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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병산에서 남쪽 조망, 중간 오른쪽은 장암산(?)
景入詩中畵 이 정경 시 속의 그림이요
泉鳴譜外琴 졸졸 흐르는 샘물은 악보 없는 거문고 소리로다
路長行不盡 길은 멀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고
西日破遙岒 서산에 지는 해에 먼 산봉우리 아물아물하다
―― 지봉 이수광(芝峰 李睟光, 1563~1628), 「길을 가면서(途中)」에서
▶ 산행일시 : 2021년 7월 24일(토), 맑음, 더운 날
▶ 산행인원 : 2명(메아리, 악수)
▶ 산행시간 : 9시간 5분
▶ 산행거리 : 도상 17.0km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평창 가서(요금 18,000원), 평창역사 앞 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하안미리 부대 앞 조금 지나 내림(요금 2,530원)
▶ 올 때 : 하안미리 가평동에서 버스 타고 장평터미널에 와서(요금 2,870원), 저녁 먹고 버스 타고 동서울
터미널로 옴(요금 14,800원)
▶ 구간별 시간
06 : 22 - 청량리역, 평창 가는 KTX 열차 출발
07 : 37 - 평창역
08 : 18 - 평창역 앞 승강장에서 가평동 가는 버스 탐
08 : 42 - 대화면 하안미리 부대 앞 승강장에서 조금 더 가서 내림, 산행시작
09 : 38 - 묵은 임도, 첫 휴식
11 : 11 - 남병산(南屛山, △1,150.9m), 헬기장
12 : 08 - 기러기재, 임도 삼거리, 안부
12 : 11 ~ 12 : 36 - 점심
12 : 54 - 임도 산모퉁이
13 : 18 - 1,038.8m봉
13 : 59 - △1,156.4m봉
14 : 45 - 1,157.8m봉
14 : 57 - 삼거리(1,200m)
15 : 04 - 1,218.4m봉
15 : 14 - 청옥산(靑玉山, △1,257.0m)
15 : 20 - 육백마지기
15 : 31 - 다시 청옥산
16 : 12 - 임도
16 : 25 - 벽파령(碧波嶺), ╋자 갈림길 안부
16 : 40 - 임도
17 : 47 - 하안미리 가평동, 산행종료
18 : 10 - 장평 가는 버스 탐
18 : 38 ~ 20 : 13 - 장평, 저녁
22 : 00 - 동서울터미널, 해산
2-1. 산행지도(남병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평창, 정선 1/25,000)
2-2. 산행지도(청옥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평창, 정선 1/25,000)
▶ 남병산(南屛山, △1,150.9m)
“(안미리) 남쪽에 병풍을 두르며 기러기가 날개를 펼친 형국으로 정상에 올라서면 평창 일대의 이름 있는 산들
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정상 능선에서 발아래 굽이굽이 흐르는 평창강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각별한
맛이 있는 산으로 짙은 녹음과 취나물, 더덕, 두릅 등의 각종 산채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해묵은 수목이 군
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평창문화관광의 남병산에 대한 소개다. 평창문화관광은 이 남병산의 산행을 하안미리 도원동을 들머리로 하여
도불사 표석을 지나 기러기재로 가서 주릉을 따라 오르고 하산은 수리비알을 거쳐 하안미리 월두동으로 내려
오는 코스를 소개한다.
