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행복을 위한 진리, 십자가와 부활
신명 30,15-20; 루카 9,22-25 /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2023.2.23.; 이기우 신부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신명 30,15). 오늘 독서에서 들은 이 철학적인 말씀은 오늘 복음과 연결되면 종교적 진리가 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죽음과 불행을 피하고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자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으며, 이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나서 이를 슬기롭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이 바로 부활의 삶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은 모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의 문제에 대해 깊이 사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이렇듯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한 사색의 물결이 동서양 모두에서 크게 넘실거렸습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사상가들이 이를 논했습니다. 에피쿠로스(Eprcuros) 학파에서는 주류 아테네 귀족들의 생활풍조를 반영하여 행복을 합리적으로 즐기면서 살자던 사색이 주를 이루었고, 그리스 변방 시민들의 소외된 처지를 대변한 스토아(Stoa) 학파에서는 인생의 모든 기회를 절제하며 살자는 사색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인도와 중국의 사상가들이 돋보입니다. 부처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행을 초래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추구했고, 후대의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팔정도(八正道)라 불렀습니다. 그에 비해 중국의 주류를 대변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는 인간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했는데, 후대의 유가(儒家)에서는 이를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 불렀습니다. 재야의 비주류를 대변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는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신분을 차별함으로써 관계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던 유가를 비판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를 강조했는데, 후대의 도가에서는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동양에서도 한국은 인도나 중국보다 더 이른 시기에 하늘의 뜻을 제사로써 알아보고 나서 깨달은 바를 온 백성이 고루 누려야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천손의식(天孫意識)에 대한 사색이 움텄습니다. 그리스는 물론 불가, 유가, 도가 등 모든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현세의 차원 안에서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의 문제를 추구한 데 비해서, 한국의 고대 현자들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봄으로써 내세의 차원으로 사색의 지평을 넓히고 종교적 경지로 이 사색을 끌어올린 바 있습니다. 불가의 가르침을 불교(佛敎)라, 유가의 가르침을 유교(儒敎)라, 도가의 가르침을 도교(道敎)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내세의 차원을 전제하지 않고 있고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철학적 사색입니다.
절대자의 뜻을 추구한 또 다른 사색의 흐름은 히브리 사상가들이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문명과 자웅을 겨루며 충돌했던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고 페르시아 등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오랜 세월 동안 지배를 받은 쓰라린 체험을 숙고한 끝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전승을 성찰하여 창세기를 저술했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온갖 행복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에 죽음의 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하느님과 함께 살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일로 상징되는 바, 바로 하느님과의 통공이 끊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히브리적 사유(思惟)가 그리스적 사유는 물론 불가와 유가와 도가 등 앞서 언급한 모든 생활철학적 사유를 능가하고, 한국의 사유와 상통합니다. 하늘의 뜻을 추구했기 때문에 히브리적 사유와 한국적 사유만이 비로소 진정한 종교의 경지에 이른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유를 새로운 도약으로 이끄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빵이셨으므로 성체성사를 통해 이 생명을 먹고 마시면 영원한 생명으로 살 수 있다고 장담하셨습니다. 따라서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예수님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부활에 참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에 대한 해답입니다.
이를 반영하여 사순시기에 많이 부르는 성가가 있는데, 그것이 ‘수난기약(受難旣約)’ 노래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하고 죽으니 우리들은 통회하여 보속과 사랑 드리세”라는 가사가 그 안에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기까지 했다는 대속(代贖)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해야 한다는 대속의 진리가 오늘날 우리 신자들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 성가가 일깨워주는 지향대로,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돌아가려는 간절한 마음을 회복해야 하는 거룩한 때입니다. 소극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여 살아가려는 마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동서양의 현자들이 보여준 사색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입니다.
