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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고슬(膠柱鼓瑟)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膠 : 아교 교(肉/11)
柱 : 기둥 주(木/5)
鼓 : 북 고(鼓/0)
瑟 : 큰 거문고 슬(玉/9)
(유의어)
교슬(膠瑟)
비파(琵琶)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阿膠)로 붙여 놓으면 음조(音調)를 바꾸지 못하여 한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만약에 아교풀로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붙여 놓고 연주한다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기러기발은 단단한 나무로 기러기의 발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줄의 밑에 괴고, 이것을 위아래로 움직여 줄의 소리를 고르는 것이다.
이것을 편하다고 발을 아교로 고정시켜 놓고(膠柱) 거문고를 연주하면(鼓瑟) 음조를 바꿀 수 없다. 여기에서 고지식하여 조금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됐다. 한 번 성공한 것에 취해서 더 이상 변화와 응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더욱이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구제불능이 된다.
고사성어의 보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주인공이 나오는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 열전에서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년~221년의 일이다.
조(趙)나라에 조사(趙奢)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조괄(趙括)에게 병법을 가르쳐 제법 통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사가 걸린 전쟁에서 이론만으로 성패가 갈리지 않는 것을 조사는 잘 알았다. 그가 임종할 때 부인에게 아들이 장수가 되면 화가 닥칠 수 있으므로 시키지 않도록 유언했다.
어느 해 진(秦)나라가 침공하면서 이것을 알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염파장군은 늙어 전쟁에 못 나올 것이고 다만 조괄이 장군이 되면 두렵다고 했다. 여기에 넘어간 조나라 왕이 조괄을 장수로 임명하자 그 어머니가 취소해 달라고 사정했다.
현명한 인상여도 '거문고에 아교를 붙여 타는 격(若膠柱而鼓瑟耳)' 이라며 반대했지만 묵살 당했다. 어떻게 됐을까. 모두가 예상한대로 조나라 대군은 참패하고 조괄도 전사하고 말았다.
노자(老子)의 제자인 문자(文子)가 쓴 '문자'에도 '어느 한 시기의 낡은 규정을 기준으로 후대의 생활방식을 비판한다면 거문고에 아교를 붙여 연주하는 격'이라며 노자의 말이라고 전하고 있다.
執一世之法籍(집일세지법적)
以非傳代之俗(이비전대지속)
譬猶膠柱調瑟(비유교주조슬)
여기에는 鼓(고)가 調(조)로 바뀐 교주조슬(膠柱調瑟)이다.
교주고슬(膠柱鼓瑟)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규칙만 고수하여 융통성이 없는 꼭 막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주(柱)는 나무 목(木)과 주인 주(主)를 합친 글자로서, 집을 버티게 하는 데 주(主)가 되는 나무라는 데서 기둥을 뜻한다. 주(柱)란 현악기에서 앞뒤로 움직여 음(音)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현악기를 연주하려면 그때 그때 주(柱)를 앞뒤로 옮겨 줄을 고르고 연주해야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기러기발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안족(雁足)이라고도 한다.
고(鼓)는 오른 손에 채를 들고 장식이 달린 악기를 친다는 데서 북의 뜻이 되었다. 보통은 북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타다, 연주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슬(瑟)은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를 말한다. 현악기의 모양을 본뜬 玨(각)과 음(音)을 나타내는 必(필, 슬)로 이루어졌다. 큰 거문고의 뜻으로 쓰인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줄을 가락에 맞추어 연주하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음률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맞추었다 해서 그 기러기발을 아예 아교풀로 꽉 붙여 버린다면 연주를 계속할 수 없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 아주 고집불통이고 고지식해서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 번 성공한 것에 대해 맹신을 하면서 더 이상 변화와 응용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더욱이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상황에 처할 경우에는 정말 구제불능일 것이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은 교슬(膠瑟), 교주(膠柱), 교주조슬(膠柱調瑟)이라고도 한다. 고사의 유래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등 여러 고전에서 출전(出典)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사기의 염파 인상여열전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때 중신의 식객이었던 인상여(藺相如)는 중국 최고의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진(秦)나라와의 분쟁에서 무사하게 지켜냄으로써 완벽(完璧)이라는 고사를 만들어 내고 재상까지 오른 인물이다.
