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에 친해지고 싶은데 음악이 낯설어서 그게 쉽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라이브 공연 감상을 그에 대한 처방전 중 하나로 제시할 수 있다. 콘서트는 정규 앨범과 달리 음악 자체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잠시 아티스트들의 "비주얼"에 주목하게 만든다. 관중들과 함께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그 곡이 왜 좋은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팝 초심자에게만 해당되는 효과는 아니다. 어떤 앨범이 별로였는데 라이브 공연을 보다 보니 그 음악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마돈나의 [The Confessions Tour]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앨범은 마돈나의 통산 열 번째 정규 앨범에 해당하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의 곡들을 가지고 펼친 투어 공연 중 영국 웸블리 공연을 녹음/녹화한 타이틀이다. EROTICA (THE CONFESSION TOUR)
LA ISLA BONITA (THE CONFESSION TOUR)
(어쩔 수 없이) 잠깐 마돈나에 대한 얘기를 길게 풀 수 밖에 없는데... 1997년 마돈나는 [Ray of Light]를 기점으로 일렉트로니카로의 선회를 시도했는데, 내가 마돈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물질 소녀가 어떻고 처녀 논쟁이 어떻든 간에 나는 그녀의 이전 음악엔 관심이 별로 없다. 퇴폐적인 섹스심벌을 자처하며 다소 천박하다 싶을 정도로 새된 목소리를 쨍알거리던, 이전의 젊은 마돈나는 내가 좋아하기엔 기괴한 이미지를 지나치게 앞세우고 있었고, 그래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 깊이는 마돈나가 버릇처럼 앞세우는 노이즈마케팅, 그리고 특유의 기괴한 아우라와 한데 조화를 이루더니, 그런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들마저도 "예술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 마돈나를 둘러싼 주된 얘깃거리는 "49세의 노익장" 담론이지만, 보컬의 질로만 따져도 마돈나는 지금이 전성기다. 노래 속에서 Madonna는 영락없는 마녀이지만, 그 마녀는 "성찰"을 하고 있다. "Ray of Light" 같은 곡을 제외하면 키도 높지 않다. "댄스"를 감안한 송라이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녀만큼 일렉트로니카 팝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는 흔치 않다. 그녀의 저음 처리나 나레이션을 들어보았는가? "Hollywood" 같은 곡에선 변조하기에 따라 남성의 목소리로까지 변신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Ray of Light]가 일렉트로니카 장르로의 진입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앨범이었다면, 이후 나온 [Music]은 클럽 씬을, [American Life]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각각 테마로 잡은 일렉트로니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일련의 앨범들을 통해 마돈나는 유연하고 댄서블한 일렉트로니카 팝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Confessions On A Dance Floor]도 그 연장선상에 속하지만, 내가 이 앨범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춤을 추기엔 "그리 흥겹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바 "Gimme Gimme Gimme"의 샘플링은 마돈나의 "댄스로의 회귀" 선언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회자되었지만 마돈나는 그런 음악들을 이미 [Music]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옛 대중음악의 다소 촌스러운 기운까지 복제해 버린 "Hung Up"보단, 적절히 완급을 조절하며 고개를 까딱거리게 만드는 "Music"의 세련된 그루브를 더 좋아한다.
그만큼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나와 마돈나가 어디서 서로 어긋나 버린 걸까? 진짜 문제는 전작 [American Life]가 실패작으로 규정되면서 마돈나가 재기를 위해 너무 기합을 넣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돈나는 1980년대 데뷔한 뮤지션이지만 그녀는 그 이전의 1960~70년대로 돌아갔다. 외피로 둘러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소위 "뿅뿅 사운드"에 이전보다 더욱 가까워졌고, 리듬은 웬만해선 단조로운 정박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며 그루브가 개입할 여지를 여러 군데에서 차단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이전에 비해 멜로디도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고 곡의 구성도 다소 지루해진다. 예컨대 "I Love New York" 같은 곡의 멜로디는 10대 스쿨 펑크 밴드에서나 들을법한 수준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 앨범의 진짜 강점은 그런 조악함까지 장점으로 묻어버린다는 점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녀는 지금의 유명세를 타기 이전에 밴드를 결성해서 기타와 드럼을 직접 배운 열성파였고, 그 결과 그녀의 음악은 (아래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백인들의 락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녀는 이번 앨범을 통해서 그 락스러운 본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공연에서 그녀가 부른 옛날 히트곡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곡은 "Like A Virgin"이다. 왜 "Like A Virgin"이겠는가? 춤을 "for the very first time"으로 추던 때의 열정, 그 때의 음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R&B나 재즈 취향에 가까운 나에겐 당연히 재미없게 들렸을 것이다. [Ray of Light], [Music], [Confessions On A Dance Floor]은 몇 곡만 골라 듣게 되지만, [American Life]는 전곡을 쭉 이어서 들어도 무리가 없다. 마돈나가 다소 태만하게 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언정.) 