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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성가신 그대, 안경 강 성 희
나와 안경과의 만남의 역사는 내가 세상을 만난 역사와도 같을 만큼 길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안경을 썼다는 말은 아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안경을 쓰셨다고 하시니, 아버지와의 첫만남에서 안경과도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것이다. 내가 일생의 연인, 첫안경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열일곱해가 지난 어느 날이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만 해도 내가 눈이 나쁘다고 느끼거나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없었다. 작은 키 탓에 항상 앞에서 두세번 째 자리에 앉아서인지 칠판의 글씨도 잘 보였고, 집에 TV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멀리 있는 물체를 식별해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있는 물체나 건물, 산들은 그냥 경치이므로 보이는 대로 보면 되었고, 자세히 식별하며 볼 필요는 없었다.
한 교실에 80명 90명이 되는 학생이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키, 몸무게, 시력검사와 같은 신체검사 과정이 있었다. 그 때의 시력검사도 숟가락 모양의 기구로 한 쪽 눈을 번갈아 가리고 일정 거리의 숫자나 기호를 읽는, 지금의 검사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졌었다. 시력이 1.5인 친구들이 많았고. 2인 친구도 있었다. 나도 시력검사 결과가 1.2와 1이 나왔으니 시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건 중1과 중2 시절 잘못된 독서 습관에 의해 비롯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나니 내가 갑자기 대단한 신분 상승을 한 것 같고, 초등학교생 때와는 다른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자존감과 자부심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골목에 나가서 노는 일을 삼가게 되고 하교 후에는 주로 집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러니 할 일이 책을 읽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여고생이었던 언니가 읽는 책들을 분별없이 통독을 하며, 의미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따라 읽었다. 대부분 근,현대 문학소설이었는데 책을 한 번 잡으면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이 정도는 읽어 줘야지’하는 공명심과 의무감으로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 까지 밤이 늦도록 독서를 했다. 지금처럼 조명이 좋은 시절도 아니고 책상에 앉아 읽다가, 누워서 읽다가, 엎드려 읽다가 하는 동작들이 반복되면서 책과 눈과의 거리는 점점 초점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내 시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언젠가부터 칠판의 글씨가 흐려져 보이고, 등교 버스를 기다릴라치면 버스 번호가 잘 안보여 버스를 놓치기도 하면서 내 시력이 많이 나빠진 걸 깨닫게 되었다. 한 번은 저 앞에서 오는 젊은 남자가 우리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작은 외삼촌인줄 알고 손을 흔들며 웃으며 다가갔다가 낯선 남자였음을 알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무참하기도 했었다. 또, 길에서 선생님을 만나도 선생님이 먼저 알아보시고 인사를 하실 때 까지 꼿꼿이 고개를 들고 지나치는 예의없는 학생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차마 안경을 쓸 자신이 없었다. 우리반에 안경쓰는 친구가 한두 명 정도였을 만큼 안경을 쓴 여학생이 흔하지 않았고 우선 내가 안경이라는 물체를 내 얼굴에 걸치고 싶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여자들이 안경 쓰는 걸 터부시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나라의 안경 역사가 400년 정도 되었는데 조선 시대 그 당시에는 남자들이라도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나 연장자, 신분이 더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안경 예절이라고 했다니 여자들이 안경을 쓰는 것은 당연히 허용이 되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부모님께 시력이 나빠졌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고 그럭저럭 지나고 있었는데, 고1 늦가을 쯤이었던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신 아버지께서 “성희 너, 왜 그렇게 바짝 다가앉아 TV를 보고 있지? 뒤로 좀 나가 앉아서 봐”하는 말씀을 하셨다. “뒤로 가면 잘 안보여요.” 하는 대답에 아버지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럼 너 칠판 글씨는 잘 보여?”하고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눈을 좀 찡그리고 보면 돼요. 하고 말씀드리니 “그래서 네가 요즘 자주 콧잔등을 찡그리고 보는 버릇이 생겼구나”하고 정색을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그 날로 나를 안경점으로 데리고 가셨다.
안경점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안경테들이 진열장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구 선생님이 생각나는 동그란 안경테, 타원형, 긴네모형, 뿔테와 금테등 금속으로 된 안경테도 있었다. 안경테의 모서리가 좀 더 부드럽거나 각지게 처리하거나 하는 라운딩 방법에 따라 안경 썼을 때의 표정이 많이 달라져 보였다. 뿔테는 색상도 다양하고 예뻐 보여 나는 뿔테가 많은 진열장에서 나의 안경이 될 테를 하나 찾아내었다.
그렇게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밀착 경호하는 <안경>이라는 연인 아닌 연인을 만나게 되었다. 투명한 연보랏빛 안경테의 내 첫안경을 써 보았을 때, 갑자기 환해지고 분명하게 비쳐지는 세상과 물경의 명쾌함에 마음이 다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경을 쓴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았을 때, 내 모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에 빨리 안경을 벗어 버렸다. 그러자 안경사 아저씨가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지 말고 잠잘 때 외에는 늘 끼고 있는 버릇을 하라고 하셨다. 자꾸 썼다 벗었다 하면 눈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그리고 안경을 관리하는 법과 깨지기 쉬운 물건이니 소중히 다루라는 말씀도 하셨다.
