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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씨, 전주 한옥 마을 가 봤지?"
"아뇨, 아직 못 가봤어요.
"그럼 잘 됐네, 자리가 몇 좌석 있는데 같이 가요."
이렇게 해서 전주 한옥마을로 선배님들과의 즐거운 여행을 같이하게 됐습니다.
"여행보험을 들어야 하니까 주민번호 알려주고..." 등등 참 꼼꼼히도 챙겨주시고 준비도 철저히 하십니다.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준비하고 계획을 짜느라 정신적으로 부산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선배님께서 다해 주시니 너무나 황송하지만, 마음은 가벼워 완전 룰루랄라였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시샘을 하는지 손님이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 오는 고즈넉한 한옥마을도 운치가 있으니 비오는 소식쯤이야 전혀 개의치 가 않았어요. 우산 받쳐 들고 아주 낭만에 젖어 고독을 한번 씹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일상에서 탈출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아서 친구 춘복이랑 오늘 하루를 즐기고 오리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오늘 여행을 가는 선배님들은 매년 이맘때 이렇게 여행을 한다고 하십니다. 17대 임원, 33회 선배님, 그리고 대학동창들로 몇 년째 이렇게 여행을 하시는데, 그냥 하루를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항상 테마가 있는 여행으로, 1박 2일 혹은 당일로 한다고 했습니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버스 속에 기다리고 계시는 송명숙 회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낯선 얼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출발하면서 오늘 여행의 개요를 듣고서야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는데요. 오늘의 주최는 경북여고가 아니라 조금 생소한 '서울 소시모'의 주관이라고 했습니다.
소시모라는 명칭은 '소비자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을 줄여서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비자를 위해서 불편한 사건들을 대변하고 생활 전반의 불합리한 면의 개선에 목소리를 내는 그런 모임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정확히 표현을 잘 못하겠습니다. 요즘은 '전기세 누진제 철폐' 농산물 "GMO (유전자 변형식품) 표시 도입 등등 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이 소시모 관계자분들이 표경희고문님의 대학 후배라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전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온거구요. 오늘 선배님 잘 둔 혜택을 아주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경동창회 17대 임원진 그리고 33회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소시모 관계자 몇 분해서 총 38명 정도 같이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참! '빗물'을 부른 가수 채은옥 님도 같이 있었어요. 아주 열심히 소시모 활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주요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오전 7시 30분 압구정동 현대 주차장을 출발해서, '한국 전통문화전당'에서 요리체험을 하고, 한옥마을 관광, 로컬푸드 교육을 받고 20시에 서울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경비는 소시모에서 농림부에 프로젝트를 따서 그 프로젝트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모든 경비는 농림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했구요.
대부분 처음 뵙는 선배님이라 조금 머쓱하고 어색했지만 금방 친숙해지고 여행 기분에 젖어들었어요. 전주까지는 대략 3시간이 걸린다고 하고, 아침은 소시모에서 준비해준 김밥과 떡 그리고 표경희 고문님께서 준비하신 사과 등으로 버스 속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상했어요. 분명히 비가 온다고 했거든요. 서울에는 비가 쏟아진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여행길은 아주 하늘이 창창하기만 했어요. 옆에 앉은 친구는 비에 대비해서 두꺼운 옷을 입고 왔는데, 어떡하냐고 더워 죽겠다고 계속 억울해합니다.
이렇게 버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3시간이라는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흘러 드디어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전주에는 처음 왔어요. 그래서 전주에 대해서 여러 가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많은 볼거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으로, 조선 태조의 본향으로 왕조의 뿌리입니다.
