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강론>(2024. 11. 15. 금)(루카 17,26-37)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평온한 일상생활도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카 17,26-35).”
1)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는,
인간 세상의 ‘평온한 일상생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평온한 일상생활에 만족하면서,
방심하고 자만심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늘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입니다.
그런 일들 자체가 죄는 아닌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생활이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그 방심과 자만심이 죄로 이어집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노아 때 사람들과 롯 때의 소돔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던 모습에 초점을 맞춘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1테살 5,2-3).”
그렇다고 해서 항상 두려워하고, 겁먹고,
긴장한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니,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1테살 5,8-9).”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평소에 꾸준히, 흔들림 없이 신앙인답게 사는 것,
그것이 ‘늘 깨어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종말과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오늘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일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종말이든지 개인의 임종이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2) “세간을 꺼내러 내려가지 마라. 뒤로 돌아서지 마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라는 말씀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여기서 ‘지나가다.’는 ‘허무하게 사라지다.’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소유하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들만 원하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지도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경우에 ‘어리석음’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는,
“현세적인 것들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집착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는,
“허무한 것들은 버리고 영원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들한테 발목을 잡혀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3) 한 침상에 있는 두 사람은 ‘부부’인데, 예수님께서는
“부부라고 해도 심판 때에 갈라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에는 ‘무임승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은 사람이, 또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배우자 덕분에 공짜로 구원받는 일은 없습니다.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는 두 여자는 어머니와 딸이거나
시어머니와 며느리거나 자매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하느님 나라에서 이산가족이
되지 않고, 모두 함께 구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식구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도 회개와 신앙생활은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신앙생활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식구들의 간절한 기도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려고 하셔도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거부해서 못 받게 됩니다.>
[출처]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