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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북정맥 주릉에서 바라본 가리산
우연히 돌 한 덩이
내어 던져 두신 것이,
시킨 적 한 적 없이
되어도 저리되니,
짓자지 않는 조화가
더욱 놀랍하외다.
주) ‘짓자지’는 ‘그리 맨들려 하지’라는 뜻이다.
――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1890~1957), 「비로봉(毗盧峯)에서(金剛山)」 3수 중 제3수
▶ 산행일시 : 2021년 7월 17일(토), 맑음, 비 조금
▶ 산행인원 : 2명(악수, 제임스)
▶ 산행시간 : 9시간 7분
▶ 산행거리 : 오룩스 맵 15.0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도평리에서 내림(잘못 내렸다. 흥룡사 입구인 백운동에서
내려야 했다)
▶ 올 때 : 국망봉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택시 타고 이동으로 와서, 저녁 먹고 시외버스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20 - 동서울터미널
07 : 40 - 도평리, 산행시작
08 : 20 - 백운계곡, 흥룡사
08 : 28 - ┫자 갈림길, 왼쪽이 백운산 3.68km, 직진은 향적봉 2.67km
10 : 02 - 776.4m봉
10 : 24 - 백운산(白雲山, △903.0m)
11 : 06 - 삼각봉(921.0m)
11 : 40 ~ 12 : 05 - 도마치봉(948.8m), 점심
12 : 27 - 도마봉(883.3m), 헬기장, ┫자 갈림길
12 : 54 - △827.8m봉
13 : 48 - 946.7m봉, 헬기장
14 : 05 - 신로봉(新路峰, 981.1m)
15 : 07 - 852.8m봉
15 : 37 - ┫자 갈림길, 왼쪽은 국망봉자연휴양림 1km, 직진은 하산길(장암리) 2.85km
16 : 04 - 광산골 계류, 휴식
16 : 47 - 국망봉자연휴양림 입구, 산행종료
17 : 08 ~ 18 : 31 - 이동, 저녁, 사창리에서 오는 버스가 11분이나 지연 도착, 출발
19 : 55 - 동서울터미널, 해산
2-1. 산행지도(백운산, 영진지도 1/50,000)
2-2. 산행지도(신로봉, 영진지도 1/50,000)
▶ 백운산(白雲山, △903.0m)
우리나라 남한에 백운산이 29개(백운대 1개, 백운봉 2개 포함)나 된다. 그중 옛 선인들이 다투어 동경하던 백운
산은 북한산의 백운대 다음으로 광양의 백운산과 이곳의 백운산이었다. 이 백운산을 오르기로는 광덕고개에서
시작하는 편이 가장 수월하다. 광덕고개 높이가 이미 620m이어서 그 만큼 먹고 들어가거니와 거리는 2.9km에
불과하다. 반면 백운계곡 흥룡사 쪽에서 오르는 것은 해발 240m에서 시작하고 거리는 4.0km나 된다. 땀 빼기
마련이다.
우리는 당연히 흥룡사 쪽에서 오른다. 어떻게든 ‘더 높이, 더 길게, 더 오래’ 가려는 산 욕심이 도저서다. 한편 과
유불급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들머리에 잘못 내렸다. 버스기사님과 소통에 착오도 있었다. 기사님에게 백운
계곡을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할까요? 물었더니 도평리에서 내리시라고 한다. 나는 백운계곡을 흥룡사 입구로
생각했고, 기사님은 372번 도로 옆의 계곡(영평천)을 백운계곡으로 알았다.
그러니 도평리에서 흥룡사 입구의 백운동 백운계곡(거기에 백운계곡이라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다)까지 장장
2.9km에 달하는 대로를 걸어야 했다. 물론 내가 조금만 더 세심하였더라면 동서울에서 06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백운동에 내렸어야 했다. 설악산을 갈 때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 대로 3.0km를 걷는 것에 비유하
며 걷지만 거기와 여기는 대로 사정이 전혀 딴판이다. 설악동에서는 차량이 다니지 않는 하늘 가린 숲속길이지
만, 여기는 오가는 차량이 줄지어 쌩쌩 달리니 좁다란 갓길로 가야 하고 그것도 땡볕을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한다.
