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두오모 (성당)
냉장고가 어째 이상하다.
며칠 전부터 냉장실의 온도가 시원치 않아
날씨 때문 인가하고 온도를 좀 더 내려 보았다.
좀 차지는 듯 하더니 다시 더워지는 것 같아
아이들을 불러 세워 냉장고 문 단속을 시켰다.
한데 마루 바닥에 물이 고이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냉동실의 음식들을 만져보니 모두 물컹물컹이다.
내장실의 물도 미지근, 치즈들도 물렁물렁,
고기포도 느른느른, 그제 담근 김치도 익은 내가 풀풀.....
그리고 보니 내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냉장고 모터에 낀 먼지를 청소해 보았다.
여전히 무소식이다.
서비스 센터 기술자가 와서는 모터가 나갔다고 한다.
수리비용이 자그마치 650유로 (약 100만원) 란다.
그 순간 나는 100만원이 10만원으로 착각이 되어
얼른 고쳐달라고 했다. 음식이 상하면 버려야 할
것이 끔찍하니까.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딸 내외가 한 열흘간 다녀가면서
갓 가지 젓갈이며, 떡이며, 떡볶이 떡이며, 만두피며,
한국 식품들을 공수 해 왔고, 또 떠나기 전에는
늙은이들이 장 보는 일 덜어 준다고
냉동실과 냉장실을 가득 채우고 간 것이다.
떠난 지 하루도 채 안되었는데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막 부품 교환을 하려는 순간, 냉장고 문제를 의논했던
옆집 애들 엄마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650유로면 냉장고를 새로 사는 값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수리비라며 수리를 중단 시키란다.
덜컹하고 가슴이 떨어졌다.
사리 판단도, 돈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어리버리한 동양 할멈을 만나
그 기술자는 횡재 할 뻔 한 것이다.
이태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옆집 아빠가
그 기술자에게 ‘당신이 고객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니 새로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한단다.
그리고 또 모터를 바꾸더라도 서리 제거하는 부품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아니 그렇다면 수리비가 100만원이 아니라 150만원도
더 들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조금 남아있던 가슴마저 덜컹 떨어 졌다.
내 살림도 아닌데 정말 큰일 날 뻔 한 것이다.
결국 출장비 35유로만 주고 냉동 기사를 보내 버렸다.
그것도 55유로 달라는 것을 옆집 아빠가 조목 조목
따져서 덜 주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이 많고 순박해 보이까
나 같은 사람은 항상 속게 마련이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교묘하게 사기를 치고
터무니 없이 바가지를 씨 운단다.
그런 경험담을 늘 듣고 또 내가 수도 없이 당하지만
그래도 또 당한다.
그 밤에 나가 냉장고를 둘러보았다.
10개정도 품목을 선택하여
용량, 디자인, 가격 등을 딸에게 메일로 보내 놓고
다음날 오후 딸이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에 마추어
전화를 했다.
수리하지 않기를 정말 잘 했다는 말을 들으니,
다시 심장이 오구라 든다.
저희들도 그 냉장고를 살 때 속아서 샀단다.
분명 새 것을 샀는데, 진열 했던 것을 감쪽같이
포장하여 보내 왔단다.
그것을 나중에 발견하고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차일 피일 미루다가
아예 상점 문을 닫아 버렸다나.
그러니 4년 밖에 쓰지 않은 것이 고장이 난 것이다.
냉장고를 살 때 우리만 가지 말고
윗집에 이탈리아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란다.
이곳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가면
큰 상점에서도 정해진 가격에 이것 저것
덧 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왕 새로 사는 것 좀 좋은 제품으로 사자고 했는데,
딸은 삼성의 cool teck, 용량 640리터짜리로 사란다.
값은 949유로, 외장 색에 따라 100유로가 더 하는데
싼 것으로 정했다.
3일 후에나 배달이 된다니까 음식은 다 버릴 수 밖에.
아마 6~70만 원어치는 족히 될 것 같다.
냉장고가 파업한 것이 어제 그제 일이 아니라
대 엿새는 지난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냉동실 음식들이 그렇게 죽이 될 수 없지 않은가.