우리는 남병산 들머리를 노선버스로는 접근이 어려운 월두동(평창강 쪽에 있다) 보다는 버스기사님의 배려로
‘부대 앞’ 승강장을 약간 지나서 내린다. 산길로 이어질 것 같던 너른 농로는 곧 농가에 막힌다. 이방인의 출현
을 경계하는 개로서는 모처럼 일거리가 생겼다. 복중이니 올 여름도 무사히 넘기려고 한층 열심히 짖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쓴다. 농가 옆의 초지를 얼른 지나 산자락 수풀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엷은 지능선이었지만 차츰 일어선다. 잡목 숲 헤친다. 인적인지 수적인지 앞서가다 사라지기를 반복
한다. 내 엎드린 거친 숨에 풀숲이 흔들리는 것을 뱀이 지나가는 줄로 알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곳도 아침부
터 덥다. 금방 땀으로 속속들이 젖는다. 바지가 땀에 젖어 감기니 걷기가 힘들다. 고도를 높이니 인적이 분명하
다. 700m 고지 절벽 아래다. 오른쪽 사면에서 올라온 묵은 임도가 돌아간다. 하늘 가리고 풀숲 울창한 임도이
니 산길 다름이 아니다. 임도 따르기로 한다.
첫 휴식한다. 어제 떡집에서 사온 절편으로 아침 요기한다. 메아리 님은 늘 절편을 가져오는 나에게 절편을 그
렇게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이 여름철에 쉬지 않는 음식을 고르다보니 절편이다. 인절미나 팥 박힌 백설기, 김
밥 등은 잘 쉰다. 비지땀 쏟으며 가쁜 숨 고르느라 모기에 뜯기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온몸이
가렵기 시작한다. 땀에 젖은 옷이 살갗에 찰싹 달라붙었으니 모기가 포식하기 매우 좋았으리라.
명나라 개국공신으로 재상이던 호유용(胡惟庸, ? ~1380)이 반란죄로 죽임을 당할 때 모기에 물려 죽는 형벌을
받았다. 내 몇 마리 모기에 물려도 이러니 벌거벗긴 채 들판에 묶여 모기에 물린 호유용의 괴로움은 오죽했을
까 짐작이 간다. 임도는 능선마루의 오르막 각도를 유지하며 간다. 능선이 갑자기 가팔라지면 임도는 방향을 틀
어가며 오른다. 임도 덕을 톡톡히 본다. 임도는 900m 고지까지 오른다. 잠시 하늘이 트여 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대화를 에워싼 주변의 첩첩 산들이 일대 가경이다.
기로다. 여태 우리가 함께 풀숲 헤치며 온 임도는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가고, 덩굴 숲 우거진 더 오래 묵은
임도는 왼쪽으로 간다. 거리로는 왼쪽을 뚫는 편이 남병산 북릉에 붙게 되고 그대로 치고 오르면 정상이니 더
가깝다. 왼쪽으로 간다. 그런데 가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 오른쪽의 풀숲 헤치는 임도
는 멀기는 해도 월두동에서 오는 등로와 만날 것이고 그러면 남병산 정상을 오르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다. 엄나무와 두릅나무는 우리를 부지중 아무 데나 콕콕 찔러대고, 미역줄나무와 다래 덩
굴은 목과 팔다리 걸고, 잡목은 배낭을 자꾸 잡아챈다. 더구나 돌길을 발로 더듬어 간다. 메아리 님이 앞장서서
그런 임도를 뚫는다. 바짝 붙어 메아리 님 뒤를 따라야지 조금만 뒤처지면 새로이 뚫어야 한다. 이나마 버텨 온
터수를 생각하니 이제는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큰 고통은 작은 고통을 구축하는 법. 더운 줄을 모른다.
이 임도는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하자 오르기를 멈춘다. 왼쪽 생사면을 뚫을 수밖에 없다. 밀림 속 이끼 낀 너
덜이다. 미끄럽다. 살금살금 너덜 바위를 안고 돌고 혹은 긴다. 가쁜 숨 돌리면서 뒤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저만치 보이는 거문산과 금당산이 반갑다. 그들의 응원으로 다시 힘낸다. 관중(貫衆) 헤치고 남병산 북릉에 진
입한다. 잔 너덜의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다음은 풀숲이다. 딱히 인적이랄 것도 없다. 누벼 오른다.
남병산 정상. 풀숲인 헬기장 가장자리에 조그만 정상 표지석과 옛날의 2등 삼각점이 있다. 22 복구, 77.7 건설
부. 헬기장에서 서쪽으로 약간 더 가서 무인산불감시시스템 아래로 내려가면 벌목지대로 조망이 훤히 트인다.
