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붇다왕사 282강 - 다나(dāna)와 빤냐(paññ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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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소멸하신 분, 스스로 완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삿짜(진실) 빠라미
어제 이야기하던 삿짜(sacca)에 대해서 계속하겠습니다. 삿짜는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와찌 삿짜(vacī-sacca), 말을 바르게 하는 것. 삼마 와짜(sammā-vācā. 바른 말)는 거짓말을 피하는 것, 거짓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피하는 거죠. 거짓말하지 않고 참말 하는 것입니다.
위라띠(virati)는 피한다는 뜻입니다. 죽일 수 있는데 살생을 피하고, 훔칠 수 있는데 훔치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배가 몹시 고파서 훔쳐 먹으면 죽지 않고 살 텐데 훔치지 않는 거죠. 배가 몹시 고픈데 죽여서 먹으면 배가 부를 텐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숲속에 토끼가 많아도 죽이지 않는 거죠. 굶어 죽어도 살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계 활동을 할 때, 내가 거짓말을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조금만 속이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속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좀 덜 벌고 또 힘들게 사는 것, 이게 위라띠입니다.
삼마 깜만따(sammā-kammanta. 바른 행위), 모기가 너무 많아서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않고 참으면 정업입니다. 그리고 거짓말할 수 있는데 하지 않으면 삼마 와짜(바른 말)가 되겠죠. 5계를 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죽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훔치지 않는 것은 위라띠라고 하지 않습니다. 5계를 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어기려는 마음을 피하면 위라띠입니다.
보호경의 위력은 진실과 자애로부터 생깁니다
이렇게 위라띠 삿짜(virati-sacca), 5계를 어기는 것을 피하면서 진실을 지키는 삿짜가 있고, 11개의 보호경이 있죠. 염송하면 보호받는다는 것이 보호경입니다. 보호경 11개는 기둥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삿짜(sacca)이고 하나는 멧따(mettā)입니다. 삿짜와 멧따가 있으면 보호받습니다. 삿짜는 진실이죠. 거짓말하지 않는 것, 메추라기는 삿짜의 힘으로 보호받죠. 불 속에서 살아남습니다.
난산 중인 산모가 앙굴리말라의 삿짜, “내가 아리야가 되고 난 뒤에는 죽이지 않았다. 이 진실로 쉽게 순산하기를!” 이렇게 말하자 산모가 순산했습니다. 여기에는 멧따도 들어가겠네요. 힘들어하는 산모에게 삿짜와 멧따 두 가지가 보호경입니다.
자애관은 멧따죠. 라따나 숫따(보배경)는 진실이죠. 삼보는 이렇게 확실하다, 진실하다, 보배경입니다.
빳타나의 내용은 인과의 위대한 진리(삿짜)입니다. 자애는 당연히 내가 중생에게 자애를 쓰는 거니까, 자애로 내가 보호받고, 진실은 진실의 권능으로 보호받습니다.
불법은 진리(삿짜)입니다. 사성제는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리. 그런 진리를 본적 있습니까? 사성제뿐입니다. 찾아보십시오. 인류 역사에 또 다른 변치 않은 법이 있는지? 없습니다. 사성제는 완벽하고 그래서 변치 않습니다. 어리석음에 묻혀 잊혀지겠지만 변치 않습니다.
삿짜와 멧따가 보호하더라도 언제나 무상이 더 힘이 세고, 인과가 더 힘이 셉니다. 목갈라나 존자를 보십시오. 신통제일인데 마지막 생에 맞아죽었죠. 우리도 남아 있는 많은 생들을 맞아 죽지 않으려면 빨리 벗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죽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아딛타나(결심) 빠라미와 여섯 빠라미(육바라밀)의 관계
그다음 아딛타나 빠라미(adhiṭṭhāna-pāramī. 결심 바라밀)가 있습니다. 아딛타나 빠라미는 무엇과 같이 어울리는가 하면 다나(dāna), 실라(sīla), 칸띠(khanti), 위리야(vīriya), 자나(jhāna), 빤냐(paññā), 즉 보시, 지계, 참음(인욕), 노력(정진), 선정, 지혜 이 6개*랑 함께합니다.
