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검찰내 성폭력사건을 시작으로 미투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으나 법적 결과는 계족 미진한 가운데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판결이 얼마전 있었습니다.
'안희정 무죄' 1심판결......
그토록 외치고 절규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사법부의 판결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갈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한번 보여주었습니다.
피켓팅을 준비하는 분위기도 사뭇 달랐습니다. 권력자가 가지고 있는 위력.....그 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거대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왔을지....
릴레이 발언을 이어가며 더 많은 이들이 모여서 공감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울음을 삼키는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런 현실이 바뀌기를 염원하며 우리는 끝까지 연대하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대표 발언>
지난 2월 우리들은 오늘처럼 이곳에 서 있었습니다. 검찰 내 성폭력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무죄를 선언한 사법부에 분노를 금치 못하며 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2월 이후 여성들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미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를 행진하던 3월8일의 외침도 아직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난 8월14일 사법부의 안희정 무죄 판결은 우리들의 외침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정조와 피해자다움을 운운했습니다.
백명의 가해자가 있다면 백 명의 피해자가 존재합니다. 피해자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그 시선과 잣대는 어떤 성폭력도 법에 적용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피해자에게만 수많은 잣대를 들이대는 사법부, 과연 그들은 가해자에게는 어떤 질문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의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하기를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침묵을 강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허용해 줄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자를 보좌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성적침해, 성희롱, 성폭력을 겪더라도 침묵하라는 언질이 될 것입니다.
미투가 줄을 잇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다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법부의 이런 판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외면하는 사법부가, 정조와 피해자다움을 운운하는 사법부가 2차가해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분노하며 연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외칠 것입니다. 사법부는 당장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를 멈추고 더 이상의 고통을 주지 말라고, 가해자의 편에서 잣대를 휘두르지 말라고. 우리 사회에 정의와 변화,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소리치고 분노하며 만들어 갈 것입니다.
가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세상을 위해,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지난 토요일 서울 서대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정혜선 변호사가 대독한 김지은씨의 편지의 일부분을 낭독하고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입니다.
살아내겠다고 했지만 살아내기가 너무나 힘겹습니다.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 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에서 물리적 폭력과 성적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저는 그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거절을 분명히 표시했습니다.
저는 그날 직장에서 짤리지 않으려고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 일을 망치지 않으려고 티내지 않으려고 업무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의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세 분의 판사님, 제 목소리 들으셨습니까?
당신들이 물은 질문에 답한 제 답변 들으셨습니까?
왜 제게는 물으시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십니까?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으십니까?
위력은 있지만 위력은 아니다.
거절은 했지만, 유죄는 아니다.
합의하지 않은 관계이나, 강간은 아니다.
원치 않은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력은 아니다.
그때는 미안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로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