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고 기대어 방편 좇아 조사 등불 이으려 하지 말라”
진리는 온 산천에 쌓였고 온갖 벽마다 부딪칠 정도로 가득해
하지만 분별 일삼으며 기회 놓치는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노력
포단이나 선판의 방편 따위를 구태여 쓸 게 무어 있겠는가
눈을 들어 보라. 겹겹이 늘어선 산은 아득히 푸른빛 보이나니…
용아 거둔(龍牙居遁, 835~923)스님은 14세에 출가하여 제방을 편력하면서 취미, 임제, 덕산 등의 대선지식의 지도를 받았지만 깨닫지 못하다가, 동산 양개(洞山良价)선사에게 참학하여 깨달음에 이른다. 그 후 담주(潭州) 용아산(龍牙山)에 머물며 89세까지 후학을 지도하였다.
➲ 강설
진리란 온 산천에 쌓여 있고 온갖 벽마다 부딪칠 정도로 우리 곁에 가득한 것이다. 하지만 분별을 일삼으며 기회를 놓치는 사람에게는 모든 노력이 부질없어질 따름이다.
만약 뛰어난 선지식이 나서서 큰 바다와 같은 불법이라고 내세우는 것도 뒤엎어 버리고, 태산 같은 전통이라며 움쩍 않는 것도 걷어차 버리며, 고상한 품격이라고 내세우는 것도 호통 쳐 흩어버리고, 천하를 품은 듯 일체를 부정하는 태도까지 쳐부수어 버려서, 어느 때 어떤 경우를 만나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도 할 수 없게 해 버린다면,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 본칙 원문
擧 龍牙問翠微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與我過禪板來 牙過禪板與翠微 微接得便打 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 牙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與我過蒲團來 牙取蒲團過與臨濟 濟接得便打 牙云打卽任打要且無祖師西來意
선판(禪板) 오래 좌선하여 피곤할 때 잠시 기대어 쉬기 위한 도구.
포단(蒲團)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도구.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용아스님이 취미선사께 여쭈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취미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선판을 가져다주게.”
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 취미선사께 드리니, 취미선사가 받자마자 곧바로 (선판으로) 쳤다.
용아스님이 말씀드렸다. “때리시려면 맘대로 때리십시오. 그렇지만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용아스님이(뒷날) 다시 임제선사께 여쭈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임제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포단을 가져다주게.”
용아스님이 포단을 집어 취미선사께 가져다 드리니 임제선사가 받자마자 곧바로 (포단으로) 쳤다.
용아스님이 말씀드렸다. “때리시려면 맘대로 때리십시오. 그렇지만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 강설
역대로 수많은 수행자가 달마조사께서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건너오신 뜻을 두고 목숨을 걸었었다. 그리고 웃은 이가 간혹 있었고, 무수한 이가 목숨을 잃었다. 만약 두렵다면 그만 두면 된다. 그래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그게 싫다면 용감하게 목숨을 걸 일이다. 그래도 목숨을 잃는다.
용아스님은 대단한 용기를 지녔다. 대선지식 앞에서도 결코 주눅이 들지 않고 공부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시절인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랬기 때문에 달마조사께서 중국에 오신 뜻을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추구하기는 했으나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님을 어쩌겠는가. 취미선사와 임제선사는 두 번씩이나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러나 젊은 용아스님은 있음과 없음의 구렁텅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판과 포단을 들고 오면서도 깨닫지 못했고, 얻어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선판과 포단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이가 사용하는 도구이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인가?’라고 추구하는 것은 무슨 목적인가? 두 선지식은 너무나 친절하게 지도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외가 익지 않아 쓰디쓴 맛이 난다.
열사의 사막 유적에도 어김없이 달이 떠오른다. 여기 무슨 뜻이 있을까?
➲ 송 원문
龍牙山裏龍無眼 死水何曾振古風
禪板蒲團不能用 只應分付與盧公
고풍(古風) 옛 가풍.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경지. 치열하게 깨달음을 추구하는 전통. 한 말씀에 곧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전통.
노공(盧公) 육조대사의 성이 노(盧)씨인 까닭으로 육조대사라고 보기도 했으나, 송의 흐름으로 보아 설두스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음.
감대(堪對)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대하는 것.
모운귀미합(暮雲歸未合) 여기 저기 흩어진 석양의 구름이 어둠에 잠기려하는 모습.
➲ 송
용아산 속의 용에게는 눈이 없구나.
죽은 물에서 어찌 거듭 옛 가풍 펼치랴.
선판도 포단도 능히 쓰지를 못하니,
그만 노공에게 넘겨주는 것이 마땅하리.
➲ 강설
용아스님은 아직 안목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저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찌 조사와 조사가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더 이상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겠는가.
취미선사와 임제선사가 너무나 친절하게도 선판과 포단을 써서 이끌어 주었건만, 애석하게도 후려칠 기회를 상대에게 넘기고도 여전히 모르는구나. 설두선사께서 노파심으로 한 말씀 하셨다. “아아! 나라면 멋지게 보여주었을 터인데.”
➲ 송
這老漢 也未得勦絶 復成一頌
이 늙은이가 완전히 끝맺지 못했다 싶어, 다시 한 게송을 짓는다.
➲ 강설
설두 노인네가 용아스님을 나무라느라고 ‘조사서래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나 보다. 참 노인네들 마음이란 어쩔 수 없다. 쯧쯧!
➲ 송
盧公付了亦何憑 坐倚休將繼祖燈
堪對暮雲歸未合 遠山無限碧層層
노공이 넘겨받아도 또한 어찌 의지하랴.
앉고 기대 조사 등불 이으려 하지 말라.
아름다워라 해질 무렵 구름은 어둠에 잠기려 하고,
먼 산은 아득히 푸른빛으로 늘어섰네.
➲ 강설
포단이나 선판 등의 방편 따위를 구태여 쓸 게 무어 있겠는가. 그런 방편을 좇아 조사들의 흉내를 내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지. 암 그렇고말고. 달마조사께서 중국에 오신 뜻을 알려고 하는가?
눈을 들어 보라. 마침 석양이라. 구름은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색으로 어둠에 잠기기 전이고, 겹겹이 늘어선 산들은 아득히 푸른빛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아차차! 구름 따라 오가느라 분주하고, 산봉우리 헤아리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쯧쯧!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