조(趙)나라의 장수 염파(廉頗)는 인상여와의 사이에 고사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생겨 난 진정한 친구간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 조괄(趙括)이라는 인물이 있다. 조괄은 대장수(大將帥)였던 아버지 조사(趙奢)의 후광으로 아버지의 병서(兵書)를 맹목적으로 습득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조(趙)의 다음 대(代) 임금 효성왕(孝成王)때의 일이다. 당시 진(秦)나라의 대군이 조(趙)나라를 공격해 왔는데, 왕은 염파를 장수로 하여 진(秦)나라와 대전하게 했다. 강한 진군을 막기 위해 염파가 방어 계책으로 응전을 하지 않자, 진(秦)나라는 이간책(離間策)을 써서 조(趙)나라 왕을 속이게 된다. "진나라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이 장수가 되어 오는 것이다."
효성왕(孝成王)은 이 말을 믿고 염파와 조괄을 교체하려 했는데, 이때 인상여가 왕에게 간언을 했다. "왕께서는 명성만 듣고 조괄을 쓰십니다. 조괄은 거문고의 기둥에 아교풀을 칠해서 고정시켜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아버지가 남긴 글을 잘 읽었을 뿐이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조(趙)나라 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로 장수를 교체했고, 조괄은 고지식하게 병서(兵書)대로 만 대전하다가 진(秦)나라의 교란 전술에 말려 대패하니, 자신도 죽고 40-50만명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조(趙)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교주고슬격인 조괄의 대처는 고지식함이 보여주는 폐단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조(趙)나라 효성왕 역시 신하들의 간언을 귀 담아 듣지 못하고 조급하게 대처한 것도 또 다른 교주고슬격 행위이다.
이때부터 교주고슬은 기둥을 풀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규칙에 얽매여 융통성이 없는 고집불통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윗사람이나 상사의 교주고슬격 행동은 꼴불견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학벌이나 지식을 드러내면서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다 올바르게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다시 수시처중(隨時處中)이 생각합시다.
규칙에 얽매여 융통성이 없는 탁상행정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실제를 간과한 채 이론에 얽매여 있는 정치관료들도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켜 왔다. 이론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는 융통성 있고 정도가 살아 숨쉬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교주고슬(膠柱鼓瑟)과 인상여(藺相如)
대왕께서 명성만 듣고 그를 기용하시는 것은 마치 거문고의 기러기발(雁足)을 아교로 단단히 붙여놓고 거문고를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趙括)은 부친이 남긴 병서나 암송하는 수준입니다. 변화에 대처할 줄을 모릅니다.
전국(戰國)시대 말기, 조(趙)나라 재상 인상여(藺相如)는 조괄이라는 젊은 장수를 중요 전투의 총사령관으로 기용해선 안 된다고 왕에게 조언한다. 조괄이 융통성을 발휘하며 전투를 지휘하는 그런 능력은 갖추지 못한 장수였기 때문이다. 조나라 효성(孝成) 왕은 이 조언을 무시했다.
결국 장평(長平)대전에서 조나라는 대패한다. 병사 약 45만 명이 생매장을 당하는 끔찍한 피해를 보았다. 조괄도 전사했다. 적국 진(秦)나라 첩자의 말에 현혹된 왕이 장평에서 잘 방어하고 있는 염파(廉頗) 장군을 괜히 불러들이고 조괄을 그 자리에 내보낸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이다. 앞의 두 글자 '교주(膠柱)'는 '아교로 고정시키다'란 뜻이다. '고슬(鼓瑟)'은 '거문고를 연주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을 결합하면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고정하고서 연주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거문고의 기러기발은 현들을 밑에서 지탱하는 부분이다. 날씨에 따라 줄이 팽팽해지거나 느슨해지는 것에 신축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장치다. 음의 피치(pitch) 조정을 원할 때, 이 기러기발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은 사마천의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서 유래했다.