전라도(全羅道)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를 합한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전주가 고대국가에서 도읍지가 될만한 여러가지 조건을 갖춘 곳이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전주 주변에는 김제와 만경평야가 있어 쌀이 풍부하고, 남쪽의 진안, 남원, 임실의 산골에서 생산되는 땔감과 약초, 산나물 등이 풍부하여 먹고살기가 아주 풍부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주는 음식, 판소리, 그림, 서예 한지 등에서 예술이 발달하여 조선시대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주는 한식과 한복, 한지 등 우리 문화의 참맛이 살아있는 고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고장이자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있는 한옥마을은 2010년에 '슬로시티'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슬로시티는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로 부터 시작된 운동으로 1999년 10월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 안타에서 출발했습니다. 슬로푸드와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는 마을을 가꾸자는 데에서 시작하여 슬로시티 운동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에 국제 슬로시티 본부가 있으며 전 세계 30개국 192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목적지 착오로 조금 늦기는 했지만 버스가 도착한 곳은 오늘의 일정 중 첫 번째 장소인 '전주 한국 전통문화전당'이었어요. 최근에 많은 돈을 들여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전주 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전통문화의 고장입니다. 전주의 전통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한국 전통문화전당'은 전통음식, 전통놀이와 춤, 소리 등, 최신 트렌드의 전통이 다 모여있는 곳이라고 하고요. 이곳은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어진 전통과 미래로 나아갈 전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전주여행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일단 6000평의 부지에 지상 5층 건물에서 느껴지는 위용에서 어디부터 가야 되나 하고 잠시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일단 1층 중앙에 위치한 안내데스크에서 안내책자를 보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최 측의 안내로 가다가 얼른 안내 데스크로 가서 비치된 몇 개의 안내 책자를 먼저 챙겼습니다.
'한국 전통문화전당'은 크게 나누어서 열림동, 키움동, 공연동, 한지산업지원센터로 나뉘어지는데요, 우리들은 '음식조리관련 체험'을 해야 하니까 키움동 3층에 위치한 '시루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일단 3층으로 올라가니 전주가 '음식의 창의도시'인 것을 대변이라도 하듯 한식에 대한 내용과 중앙에 신선로 모양의 큰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음식에 관한 내용도 같이 전시되어있었는데 아주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첫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약 1시간 동안 이 지방에서 나온 재료들로 음식 만들기를 하고 그렇게 만든 음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되어있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해서 마음이 조금 바빴습니다.
일단 4명씩 한 팀으로 시작했구요. 조리대 위에는 오늘 요리할 요리들의 레시피(도토리묵 잡채, 과일 겉절이, 버섯 두부두루치기)와 모든 재료와 양념들이 다 손질이 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썰고 볶고 무치기만 하면 됐어요. 물론 이 재료들은 이곳에서 나는 재료들이고, 요리사, 보조 요리사 모두 농림부에서 지원해서 이 요리체험 수업이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매일 밥하고 반찬 하는데 이곳에 와서까지 귀찮게 직접 음식을 해야 되나, 편하게 한 그릇 사 먹지 했는데, 막상 이렇게 웃으며 얘기하면서 요리체험을 하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같은 팀인 김상용 선배는 느타리버섯을 꼭 짜라고 했는데, 두부를 꼭 짜버렸어요. 그래도 우리들이 누굽니까? 전부 요리 19단들이니 춘복 친구가 그 부서진 두부를 예쁘게 잘라 전분 묻혀서 아주 예쁘게 튀겼답니다. 완전 우왕좌왕이었어요.
요리사는 계속 5분, 10분 설명을 듣고 하라고 말하는데, 모두 자기 식대로 뚝딱뚝딱 다 만들어 버렸어요. 학생으로 치면 아주 우수한 말 안 듣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만든 음식과 들깨국이랑 점심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만든 과정을 말하며 배꼽을 잡았답니다. 남은 음식들은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서 각자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송명숙 회장님, 우 소학 부회장님 요리입니다.
그런데요, 사실은 저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이 바뀌었답니다. 그래도 맛은 좋았어요.
저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요. 전주가 세계에서 4번째로 지정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선정의 중심에는 '한국 전통문화전당'이 함께 했다고 하구요. 그곳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와 있습니다.