정작 험로는 산중 오지가 아니라 이런 대로다. 모처럼 대로 옆 계류를 들여다보며 간다. 예전의 계곡을 뒤덮은
상인들의 방갈로와 천막, 그늘막 등의 시설을 철거하여 옥계반석과 와폭, 담 등을 돈 내지 않고서도 볼 수 있다.
그중 가경은 포천8경의 하나라는 선유담이다. 그래도 가외 걸음이라 초장에 지친다. 다리 건너 너른 백운주차
장 지나고 흥룡사 앞길을 내쳐간다. 흥룡사 절집을 들를 심정적 여유가 없다.
흥룡사의 옛 이름은 백운사였다. 동주 이민구(東洲 李敏求, 1589~1670)의 「백운산 백운사 중수기(白雲山白雲
寺重修記)」에 보면 백운산이 그때는 더욱 명산이었다.
“우리나라 산 가운데 이름에 백운이 붙은 곳이 수십 개인데 오직 영평(永平)에 있는 것이 가장 빼어나고 그윽하
다. 이 산에 의지하여 지어진 사찰이 또 수십 개인데 백운사가 가장 정밀하고 엄격하다. 맑은 시내와 우뚝 솟은
바위, 그리고 빼어난 경치 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성정을 도야할 수 있으며 산중의 그윽한 일을 제공하고 도
기(道機)를 맑게 해 주는 것들이 영은사(靈隱寺)나 국청사(國淸寺)와 우열을 다툰다. 그리고 흰 구름이 산봉우리
에서 뭉게뭉게 피어나 하늘 가득 퍼져서 아침저녁으로 드러내는 자태와 흐렸다 갰다 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다른 산과 비교되지 않는다.”
(東國之山名白雲者以十數。而唯在永平者最爲秀奧。據山而建佛宇者又十數。而號白雲者最爲精嚴。其泉石之泓
崢。景致之敻絶。凡可以娛耳目而陶性情。供幽事而淸道機者。當甲乙於靈隱國淸。而白雲之溶溶出岫。漠漠彌
空。朝夕呈態。陰晴變幻。與他山不同。)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오승준 정만호 (공역) | 2016)
영평(永平)은 포천시 지역의 옛 지명이고, 영은사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영은산(靈隱山)에 있는 사
찰이며, 국청사는 절강성 천태산에 있는 사찰로 천태종(天台宗)의 발상지라고 한다.
3. 도평리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바라본 가리산
4. 닭의장풀(Commelina communis L.)
닭의장풀은 사람을 따라 다니는 터주식물이다.
닭의장풀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영명의 Asian dayflower는 그런 의미이다. 일본명 쭈욱사(ツユクサ,
露草)는 ‘이슬이 맺힌 풀’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압척조(鴨跖草, 오리 발바닥 풀)라 부른다. 한글명 닭의장풀
은 오리보다 닭을 많이 키우는 우리나라이기에 누군가가 오리 대신에 닭을 빗댄 데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5. 백운산원추리(Hemerocallis hakuunensis Nakai)
한반도 특산종이다. 나카이(Nakai)가 1934년 백운산 500~800m에서 발견하여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19세기 초 『물명고』는 훤초(萱草)는 곧 훤초(諼草)라고 했다. 중국 『시경』의 위(衛)나라(? ~ 기원전 209년) 풍속
「위풍(衛風)」을 읊은 백혜(伯兮)라는 시에 나오는 훤초(諼草)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운 님이여(伯兮)’ 라는 시는 춘추전국시대 전쟁터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인의 마음을 읊은 노래다. 백혜(伯兮)의 4수 중 제4수이다.
焉得諼草 원추리를 얻어
言樹之背 뒤뜰에나 심어볼까?