인상여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탁월한 임기응변과 대담성으로 조나라 혜문(惠文)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일약 재상으로 발탁됐다. 인상여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 전국칠웅(戰國七雄) 사이엔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국력은 진나라가 가장 강했다. 조나라도 약소국은 아니었으나 진나라의 위협과 침입에 시달렸다. 하지만 인상여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동안은 조나라 침공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것이 진나라의 기본 방침이었다. 이 대목에서 인상여의 존재감이 잘 드러난다.
진나라가 인상여를 처음부터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옥(玉)에도 여러 등급이 있다. 당시 중국에선 화씨벽(和氏璧)을 으뜸으로 쳤다. 진(秦)나라 소양(昭襄)왕이 조나라에 이 옥 1개와 성(城) 15개를 교환하고 싶다고 거짓 제안했다가 조나라 사신 인상여에게 자신의 궁정에서 크게 망신을 당한 일화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상여의 놀라운 기지와 대담성이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졌고, 진나라도 그를 각별히 주의하기 시작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사자성어의 유래가 된 인상여와 염파 장군 사이의 우정 일화도 꽤 유명하다. 염파 장군은 유능한 장수였다. 하지만 천한 출신에 ‘입과 혀’만으로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인상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상여를 마주치면 꼭 욕을 보이고 말겠다." 이 말을 그는 입에 달고 다녔다. 이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조회가 있는 날은 병을 핑계로 피했다. 혹시 길에서 마주치면 급히 수레를 돌려 숨곤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인상여의 사인(舍人)들은 창피하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면전에서 불평을 터트린다. 인상여는 그들에게 해명했다. "나는 적국 진나라 왕의 궁전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 잘못을 꾸짖은 사람이오.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을 겁내겠소. 저토록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염파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오.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고 사적인 원한은 그다음이라 내가 미리 피하는 것이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어 상체를 드러낸 채 가시나무 회초리를 한 짐 지고 인상여를 찾아와 깊이 사죄했다. 이날부터 두 사람은 ‘목을 내놓을 정도의 우정’을 뜻하는 '문경지교'를 맺었다.
바야흐로 고학력 시대다. 지혜와 지식은 동일하지 않다. 특히 성찰에서 지혜는 지식과 본래 무관하다. '아둔하다', '어둡다', '고지식하다' 등 지혜의 반대말은 많다. 일찌감치 인상여가 경고한 교주고슬(膠柱鼓瑟) 이 네 글자가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 膠(아교 교, 어긋날 호, 어지러운 모양 뇨/요)는 형성문자로 胶(교)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기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 翏(료, 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膠(교)는 ①아교, 아교풀(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 갖풀(아교풀) ②학교(學校)의 이름 ③달라붙다 ④아교풀칠하다 ⑤아교로 붙다 ⑥굳다, 단단하다 ⑦섞이다, 뒤섞이다 ⑧좌초(坐礁)하다(배가 암초에 얹히다) ⑨거리끼다, 구애(拘礙)되다 ⑩집착하다 ⑪궤변으로 속이다 ⑫머무르다, 정체하다 ⑬움직이다 그리고 ⓐ어긋나다, 어그러지다(호) 그리고 ㉠어지러워지다, 혼란하다(뇨) ㉡어지러운 모양(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단단히 달라붙음을 교착(膠着), 친한 친구를 교우(膠友), 단단히 붙음 또는 붙임을 교접(膠接), 사귀는 사이가 아주 친밀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교칠(膠漆), 전례에 얽매임을 교례(膠例), 풀을 쑤려고 마련한 가루를 교말(膠末), 풀을 쑤려고 마련한 쌀을 교미(膠米), 판자를 갖풀로 붙여서 만든 배를 교주(膠舟), 아교로 붙인 것처럼 굳음을 교고(膠固), 아교의 성분을 교분(膠分), 물질의 끈끈한 성질을 교질(膠質), 아교처럼 끈기가 있는 상태를 교상(膠狀), 아교가 묽음 또는 아교로 붙임을 교점(膠粘), 아교같이 진득진득한 약제를 교제(膠劑),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굳힌 것을 아교(阿膠), 품질이 썩 좋은 투명한 아교를 명교(明膠), 소의 가죽을 진하게 고아서 만든 아교를 우교(牛膠), 빛깔이 흰 갖풀을 백교(白膠), 아교와 옻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매우 친밀한 사귐을 이르는 교칠지교(膠漆之交), 또는 교칠지심(膠漆之心),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으면 음조를 바꾸지 못하여 한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여 융통성 없음을 교주고슬(膠柱鼓瑟),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의 굳음이라는 뜻으로 대단히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뇌진교칠(雷陳膠漆) 등에 쓰인다.