이 앨범은 무엇보다 "댄스에 대한 열정"을 컨셉으로 잡고 있지만, 그 애정이 너무 진지한 나머지 춤 자체의 재미를 다소 놓치는 부분이 보인다. "Hung Up" "Jump" 뮤직비디오 같은 부분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지만, 이번 앨범의 안무들은 종종 춤이라기보다는 체조선수의 운동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예컨대 "Jump" 공연에서는 아예 평행봉을 세워놓고 백댄서들에게 야마자키를 연상시키는 아크로바틱한 퍼포먼스를 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Music Inferno"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남성 백댄서들이 한 손으론 바닥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 위와 두 다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동작이 나온다. 아무나 따라하기 힘든 이 역동적인 동작은 분명 성적 흥분을 염두한 것이겠지만 기대한 만큼의 효과엔 다다르지 못한다. 기계처럼 정교하지만 어렵고 뻣뻣한 느낌의 동작이 많아 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연함이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춤에 도가 튼 말 그대로 "춤꾼"들만의 즐거움이지 일반인들이 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HUNG UP (THE CONFESSION TOUR)
하지만 이 라이브 앨범은 결과적으로 정규 앨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의 훌륭한 대체재이다. 이 공연은 앞서 설명한 앨범의 단점들을 탁월하게 보완하고 있다. 그건 마돈나란 인물 자체가 비주얼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흑마를 탄 마돈나, 미러볼에서 나오는 마돈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연기하는 마돈나, 이스라엘과 중동을 상징하는 두 남성 댄서 사이에서 세계의 평화를 몸으로 이야기하는 마돈나 등 아이디어 넘치면서도 보는 이를 집중하게 만드는 퍼포먼스가 잔뜩 등장한다. 그 가운데 "Get Together" "Jump" "Sorry" 등 싱글로 내놓았던 대표곡들을 들을 수 있다. 감상하는 사이에 각 곡의 포인트와 훅이 친절하게 스스로의 정체를 폭로하고, 자신이 얼마나 대중적인 팝인지를 알려준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이 공연이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니카 라이브"이기 때문이다. 전자 사운드와 소리의 변조를 주된 재료로 쓰는 일렉트로니카는 제대로 된 라이브가 쉽지 않고 또 흔히 볼 기회가 적기 때문에 그걸 본다는 것 자체가 다른 공연에 비해 메리트를 갖는 것이다.
네 곡의 퍼포먼스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논쟁거리를 유도한 것으로 보이는 십자가 마돈나 같은 퍼포먼스나 (이제는 전세계인의 유행이 된) 부시를 비판하는 비디오 클립 등이 더 눈에 띌 법하지만, 그것은 꾸준히 정치적 발언을 해오면서 자신을 트러블 메이커로 각인시킨 마돈나의 익숙한 모습일 뿐이다. 이 퍼포먼스들은 마돈나의 음악적 본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마돈나 음악의 원류가 기본적으로 락에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는 [Ray of Light]에서부터 꾸준히 견지되어왔던 사실이기도 하다.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의 "Ray of Light" 라이브가 백댄서를 대동한 댄스 퍼포먼스가 아닌 록밴드 체제의 공연으로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원곡보다 최소한으로 제거해 버리고, 귀청을 때리는 강한 비트로 승부한다. 그리고 리듬에서는 완급을 조절하는 "엇박"을 집어넣었고,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멜로디는 마돈나의 보컬 뿐이다. 스튜디오에서와 달리 라이브에서의 실제 마돈나 목소리는 다소 두텁고 보다 파워풀한 양상을 띠는데, 이것이 "Let It Will Be"의 단조 멜로디와 만나자 영락없는 락커의 보컬이 된다. 특히 곡 후반부에서 "... at point of no return"을 외치는 부분에 주목하길. 이 곡은 나중에 다른 록밴드가 사서 리메이크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다. 즉흥적인 몸짓으로만 승부하며 무대를 홀몸으로 장악해 버린다. 움직이고 싶어서 안달대는 육체를 자유롭게 "Let it will be" 해버리고, 허공에 저돌적으로 날리는 펀치와 킥. 간주 부분에서 비트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그녀의 사지가 비트에 맞춰 쭉쭉 뻗어나간다. 이 부분에서 마돈나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앨범에서 의도했던 것을 드디어 성취한다. 곡 막바지에 그 대단한 마돈나가 숨을 헉헉댈 정도로 몸을 휘둘러 대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댄스에 대한 무한한 애정, 그리고 춤을 통해 얻는 영혼의 해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다른 곡들과 달리 계산되지 않은 "즉흥적인 몸짓"이었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도 결국 정교한 계산 중 일부라면 할 말 없지만.
(단테의 수사를 빌려와 리믹스에 "지옥편"이라고 이름붙이다니 마돈나다운 센스.) 앞서 언급한 네 곡이 이 공연의 절정에 해당한다면, 이 곡은 그 중에서도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이래도 공연이 다소 지루하다면 이 퍼포먼스부터 감상해도 좋다.) 애초 미니멀한 편곡의 "Music"을 디스코 리듬의 사운드로 꽉꽉 채워 길고 화려하게 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4박자를 8박으로 쪼개 쉬지않고 둥둥대는 비트가 속도감을 부여했고, 세련된 기타 리프를 보다 흥겹게 바꿔놓았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댄스에 대한 과도한 진지함을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는 여유로 바꿔놓는 부분이다. 익스트림스포츠와 패션쇼의 이미지를 뒤섞어놓는다. 그리고 <토요일밤의 열기>의 존 트라볼타를 연상시키는 흰색 정장의 마돈나와 두 명의 여성 댄서가 등장한다 . 절제된 동작으로 중성적인 마돈나의 독특한 매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무대 중앙에서 마돈나가 솔로로 가새를 찌르며 디스코를 추는 부분이나, 여성 댄서들이 마돈나의 뒤로 퇴장할 때의 연출은 어떤가? 왈츠를 추듯 손을 맞잡고 "웃으며" 나간다! 다들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한다. 춤의 흥취가 극에 달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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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usic It`s My Life 쿤타 킹 원문보기 글쓴이: 쿤타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