하루 일정이다 보니 완전 시간을 쪼개서 움직여야 했어요. 저는 여행만 하면 시간에 완전 노이로제가 걸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멀리서 왔으니 많이 보고 가야 되니까 열심히 즐겁게 따라갑니다.
이곳 '한국 전통문화전당'에는 이 음식 관련 체험뿐만 아니라 수많은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요. 목가 구공 예, 매듭공예, 전통놀이, 칠보공예 등 주제와 종류가 많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들어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음식 체험을 하고 1층으로 내려가서 체험할 수 있는 가게들을 보려고 했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몇 안되었어요. 전체적으로 아직은 조금 한산한 기분이었구요.
시간이 많으면 이곳에서 고루고루 체험해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의미 있는 체험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1층으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한국 전통문화 홍보관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웠어요, 살짝 비가 와서 그런지 습도가 너무 높아 완전 한여름 같았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한쪽 벽면에 전주의 역사가 도표와 함께 전시되어 있고, 바닥에는 전주의 지도가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배님들께서는 아주 열심히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문화해설사는 바닥의 지도를 보고 전주시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이곳은 어디고 저곳은 등등...
풍남문에 대해서도 설명하네요.
전주읍성의 4대 문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남쪽 문인 풍남문(豊南門. 보물 제308호)은 조선 영조 43년(1767)에 불탄 것을 재건할 때 관찰사 홍낙인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고,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해 광장 조성, 방안 마련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해설사는 후백제를 세워 통일 신라, 후 고구려와 함께 후삼국시대를 열었던 무장 견훤에 대한 설명과 견훤의 출생 설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포토존이라고 합니다. 저도 서 봤어요.
영상으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이미지를 느끼고 감상하는 곳입니다. 시설들이 너무 잘 되어 있었어요. 앉아 쉬면서 느긋하게 화면을 볼 수 있게 해 놨는데 아주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이제 2층 '한 문화관'으로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자연과 사람을 품은 한옥, 결이 고운 한지, 흥 넘치는 한국음악, 우리 얼을 담아놓은 한글, 음식창의도시, 전주, 이렇게 주제별로 나뉘어 있는 부분을 보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지,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다." (사진 오른쪽)
한지는 유연성과 흡습성, 통기성 및 계절에 따른 방한성과 보온성들이 탁월해 우리 삶 곳곳에서 그 역사만큼의 명품을 만들어 냈다. 특히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의 껍질은 섬유의 길이가 길고 강인하여 내구성이 뛰어나다. 종이라는 소재의 한계를 넘어 부드럽지만 강한 한지가 마침내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었다. (설명에서)
3층입니다.
이곳에는 아직 준비가 많이 되어있지 않았어요. 가구 전시관이 열려 있어 그곳을 보고 내려가기로 했구요. 지금 가고 있는 방향으로 가니까, 좀 전에 요리 실습을 했던 시루방이 나왔어요. 그래서 '한국 전통문화전당'중 키움동을 1층에서 3층까지 쭈욱 돌아본 셈이 됐어요.
이제 키움동에서 나와서, 맞은편 건물인 한지산업지원센터로 갑니다. 그런데 선배님들께서 새벽에 일찍 나오시고,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오셔서 그런지 피곤해하시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날씨까지 후덥지근하게 더우니 혹 더위라도 들까 걱정이 됐어요. 저도 덥고 새벽같이 나와서 그런지 몹시 피곤했습니다.
"아메리카노 커피 마시고 싶어" 부회장님의 말씀에 "저두요"
그러나 경북여고는 다릅니다. 한지 명인께서 한지에 대해 설명할 때는 아주 열심히 듣습니다. 수업 분위기는 아주 좋았어요.
지금 설명하고 있는 한지 명인은 전주시에서 월급을 주는 공무원 대우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지의 전통과 후배 양성에 아주 심혈을 기울이고 전주의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한지 명인은 한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직접 만드는 시범도 보여줬습니다.