[*편집자 주: <마하붓다왕사>에서 밍군 사야도는 10가지 빠라미를 다시 여섯 빠라미(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이때 여섯 빠라미 안에는 10가지 빠라미가 모두 포함된다. 가령, 아딛타나 빠라미는 여섯 빠라미의 개별 항목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여섯 빠라미 모두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아딛타나(결심)는 보시와도 함께하고, 지계와도 함께 하고, 그리고 참음(인욕. 칸띠)과도 함께 하고, 노력(정진. 위리야)과도 함께 있습니다. 자나(선정)가 있을 때 아딛타나가 있습니다. 자나(선정)은 아딛타나의 힘입니다. 특히 신통은 결심으로 합니다. 모든 수행은 결심이죠. 결심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한 시간 좌선하기로 했으면 다리 풀지 말고 다리가 끊어져도 앉아야 됩니다. 저는 좌선하다가 오른쪽 다리 감각 기관에 약간 이상이 생겼습니다. 운동 기관은 정상인데 감각은 회복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원래 육체라는 것은 어떻게든지 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고가 나서 상할 수도 있고, 실수로 삐끗해서 상할 수도 있고, 수행하다가 좀 이상해졌다고 해도 얻은 게 더 많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도 늙고 병듭니다. 늙고 아플 수밖에 없는 몸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해서 잃는 것에 비해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으면 됩니다. 수행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아딛타나의 힘을 기르는 작업입니다.
빤냐(지혜)도 아딛타나입니다. 빤냐도 결심과 같이합니다. 다른 거 할 때는 되게 열심히 하면서 다른 일할 때는 엄청 열심히 하죠. 먹고 사는 일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고, 학교 공부할 때도 그렇죠. 놀 때도 그렇고, 수행할 때는 다들 어떻게 그렇게 몸을 사리는지. 제일 가치있는 거 할 때 더 많이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요? 제일 위대한 것을 얻으려면 최대치로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요? 기껏 한 생에서 먹고 사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밤 새워서 하면서. 정작 목숨 바쳐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은 30분을 참지 않습니다. 이 일을 잘 참으면 이후로 참을 일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아딛타나(결심) 빠라미는 다나, 실라, 칸띠, 위리야, 자나, 빤냐 이 6개에 다 들어갑니다. 결심은 보시할 때 흔들림 없이, 틀림없이 하게 합니다. 내가 만약에 크게 1억을 보시하기로 서원했으면 1억을 보시합니다. 재물 보시는 쉬운 편에 들고, 보디삳따는 목숨을 보시하는 데 멈칫거리지 않습니다. 보디삳따가 토끼로 태어났는데, 토끼가 할 수 있는 빠라미가 별로 없는 거죠. 축생으로 태어나서 지을 수 있는 선업이 별로 없음을 알자, 차라리 고기가 돼서 저 인간의 배를 부르게 해주겠다면서 장작불로 뛰어든 것. 이 보시할 때 멈칫거리지 않고 뛰어들었습니다. 이게 아딛타나와 함께하는 다나 빠라미입니다.
그리고 계를 지키기로 했으면 계를 지킵니다. 칸띠(참음), 참기로 했으면 참는 것, 위리야, 노력하기로 했으면 노력하는 것, 선정 수행하기로 했으면 하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고 멈칫거리지 않고 하는 것, 이것이 아딛타나 빠라미입니다. 여섯 가지에 모두 아딛타나가 하나 들어갑니다. 보시, 지계, 참음, 노력, 선정, 지혜 이 모두 다 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여섯 빠라미를 두 개씩 짝 지음
그다음 이 다나, 실라, 칸띠, 위리야, 자나, 빤냐 여섯 가지를 또 다르게 돌립니다. 돌린다는 것은 새롭게 서로서로 이렇게 다르게 짝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① 다나와 실라가 시작이 됩니다. 보시와 지계가 같이 있습니다. 같이 있으면 더 완성됩니다. 그리고 ② 다나와 칸띠, 보시하는 데 참음이 들어갑니다. 더 좋습니다. ③ 보시하는 데 위리야, 보시와 위리야, 보시와 노력이 같이 있습니다. 같이 필요합니다. ④ 보시와 선정이 같이 있습니다. 보시와 선정 어떻게 있는지 봅시다. ⑤ 보시와 지혜가 같이 있습니다. 그렇죠, 보시하는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⑥ 실라와 칸띠, 계를 지키려면 참음이 같이 있죠. ⑦ 실라와 위리야, 계를 지키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있어야 됩니다. ⑧ 지계와 선정도 같이 있어야 됩니다. 선정을 얻는 데 계가 있어야 되죠. 계 없이 선정 없습니다. ⑨ 지계와 지혜, 이 두 가지로 무외시(無畏施. 두려움 없음을 줌)와 법보시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⑩칸띠와 위리야, ⑪칸띠와 자나, ⑫참음과 지혜, ⑬노력과 선정, ⑭노력과 지혜, ⑮선정과 지혜 이렇게 15쌍이 나옵니다.
