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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415n07831?mid=s1000
청춘을 바쳐 선수 생활한 팀에서 감독까지 한다는 건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을 이룬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성남 신태용 감독이 더욱 빛난다. 한 팀의 레전드로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지난 시즌 아시아를 제패하며 감독으로서도 위업을 달성한 그는 성남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이다. 풍족했던 과거에 비해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이번 시즌 또 다른 도전에 나선 ‘난 놈’ 성남 신태용 감독과의 유쾌하고 진솔한 인터뷰를 소개한다.
"수비축구? 한 라운드에서 골 좀 안 들어갔다고 너무 성급한거 아닌가"
"조동건 골 넣고 안길때 내가 운 건, 누가 내 코를 때려서ㅎㅎ"
"사샤 유럽행에 사인해준 것. 희생한 선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서"
"지난 시즌 잘 한 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리그 우승해도 마찬가지였을 것"
"성남, 부자구단 때 모두 것 경험했기에 현재 상황 속이 쓰리다"
"올시즌 후 거취? 나를 이만큼 키워준 곳이 바로 성남. 지금은 50대 50"
"선수로 성남을 떠날 때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감독 제의하자 냉큼 받아들였다"
"이동국 김상식 김영철 내가 떠나보냈다고? 절대 아니다"
"박종환 감독 단적인 모습만 보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남과 20년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통일교를 믿어보라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
"패션 리더? 이것도 팬서비스. 다른 감독 못 따라오게 청바지로 승부할 생각"
신태용 감독은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진=BITPHOTO)
▶반갑다. 요새 팀 성적이 그리 좋지 않는데 분위기는 어떤가.
성적은 별로지만 1위하고 있는 분위기다. 분위기는 언제나 좋다.
▶A매치 휴식기 동안 강원도 고성으로 일주일 간의 전지훈련을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성과가 있었나.
공격과 수비의 간격 유지, 압박에 초점을 맞춰 훈련했다. 상대 선수들이 우리 수비 지역에 들어오기 전부터 편한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 부상 선수가 많아 전력의 60~70% 밖에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전지훈련 다녀와서 1승 2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으니 성과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전지훈련이었다.
▶라돈치치, 남궁웅, 송호영 등 부상 선수가 너무 많다. 아마 팬들은 이 선수들이 빨리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성남의 100% 전력을 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부상 선수가 이 세 명이면 걱정도 안 한다.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장 까를로스도 부상이고 윤영선도 골절로 6주 진단을 받았다. 송호영도 6주 부상이다. 화끈한 나의 제자들은 뭐 다치기만 했다하면 6주는 기본으로 끊는다. 라돈치치는 무려 6개월짜리 부상이다.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써야할 선수 5명이 나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아마 남궁웅과 송호영, 윤영선 등은 5월이면 뛸 수 있을 것 같고 라돈치치는 5월경 훈련에 합류해 6월이면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원정 5연전을 치러야 한다. 가뜩이나 상황도 좋지 않은데 부담감이 상당할 것 같다.
제주와의 홈 경기가 예정돼 있었는데 제주가 AFC 챔피언스리그 일정 때문에 자신들의 홈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정을 바꿔줬다. 반대로 경남과의 홈 경기는 우리 홈 경기장 잔디 보수 문제로 우리가 원정 경기로 치르고 싶다고 해 일정 변경을 허락받았다. 그러다보니 졸지에 원정 5연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부담 가는 건 홈이나 원정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지난 시즌처럼 중간에 AFC 챔피언스리그가 껴 있지 않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몇몇 팀은 종이컵, 아니 리그컵을 포기하고 2군에게 대거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리그컵에도 주전 선수들을 꾸준히 기용하고 있다.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시즌에 비해 베스트11 중 6~7명이 바뀌었기 때문에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또한 동계훈련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베스트11로 발을 맞춰본 적이 없다. 경기를 치르면서 조직력을 맞춰가야 하는 상황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치르는 경기 일정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만약 선발 명단 전체를 2군으로 꾸렸다고 치자. 그런데 냉정히 이 선수들 중 주전급으로 도약해 베스트11에 들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이 선수들로 리그컵에 임하면 선수들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지만 팀 전체의 장단점은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리그컵에도 전력을 다하는 건 성적을 떠나 조직력을 다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성남은 지난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신태용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 아시아 정상에 선 인물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라운드 K리그에서는 8경기 중 네 경기가 0-0이었다. 이 결과를 놓고 일부에서는 K리그가 수비축구로 돌아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한 라운드에서 골 좀 안 들어갔다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데 결과가 아닌 내용을 보고 이야기 해보자. 우리도 지난 라운드에서 전남을 만나 0-0으로 비겼지만 골대를 두 번이나 맞췄다. 공격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0-0이라고 무조건 수비축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솔직히 말해 무승부로 승점 1점 따나 져서 승점 못 따나 못 이기면 다 똑같다. ‘못 먹어도 고’ 심정으로 승점 3점 노리는 게 대부분 감독들의 똑같은 자세다. 설령 수비축구를 하는 팀이 있다면 그걸 깨는 게 상대팀 감독의 몫이기도 하다.