願言思伯 한시도 잊지 못할 님이시여
使我心痗 내 마음 갈기갈기 찢어지네
6. 흥룡봉
7. 산릉 너머가 가리산
8. 산릉 너머가 가리산, 고도를 높임에 따라 가리산이 점점 더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9. 앞 왼쪽은 흥룡봉, 오른쪽 멀리는 사향산
10. 가리산, 앞 오른쪽은 흥룡봉
11. 동자꽃(童子-, Lychnis cognata Maxim.)
동자꽃의 속명 라이크니스(Lychnis)는 ‘붓꽃’이라는 뜻의 희랍어 리크노스(Lychnos)에서 유래되었는데,
꽃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는 코리안 라이크니스(Korean Lychnis)라고 부른다.
동자꽃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다.
겨울 채비를 위해 마을로 내려가신 스님은 볼 일을 다 보고 산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눈이 쌓여 도저히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스님은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허겁지겁 산사로 돌아왔는데, 안타깝게도 스님
이 내려가신 언덕을 바라보며 앉아 기다리던 동자승이 그대로 얼어 죽어 있었다. 스님은 동자승을 고이 묻어
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식물이 돋아나 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을 피웠고, 사람들이 이를 동자
꽃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이유미, 『한국의 야생화』)
12. 동자꽃
임도 따라간다. 구불대는 백운계곡을 백운1교로 건너고 조금 더 가서 백운2교로 건넌다. 흥룡사 입구에서 8분
걸려 ┫자 갈림길이다. 이정표에 왼쪽이 백운산 3.68km, 직진은 향적봉 2.67km이다. 백운계곡을 거슬러 올라
향적봉 쪽으로 가다 봉래굴을 지나 우리가 가게 되는 백운산 서릉에 오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일찌감치 능선에
붙는다. 땡볕 가린 숲속에 드니 살 것 같다. 등로는 잘 다듬었다.
가파른 데는 굵은 밧줄의 핸드레일과 목재계단을 설치했고 오르막 슬랩에는 발판 혹은 손잡이를 만들어 놓았
다. 등로는 수로이기도 하여 빗물에 깊게 패였고, 그래서 처음보다 높아진 계단을 오르기가 버겁다. 이렇게 길
고 가파른 계단에서는 으레 108계단인지 세어보는데 이도 잊는다. 산행교과서적으로 1시간 걷고 잠시 쉬며 숨
고르곤 한다. 451.9m봉 직전에 첫 휴식한다. 입산주 냉탁주로 목 축인다.
바윗길 오르막이다. 수렴 걷은 슬랩을 지날 때 산릉 너머로 가리산이 불쑥 떠오르는 모습을 본다. 용문산에 오
르면 추읍산이 양평의 마스코트로 보이듯이 이곳의 백운산에서는 가리산이 이동의 마스코트로 보인다. 오르막
은 한 피치 숨 가쁘게 오르면 잠시 소강해지기를 반복한다. 774.4m봉 오르기 0.5km 전 ┣자 갈림길 오른쪽은
백운계곡에서 봉래굴을 지나서 오는 길이다. 그 길도 잘 났다.
776.4m봉 오르면 비로소 둥그런 백운산 정상이 눈에 잡힌다. 약간 떨어졌다가 완만하고 길게 오른다.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이 이른 시간에 백운산에서 내려오다니 아마 광덕고개에서 시작했을 것. 물으니 그렇다
고 한다. 숲속 쉼터와 등산로 안내판이 나오고 그 다음 너른 헬기장이 백운산 정상이다. 여전히 사방에 키 큰 나
무숲이 둘러 아무 조망이 없다. 삼각점은 ‘갈말 27, 02 재설’이다. 헬기장은 땡볕이 가득하다. 볕에 나가면 불에
댄 듯 뜨겁다. 얼른 숲속으로 비킨다.