▶️ 柱(기둥 주/버틸 주)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중심의 뜻을 가지는 主(주)로 이루어졌다. 중심이 되어 떠받치는 나무의 뜻이다. 그래서 柱(주)는 (1)주식(柱式) (2)주권(株券) 등의 뜻으로 ①기둥 ②기러기발(거문고, 가야금, 아쟁 따위의 줄을 고르는 기구) ③줄기 ④풀의 이름, 자운영(紫雲英) ⑤버티다, 괴다 ⑥막다 ⑦비방하다, 헐뜯다 ⑧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순종(順從)하지 않다 ⑨높이 솟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둥 영(楹)이다. 용례로는 기둥 아래에 받치어 놓은 돌을 주초(柱礎), 기둥과 주춧돌로 국가의 중임을 맡은 사람을 주석(柱石), 기둥 밑에 신 모양으로 덧받친 물건을 주각(柱脚), 기둥의 한가운데에 내리 그은 먹줄을 주반(柱半), 기둥의 기본 부분을 이루는 몸체 기둥몸을 주신(柱身), 기둥의 중심을 주심(柱心), 열을 지어 세는 기둥 또는 그 열을 주열(柱列), 기둥 머리를 장식하기 위하여 그린 단청을 주의(柱衣), 기둥같이 생긴 모양을 주형(柱形), 여러 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운 복도를 주랑(柱廊), 기둥과 대들보를 주량(柱梁), 기둥같이 생긴 모양을 주상(柱狀), 무엇을 버티는 기둥으로 정신적이나 사상적으로 든든히 받쳐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지주(支柱), 전깃줄이나 전봇줄 따위를 늘여 매려고 세운 기둥을 전주(電柱), 서리가 땅바닥이나 풀포기 따위에 엉기어 삐죽삐죽하게 성에처럼 된 모양을 상주(霜柱), 마음의 줏대를 심주(心柱), 네모진 기둥을 각주(角柱), 돌로 만든 기둥을 석주(石柱), 줄지어 늘어선 기둥을 열주(列柱), 여러 개의 기둥 중에 특히 높은 기둥을 고주(高柱), 문설주의 준말로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을 문주(門柱),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는 일을 입주(立柱), 비껴 세우는 기둥을 사주(斜柱), 겉에 드러나지 아니하고 속에 든 기둥을 은주(隱柱), 악기를 매다는 틀의 양쪽에 세우는 기둥을 협주(頰柱), 나라에 아주 중요한 신하를 주석지신(柱石之臣), 내 마음의 기둥 곧 신념을 굳게 가지는 일을 고아심주(固我心柱), 기둥 하나로 지탱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을 일주난지(一柱難支),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으면 음조를 바꾸지 못하여 한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을 교주고슬(膠柱鼓瑟) 등에 쓰인다.