▶K리그에서 다시 스리백 전술을 쓰는 팀들이 늘면서 수비축구가 성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스리백은 정말 쓰레기통에 쳐박아야 할 낡은 전술인가.
자기 팀이 가진 자원과 처한 상황에 따라 스리백이든 포백이든 들고 나오는 거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옆에서 왈가왈부하는 건 웃긴 일이다. 우리 팀은 스리백 쓰고 싶어도 수비 자원이 부족해 포백 쓴다. 반대로 훌륭한 센터백 자원이 많은 팀은 당연히 포백 버리고 스리백으로 가는 게 맞다. 그건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쓰는 전술이지 수비축구 하려고 들고 나오는 전술이 아니다. 스리백 서더라도 양쪽 윙백들이 공격적이면 충분히 공격적인 전술이다. 양쪽 윙백이 공격 가담하면 공격수가 7명이다. 윙백이 수비로 내려오면 단순히 수비 숫자가 5명이 된다고 해서 그게 수비적인 전술인가.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크라머 감독 밑에서 배운 게 3-5-2였는데 당시 나와 나승화가 양쪽 윙백이었다. 그런데 이때 우리 전술은 어떤 포백보다 공격적이었다. 스리백이냐 포백이냐로 공격축구와 수비축구를 나누는 건 의미가 없다.
▶부산전에서 조동건이 골을 넣은 뒤 당신에게 달려가 안기자 당신이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도 감동적이었나. 당신이란 남자 이리도 약한 남자인가.
경기 전 조동건에게 한 소리 했다. “네가 많은 기회를 놓쳐 나머지 10명의 선수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골 넣는 포지션에서 너는 제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면 나도 너를 책임져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이 바로 경기에 나서 골을 넣더니 나에게 달려와 와락 안기는 것 아닌가. 자기도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운 건 아니다. 조동건이 달려와 너무 세게 안긴 나머지 뒤로 물러서려는데 마침 뒤에 카메라가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또 뒤에 달려오던 녀석이 내 코를 때렸다. 아파서 울었다. 의도적으로 나를 때린 거 같은데 어떤 녀석인지 모르겠다.
▶왼쪽 측면 수비가 주포지션인 홍철이 최근 보직을 변경해 공격으로 나섰다. 어떤 의도인가.
의도는 무슨…. 선수가 없어서 그런 거다. 왼쪽 날개로 뛸 수 있는 송호영과 남궁웅, 까를로스가 모두 부상이라 임시로 홍철을 썼다. 홍철은 수비나 공격이나 내가 원하는 위치에 데려다 놓으면 자기 몫은 충분히 한다. 사람 욕심이야 끝도 없지만 이 상황에서 홍철이 공격적으로 경기를 잘 풀어줬다. (전화기를 보며)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이야기하자.
▶(잠시 후) 아내인 것 같은데 ‘우리 자기’라고 전화기에 뜨는 걸 보니 깨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내가 총 맞았나. 와이프가 이렇게 저장해 놓은 거다. 내가 밖에서 딴 짓 못하게 말이다.
▶솔로인 나로서는 부럽다. 그런데 쭉 오른쪽 측면에서 활약하던 김성환이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내가 보기에는 오른쪽 측면에 더 적격인 선수 같다.