평창문화관광의 남병산 소개대로 평창 일대의 첩첩 산들이 장관이다. 휴식하려고 배낭 벗고 앉자마자 모기와
파리 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정상주 탁주만 들이켜고 물러난다.
3. 평창역사 앞에서 바라본 산릉
왼쪽의 높은 봉우리는 1,103.4m봉, 저 봉우리 뒤로 백적산을 간다.
4. 평창역 앞 승강장 주변 화단의 백일홍
5. 하안미리 주변의 산, 저 산릉은 하일산으로 간다.
6. 앞은 거문산, 오른쪽 뒤는 금당산
7. 왜솜다리(Leontopodium japonicum Miq.)
8. 왜솜다리
9. 임도로 남병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대화면 주변의 산들
10. 오른쪽 뒤는 백석산
11. 왼쪽은 거문산, 오른쪽은 금당산
▶ 청옥산(靑玉山, △1,257.0m)
남병산 정상에서 동진하여 기러기재 가는 길은 아주 잘났다. 줄곧 내리막이다. 가파른 데는 굵은 밧줄의 핸드레
일을 설치해놓았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핸드레일 붙들어 내린다. 가파름이 다소 수그러들면 사면 풀숲을 들
러보지만 빈 눈 빈손이다. 벌목지대를 통과하여 임도와 만나고 이어 안부인 임도삼거리는 기러기재다. 옛적 지
명인 안미(雁尾)의 안치(雁峙)를 우리말로 썼다. 임도 한 구비 돌아 그늘진 데서 점심자리 편다.
밥을 물에 말아서 넘긴다. 밥맛보다는 물맛으로 먹는다. 얼음물이 너무 맛있어서 탈이다. 너무 맛있다 보니 자
꾸 마시게 되고 물이 부족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다음에는 얼음물이 아닌 그냥 물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
이 든다. 남병산을 내릴 때 건너편 산릉을 목측하여 청옥산 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1,038.8m봉을 오를 방도를
마련했다. 기러기재에서 곧바로 능선을 오르지 않고 왼쪽의 임도 따라 세 구비 돌고 그 지능선을 오르는 것이다.
산행거리는 0.4km 정도 더 길지만 완만하다. 임도 그늘진 곳을 골라 오른다. 임도 절개지가 덤비기 어려운 절벽
의 연속이다. 불안하다. 세 구비 돌고 절개지 덤불숲 헤치자 비스듬히 난 수적이 보인다. 짐승들의 생각도 우리
와 같았다. 넙데데하고 잡석 깔린 능선을 오른다. 멀리서는 완만하게 보여도 다가가면 상당히 가파르다. 대자
갈지자 그리며 오른다. 아무 재미없는 산행이다. 바람도 없고, 조망도 없고, 덕순이도 없다.
1,038.8m봉 조금 못 미쳐 기러기재에서 오는 인적과 만나고 곧 1,038.8m봉 정상이다. 검은 넓적 돌이 널렸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조망은 막혔다. 이제 청옥산까지는 아니 벽파령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다. 봉봉 오
르내리는 굴곡이 심하지 않을뿐더러 육산이라 바윗길도 없다. 다만, 풀숲이 잔뜩 우거져 발로 더듬어 길을 찾는
다. 풀숲에 누운 고사목이 많기도 하다. 몇 번이나 발에 걸려 엎어질 듯 야단스레 간다.
△1,156.4m봉에서는 삼각점을 찾으려고 풀숲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부드러운 산길이다. 여로와 동자꽃, 말나
리가 무리지어 응원한다. 가던 걸음 멈추고 일일이 눈 맞춤 한다. 여로(藜蘆)는 ‘여로(旅路)’를 생각나게 한다.
