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의 방한에 즈음하여…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방한을 환영해야 되는 것인지, 반대를 해야 되는 것인지 나도 내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필리핀의 전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여사의 방한 때는 김대중 정권시절이었고, 김대중 대통령 부부와 코라손 여사와 남편 아키노 상원의원부부는 미국망명시절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비슷한 시기에 양국에서 비슷한 반독재 투쟁의 길을 걸었던 이력이 있어 코라손 여사의 방한은 가까운 친척을 맞이하듯 가슴 뿌듯하게 맞아들일 수가 있었지만 수치여사의 방한은 왠지 마음이 달갑지도 환영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의 방한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여야 하겠지만 시절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더욱이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과 미얀마 반독재투쟁의 상징인 수치여사 부녀와, 한국의 대표적 매국노 박정희와 유신독재의 안방마님이었던 박근혜 부녀가 확연히 대비되어서 더욱 그렇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부녀가 이렇게 180도 다른 길을 걸었던 기구한 인연이 또 있을까?
그가 방한 중 한국의 다음 권력자인 박근혜를 만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의례적인 만남으로 끝냈으면 한다.
수치여사가 한국방문에서 꼭 가 보아야 할 곳이 3곳 있다.
미얀마(버마)에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백범 김구선생이 계시다.
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상징이 수치여사라면 한국에 그와 대비되는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다.
미얀마에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순국한 민주열사들의 묘소가 있을 것이고, 그곳과 대비되는 곳이 한국의 5.18광주 망월동 묘지다.
이 세 곳은 수치여사가 한국체류일정을 조정해서라도 꼭 가보시기를 권한다.
수치여사가 이 3곳을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에게 한국국회에서 몇 시간 연설을 하는 것 보다 훨씬 큰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다.
수치여사가 그렇게만 한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미얀마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대우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독립투쟁사 이면을 들여다보면 부모는 물불 가리지 않는 친일파였다 해도 자식은 아비를 등지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경우도 숫하다.
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하는 자식의 군자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부모는 국내에서 위장 친일행위를 하며 군자금을 벌어 숨어서 그 돈을 밀파된 독립군을 거쳐 자식을 지원한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자식은 매국노의 길을 걸었어도 부모는 숨어서 독립운동을 한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군사독재정권시절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고위공직에 있어 할 수 없이 침묵하고 있었지만 자식의 반독재투쟁으로 부모가 파면되거나 공직에 그냥 있었다 해도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많았다.
장관직위에서 자식의 민주화 투쟁으로 자의반타의반으로 밀려난 사람도 많고 자식의 민주화 투쟁으로 장관후보자로 낙점을 받고서도 극구 사양한 경우도 많다.
나는 박근혜가 이런 길을 걸었다면 박정희가 히로히또의 개와 말이 되었듯이 기꺼이 박근혜의 개와 말이 될 용의가 있다.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킨 1961년도에 박근혜는 우리나이로 9세 때이고 군사반란 모의라는 것이 부부간에도 비밀로서 어린 박근혜는 알 수도 참견할 수도 없는 나이이니 5.16군사반란에 대하여는 박근혜는 무관하다 할 수 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던 1970년에는 18~19세의 고등학교 졸업학년~대학 초년생으로서 어느 정도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딸로서의 의견표시와 자식으로서 강력한 항의정도는 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때는 헌정을 파괴한 정도는 아니니 딸로서는 3선 개헌이 옳지 않다는 의사표시 정도로 괜찮다.
박정희의 두 번째 쿠데타인 10월 유신은 1972년 10월에 벌어진 일로 박근혜가 대학생시절이었다.
그때 박근혜는 모든 일을 집어 치우고 반유신독재 투쟁의 길에 뛰어 단호히 들었어야 했다.
아무리 잔악한 박정희라 해도 제 자식을 죽일 수는 없으니 미국이나 적당한 서방국가로 유학형식을 빌려 추방을 단행했을 것이다.
그때 박근혜는 해외에서 반독재투쟁의 구심점이 되어 해외의 민주화투쟁 선봉장이 되어 박정희정권의 축출을 앞장서서 견인 했어야 옳다.
다음으로 박정희가 졸지에 가고 어수선한 사이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는 해외에서 목숨을 걸고 전두환 독재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나섰어야 했다.
아마 박근혜가 그렇게 했다면 노태우정권 시절까지는 귀국을 거부당하는 망명객 신세가 되었을 것이고 김영삼 정권시절은 스스로 귀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금의환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김대중 대통령 부부가 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노무현을 제치고 김대중의 후계자가 되어 김대중 대통령 다음으로 청와대에 입성을 했을 것이다.
그의 아비가 만들었던 지역감정을 딸이 100% 말끔히 씻었을 것이다.
김대중과 더불어 영원한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고, 노벨평화상도 타고, 넬슨만델라 아웅산수치 아키노 코라손과 같은 세계적 인물로 자리매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박근혜였다면 비록 매국노 박정희의 딸이라 해도 나는 기꺼이 박근혜의 개나 말이 될 수도 있었다.
왜 한국에는 그런 여걸이 없단 말인가?
참으로 안타깝다.
어떻게 수치여사가 박근혜를 웃으면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초라한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수치여사여!
방한을 재고하시라!
지금은 당신이 한국을 방문할 때가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미얀마의 노동자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꼭 방한을 해야 될 형편이라면 위 3곳을 꼭 참배하시기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한국의 민주화에 더 할 수 없는 기여를 하게 된다.
아-!
아웅산 수치!
환영은 해야 되는데 환영할 기분이 아니다.
첫댓글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라서 저도 공감합니다.
설령 방한 하더라도 가능한
'뻐근혜(민족,민중,국가,서민,영세민들을 매우 피곤하게 할것이라는뜻.)'와 딴나라당,조중동 등의 수구똥통들을 만나지 않으면 더욱 좋고
만약 국제외교적 예의와 관례상 어쩔수없이 만날수밖에 없더라도
지나친 칭찬이나 미사여구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시고
최소한의 형식만 갖춰서 답례만 하시는게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애국지사,민주투사,노동투사등과 순국선열들에 대한
지극히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수 있음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