한지제조과정
1. 닥나무 채취 및 닥무지
2. 닥나무 껍질 잿물에 삶기
3. 세척 및 표백
4. 섬유 풀기와 닥풀 풀기
5.한지뜨기
6. 습지 쌓기 및 물짜기
7. 건조... 전통적인 건조방법에는 일광건조, 목판 건조, 온돌 건조가 있다. 현대에는 열판에 증기로 열 을 가하고, 그 위에 종이를 건조하는 열판 건조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한국 전통문화전당에서의 방문이 다 끝났습니다.
한국전통문화전당 키움당에는 1층과 2층을 통틀어 17개의 공방이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자리하고 있는데 도자기부터 염색한지공예, 가죽공예 등 이곳만 돌아봐도 전주라는 도시의 문화를 다 보는 것 같이 많은 기념품 공방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보지는 못했지만 공연동의 공연장에서는 전통연극에서부터 최신의 트렌드인 비보잉 팝핀 등 다양한 콘텐츠의 공연이 열린다고 하구요. 오로지 전통만 고집하는 게 이나라 최신의 트렌드와 전통문화가 어울리는 신선한 소재를 개발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곳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곳이라 하니, 이곳 '한국 전통문화전당'이란 공간이 새삼 자랑스럽기 합니다.
이렇게 잘 지어놓은 한국 전통문화전당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어요. 저렇게 큰 건물을 유지관리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전통에 대해서 많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전통문화전당을 관람하고 나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었어요. 다음 방문 장소로 가야 되는데, 다행히 다음 장소인 전주 한옥마을은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전주 하면 '한옥마을'이라고 하잖아요. 그 한옥마을로 갑니다. 한옥마을에서 1시가 20분 정도 관광을 할 거라고 하네요. 벌써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한옥마을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완전 기대 가득이에요.
서둘러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는 3시에 만날 약속을 정하고 일행들은 자유 시간을 가지고 관광에 들어갔습니다.
풍남동과 교동에 있는 전통과 현대가 배합된 전주 한옥 마을은 한옥이 대략 7백여채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전주들의 부자들이 옮겨와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라고 합니다.
을사늑약(1905년) 이후 전주에 들어온 많은 일본인들은 처음에는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고 합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 밖의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는데, 1907년에 양곡 수송을 위해 전군도로(全群道路)가 개설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어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게다가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 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1930년을 전후에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과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심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됐습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입니다.일본인들의 거주지와는 다른 곳이라고 하며 조선시대의 유서 깊은 건물과 문화재가 많이 있는데 이성계의 위패를 모셔놓은 경기전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더운 날 춘복이랑 먼저 전동성당부터 보기로 하고 버스로 들어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잰걸음으로 내려갔습니다. 춘복이는 비가 온다고 생각하고 모자, 선글라스 모두 준비를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날씨예보에 춥다고 해서 두꺼운 청바지까지 입어서 어찌나 더워하는지, 햇빛 알레르기까지 있는데, "모자라도 살까?" 했는데, 그냥 가자고 하네요.
전동성당에 도착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소문대로 참 예쁜 성당이었어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깊이감이 있는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천주교 성당으로 190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전동성당은 전라 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 윤지충의 순교지 위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합니다. 이 전동성당은 대구의 계산성당, 서울의 명동성당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성당으로 손꼽히는데, 성당을 건축할 때 국내 기술이 미흡해 청나라 도공을 불러 공사를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좀 전에 이때 온 청나라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주에 남아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산다는 설명을 들었구요.
전주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해서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입니다.
곡선미가 아름다운 전동성당은 "약속", "전우치" 등에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약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텅 빈 성당에서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데,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성당 내부의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아름답다고 해요.
성당 앞에는 하얀 그리스도 상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한국 최초 순교터'라고 새겨 놓은 기념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기와집 사이의 한옥마을에 있는 빨간 벽돌의 아름다운 성당, 그리고 높은 십자가가 어울려 묘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청춘남녀들 성당 앞에서 아주 진을 치고 비켜 주지를 않아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우리를 좀 찍어 주라고 했더니 사진이 영~ 아니었어요. 이곳은 역광이라 셀카로 찍어야 제대로 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쯤 해서 대충 마무리하고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경기전으로 갔습니다.
