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도시 2*
허 연
영양 무리들이 폐수 위를 뛰어가는 걸 보면서
경건하게 튀어오르는
물... 방... 울... 과
쓰러지는 드럼통을 보면서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이곳에서 약해질 시간은 없다
대멸종이 오는 날까지 강해져야 한다
영양들은 공작도시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배운다
그래서 특별해진다
더 나쁠 순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해서
영양들을 공작도시를 달린다
폐차장 무리들은
미래의 왕을 기다리며 쓰레기 산을 넘어간다
* 손상기의 그림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들의 숙명적인 배경
80년대 중반 화가 손상기를 알게 됐다. 이름을 얻기 전이어서 그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했다. 아현동 산동네 작업실에 가면 그가 그 무렵 한참 그리던 ‘공작 도시’ 연작이 계단에 포개어져 있곤 했다. 그림에는 그가 서울에 올라와 주로 머물던 급조된 산동네들의 모습이 진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은 슬프기도 했고, 기괴하기도 했으며, 또 어떻게 보면 초현실적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어 <공작 도시>라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짓고 우리가 망친 공간,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죽인 공간을 시로 썼다. 그렇게 쓰인 <공작 도시>는 내 등단작 중 하나가 됐고 내 첫 시집에 실렸다. 시간이 한참 흘러 동명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별로 끌리지 않았다. 손상기의 그림이나 내 시가 반영됐는지 안 됐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우리는 도시 무리들이다. 도시에서 살다 도시에서 죽는 무리들이다. 도시는 저주의 대상도 사랑의 대상도 아닌, 그냥 우리들의 숙명적인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