한 동안 빈번히 사들이는 신선한 식품들을 먹느라고
냉동실을 열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이다.
아이들도 아이스크림을 찾지 않았나 보다.
점심으로 떡볶이, 간식으로 모듬 찰떡, 저녁으로 떡국....,
내일은 시어진 김치로 만두 국, 찐 만두, 군 만두,
두부랑 숙주는 없지만 비상시니 잘들 먹어 주겠지.
아끼며 한달 정도는 족히 먹일 한국 음식을
하루 이틀에 다 먹어 치울 요량으로
할멈 머리는 식단 짜느라 바삐 돌아간다.
느른해진 각종 치즈며, 고기 포와 쌀라미도
요구르트도 그런대로 먹을 수 있지만 조심 스럽다.
이틀 전에 사다 놓은 생선이며, 새우, 홍합,
물 오징어, 조갯살은 버릴 수 밖에.
소고기는 장조림 하고, 삼겹살도 고추장 양념 해 놓고,,,,
다 먹어 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손은 바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간식들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신이 났다. 궁상 떠는 할멈 입도 호사한다.
그런데 이러다가 아이들이 음식을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모르겠다.
먹어라 먹어. 먹는 게 남는 것이다.
배탈은 나지 말고.
날씨는 오늘 따라 무척이나 덥다..
알프스의 얼음 바람도
타는 내 가슴을 시켜주지 못 하는구나.
첫댓글 크아~~그럴 수가...동서양을 막론하고 장사꾼이란 비슷하네요...어수룩하니 실속다아~~~챙기고..ㅋㅋ덕분에 따님 선 물 단숨에 다아 잘 잡 수셨네요...알프스냉동고도 집밖에있으니 무용지물이지요..편안한 꿈 속이시길..
우와아, 부지런도 하셔라. 써논 글 재검도 하기전에 들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와이라십니꺼 까마귀님! 우리나라 이런 제품들은사기 안칩니다요. 요새 얼매나 AS 도 잘되고 친절한데예
발그미님 말 씀 맞아요. 한국의 AS는 초를 다투어 달려오지요. 이탈리아는 보통 1주일, 그것도 잠간 점검하고는 정작 수리는 열흘도 넘어요.
아무리 그래도 수리비가 백만원이면 너무 했네요,, 십만원인줄 알고 고쳤다면 우짤뻔 했습니꺼?ㅎㅎㅎ 요모조모 이야기가 억수로 재미있어요, 좀 힘들어도 씬 김치로 만두를 많이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먹으면 됩니다. 며칠 바쁘게 생겼네예....
그러지 않아도 물렁해진 만두피로 만두를 욜심히 빚었는데...맛이 별로드라구요. 수고 하지 말고 차라리 버렸을 걸 하고 후회했답니다.
시상에 수리비가 백만원 흐미야.. 새로 사야제 조매이 아깝지만 산지 얼마 안됬으니, 덕분에 또 새걸로 .. 기가찬 상황을 차분히 잘 표현 해 주심에, 시방 우리집 심각한 세탁기 냉장고 생각 해봅니다, 우째 달래꼬 이참에 나도 확 바꿔버려 생각중입니다.ㅎㅎㅎ
스위티님 먼데서 재미있는 글 고맙습니다.가보지는 않는 나라이지만 그래도 선망하던 나라이거든요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시네요 자주 사랑방에 들려서 재미있는 다른나라 소식 좀 들려주세요 늙은니들 심심하지 않게.......
그 이태리 라는 나라가 참 요상합니다. 세계각국에서 이태리 옷이며, 음식을 좋아하는데, 이 사람들의 생활 습관은 너무 너무 느린 사람이 많아서 우리 한국 사람 쏙이 터집니다. 특히 관공서...우리나라 60년대에요.
아이 아까워라 덕분에 냉장고는 새것으로 바꾸시니 좋겠는데 냉동실에도 너무 오래보관하면 맛이 많이 떠러지든걸요 번거러워도 자주 사다 먹어야 되겠드라구요 저도 그런경험이 있어 실감나게 읽고갑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별 수가 없어요. 한국에서 공수를 해 와야하고 시장도 자주 볼 수 없는 사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