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천로역정의 '인내'가 생각나서 같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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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에서 해석자가 크리스천의 손을 잡고 이번에는 작은 방으로 안내하는 것을 보았다.
방 안에는 두 아이가 각자 자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형의 이름은 정욕이고, 동생의 이름은 인내였다.
정욕은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인내는 더없이 차분했다.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크리스천이 물었다.
크리스천 : 정욕이란 아이가 불만에 가득 차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석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석자 : 저 아이들의 아버지가 내년에 가장 좋은 선물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지요.
하지만 정욕이란 녀석은 당장 달라고 떼를 쓰고 있고, 인내는 기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정욕에게 다가와 그 발밑에 보물이 가득 든 자루를 쏟았다.
그러자 정욕은 냉큼 보물을 움켜쥐고 인내를 향해 자랑하며 조롱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 있어 받은 것을 흥청망청 다 써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다 해진 천 조각뿐인 인생이 되었다.
크리스천 : 이 방 안의 두 아이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해석자 : 이 두 아이는 비유입니다.
정욕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비유하고, 인내는 다가올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비유하지요.
정욕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좋아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모든 걸 누리려고 하는 자들이지요.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와 같지요.
그들은 지금 당장 좋은 것을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입니다.
도무지 내년까지, 곧 다음 세상까지 기다릴 줄 모르지요.
다가올 세상에서 더 좋은 것을 얻는다는 증언이 넘쳐나는데도 '숲속의 두 마리 새보다 당장 내 손안에 있는 한 마리 새가
낫다'라고 말하는 자들이랍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정욕이란 녀석은 금세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누더기 천 조각뿐인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이처럼 세상의 끝에서 모두 그렇게 자멸하고 말 겁니다.
크리스천 : 그렇다면 인내야말로 지혜로운 자로군요.
정욕이 누더기만 만지작거릴 때 인내는 가장 좋은 것을 누릴 테니까요.
해석자 :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내세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정욕은 좋은것을 먼저 가졌다고 인내를 비웃었지만, 마지막에 진정으로 웃는 자는 인내가 될 것입니다.
먼저 좋은 것을 차지한 사람은 결국 나중에 올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차지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자리를 내줄 필요가 없지요.
마지막의 뒤에 올 사람은 없으니 말입니다.
제 몫을 먼저 챙긴 사람은 연기처럼 사라질 일시적인 즐거움을 누릴 뿐이지만, 자신의 몫을 마지막까지 인내로 기다린
사람은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에 관한 이런 말이 있는 것이지요.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눅16:25)
크리스천 : 현재의 것을 탐하기보다 다가올 것을 인내로 기다려야 하는군요.
해석자 : 바로 그렇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후4:18)
하지만 현재의 것과 우리의 정욕은 너무도 가깝고, 장래의 것과 우리의 정욕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현재의 것에 이끌리고 장래의 것을 멀리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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