경기전(慶基殿)
경기전은 사적 제339호로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을 봉안하기 위해 태종 10년 9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전주뿐만 아니라 경주, 평양, 개경, 영흥 등 6곳에 봉안되었으나 지금은 오직 전주의 어진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1442년까지만 해도 경기전은 어용전(御容殿)이라고 불리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기도 하였습니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던 경기전은 광해군 6년(1614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11년에 완성된 어진 박물관과 여러 가지 체험활동들을 통해 경기전은 전주 한옥마을의 주요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경기전 앞에 돌로 된 비석이 있는데 이것은 '경기전 하마비"라고 합니다.
그 설명으로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경기전 하마비(下馬碑)
조선시대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비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표석이다. 이곳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至此皆下馬 雜人毋得 入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이라 새겨져 있다. 경기전 하마비는 1614년(광해군 6)에 세웠으며 1856년(철종 7)에중각(重刻)하였다. (설명문에서)
한옥 마을 안에 있는 경기전은 조선 왕조 창업주의 위패를 모셔놓았기 때문에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규모가 1만 평이 넘고 서울을 빼고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밖에서만 보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경기전 매표소 앞에 가서 춘복이랑 어디로 가면 한옥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고 지도를 살펴본 뒤 일단 오목대로 올라가 보기로 했어요. 중앙에 있는 태조로 끝까지 가서 우측으로 돌았더니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한옥마을에는 한복 대여 가게가 한집 건너 있었어요. 어데서나 예쁘게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구요. 또한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 게 킥보드, 왕발통, 자이로미니 및 트레일러였는데 시간당 가격을 정하여 대여를 해주고 있었어요. 특이한 광경이었습니다.
오목대로 가다 보니 큰길을 사이에 두고 오목교라는 다리가 있었어요. 그 다리를 건너가면 이목대라고 하고 그 반대편이 오목대였어요. 우리는 시간이 없기에 오목대에 올라가서 한옥마을만 보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이목대가 나오는데, 이목대와 오목대가 있는 교동의 옛 이름은 자만동이었다고 합니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 비가 서있다고도 합니다.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목조가 자라면서 이곳 자만동에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도 전해진다고 하구요.
전주 한옥마을 동쪽에 있는 오목대(梧木臺. 지방 기념물 제16호)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에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본향인 전주에 들러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후 고종이 친필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문을 새겨, 태조 이성계가 머무른 곳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오목대는 언덕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망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전주 한옥마을 관광을 시작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우리들은 오목대라고 적혀있는 정자 위에서 계속 한옥을 찾았는데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정자에서 내려와서 내려가려고 했더니 우연히 이런 전망을 보게 됐어요. 이곳은 한옥마을 둘레길로 내려가기 위해서 오목대에서 내려가는 곳인데, 제 생각에는 나뭇가지가 많을 때에는 이곳에서 내려다봐야 한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천천히 오목대에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잠시 더위를 식혀 주네요.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되나 하고 망설이다 아무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한옥은 더 이상 주거만을 고집하지는 않는 듯했어요. 거의 대부분의 한옥들이 게스트하우스나, 식당, 카페 등으로 완전 상업화가 되어 있었어요. 곳곳에 걸려있는 개량한복들, 그리고 골목골목에는 그 한복들을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있었구요. 저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한옥마을을 보기를 원했는데 조금 실망했습니다. 제가 못 찾은 걸까요?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태극기가 걸려있는 황손의 집 '승광재'를 발견했습니다.
긴 골목 끝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왠지 마음이 짠하고 찡했어요. 친구도 그랬는지 계속 서로 이런 감정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승광재(承光齋)는 대원군의 증손자이자, 대한제국을 선포(1897년)하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직계 손자이신 황손 이석님이 사시는 곳이다.