“언젠가 오랜 옛날 볼우물 예뻤을 때/뛰는 가슴 사랑으로 부푼 적도 있었는데/흐르는 세월 따라 어디론가 사라
졌네.” 우리 시대의 가인(歌人) 이미자가 부르던 그 주제가 또한 얼마나 애틋했던가!
1,157.8m봉 넘고 약간 내렸다가 한 피치 바짝 오르면 벽파령 가는 삼거리다. 평탄한 숲길이다. 고지가 저기다
하고 막 간다. 1,218.4m봉 넘고도 지루할 만큼 간다. 청옥산. 조그만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다. 정선 313,
2004 복구. 이정표에 ‘육백마지기 0.5km’라고 한다. 다니러 간다. 검은 넓적 돌들이 무더기로 쌓인 청옥산 정상
표지가 있고(여기가 약간 더 높다), Y자 삿갓봉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의 이정표는 ‘육백마지기 0.9km’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혹시 조망이 트일지 몰라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도는 데까지만 가보자 하고 간다. 한
피치 0.2km쯤 내리니 딴 세상이다. 육백마지기 산상 주차장이다. 산상 주차장은 거의 만차다. 유람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나도 마스크 꺼내 쓴다. 육백마지기 너른 들은 개망초가 화초로 그득하다. 전망대 겸한 2층 정
자에 오른다. 성마령 너머 정선 미탄 쪽의 가경이 펼쳐진다. 16년 전 봄날 월두동에서 남병산을 올라 이 청옥산
을 거쳐 성마령 넘어 비행기재로 갔었다. 함께 간 사람들 기억은 없고 기록만 있다.
청옥산은 청옥이라는 산채가 많이 난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한다는데 청옥이 무슨 산나물을 뜻하는지 여러 자
료를 찾아보았으나 알지 못하겠다. 어쩌면 이 산에서 특히 많이 나는 참나물을 귀한 보석의 하나인 청옥에 빗
댄 것은 아닐까? 다시 청옥산에 오르고 벽파령을 향한다. 볼 것이 없으니 그저 줄달음한다. 풀숲 사이 잘난 길
이다. 남병산 삼거리 지나고 벽파령 가는 숲길은 더욱 부드럽다. 벽파령이 가까워져서야 내리막이 시작된다.
12. 흰여로(-藜蘆, Veratrum versicolor Nakai)
13. 남병산에서 남쪽 조망, 무명봉들이다.
14. 남병산에서 남쪽 조망
15. 오른쪽은 백덕산
16. 남병산에서 남쪽 조망
17. 일월비비추
18. 동자꽃
19. 말나리(Lilium distichum Nakai ex Kamib.)
20. 육백마지기는 개망초가 만발하였다.
▶ 벽파령(碧波嶺)
임도에 내려선다. 이대로 임도 따라 내리기보다는 벽파령을 가기로 결정한다. 거기 가서 길이 없으면 생사면을
치고 내리자고 한다. 대형 송전탑 지나고 풀숲에 길이 막혔으나 사방 휘저어 길을 찾아낸다. 중왕산 주릉 길이
다. 잠깐 내리면 벽파령(碧波嶺)이다. ╋자 갈림길 안부다. 예전에는 평창과 정선의 상거래가 활발해 많은 사람
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한다. 이 고개에 넘실대는 운해를 벽파(碧波, 푸른 물결)에 비유하여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2017.9.25. 정선문화원에서 벽파령 표지석을 세웠다. 앞면에 “…… 특히 조선시대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역로인
平海路의 안흥 방림 대화역과 강원도 역도인 保安道의 벽탄 호선 여랑역을 잇는 주 고갯길이다.”라고 새기고,