▶ 삼각봉(921.0m), 도마치봉(948.8m), 도마봉(883.3m), 신로봉(新路峰, 981.1m)
이따 방화선을 지날 일이 걱정이다. 이런 볕을 1시간 이상을 안고 가야 한다. 등로상태로만 따지면 신로봉까지
는 그다지 봉봉 굴곡이 없는 유람산행이 될 것이다. 등로 주변의 여름 야생화를 감상한다. 동자꽃, 여로, 짚신나
물, 마타리, 가는장구채, 쥐손이, 은꿩의다리 등등. 은꿩의다리는 어둑한 숲속이라 활짝 핀 원추화서(圓錐花序)
하얀 꽃이 마치 불꽃놀이 폭죽을 터뜨린 것 같다. 등로는 사뭇 부드럽다. 사면 풀숲 기웃거리다 보면 883.6m봉
이고, 사면 풀숲 헤집다 보니 삼각봉이다.
삼각봉 약간 벗어나 등로 옆에 조망 좋은 되똑한 바위가 있어 교대로 들른다. 어둑하던 숲속에서 느닷없이 나
타나는 가경이다. 산릉 너머의 가리산이 뭇 산들이 감싸고 있는 방싯한 연꽃 모양이다. 도마치봉 가는 길도 부
드럽다. 871.3m봉을 살짝 넘고 길게 오른다. 등로가 무료하여 사면을 누비기도 한다. 도마치봉. 준봉이다. 그 서
릉은 기암과 노송이 어울린 향적봉과 흥룡봉 넘어 백운계곡으로 간다. 김형수는 그의 책 『韓國400山行記』에서
산의 높이를 고려할 때 여기를 백운산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지도에는 그렇게 표시하고 있다.
헬기장인 도마치봉 정상을 벗어난 숲 그늘에서 점심자리 편다. 찬물에 밥 말아 먹는 것이 일거양득(밥과 물을
동시에 먹고 마시고)이다. 도마치봉 내리막에 안부 약간 못 미쳐 샘터가 있다. 파이프가 터지도록 물이 꽐꽐 흐
른다. 등로는 쭉쭉 내리다 도마봉에서 멈칫한다. 도마봉의 ┫자 갈림길 왼쪽은 도마치 지나 석룡산으로 간다.
이 도마치(道馬峙)의 지명유래에 대해서는 양설이 있다.
하나는 이곳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로 두 지역 간 왕래가 빈번하였고 그 까닭에 두 지역은
혼인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도와 도의 경계를 왕래하는 고개라는 뜻에서 도마치라는 지명이 유래되었
다 한다.(『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다른 하나는 궁예(弓裔)가 왕건(王建)의 군사에게 쫓겨 달아날 때 길이 험
해 말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하여 도마치, 도마치봉(道馬峙峯)이라 한다. 국망봉은 궁예가 잃어버린 나라를 쳐다
보며 회한에 잠겼다고 하고.
13. 은꿩의다리(Thalictrum actaefolium var. brevistylum Nakai)
꽃 모양이 밤에 불꽃놀이 폭죽을 터뜨린 것 같다.
14. 가는장구채(Silene seoulensis Nakai)
속명 실레네(Sile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수호신인 실레노스(Silenus)에서 비롯하고, 종소명 서울랜시
스(seoulensis)는 서울산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의 특산식물로 국내에만 자생한다. 한글명 장구채는 우리말 당고
재(장고재)에서 유래하지만, 당고재의 어원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북을 치는 데 쓰는 장구채’와 전혀 상
관없는 명칭이라는 것이다.(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과 김종원의 위의 책)
15. 도마봉에서 바라본 멀리 가운데는 화악산, 왼쪽은 응봉, 오른쪽은 석룡산
16. 멀리 가운데는 명지산, 왼쪽은 석룡산, 오른쪽은 국망봉
17. 왼쪽 바위 두른 산은 가리산, 그 뒤로 사향산, 명성산
18. 신로봉 가는 방화선 길, 왼쪽 멀리 흐릿한 산은 명지산
비는 이슬비로 잠시 내렸으나 우리는 1시간 이상이나 비를 맞은 셈이 되었다. 비에 젖은 풀숲을 1시간 이상
헤쳤으니.