① 보시와 지계
어떻게 이렇게 되느냐 하면 이렇게 같이 다닌다는 거죠. 보시를 하는데 보시 혼자만 달랑 단독으로 가지 않습니다. 보시하기 위해서 보시와 지계가 함께 있으면 더 좋습니다. 보시하기 위해서 지계가 있고, 보시하는 동안에도 지계가 있고, 보시하고 난 뒤에도 지계가 있고, 지계로 쌓은 재물로 보시를 해야 더 좋습니다. 그 보시가 결과가 좋은 보시가 됩니다. 보시의 결과가 크게 오기를 기대하십니까? 보시의 결과는 항상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열반을 성취하기를)”여야 합니다. 다른 걸 원하면 안 됩니다.
보시는 남에게 주는 거니까 내가 그 사람의 번영을 위해서 주지 않습니까? 그 사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줍니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번영이 옵니다. 내가 잘 되겠죠.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니까 나한테도 나의 발전이 옵니다.
그리고 내가 5계를 지키면, 5계는 다른 중생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지 않습니까? 계를 지킴으로 인해서,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싸움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이나 술을 먹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른 중생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5계의 결과로 내가 해를 입지 않습니다. 내가 위험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살해당하지 않고 내 재산을 잃지 않고 내가 남에게 속지 않고 이렇게 나한테 해로움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한테 오는 게 보시로 인해서 번영이 오고, 지계로 인해서 위험이 오지 않는 거죠. 이 두 가지가 옵니다. 번영과 안전.
② 보시와 참음, 두 가지가 같이 있으면, 보시는 탐욕을 버림이지 않습니까? 탐욕 버림이고, 칸띠(참음)는 아도사, 성냄 없음이죠. 이 두 가지가 완성됩니다. 보시와 칸띠가 같이 있습니다. 보시할 때 칸띠가 필요하죠. 보시할 때도 칸띠 필요합니다. 주는 데도 참고 줘야 됩니다. 자식한테 부모는 진짜 다나와 칸띠가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주면서도 눈치 보고 주고 맨날 내가 주는데도 내가 을이고, 부모와 자식 관계는 그렇지 않나요?
제가 아주 어릴 때도 제 부모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두 분이 분명히 나한테 빚이 있는 것 같다. 빚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시에도 칸띠가 있어야 됩니다. 나의 재물로 선업을 짓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참아야 합니다. 나의 재물을 타인을 위해 쓰는데 내가 뜻하는 대로 쓰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나빠라미와 함께 칸띠 빠라미를 쌓는다고 마음 돌리시면 됩니다. 큰 보시일수록 큰 칸띠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라는 직업은 자식을 대상으로 다나빠라미와 칸띠 빠라미 두가지를 채울 수 있는 좋은 직업인 거 같습니다. 집착만 놓는다면요.
③ 보시와 노력, 두 개가 같이 있으면, 보시는 짜가(cāga), 버림입니다. 그리고 위리야(노력)는 수따(suta. 들음)라고 나와 있는데, 버림(짜가)과 수따(들음)이 완성됩니다.
④ 보시와 선정 두 가지가 같이 있으면, 재물 버림으로 5욕락을 버립니다. 내가 쓸 재물을 보시함으로 인해서 나의 5욕락을 제거하는 거지 않습니까? 보시는 5욕락을 덜어서 버리는 거죠. 줄 수 있는 게 물질이죠. 보시할 수 있는 건 주로 물질입니다. 아니지, 목숨도 보시할 수 있죠. 장기나 이런 건 5욕락이 아니죠. 목숨을 보시하는 거죠. 큰 보시입니다. 대부분 보시로 인해서 5욕락을 제거하고, 그리고 선정이 있으면 성냄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보시와 선정이 함께 있으면 5욕락을 제거하고 성냄을 제거하는 선업이 완성됩니다.
