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 끝나면 양곡 국산 재고 지난해 견줘 절반 수준 될 듯 벼 병충해 방제계획 상세정보 전국 주산지 농협에 긴급 요청 “벼 병충해 방제계획(1∼5차)을 즉시 제출해주세요.”
최근 농협경제지주가 전국 벼 주산지 농협을 대상으로 긴급하게 요청한 사항이다. ‘지역농협―시·군 지부―지역본부’ 계통망을 활용해 빠르게 취합한 결과는 곧바로 농림축산식품부로 전달됐다. 산지농협 관계자는 “방제계획 수립 여부를 넘어 방제 횟수·기간·면적을 세세하게 물어보는 건 거의 처음”이라면서 “정부가 다급하기는 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양정당국이 벼 생육 상황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장마 직후 도열병·흰잎마름병·잎집무늬마름병 등 주요 벼 병해충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할 우려가 제기되자 농협에 ‘에스오에스(SOS)’를 보낸 것이다. 이들 병해는 발병시기에 따라 벼 생산량을 20% 이상 감소시킬 만큼 치명적이다.
농협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지역별 방제계획을 신속하게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어 조직망이 있는 농협에 지원 요청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쌀 과잉생산이 지속되던 시기엔 잘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농촌진흥청이 벼 생육 저하를 막기 위해 농민을 대상으로 방제요령을 지도하기는 한다. 하지만 농진청은 식물병 방제업무 전담기관이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이례적으로 나선 데는 현재 쌀 수급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과 관계가 깊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양곡 재고량은 6월말 기준 88만t이다. 이 가운데 국산은 33만t이고, 그나마 2020년산은 18만t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을 통해 정부양곡 37만t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2020년산 쌀 생산량은 350만7000t으로 전년(374만4000t)과 견줘 6.4% 줄어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다.
농식품부는 올들어 1월 11만6000t, 2월 4만8000t, 4월 4만6000t, 6월 8만t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29만t을 시장에 풀었다.
양곡업계의 관심은 잔여물량 8만t이 언제, 얼마나 방출될지에 쏠려 있다. 8월 하순이면 일부 지역에서 햅쌀이 출하된다. 방출물량이 햅쌀값 형성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8월 초순이 사실상 방출 마지노선이다.
그런데 농식품부는 방출 세부계획을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6월 공매물량이 이달 16일에야 산지 유통업체에 인도돼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쌀값이 강보합세를 지속하고 있어 방출은 해야 하겠지만, 물량·방식·시기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온적 태도의 배경엔 정부 곳간 상황이 자리한다. 정부양곡 국산 재고 33만t에서 잔여 계획물량 8만t을 시중에 공급해버리면 창고에 보관된 국산 쌀은 25만t으로 뚝 떨어진다. 지난해 수확기 직전(9월말 기준) 정부 보유 국산 쌀이 49만t이었던 걸 고려하면 턱없이 적다.
수입 쌀이 국민 밥상에 오르는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농식품부가 벼 생육을 호전시키는 데 적극적인 건 이런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산지에선 올해까지 3년 연속 흉작이 닥친다면 국가 식량안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쌀 생산량은 저온피해로 전년(386만8000t)보다 3.2% 줄었다. 게다가 지난해 생산량은 350만7000t으로 1968년(319만5000t) 이후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50일이 넘는 장마와 집중호우에 단수(10a당 생산량)가 483㎏으로 평년(530㎏) 대비 8.9%(47㎏)나 고꾸라진 탓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하는 정부양곡 적정 재고는 연간 70만∼80만t이므로 현재 수급여건이 결코 불안한 상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7.7㎏으로 전년 대비 2.5%가 줄었고, 감소폭도 최근 5년 평균(1.9%)을 웃돌았던 만큼 올해 평년작 이상의 작황만 돼도 쌀 수급은 다시 공급과잉 상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