본인이 중앙에서 플레이하는 게 더 편하다고 하고 나 역시 김성환의 의견에 동의한다. 또한 오른쪽 측면은 신인인 박진포가 잘 메워주고 있다. 선수와 많은 대화를 통해 김성환은 중앙에 서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성남은 클럽월드컵에서 인터밀란과 맞붙었다. 비록 0-3으로 완패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얻었다. (사진=연합뉴스)
▶새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에벨톤과 까를로스도 궁금하다. 어떤 선수인지 소개 좀 해 달라.
에벨톤은 3~4년 전만 하더라도 프랑스 파리 생제르망에서 200만 유로라는 거금을 받는 선수였지만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브라질로 복귀했다. 가능성을 보고 데려왔다. 까를로스는 브라질 U-20 대표까지 지내고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뒤 그리스에서도 꽤 하던 선수였다. 11월에 리그를 마치고 3~4개월 쉬면서 자기 나름대로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해서 운동을 했다는데 트레이너 세 명 고용해 도통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는 몸 상태이긴하다. 수영장에서 수영만 했나보다.
▶에벨톤은 후반 교체 투입된 모습을 지켜봤지만 까를로스는 아직 경기에 나선 적이 없다. 몸 상태가 별로인가.
욕심이 나는 선수라서 훈련 강도를 높였더니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 회복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슈팅이나 킥 능력이 상당히 좋은 선수인데 문제는 얼마나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냐다. 사실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당신은 외국인 선수 잘 뽑기로 유명하다. 몰리나와 사샤는 K리그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파브리시오 역시 수준급이었다. 이번에 뽑은 선수들도 처음 봤을 때 딱 감이 왔나.
사실 내가 뽑으려던 선수들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지오바니 영입 실패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에 밝혔는데 지오바니 말고도 브라질에서 직접 지켜보니 훌륭한 선수들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몸값에도 이견이 있었고 자꾸 그쪽에서 협상 기간을 늦추는 바람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에벨톤과 까를로스는 5~6순위 정도 되는 선수들이었다. 데려오면서도 그리 흡족하지는 않았다. 몰리나를 처음 데려올 때만큼 만족하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새로 온 외국인 선수를 몰리나와 비교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몰리나보다 잘하나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물론 몰리나가 성남에 입단하자마자 워낙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타일이 달라 비교할 대상은 아닌 것 같다. 몰리나는 몰리나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이 선수들 역시 자신들만의 장점이 있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시즌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연이은 부상으로 고민에 빠졌다. (사진=BITPHOTO)
▶당신은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나. 나도 좀 배워서 FM에 활용해 보고 싶다.
결혼 여부를 따진다. 특히 브라질 선수들은 워낙 먼 타국에서 생활해야 해 문화적인 차이가 크고 적응도 쉽지 않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 있으면 많이 의지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에 적응이 빠르다. 이번에 데려온 에벨톤은 미혼이고 까를로스는 결혼을 했지만 아내가 현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많이 외로울 것이다. 특히 까를로스는 4개월 단기 계약이기 때문에 7월까지 지켜보고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 이 중요한 시기에 부상으로 쉬고 있으니 답답하다.
▶FM에서는 결혼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아쉽다. 그런데 역시 가장 궁금한 건 사샤의 유럽 진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사샤의 유럽 진출을 도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축 수비수를 보내준다니 참 대인배다. 나 같으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졌을 것이다.
사샤가 먼저 나를 찾아와 “유럽에서 좋은 제안이 들어오면 보내달라”고 하더라. 사샤의 마지막 소원이 유럽에서 축구 한 번 하고 은퇴하는 거란다. 소원인데 들어줘야지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사샤와 약속을 했다. “유럽 팀에서 제안이 오면 보내주겠다”고 문서를 만들고 서명까지 했다. 브라질에 가 느낀 건데 그쪽 사람들은 “알았다”고 해놓고 다음 날이 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쌩’깐다. 사람은 신뢰가 생명 아닌가. 그래서 아예 사샤와의 약속을 문서화했다. 팀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우리 팀을 위해 희생한 선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성남은 과거 엄청난 부자 구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뭐 거, 거ㅈ….