⑤ 보시와 지혜가 함께 있으면 좋습니다. 보시와 지혜가 같이 있으면, 사마타 수행과 지혜 수행이 완성됩니다. 보시와 빤냐(지혜)가 같이 있으면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 두 가지가 완성되고, 빠리얏띠, 경전을 배우는 교학과 바와나(수행) 두 가지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욕계 중생으로 인간계에 태어나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한평생을 다 쓰지 않습니까? 태어나서 하는 일이 뭡니까? 태어나서 처음에는 엄마가 주는 걸 먹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주는 걸 먹고, 학교에서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걸 배우고, 그다음에 졸업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죠. 나이가 들어 일 못하게 되면 벌어놓은 걸로 먹고 살고,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서 인생을 다 쓰지 않습니까? 중간에 자식을 낳으면 자식도 먹여 살리고, 종족 번영을 위해 자식도 먹여 살리고,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서 인간 생을 쓰는 거죠. 사마타 수행에서 선정을 얻거나,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도와 과를 얻거나, 위빳사나 지혜가 생기려면, 생계활동에 쓰는 시간에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사마타를 해서 선정을 얻거나, 위빳사나 지혜가 생기는 노력을 해야 하죠.
그 노력을 하는 동안에 의식주가 해결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세간 선정을 얻거나 열반을 보는 길을 가게 되겠죠. 생업을 접고 탐욕을 버리는 훈련을 하는 동안 전에 지은 보시 선업의 과보로 의식주가 해결돼야 합니다. 그래야 선정을 얻고, 위빳사나 지혜가 생깁니다. 열반을 보기 위해서는 빤냐(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빤냐 없이 선정을 얻거나 위빳사나 지혜가 생길 수 없습니다. 위빳사나라는 것은 세간의 지식을 모으는 그런 빤냐가 아니라, 타고난 지혜, 입태할 때부터 가지고 온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기억력이 아닌 통찰지입니다. 그 훈련과정 동안에 의식주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데, 수행한다는 것은 생계 활동을 접어야 가능하니까 즉 백수니까, 보시 선업이 있어야지 내가 수행할 때 의식주가 해결이 되겠죠. 그리고 빤냐, 가지고 온 지혜도 있어야 선정과 지혜가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사마타 수행이든 위빳사나 수행이든 수행이 완성됩니다. 보시할 때 지혜를 가지고 보시해야 됩니다.
출가자는 빠리얏띠, 교학을 해야 합니다. 출가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출가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출가자도 의무가 있습니다. 교학과 위빠사나입니다. 교학은 외워야 되는 거죠. 제가 외웠으니까 이렇게 강의를 하겠죠. 그냥 읽어서는 말할 수 없겠죠. 학교 공부하듯이 외우는 데 시간을 쓰거나, 위빳사나 수행하거나 둘 중에 한 가지 해야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다 보시와 지계가 있어야지 가능합니다. 전생이 했거나 이번 생이 했거나 출가자는 무직자이지 않습니까? 무직자는 보시 선업이 있어야지 교학을 하거나 위빳사나 수행을 할 수 있겠죠. 이 두 가지가 완성됩니다. 보시와 빤냐 두 가지가 있어야 되므로, 두 가지로 보시해야 됩니다. 보시할 때 지혜를 가지고, 어디에 보시해야 하는가? 어디에 보시하는 게 내가 위험이 없는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얻는 데 가장 효율적일까? 이 지혜를 가지고 보시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다노- 뿐냥 아-사왁카야-와항 호-뚜
이마노- 뿐냐바-강 삽바삳따-낭 바-제-마
삽베- 삳따- 수키따- 혼-뚜
(Idha no puññaṃ āsavakkhayāvahaṁ hotu.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Ima no puññabhāgaṃ sabbasattānaṃ bhājema.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Sabbe sattā sukhitā hontu.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Sādhu sādhu sādhu.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편집자: 담마삐야
* 2023-04-28 인터넷(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