안경을 쓰고 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행여 아는 친구를 만날 까봐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안경을 쓴 내 모습을 보고 식구들이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예쁘네, 조금 도도한 여학생 같아 보여서 더 좋았어.”하며 언니가 칭찬을 했을 뿐, 엄마는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셨고 두 남동생들은 재밌는 원숭이를 쳐다보듯 웃으며, “누나, 공부 디게 잘하는 학생인 줄 착각하겠다. 다른 사람들이.”하며 놀렸다. 그 중 제일 치명적인 인사는 “가뜩이나 못내미 얼굴에 안경을 쓰면 우리 못내미는 이제 누가 데려 가나? 시집은 다 갔네.”하는 평소에 나를 끔찍이나 예뻐해주던 복학생 외삼촌의 말이었다.
안경을 막상 착용해보니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좋은 점 보다는 불편하고 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등교하던 날은 늦가을 치고는 날씨가 초겨울처럼 쌀쌀했다. 멀리서 보아도 커다랗고 환한 번호판을 단번에 식별하며 의기양양하게 버스에 올랐는데, 갑자기 앞이 부옇게 시야가 안보였다. 그래서 얼른 안경을 벗어 보았더니 렌즈에 부옇게 김이 서렸다. 그 날 뿐 아니고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도, 따뜻한 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올 때도 렌즈가 흐려져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야 하는 창피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체육시간에는 땀이 나서 부옇게 흐려졌고 땀에 미끄러져 내리거나 친구와 부딪칠까 불안했다. 항상 안경 닦는 수건을 넣어 다니며 수시로 닦아 주어야 했고 벗어둘 때도 다치지 않을 안전한 곳에 소중히 두어야 했다. 정기적으로 시력 검사를 한 후 렌즈를 바꾸어 줘야 함도 귀찮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안경은 테가 없는 무테 안경이어서 착용감이 가볍고, 안경테로 인한 인상의 변화가 적은 점이 좋아 10년 이상을 계속 무테 안경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무테 안경의 단점은 항상 두는 자리에 두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망증이 스멀스멀 심해지는 60대가 되어서는 외출하기 전에 안경을 찾느라 한바탕 부산을 떨기 일쑤이다.
중요한 일을 할 때면 꼭 찾는 안경,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붙이고 다녀야 하는 누구보다 더 친밀한 연인, 그러나 안경은 나에게 사랑을 받기보다는 늘 성가시는 존재로 여겨졌었다. “이 놈의 안경, 좀 안쓸 수는 없나” 기회만 되면 배신할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고 살았다. 배신을 위한 시도도 했었다. 나를 닮아 안경을 쓰는 두 아들이 라식 수술을 하고는 “엄마도 해 보세요. 너무 좋아요.” 하는 말에 안과에 가서 상담을 하니, 나이가 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포기를 했다.
어쩔수 없는 내 운명같은 사랑, 안경. 너무 늦었지만 말해주고 싶다. “내 눈이 되어 줘서, 내 눈을 지켜 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고. 그러나 또 언제 마음이 변해 “이 놈의 안경”하며 성가셔 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끝)
첫댓글 안경과의 인연, 누구나 겪은 비슷한 경험들을 재미있고 섬세하게 그려 내셨습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젠 평생의 반려가 된 안경을 고마와 하고 나름대로 안경의 멋을 가꾸어 가야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는 대학다닐 때까지 안경쓴 친구를 부러워했습니다. 교직생활시작하고 부터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착용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은 내가 멋내기용으로 착용하는걸로 오해한 적이 많았습니다.실제로 안경을 착용하니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 아닙니다. 해외여행가서 안경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야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 해프닝도 있었습니다.정말 선생님 글 처럼 안경은 미워도 가까이할수 밖에 없는 반려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가시지고 귀찮지만 멀리할 수 없는 안경 내몸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안경과 인연, 아버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안경에 얽힌 에피소드를 재미있고 리얼하게 전개 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경을 쓰게 된 내력과 안경 착용으로 인한 애환을 솔직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아무리 안경이 이롭다 한들 자기 눈보다 못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안경과 함께 살아온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저렴한 안경으로 세상을 밝게 보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고시절부터 안경과 함께한 인생사를 진솔하게 풀어 놓은 글을 읽게 되니 '제2의 눈' 안경은 성가셔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생길의 반려자 처럼 느껴집니다.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잘 읽었습니다.
안경을 쓰게 된 내력을 읽으며 당시의 생활상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안경을 공부 잘하는 아이의 표상이었는데 왜 스기를 싫어했는지? 시집 못갈 봐 걱정되서? 그래도 끝내 안경과 결혼 했네요. 안경과의 생활이나 시집살이나 비스ㅅ한 게 아닐런지.잘 읽었습니다.
안경을 주제로 한 다양한 사연의 글 정말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
안경을 쓰는 사람만의 동질감으로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을 쓸때를 재외하고는 안경을 쓰지 않아 안경의 유행 안경을 챙겨서 외출하는 경우가 없어서 고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동서끼리 여행을 가서 렌즈를 갈무리하는 것을 보고 참 불편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내 몸에 일부분이 안경이라는 글을 읽고도 그래도 한때는 안경쓴 아이들이 참 멋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1 부터 현재까지 밀착 경호를 받고 계신 안경에 대해 세세하게 쓰셨습니다. 기억력도 좋으시고 문학책을 통독하시던 문학소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눈을 아끼고 정기검진 등 보호하는 노력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