거지 구단이라고 하라. 옛날에는 부자구단. 지금은 거지구단.
▶솔직히 표현해줘서 고맙다. 구단 지원이 과거에 비해 무척 많이 줄었다. 감독으로서 힘겨울 것 같다.
구단 상황에 맞게끔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 지원 문제는 내가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감독은 이 상황을 인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있는 선수들 잘 이끌어서 끌고 나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쯤 되면 오히려 지난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후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잘했어야 했는데 너무 잘해서 이런 상황이 온 것 아닌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한 없이 기뻤다. 사실 지난 시즌 멤버에 두세 명만 보강이 된다면 올 시즌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게 아쉽긴 하다. 그런데 올 시즌 구단 예산이 이미 지난해 4월 다 확정됐다. 아마 지난 시즌 K리그에서 우승했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수 시절 성남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신태용과 김도훈은 이제 이 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신은 이 구단에서 쭉 선수 생활을 해오며 부자 구단이 뭔지 제대로 경험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몸소 느껴지나.
당연히 느껴진다. 수당에서 아주 팍팍 느껴진다. 또한 예전에는 우리가 우승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외국인 선수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최고 수준으로 영입했다. 국내 선수들 역시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이적료가 얼마가 됐건 상관하지 않고 데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이적료가 10원만 붙어도 데려오기가 버겁다. 난 과거에 주장을 맡고 이 팀에서 6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모든 걸 다 지켜본 사람인데 지금 얼마나 속이 쓰리겠나.
▶처음 성남 구단 감독직을 맡았을 때 엄청난 기대감을 가졌을 것 같다. 실제 축구에서 FM을 하는 기분이랄까.
꿈과 희망을 품고 왔다. 원하는 선수를 모두 사서 최강 팀을 구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은 단 1%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시즌이 끝나고 여러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걸로 안다. 당신이 성남을 떠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50대 50이라 생각한다. 나를 이만큼 키워준 곳이 바로 성남이다. 그런데 언젠가는 더 큰 꿈을 갖고 비상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일단은 계약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고 거취는 그때 가서 결정하고 싶다. 속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지금은 50대 50이라 말하고 싶다.
▶선수 시절 막판 구단이 당신을 내쳤었다. 하지만 당신은 성남 구단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감독이 됐다. 나 같으면 더러워서라도 감독 제의를 거절했을 것 같다. 언짢지는 않았나.
언짢을 게 어디 있나. 백수였는데 냉큼 받아들여야지. 그것도 코치도 아닌 감독이라는 데 말이다. 나를 지도자로서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분 좋았다. 선수로 성남을 떠날 때의 상황은 지금 말하기 참 곤란하다. 아마 10년이 지나면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젠가는 돌아와서 감독을 하고 싶었고 마지막 꿈은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것이었는데 성남 구단에서 기회를 줘 고맙다. 뭐 기분 나쁜 건 한 순간이다.
▶나도 욱하는 마음을 버려야겠다. 그런데 당신이 감독이 된 후 김상식과 김영철, 이동국 등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났다. 이들을 내보낸 게 당신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현역 시절 누군가에 의해 팀에서 쫓겨난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후배들이 그렇게 떠나는 모습을 그냥 볼 것 같나. 구단에서는 이동국만 잡고 김상식과 김영철은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반대했다. 이동국도 훌륭한 선수지만 구단에 기여한 바로는 김상식과 김영철이 더 큰 업적을 이뤘고 레전드 대우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미 구단에서는 리빌딩이 필요하다면서 방침을 정했다. 그래서 잡으려면 다 잡고 놔주려면 다 놔달라고 이야기했다. 누군 잡고 누군 놔주는 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세 선수 다 팀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밖에서 보기에는 내가 감독이 되자마자 다 내보낸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신태용 감독은 K리그 생활의 전부를 성남과 함께 했다. (사진=연합뉴스)
▶나도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쳤나. 좋은 선수 데리고 성적 내면 되지 그 선수들을 그렇게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벤치에 앉혀놓고 안 써도 된다. 뭐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감독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런 오해를 받는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만약 성남이 예전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면 데려오고 싶은 선수가 있나.