19. 멀리 가운데는 감악산(?), 그 앞은 소요산, 그 왼쪽 앞은 왕방산(?)
20-1. 산쥐손이(Geranium dahuricum DC.)
쥐손이는 한자명 서장초(鼠掌草)에서 유래한다. 익으면 다섯으로 갈라지는 영매 자루 모양을 쥐(鼠) 손바닥(掌)
에 빗댄 이름이다.
속명 제라니움(Geranium)은 캡슐 열매(朔課)의 바깥 모양이 철새 두루미의 부리(geronos)를 닮았다는 희랍어
에서 유래한다.(김종원, 위의 책)
20-2. 산쥐손이
21. 멀리 가운데는 복주산, 그 왼쪽 뒤로 복계산과 대성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22. 앞 건너는 도마치봉, 그 왼쪽 뒤는 삼각봉, 백운산, 회목봉
도마봉에서부터 방화선 길이 시작된다. 우선 당장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 명지산과 화악산이 비에 가리
고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었다. 땡볕을 안고 가는 것을 피했다. 허리를 넘는 울창한 풀숲이다. 발로 더듬어 길
찾는다. 풀숲에 엎어질 듯 교통호를 자주 넘는다. △827.8m봉. 사연이 있는 봉우리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1년 전 여름날 더산 님과 여기를 지날 때 한북정맥에서는 매우 드물다는 덕순이를 보았다. 이번에는 이만큼만
거두고,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들만이 거두자며 손가락 걸고 맹세했다. 오늘 와서 그들의 안부를 찾았으나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기어이 비 뿌리기 시작한다. 요 근래 주말이면 비가 왔다. 이제는 비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비는 잠
시 이슬비로 내렸지만 우리는 소낙비를 혹독하게 맞는 셈이 되고 만다. △827.8m봉에서 신로봉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슬비이지만 방화선 풀숲을 흠뻑 적시기에는 충분하다. 그런 풀숲을 헤치고 가야 하니 금방 바지
와 속옷은 물론 등산양말까지 젖는다. 싸리나무 숲을 지날 때는 이슬비 모아 만든 소낙비를 맞는다. 그런 비를
1시간이 넘게 맞으며 간다.
△827.8m봉을 잠깐 내리고는 길고 긴 오르막이니 물구덩이 풀숲은 키를 넘기도 한다. 신로봉을 신로령까지 길
게 돌아 오른다. 풀숲과 잡목 숲을 헤쳐 흐릿해진 인적 쫓다가 절벽을 달달 기어오른다. 신로봉. 사각 석주의 정
상표지석이 있다. 조망이 훤히 트인다. 한북정맥 이 구간에서 국망봉 다음 가는 경점이다. 비 맞으며 비구름이
지나가기 기다렸다가 조망한다. 복주산 너머로 복계산, 대성산까지 보인다.
그만 하산한다. 하산 길이 만만치 않다. 신로봉에서 852.8m봉까지 이정표거리 1.2km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이다. 여기도 기암과 노송이 어울린 암릉 길이다. 신로봉을 내리기부터 조심스럽다. 슬랩이 젖어 되게 미끄럽
다. 짧지만 나이프 릿지를 지나기도 한다. 굵은 밧줄의 핸드레일을 꼭 붙들고 오르내린다. 852.8m봉이 첨봉이
다. 그런 만큼 남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오른쪽으로 가리산 가는 능선 길은 철조망으로 막았다.
