.
우위 다툼을 하지 않고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순한 눈방울은
평화를 연상케 한다.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도 있다.
무릎을 꿇어 젖을 먹고,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봉양해 은혜를 알고 효심을
일깨우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만 일단 성이 나면 침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면도 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양 이야기는 조금 더 다채롭다.
양은 옛날 제왕의 꿈이었다. 양과 연관된 한자들도 제왕이 갖춰야 할 덕목과 닿아 있다.
큰 양을 뜻하는 대양(大羊) 두 글자가 붙어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와 만나면 옳을 의(義)자가 되고, 선함(善), 상서로움(祥)등 양과 어우러진 한자는
대부분 좋은 뜻을 담고 있다.
특히 상(祥)자 왼편에 있는 시(示)자는 신을 의미하기에 상서로운 양은 하늘이 내려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한고조 유방의 양 꿈이 그 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워 왕이
되기 전에 그는 큰 양을 쫓아가 잡자마자 뿔을 뽑아 버리고 꼬리는 잘라 버리는
꿈을 꾸었다. 유방이 해몽을 부탁하자 주위에서는 왕이 될 꿈이라 했다. 양(羊)자에
뿔과 꼬리를 없애면 임금 왕(王)자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의 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성계가 유방이 꾼 것과 똑 같은 꿈을 꾸자
무학대사가 해몽해 준다. 이는 이성계 추종세력이 중국고사의 권위를 빌려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꾸며낸 이야기로 보기도 한다. 여하튼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도 양을 신성하게 여긴 전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 원정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아손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헤라클레스 등 50여 명의 영웅이
참가하는 원정대를 구성하여 아르고스호를 타고 보물을 찾으려 간다. 그 보물은 용이
지키는 떡갈나무에 걸려 있는 황금양털이었다. 양털과 양가죽은 고대 중근동에서 풍요
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히타이트 설화에는 영원히 푸른 신성한 나무에 알곡과 포도주
등이 가득한 양가죽 자루가 걸려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양은 농경의 신이기도 했다.
제나라 선왕 때의 일인데, 왕이 새로 주조한 종에 동물의 생피를 바르는 의식에
필요한 소가 서러운 듯 끌려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왕은
제물로 삼을 소를 양으로 교체할 것을 명한다. 이로써 ‘소를 양으로 바꾼다’라는
말이 있게 되었는데, <맹자>에 나오는 ‘이양역우(以羊易牛)’가 그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스케이프 코트(scape-goat)’는 희생양(犧牲羊)이라고 번역하며
속죄양(贖罪羊)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던 동물이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천여 년 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인류의 속죄양이라 부른다.
낙랑, 삼국, 고려, 조선 등 옛 출토유물과 조각, 그림에서도 길상과 평화를 상징하는
양을 만날 수 있다. 평양 석암리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양 모양의 패옥과 청동제
꽂이장식, 강원도 원주 법천리 백제 무덤에서 발굴된 양 모양 청자, 경기도 개풍군
수락암동 고려 고분의 양 벽화, 고려 공민완이 그린 ‘이양도(二羊圖)등은 모두 벽사와
길상을 상징하고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스러운
면모를 드러낸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가
백미다. 어질고 착한 소년 황초평이 신선이 돼 금화산에서 양을 친다는 내용의
<황초평전(黃初平傳)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채찍을 들고 있는 소년 ‘황초평’ 뒤로
흰양들이 따르고 있다. 신선이 된 황초평은 기독교 성화에 나타난 양 치는 선한 목자
예수 이미지와 흡사하다.
양과 연관된 고사성어 중 대표적인 것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인데,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로, 겉은 그럴싸하나 속은 변변치 않음을 뜻한다.
또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말도 있는데, 아홉 번 구부러진 양의 창자를 이르는 말이니,
곧 양의 창자처럼 산길이 꼬불꼬불 험하다고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또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고사성어는 울타리에서 달아난 양을 찾는데 길이 여러 갈래
여서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나뉘어 진리 찾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뜻의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양에 관한 고사가 위와 같은바,
양(羊)은 전통적으로 제왕을 점지하는 영물로 선함(善), 아름다움(美), 의로움(義)을
상징하며,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신에게 바쳐진 속죄양으로, 또한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의 동물로, 리더의 덕목을 일깨우는 고사성어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양띠인 올해는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양(羊)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고 다짐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따스한 미소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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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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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