첫댓글 고정댓글: 이토록 훌륭했던 우리 민족의 사유를 바탕으로 생겨난 정신 전통이 왜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했는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요한복음서의 주해와 묵상을 집필하면서 신앙 토착화의 관점을 정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세워진 국가 고조선을 47대 단군이 2300여 년 간 다스리면서 '천부경'이라든지 '낙서' '하도' 등에 역법으로 발전시켜서 확립해 놓았는데, 철기 문명이 시작되면서 국내가 큰 변동을 겪게 되어 더 이상 귀족 세력에 의한 평민 통치가 어려워지기도 했고 철기를 문화를 군사력으로 조직화시킨 중국 한 왕조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고조선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고조선의 문물을 전수받으면서 왠만한 것은 자기 것이라고 위장을 하면서 고조선의 문헌들은 죄다 불태워버려서 남아 있지 못합니다. 사마천의 사기마저도 정사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왜곡이 보통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천부경'조차도 신라 시대 최치원이 바위 위에 조각해 놓은 것을 필사해서 후대에 전해주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은 그런 짓들을 잘 합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 제일 잘 정리해 놓으신 학자가 윤내현 교수입니다. 지금도 윤교수의 '고조선 연구'를 읽으며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회사 전공으로 고조선 문명론을 처음으로 주창하신 신용하 - 강단사학의 식민사관을 고발한 이덕일 - 고구려의 해양활동을 부각시키며 고조선을 원조선으로 부르는 윤명철 같은 학자들의 글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제게 드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고조선의 문물이 남아있지 못한 것은 중국의 침탈과 역사왜곡 탓이기는 하지만, 고조선의 단군 왕조가 2300여 년 간 존속한 것만 해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이 길고 안정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고구려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에 불교를 도입하면서 유교와 도교도 따라 들어왔는데, 이들의 정교한 지적 체계를 따라잡을 만한 학자나 예언자가 고조선 시대와 고구려 시대에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최고선일 공경하던 정신 전통은 고작 무속(Shamanism)화 되어버리고 지배층과 지식층은 외래 사조에 함몰된 채 조선 시대까지 내려왔습니다.
이런 뼈아픈 역사와 정신 전통을 꿰뚫어본 이가 정약종입니다. 그는 형 약전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전해받고는 약전에게 천주교를 가르쳐준 이벽을 직접 만나서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천진암 강학회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교와 도교의 전래 과정은 물론 그 지적 체계와 정신적 흐름을 통달해 있었던 처지라서 형 약전이나 동생 약용보다 신앙의 정진 속도가 더 빨랐고, 그래서 '천주실의'나 '성교요지'를 소화하고나서 순한글로 '주교요지'를 펴낼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두뇌가 영민했던 황일광 시몬과 '교우'로 교제하며 서민들 속에 반만년 가까이 전수되어온 민간의 신앙 또는 종교적 심성을 배워서 썼기 때문에 무속에 대한 신앙적 식별작업이 훌륭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최고신을 공경해온 정신전통은 계승하면서 그리스도 신앙으로 보충하고, 미신행사로 전락한 무속신앙을 배격해 내는 신앙 토착화의 지성적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약종의 '주교요지'에 주목하고 있고, 우리 신앙의 선각자들이 이처럼 대단한 신학 작업을 해 낸 역사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서와 복음을 보면 주님은 생명이시고 주님의 길을 따라 계명과 법규에 충실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길이란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길이라는 말씀으로 요약될 것 같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대속의 삶을 살아가셨던 예수님의 모습도 따라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사유와 히브리적 사유의 공통점을 통해 하느님이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분이심을, 그리고 우리에게 도도히 흐르는 하느님 신앙의 근원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결합이 문명을 높였듯이 우리의 사유와 히브리적 사유의 결합이 하느님 신앙의 시너지를 내기를 기원해 봅니다.
네, 제대로 보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사유가 하느님 신앙을 고수해 온 히브리적 사유와 함께, 우리 신앙 선조들이 중국에 파견되었던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 문물을 파악한 실사구시적 사유와 결합되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우리와 함께" 책자를 잘 받았습니다. 올해가 가해라서 아날로그식으로 강론을 편하게 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오늘의 디지탈 강론과 똑같지는 않군요. 정약종의 주교요지가 현대어로 정리된 자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보고 싶군요.
전주 교구 정태현 신부님께서 풀이해 놓으신 책을 추천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신으로 자처하신 적이 없었고 공자님께서도 내세에 대해 가르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불자들이 부처의 신격화를 추진하고 후대의 유림들도 공자와 조상을 위한 제사를 내세와의 통공 수단인 양 교조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는 볼자들과 유림들 안에서도 신적인 현존에 대해서나 내세적 영원 내지 영적인 통공에 대해서 생겨난 깊은 갈망을 대변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생활철학적인 가르침들을 자연종교라고 부르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몸소 삶으로 가르치신 그리스도교를 계시종교라고 불러 구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