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3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디베랴 바다 위에 나타나셨지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도 깨닫지 못하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이전 말씀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많은 다른 표적들을 행하셨지만 그것을 다 기록하지 않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들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난 제자들이 아직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1절은 “그 뒤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믿음을 가지라 하시고 난 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뒤라는 뜻이다. 20:30-31절은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덧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 않고도 말씀만 듣고 믿는 사람들이 복되다고 하신 뒤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호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by the sea나 beside the sea로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바다 위에” 라는 뜻이다.
그러나 ἐπὶ 라는 전치사가 정관사와 함께 쓰인 경우는 땅 위 또는 바다 위 라는 뜻이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이 전치사와 정관사가 함께 쓰인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땅 위에”라는 뜻으로 쓰였다. 요한복음에서는 두 번은 “땅 위에”(요 6:21; 17:4) 두 번은 “바다 위에” (6:19; 21:1)라는 표현에 나온다. 특별히 “바다 위에서” 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6:19절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고 할 때도 똑같은 표현이 쓰였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바다 위를 밟고 있다는 뜻으로 세 번 나온다(계 10:2, 5, 8). 신약성서에서는 똑 같은 표현이 세 번 더 나오는데 모두 다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으셨다는 표현에서만 나온다(마 14:25, 26; 막 6:48, 49).
물론 똑같은 표현이 70인역 구약 성서에서 세번이 더 나오는데 모두 다 바닷가에서 라는 뜻으로 쓰였다(출 14:2; 삼하 17:11; 왕상 2:46). 하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열 번이 나오는데 열 번 모두 다 바다 위라는 뜻으로 쓰였고 단 한 번도 바닷가에서 라는 뜻으로 쓰인 적이 없다.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다 위에” 라는 말을 쓴 것이다. 단순히 부활하신 예수님 이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셨다고 하기 위해 “바다 위에” 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이 디베랴 바다 위에 나타나셨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대부분의 영어권 주석가들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한 사람만이 요한복음 6:19절과 마가복음 6:47-49절의 예를 들며 물 위를 걸으신 예수의 신적 현현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면서도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닷가를 의미할 때는 옆에라는 뜻의 παρὰ 라는 전치사를 정관사를 함께 썼다(마 13:1; 15:29; 막 1:16; 2:13; 4:1; 5:21; 행 10:6, 32). 그렇기 때문에 요한이 특별히 표면 위를 나타내는 전치사를 바다라는 말과 함께 쓴 것은 분명히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신적 현현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또 나타내셨다는 말을 보아도 요한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나타내셨다는 말은 2:11절에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는 뜻이다. 9:3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라는 말에 서도 나온다. 요한복음에서 나타나셨다는 표현은 아홉번이 나오는데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셨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은 단순히 예수님이 모습을 보이셨다는 뜻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는 듯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디베랴 바다 위에 가득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는 21:2-13절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다.
2절은 7명의 제자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고 소개한다. 맨 처음에는 베드로가 소개되고 그 다음에는 쌍둥이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두 아들 그리고 이름이 나오지 않는 두 명의 제자들이 나온다. 베드로는 이들과 함께 있다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 라고 했다.
이 내용을 가지고 많은 성경 해석자들은 배교를 하고 다시 옛날의 직업으로 돌아갔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전후 문맥을 아무리 잘 살펴보아도 그런 증거는 없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갈릴리로 간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 14:28절과 16:7절에 보면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셨기에 제자들도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고 명절도 끝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간 것 뿐이다. 그러나 돌아 가서도 아직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또 당장 먹을 것을 얻어야 하기에 우두커니 있기보다는 고기라도 잡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함께 배에 올랐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라고 했다. 본래 고기는 밤에 잘 잡히는 법이다. 또 밤에 고기를 잡으면 새벽에 일찍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팔 수 있어 좋기에 밤에 고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본래 어부들이었기에 고기를 잡는데는 누구보다도 전문가였지만 밤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이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는 예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기 잡는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디베랴 바다에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단순히 물 가에 서 계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갈릴리 바다에 임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물고기를 잡으려 한 것이다. 두번이나 예수께서 나타나셨는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다. 예수께서는 세번째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대표로 말씀하신 것이다. 세번째 나타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