승광재는 대한제국 연호인 광무(光武)에서 빛 광(光) 자와 뜻을 이어간다는 '승(承)'자를 따서 "고종황제의 뜻을 이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자료 설명)
전주는 조선 황실의 발상지이자 태조 고황제 이성계 장군 선친들의 본향으로써, 2003년 8월에 제34, 35대 김완주 전시장님과 전주시민들의 의지에 따라 황손 이석님을 모셔, 2004년 10월 15일에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로 3가 42-10번지 이곳 '승광재'에 입주하게 되었다.
승광재는 마지막 황손 이석님께서 황실에 대한 전통, 문화,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하시는 등 다양하고 특별한 문화공간이다.(자료 설명)
골목이 너무 한적하고 예뻐서...
다른 한옥과 달리 담벼락에 특이한 문양을 넣어놓은 집이 있었어요. 그래서 '와! 너무 예쁘다'하고 그 집을 봤더니 뜻밖에도 소설가 최명희 님의 집이었어요.
최명희는 1947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의 소설가로 지병인 난소암으로 1998년에 숨을 거두었죠. 우리들은 '혼불'이라는 책으로 최명희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데요.
'혼불'은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시를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특히 이 책에는 전래풍속과 방언의 풍부한 구사등이 많아서 그 책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전주에서는 소설가 '최명희'를 아주 특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한국 전통문화전당에서 영상으로도 나왔고, 집 앞의 길을 쭈욱 연결하여 '최명희길'이라고 이름도 지어져 있었습니다.
최명희 문학관도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어요.
이 전주 한옥 마을은 너무 넓어서 하루 만에 보기는 무리인 듯했어요. 서울의 인사동, 북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비교했을 때 그 면적이 훨씬 넓다고 합니다.
이제 3시가 거의 다 되어갑니다. 빨리 약속 장소로 가야 하네요.
가면서 전주 하면 생각나는 풍년제과도 지나고...
여러 전시관도 지나갑니다. 시간이 없는데도 잠깐잠깐씩 들어가 봤습니다.
진짜 갈려니 좀 아쉽네요.
이제 전주의 바람이라면 그럴까요? 하여튼 요즘 대세인 '로컬푸드' 매장을 방문하여 그에 관해서 교육도 받고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구입도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2012년 전북 완주군 용진읍에 있는 '용진농협'이 '로컬푸드 직매장' 1호점 문을 연 뒤 전국에서 로컬푸드 매장 개장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로컬푸드'라는 단어가 참 생소한데요. 그 뜻은 이러하다고 합니다.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장거리 이동과 다단계 유통 과장을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새로운 먹거리 유통문화"를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그 내용에 대한 교육이 있다고 하구요.
드디어 이번 여행의 주목적인 로컬푸드에 대해서 교육하는 교육장으로 왔어요. 두 가지 교육이 있었는데, 축산물과 로컬푸드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축산물 바로 알기 소비자교육은 소고기 돼지고기의 유통과정과, 연도별로 소비량이 어떻게 증가하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부위, 그리고 부위에 따라 고기 맛이 어떻게 다른지 다른 이유, 각 부위의 맛과 그 부위는 어떤 음식에 사용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줬어요.
그리고 고기에 대한 일반 상식, 숙성, 그리고 소고기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 등 여러 가지를 말해줬는데, 평소에 무심히 대충 먹은 고기를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다니, 앞으로는 좀 생각해서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로컬푸드'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전주시에서 나온 강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금 우리들의 먹거리는 고장 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자유로운 시장 경제에 맡겨져서 그러니 이제는 공공의 정책으로 우리들의 먹거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 로컬푸드기 바로 그런 일례가 된다)
로컬푸드는 매장과 직원들을 전주시에 준비를 해주고 농민들은 그날의 생산물을 그날 가져와서 스스로 가격을 정하고 그날이 지나면 회수해가는 제도를 말한다고 했어요.