852.8m봉이 신로봉의 관문이다. 이제 줄곧 숲속 내리막이다. 쭉쭉 내린다. 가리산에 최대한 근접했다가 멀어지
고 596.0m봉을 오르기 직전 안부에 ┫자 갈림길이 있다. 왼쪽이 이정표에 국망봉휴양림 1km고, 직진은 하산길
(장암리) 2.85km다. 다른 때라면 당연히 더 긴 직진 길을 택하겠지만 오늘 같은 염천에서는 알탕이 절실하여 왼
쪽의 광산골로 간다. 줄달음한다. 핸드레일 달린 능선이 끝나고 지계곡에 내려선다.
별일이다. 여태 그 탄탄하던 길이 사라졌다. 마른 지계곡의 너덜과 그 주변의 풀숲을 누벼도 인적이 없다. 너덜
인 계곡을 한참 내려 낙엽송 숲속 묵은 임도를 찾아낸다. 곧 광산골 주계곡이다. 우리가 알탕을 계획했던 바위
두른 소와 와폭은 휴양 온 사람들이 선점했다. 지계곡으로 들어간다. 수온은 약간 차다. 물속에 누워 살짝 열린
하늘을 바라보니 흰 구름 또한 여러 기봉이다. 한껏 개운하여 휴양림 텐트촌을 지나고 장암저수지 돌아 메타세
쿼이아 숲길을 내리면 휴양림 매표소다. 들어올 때는 등산객은 3,500원인데 나갈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부기) 휴양림 입구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이동까지 5,300원 거리다. 이동이 유령도시 같다. 한산한 거리에
땡볕만 가득하다. 이동갈비집들의 너른 주차장은 텅 비었다. 지친 우리의 입맛에 짬뽕이 동할 것 같아 중국집을
찾았는데 세 곳 모두 문을 닫았다. 순대국집도 문을 닫았다. 백반집도 문을 닫았다. 막국수집이 영업 중이다. 곱
빼기를 주문했다. 주인은 손님이 반가운지 살갑게 맞이한다. 곱빼기 추가 값은 받지 않겠다며 우리 곁에 앉아
말 부조한다. 다음에 이동에 오게 되면 이 집에 또 와야겠다.
23. 멀리 왼쪽부터 광덕산, 상해봉, 회목봉, 복주산
복주산 왼쪽 뒤로 복계산과 대성산이 보인다.
24. 가리산
용문산에 오르면 추읍산이 양평의 마스코트로 보이듯이 이곳 백운산과 신로봉의 한북정맥에서는 가리산이
이동의 마스코트로 보인다.
25. 국망봉, 뒤쪽이다.
26. 앞은 향적봉, 멀리 왼쪽은 회목봉, 오른쪽은 복주산
27. 멀리 가운데는 운악산
28. 범부채(Belamcanda chinensis (L.) DC.)
범부채는 자생하지 못하는 식물사회학적으로 터주식물사회에 나타나는 ‘마을식물’이 전형이고, 문화적 소산이
다. 범부채는 한여름에 피는 일일화(一日花)다 갈라진 여러 꽃줄기 끝에서 꽃 네댓 개가 하루에 한 송이씩 정확
히 순서대로 핀다. 범부채라는 이름은 17세기 『동의보감』에서 시작되는데 한글로 범부체(채)라 적시했다.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영명은 Leopard lily이다.
29. 범부채
30. 범부채
첫댓글 백운동에서 계곡으로만 오르는 길도 재미납니다
너무 손맛만 보시지 마시길~~~
다음에는 그렇게 가겠습니다.^^
형님이 안계셔서 꽃 이름 물어볼 데가 없었는데 궁금한게 많이 해결되네요.^^ 장마철이 아니라 아열대 같은 날씨로 느껴집니다.
한여름입니다...오늘도 바깥에는 불볓더위가 기승이네요,,,그래도 산속그늘은 시원한데,,,
혹시 이질풀 아닌가요...?
게라니움속 식물들의 우리 이름은 대개 무슨 이질풀 또는 무슨 쥐손이풀인데,
우리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식물은 1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질풀은 꽃에 줄 무늬 5줄이 가지런히 나 있는데, 산쥐손이는 줄 무늬가 복잡하다는 데
착안하였습니다.^^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