최성국도 함께 하면서 올 시즌에는 뭔가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고 김두현도 마찬가지다. 일단 현실적으로 바라는 건 김정우의 제대다. 다 우리 팀에 있던 선수들인데 이 선수들을 다시 모아보는 게 꿈이다. 재정이 힘들어서 내보낸 김상식과 김영철, 이동국도 아쉽다. 단점은 다른 선수의 장점으로 보완하고 장점은 더욱 살리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나는 이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위에 언급한 선수들을 다시 모은다면 최고의 팀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성남 선수들의 명단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누구보다 이 팀을 잘 아는 당신이 꼽는 역대 베스트11이 궁금하다.
일단 골키퍼는 사리체프다. 포백은 장학영-안익수-이영진-이기형이다. 그리고 미드필드는 고정운-신태용-이성남-이상윤, 투톱에는 샤샤와 김도훈을 꼽고 싶다. 생각만 해도 화려한 스쿼드 아닌가.
▶이건 성남 역대 베스트11이 아니라 K리그 역대 베스트11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런데 장학영만 뺀다면 나머지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선수들이다.
짜고 보니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성남이 가장 강했던 것 같다.
신태용 감독이 성남 역대 베스트11로 선정한 이성남과 현역 시절 골 세레머니를 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당신은 성남에서 박종환 감독과 차경복 감독이라는 명장을 접했다. 이 지도자로부터 받은 영향이 클 것 같다. 최고의 스승을 항상 곁에 두지 않았나. 돈 주고도 못 받는 수업 아닌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박종환 감독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았다. 지금도 그 분이 예전에 했던 걸 많이 모방한다. 축구에 대해 가르치는 건 어떤 감독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선수 교체 타이밍이나 선수들 관리에 대해서는 박종환 감독이 대가였다. 선수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채찍질할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서 당근을 줄지 그런 걸 많이 배웠다. 그런 훌륭한 분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게 나 같은 경험이 부족한 감독에게는 무척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박종환 감독의 지도철학 중 이해가 안됐던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전반전 끝나면 물통 집어 던지고 축구화로 때리고 결혼한 선배님들도 맞고 하는 모습을 보면 숨이 턱턱 막혔다. 외국인 선수들도 ‘빠따’ 때리는 감독 본 적 있나. 지금은 그렇게 했다가는 큰 일 난다. 바로 잡혀 들어간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고 그게 또 잘 먹혀들었다. 나는 박종환 감독의 이런 단적인 모습만 보고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잔정이 참 많은 분이다. 앞에서는 욱하시지만 뒤 돌아서는 퉁명스럽게 “미안해 임마”라고 하는 참 좋은 분이셨다. 그래서 선수들이 더 박종환 감독을 잘 따른 것 같다.
▶당신도 박종환 감독으로부터 ‘빠따’를 자주 맞는 편이었나.
나는 한 번도 안 맞았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한 번씩 맞은 걸 빼고는 지도자로부터 맞아본 적이 없다. 많이 예쁨 받은 선수였다.
▶학창시절 당신 같은 친구들이 꼭 있었다. 호랑이 학생과장 선생님한테도 예쁨 받는 모범생말이다. 그런데 성남은 경기력에 비해 항상 관중수가 적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구단에서 마케팅도 열심히 하고 선수들도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종교적인 색채를 너무 확대 해석한다. 특히나 우리의 모기업은 통일교인데 분당은 개신교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스포츠는 스포츠로만 봐 줬으면 좋겠다.
박종환 감독은 일화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이다. 신태용 감독 역시 박종환 감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94 하이트배 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일화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 역시 오랜 시간 성남 축구를 지켜봤지만 통일교 색채가 드러난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불교 신자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 중 절반 가량은 개신교와 천주교를 믿고 있다. 만약 구단 자체가 통일교 선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나를 감독으로 앉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른 종교를 믿는 선수들도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 구단과 20년 넘게 연을 맺고 있는데 단 한 번도 누구로부터 통일교를 믿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 내가 어디가도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선명 총재를 안지도 20년이 됐는데 “신 감독, 통일교 한 번 믿어봐” 이런 이야기 한 번 들은 적 없다.