유통과정이 간단하고 가겟세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농산물 자체 가격이 저렴해지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신선하고 가격이 저렴한 이곳을 찾게 되고 그러면, 청년들이 관심을 기울여 이곳으로 취직을 하고, 그러다 보면 지역으로 돈이 흘러 들어와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룬다는 내용의 강의였는데 참 좋은 취지인데...
교육이 끝난 다음 로컬푸드 매장으로 갔습니다. 저도 카트를 가지고 매장 안을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물건에는 모두 생산자, 날짜, 전화번호 그리고 어떻게 먹으면 좋다는 내용들이 꼼꼼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로컬푸드 매장과 일반 대형마트의 차이는 이렇게 제품에 생산날짜, 생산자, 그리고 필요한 상품에는 '농산물 분석 결과' 올바른 보관법까지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보구요.
이렇게 '로컬푸드'는 일단 당일 유통이라 신선하고, '농산품 품질관리원'이 '로컬푸드 직매장'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 조사를 지원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뛰어나며, 로컬푸드 직거래 매장을 통해 복잡한 유통과정의 거품을 빼서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합니다.
'로컬푸드 매장'에는 그날 나온 신선한 채소, 과일만 있는 게 아니에요. 좋은 재료로 만든 빵 과자, 라면까지 그 종류가 참 다양하고 풍부했습니다.
일행들 모두 구입을 많이 했어요. 가지고 가기 부담스러우면 택배로 하구요. 저는 참깨, 들깻가루, 치즈, 생강과자 등 제법 산 것 같아요. 아주 낑낑하면서 들고 버스로 왔습니다.
이러한 '로컬푸드' 같은 전주 푸드 플랜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인 전주시가 시민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업인의 안정적인 소득창출을 유도하며, 지역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자립 순환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의 농산물은 그 지역에서 직접 소비하자는 의미의 '로컬푸드'가 이제 음식 문화의 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도 하고요.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밀물같이 밀려오는 수입 농산물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니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도 해봅니다.
드디어 전주여행이 끝났네요. 정신없이 보낸 하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주 하면 비빔밥이니까 최고로 맛있다는 비빔밥을 먹고 서울로 가기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송명숙 회장님께서는 준비한 약식을 오늘 여행을 주선해 준 표경희 고문님의 후배인 소시모의 관계자 오숙영 님께 선물하고, 여행의 마무리를 박수를 치면서 끝냈습니다.
그나저나 구입한 저 물건 들은 어떻게 가져갈까요?
게다가 계속 토마토, 육포까지 선물로 주네요.
아무래도이고 지고 안고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하루의 피곤함에 스르르...
첫댓글 후배님의 글 재주에 감사~~즐거운 우리나라 전통 문화의거리 전주한옥마을 여행기 정말 아름답습니다.한지가 그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전동성당은 청나라풍이 있네요.읽고 또 읽고 익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매번 이렇게 읽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주씨 또 놀랍네!
같이여행했지만 똘똘한아우가있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코끼리다리만만져보고감탄한수준이야~~
꽃길이예쁘다는둥
성당에딸린모든집들이고풍스럽다는둥
기회가되면다시 여유롭게민박이나하자는둥
카페에앉아서 여유를즐겠지~
표회장님 덕분에 선후배 유대가 돈독해지고 또한 모교에 대한애교심 도키워지고~
내가 버스에서아침에뽑혀왔구나했지?
그말이딱맞네
얼마나 사명감을갖고 이많은 사진과 여행후기? 를썼을까 는에선~해
송명순회장말대로
설주씨 자넨 경북여고의 명품그자체야
같이동행한사람으로
갈체릏보낸다
싸랑해여
선배님!
너무 과찬을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여행 선배님들과 같이해서 너무 좋았구요.
챙겨주신 과일 감사합니다.
아주 의미 깊은 여행이였네요.
전주엔 가본 적이 없어 기회가 닿으면 가보고 싶네요.
전주는 저도 처음이었어요.
하루에 다녀오기는 좀 아쉽더라구요.
일박하는게 좋을 듯 싶었어요.
갑자기 가게 됐지만 좋은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