▶️ 鼓(북 고)는 ❶회의문자로 支(지; 대나무가지)와 壴(주)의 합자(合字)이다. 대나무가지로 북을 친다는 뜻이 후에 직접 북을 뜻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鼓자는 '북'이나 '북소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鼓자는 壴(악기이름 주)자와 支(가를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壴자는 장식이 달린 북을 받침대에 올려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악기 이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북을 그린 壴자에 支자가 더해진 鼓자는 북을 두드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전시에는 북이 아군의 사기를 높이거나 명령을 내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래서 鼓자는 '북'이나 '격려하다', '악기'와 같은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鼓(고)는 ①북(타악기의 하나) ②북소리 ③맥박(脈搏), 심장의 고동(鼓動) ④시보(時報), 경점(更點: 북이나 징을 쳐서 알려 주던 시간) ⑤되(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 또는 부피의 단위) ⑥무게의 단위(=480근) ⑦치다, 두드리다 ⑧휘두르다 ⑨악기를 타다, 연주하다 ⑩격려하다, 북돋우다 ⑪부추기다, 선동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것을 고취(鼓吹), 북을 쳐 춤을 추게함을 고무(鼓舞), 북이나 장구 따위를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심장의 혈액 순환에 따르는 울림을 고동(鼓動), 북과 피리를 고적(鼓笛), 군중에서 호령할 때 쓰던 북과 나팔을 고각(鼓角), 북을 실은 수레를 고거(鼓車), 북을 치며 나아감을 고행(鼓行), 더욱 힘을 내도록 용기를 북돋움을 고려(鼓勵), 생식기가 불완전한 남자를 고자(鼓子), 생식기가 불완전한 여자를 고녀(鼓女), 무덤 앞의 상석을 괴는 북 모양의 돌을 고석(鼓石), 북을 단 누각을 고루(鼓樓), 북을 치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큰 소리를 지름을 고함(鼓喊), 북을 두드림을 격고(擊鼓), 매달아 놓은 북을 현고(懸鼓), 북을 쳐서 울림을 명고(鳴鼓), 작은 북을 소고(小鼓), 큰 북을 대고(大鼓), 절에서 밥을 할 때 여러 사람의 쌀을 모으려고 치는 북을 미고(米鼓), 한 쪽만 가죽을 메우고 모서리로 돌아가며 잔 구슬을 단 그다지 크지 않은 북을 반고(半鼓),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친다는 뜻으로 배불리 먹고 흙덩이를 치는 놀이를 한다 즉 매우 살기 좋은 시절을 이르는 말을 고복격양(鼓腹擊壤), 술 그릇을 두드리는 아픔이라는 뜻으로 아내 상을 당함 또는 상처한 슬픔을 이르는 말을 고분지통(鼓盆之痛), 아내의 죽음을 한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고분지탄(鼓盆之歎), 격려하여 기세를 북돋우어 줌을 일컫는 말을 고무격려(鼓舞激勵), 입심이 좋아 마구 지껄여 댐을 이르는 말을 고설요순(鼓舌搖脣), 군중에서 북을 치면 앞으로 나아가고 징을 치면 뒤로 물러남이라는 뜻으로 초보적인 군사 훈련을 일컫는 말을 고진금퇴(鼓進金退) 등에 쓰인다.
▶️ 瑟(큰 거문고 슬)은 형성문자로 현악기(絃樂器)의 모양을 본뜬 玨(각)과 음(音)을 나타내는 必(필, 슬)로 이루어졌다. 큰 거문고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瑟(슬)은 ①큰 거문고(우리나라 현악기의 하나) ②비파(琵琶: 악기의 하나) ③엄숙하다 ④곱다 ⑤쓸쓸하다 ⑥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바람 부는 소리가 우수수하여 쓸쓸하고 적막함을 슬슬(瑟瑟), 맑은 거문고 소리를 청슬(淸瑟), 거문고와 비파로 부부 사이의 정을 금슬(琴瑟),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소리라는 뜻으로 부부 사이의 다정하고 화목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을 금슬지락(琴瑟之樂),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을 금슬상화(琴瑟相和),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으면 음조를 바꾸지 못하여 한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다는 말을 교주고슬(膠柱鼓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