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세계에서 따라 불리는 요즘, 노랫말로서 한국어는 어떤 언어냐는 질문에 작사가 김이나(41)는 한국어야말로 노랫말로서 가장 좋은 언어라고 답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아이유의 ‘좋은 날’, 조용필의 ‘걷고 싶다’, 박효신의 ‘숨’ 등 다양한 장르의 많은 히트곡을 만들고, 400여 곡의 저작권을 가진 그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작사가다. 최근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펴냈다.
발음으로서의 글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도 소리 내서 읽었고, 좋아하는 단어들을 보면 꼭 소리 내서 읽는다. 구슬, 유리, 찬란, 구름 같은 단어들이다. 영어보다 다양한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선택지가 많다. 같은 뜻을 지니면서도 발음이 부드럽거나 딱딱한 쪽을 선택할 수 있어 발음 확장성이 큰 언어다. 그래서 한글만으로 가사를 써도 어감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라는 노래에 ‘철없게’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눈으로 텍스트를 보면 받침이 있어 불편하지만, 소리로서는 유연하게 넘어간다.
유행어는 유통기간이 짧다. 몇 년 못 가서 낡아 버린다. 내가 가사를 쓸 때는 핫해도 음반이 발매될 때쯤엔 촌스러워져 있다. 되도록 가사를 쓸 때 유행어는 피한다. 그리고 쿨의 ‘운명’처럼 가사에 서사를 넣는 댄스곡도 있고, 레드벨벳의 ‘빨간맛’처럼 감각적 단어가 배치되는 댄스곡도 있다. 그런데 후자는 나와 확실히 멀어진 것 같다. 굳이 감각을 흉내 내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풀어보려 한다.
그는 책에서 나이가 들면서 내 언어의 나이 듦을 인정하는 순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었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했다며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꼽았다. 그 순간을 ‘혼자만의 2막을 연 기분’이라고 적었다.
김훈 작가의 글은 언어를 재발견해준다. 재미도 있고, 몇 가지 표현을 안 쓰고 ‘어떻게 이런 감정을 들게 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근사해서 재미를 떠나서 한 문장이라도 보려고 펼쳐본다. 같은 맥락에서 가사가 안 풀릴 때 정치·경제면이나 판결문, 사적인 미사여구가 절대로 안 들어가는 기사를 본다. 향수 사러 가면서 중간에 커피 냄새로 중화하는 것과 같다. 표현에 표현을 거듭하다 보면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 쪽을 동경했지만, 벤처회사를 거쳐 계측기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음악 산업에서 일하고 싶어서 공연기획사에도 이력서를 내봤지만 떨어졌다. 재능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살아남아야 무엇인가 펼칠 기회도 있는 거니까. 지금도 클라이언트가 가사를 바꿔 달라고 하면 자존심을 내세우진 않는다.
나를 음악으로 이끌어준 초등학교 때 ‘추억속의 그대(황치훈)’와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를 들으며 두 가수의 팬이 됐는데, 모두 같은 작곡가(윤상)더라. 나만의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작곡가의 다른 노래가 듣고 싶으면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으니, 압구정동에 있던 ‘판타지아’라는 음반가게 사장님에게 아무개 작곡가가 참여한 음반을 부탁했다. 알고 보니 그 사장님은 김현철씨가 데뷔하기 전, 가져온 자작곡들을 듣고 본인이 테이프를 만들어 판매한 전설적인 분이셨다. 돌이켜보면 나를 음악에 입문시켜 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