뒷면에는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1330~ ?)의 시 「벽파령에 올라(登碧波嶺)」를 새겼다. 운곡은 1369년 영해
를 방문했다가 치악산 은거지로 돌아오면서 정선에서 이 벽파령을 넘어 대화, 횡성 등을 경유했다. 이 시는 2수
인데 표지석에는 첫 수의 4구까지만 새겼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沿江十里行路難 강 따라 십리 길 험난하기만 해서
側身過了懸崖石 벼랑 밑 바위틈으로 기어서 왔네
下瞰深淵千丈強 아래로 깊은 못이 천 자나 넘게 보여
戰戰兢兢勞眼力 조심조심 떨리고 눈마저 아찔했네
巖花澗草映紅綠 바위 꽃 시냇가 풀이 울긋불긋 비치고
山鳥悲鳴春寂寂 산새도 슬피 울어 봄이 고즈넉한데
客懷牢落有誰知 끝없는 나그네 회포를 그 누가 알아주랴
無人問我閑蹤跡 한가로운 내발자취를 묻는 사람도 없네
行行上到碧坡嶺 가고 또 가서 벽파령에 이르니
千回棧道連雪天 천 구비 사다리길이 하늘까지 이어졌네
眼底衆山如蟻垤 눈 아래 산들은 개미 둑과 같고
夕陽明滅空雲煙 구름과 연기 자욱한 하늘에 석양이 가물거리네
遲留望久發長嘆 오랫동안 서성거리며 긴 한숨 쉬자
道邊喬木風蕭然 길가 높은 나무에 바람 소리만 쓸쓸하네
벽파령에서 왼쪽 사면으로 내리는 길이 뚜렷하다. 운곡이 지나갔던 길이다. 몇 걸음 내리자 잡석 바글거리는 묵
은 임도다. 옛길을 다듬었을 것이다. 경사가 조금이라도 가팔라지면 임도는 곧장 내리지 않고 사면을 갈지자 크
게 그리며 내리곤 한다. 그래도 아까의 콘크리트 포장한 잘난 임도보다는 백번 낫다. 쭉쭉 내린다. 하늘 가린 숲
속이다. 우리의 닫는 걸음에 바람이 인다. 내리막 덤불숲 뚫고 도랑 건너 잘난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머뭇거리지 않고 서둘러 가평동으로 간다. 이때는 임도 옆의 계류가 말랐으나 건축 중인 몽골캠프 지나
고부터는 우당탕 소리 내어 흐른다. 어디서 땀에 찌든 낯을 씻을까? 연신 계류를 기웃거리며 내린다. 당분간은
계류가 매우 깊다. 임도는 농로로 이어지고 아울러 숲길 벗어나 땡볕을 안고 간다. 신전교 아래가 천하명당이
다. 자갈 둑 내려 다리 아래로 가니 교각에 너른 터가 마련되어 있고, 그 옆으로 옥수가 반석을 넘쳐흐른다. 계
류가 차디차다. 두 번 자맥질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가평동 버스종점까지 직사의 땡볕을 안고 가는 농로가 1.5km나 남았지만 충분히 냉동하여 발걸음이 한결 여유
롭다. 농가 울밑의 화초나 구경하며 간다. 가평동. 장평 가는 버스는 정시에 우리를 태우러 달려온다. 오늘도 장
평까지 승객은 우리 둘뿐이다.
21. 육백마지기에서 조망
22. 오른쪽 중간쯤이 성마령(?)
23. 왼쪽 뾰쪽한 봉우리가 성마령(?)
24. 육백마지기에서 조망, 저 속에 정개산, 만지산, 백운산 등이 있다.
25. 육백마지기
26. 말나리
27. 청옥산 내려 벽파령 가는 풀숲 길
28. 벽파령에서 내리던 중 임도를 만나 임도 따라간다
첫댓글 모기에 몸보시 하시고 더운날 고생 많으셨네요
청옥취는 서덜취로 부르기도 하는데 저도 가끔 채취합니다
태백 정선에서는 알아주는 나물이기도 합니다
예전과는 달라서 이래저래 모든 산이 힘듭니다.^^
청옥산에는 곤드레(고려엉겅퀴)가 많이 난다고 하네요.
무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만만하게 봤다가 혼쭐(?)이 난 산행이었습니다...올 여름 첫 알탕은 역시 탁월했구요^^
남병산이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초반에 녹아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