▶성남시에서의 지원도 부족한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성남시와 우리 구단 사이에 연고 협약이 안 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돼 있지만 성남시와 한 게 아니라 성남시 축구협회와 돼 있다. 아니 성남 이름 달고 도쿄에 가서 우승컵 들어 올리고 아시아 대표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가 경기하는 것만큼 성남을 제대로 홍보하는 게 어디 있나. 또한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이렇게 아파트 단지 내에 경기장이 있는 곳이 없다. 최고의 환경이다. 시에서 조금 더 도와주면 명문구단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도 성남이 클럽월드컵에 나갔을 때 이보다 더한 성남시 홍보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당신의 두 아들도 축구를 한다고 들었다. 재능이 보이나.
큰 아들은 현재 호주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U-12 대표팀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다. 열심히 하고 잘하지만 아직 내가 보기에는 부족한 게 많다. 둘째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됐는데 클럽 축구를 하다 얼마 전에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 본격적인 학원 축구로 뛰어 들었다. 걸어서 3분 걸리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차타고 20분 걸리는 학교로 옮겼다. 홍철의 초등학교 후배다. 어제 저녁에는 처음으로 둘째 아들 데리고 밤에 개인교습을 했는데 어휴 참…. 인사이드 패스부터 다시 가르쳤다. 요새 축구하는 애들이 좀 많나. 몇 만 명이 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내 밑으로 들어올 수도 있을 텐데 잘 하면 다행이지만 못하면 특혜 시비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K리그에서 제주 박경훈 감독과 함께 패션의 라이벌로도 평가받는다. 지난 번 만난 박경훈 감독은 당신의 패션에 대해 “내가 못 하는 젊은 감각의 파격적인 패션이 멋지다”고 평했다.
박경훈 감독도 단추 하나만 더 풀면 된다. 그 분은 정말 옷을 잡 입는다. 머리도 백발이어서 패션이 더 돋보인다. 젊은 나도 소화하지 못하는 화려한 칼라도 과감하게 소화하는 모습이 멋지다. 박경훈 감독과 지금은 그만뒀지만 강원 최순호 감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K리그의 감독 패션을 이끌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요새는 다른 감독들 역시 정장 위주로 너무 옷을 잘 입는다. 얼핏 봐도 명품도 장난 아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나도 콘셉트를 바꾸기로 했다. 젊다는 걸 무기로 쓸 것이다. 이제는 청바지로 승부할 생각이다. 캐주얼로 밀어 불일 거다. 이건 다른 감독이 못 따라한다.
성남이 든든한 이유는 화려한 선수 한두 명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신태용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BITPHOTO)
▶그러고 보니 청바지 입은 K리그 감독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제주전이 되면 박경훈 감독과의 패션 대결 때문에 옷차림에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제주전이 4월 말에 있다. 날씨도 풀리니 이제 뭔가 보여줘야겠다. 사실 옷차림에 신경 안 쓴다면 거짓말이다. 이것도 하나의 팬들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냥 대충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감독이라면 항상 말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오늘 당신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홍철이 질문을 보내왔다. 어떤 질문일 것 같나.
“감독님, 어느 팀으로 갈 건지 미리 이야기해주세요.” 이 질문일 것 같다. 아닌가.
▶아니다. 왜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한다.
예쁘니까 다리털도 뽑고 눈썹도 뽑고 알밤도 때리는 거다. 미워하면 그렇게 스킨십 하지도 않는다.
▶내 다리털도 좀 뽑아 달라.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 뛰어난 감독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나.
아니다. 감독은 자기 혼자 잘나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선수들이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 감독의 능력이 달라진다. 지금도 난 우리 선수들이 무척 고맙다. 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기에 나가기 전에 “우리 오늘도 한 번 잘 해보자”라면서 파이팅 하는 모습을 보면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올 시즌 목표가 궁금하다.
일단 6강은 가야하지 않나 싶다. 지금 부상 선수들이 회복해서 돌아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전반기에는 최대한 지는 경기를 줄이고 4~8위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 후반기에 들어가서 부상 선수들이 복귀하고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6강 플레이오프 안에는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과거에 비해 지원도 줄고 부상 선수도 많지만 우리가 가진 저력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난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 우린 가난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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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독 휴게실"에서 옮겨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