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큰 인기를 모았던 가요 중에 '이 밤의 끝을 잡고'란 곡이 있다. '나의 입술이 너의 하얀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렇게 우린 이 밤의 끝을 잡고 사랑했지만'하고 시작하는 노래다.
나의 입술이 너의 하얀 어깨를 감싸 안는다는 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가사만큼이나 매우 감미로운 노래였다. 어린이 독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1990년대 초에는 아침 저녁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만 틀면 이 노래만 나올 정도였다. 요즘 원더걸스의 '텔미'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고나 할까.
글쓴이는 이 노래를 평생 잊을 수 없다. 사연인즉 이렇다. 당시 음악 방송에서 브이제이(VJ)로 일을 하다가 이 노래를 잘못 소개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청이 폭주했다.
"요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죠. 솔리드입니다. 이 밤의 [끄츨] 잡고." 그런데 방송이 끝나고 나서 프로듀서를 통해 시청자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진행자가 연음법칙도 모르고 무슨 방송을 합니까? [끄츨]이 아니고 [끄틀]입니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집채만 한 망치로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 간단한 연음법칙을 모르고 살았을까? 아니다. 모르고 산 건 아니고 까맣게 잊고 살았다. 사는 게 바빠서 그랬을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엄청 반성했다. 잠을 못 이뤘다. 잠자리에 누운 채로 '끄틀, 끄틀, 끄틀, 끄틀'을 반복하며 무지하게 연습했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솔리드입니다. 이 밤의 [끄틀] 잡고."
와, 성공이다.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시겠지만 여하튼 그 사건을 계기로 글쓴이는 달라졌다. 그 날 전화를 한 분이 누군지 모르고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지만 분명 내 삶의 스승이다.
어떤 분들은 [끄츨]이 맞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하지만 이는 '굳이'가 [구지]로, '굳히다'가 [구치다]로 소리 나는 구개음화(입천장소리되기)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 생각한다.
구개음화란 끝소리가 'ㄷ', 'ㅌ'인 형태소가 모음 'ㅣ'나 반모음 'ㅣ[j]'로 시작되는 조사, 어미 등의 형식 형태소를 만나면 'ㅈ', 'ㅊ'으로 발음되는 현상이다. 또 'ㄷ' 뒤에 형식 형태소 '히'가 올 때 'ㅎ'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ㅌ'이 'ㅊ'이 되는 것도 구개음화 현상이다.
그러니 '정말로 끝인가요'라면 '[끄친]가요'가 되지만 '끝을'은 [끄틀]이 맞다. ([ ]안은 발음)
정재환(방송인ㆍ한글 문화 연대 부대표)
2007/12/20 소년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