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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철학가, 파르메니데스 영감, <철학 수필, 시 한 편> 햄릿, 있음. 없음의 위대한 깨달음
호프맨 작가
역사상 가장 먼저 있음과 없음을 철학적인 명제로 제시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파르메니데스이다. 그의 철학이 존재론의 사유에 대한 서막을 올렸다. 그의 철학은 소크라테스를 거쳐서 플라톤에게 영향을 주었다.
동양에서도 공의 사상이 있었고 노장사상의 공 사상과 달리 불교철학의 공사상도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사유의 철학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렇게 거대한 존재론, 인식론의 사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있음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사유하고 싶을 뿐이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음은 물론 파악할 수도 없다. 이는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린 무엇이 없다는 생각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없음' 그 자체를 결코 머리에 그릴 수는 없다. '없음'이 없으니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기에 세상엔 '있음'만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있음'이 여럿 존재하려면 그 사이사이에 '없음'이 있어야 하므로 '있음'은 하나 뿐, 즉 존재는 통일성을 갖춘 하나라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통일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를 일자一者라 불렀다.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고 이러한 무시무종의 우주관은 파르메니데스의 예에서 보듯, 서양에서도 플라톤 이전의 자연주의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했다. "
(백과사전 인용)
기원전 515~460 / 파르메니데스
나에게 있음과 없음도 커다란 명제가 된다.
있음은 갖고 있는 것을 깨닫는 감사함이다.
없음조차 있음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사함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갖고 있는 것을 망각하고 갖고 있는 것의 가치를 무시하면 안 되겠다.
있음과 없음은 소유의 개념보다 깨달음과 유지 보수 성장의 개념으로 보고 싶다.
위대한 깨달음도 있음을 알고 없음을 무시하지 않는 것에서 동시에 싹트는 것이 아닐까!
없는 것을 탐하지 말자. 이제 중년의 나이에 물질적인 부자가 되는 것은 다다르기 어려운 꿈이 되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재산을 늘리는 것은 포기하게 된다. 오히려 있는 재산을 잘 지켜가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 흔한 골프채도 내게 의미가 없다. 골프장에 서있는 것은 좋으나 골프채를 휘날리는 것을 못 배운 때문이다. 그 골프 라운딩의 비용을 쓰는 것보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인문학적인 풍경을 위해서 여행비에 돈을 쓰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어떻게 벌 것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중요한 나이가 되어간다.
스포츠 정신이 없는 것에 목메고 싶지 않다. 원래 운동 체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병원 신세 없이 잘 살고 잘 먹으면서 늙어가길 바랄 뿐이다. 에너지가 넘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발이 튼튼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1시간 걷기 운동을 할 수 있고 벤치에 쉴 수 있음을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달리기 운동 체력은 없지만 대신 천천히 걸어갈 수 있음에 만족하고 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있는 것을 더 크게 쓸모 있게 만들어 가는 노력이다. 있음을 인지하고 간직한 것을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다. 그러한 있음은 보통 자주 활용하면 자신의 장점이 되고 만다. 예를 들면 혼자 있을 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 있음을 찾아내고 갈고닦는 일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이미 삶의 가로 세로 축이 되었고, 피아노 연습도 그 가로 세로 축을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취미생활이다. 이렇게 연결되는 삶이 있음은 은총이다. 글을 쓰면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피아노를 연습하면 음악가, 뮤지션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행복해진다. 작가 노릇, 뮤지션 노릇으로 나의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어디서 읽은 글귀인데, 삶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했다. 이 생애 한 번뿐인 이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직업이라면 우리 모두 직업정신이 있어야 한다. 직업정신은 곧 장인 정신이어야 무르익는 과실을 따올 수 있다. 대충 살아서는 수확할 수 없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삶을 장인 정신으로 살아가면 장인의 기술, 달인의 재능이 생기게 되고 그 재능과 기술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삶의 깊이와 두께가 다르다. 얄팍한 삶에 만족할 것인지?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재능을 깊이 있게 다듬어 갈 것인지 우리의 선택이다. 남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스스로 즐기면 된다고 공자는 군자다운 삶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였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자신이 소유한 있음을 스스로 찾고 기뻐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있음과 없음을 갈라서게 하지 말자
있음과 없음을 다투게 하지 말자
있음을 감사하고
없음을 받아들이면
살아내는데 내가 존재한다
있음과 없음을 인정하기에
삶은 넉넉해진다
있음과 없음은 공존할 수 있다
공존은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있음을 갖고 싶으면
없음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서로가 있음과 없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삶은 속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억지로 꾸미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가장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당당해지자
삶의 직업은 장인 정신이다
있음을 갈고닦으면 그만
없는 것에 공들이지 말자
장인 정신은 과감하게 졸작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살다 보면
타인을 훌쩍 넘보게 된다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있는 것도 달아난다
있음과 없음은 공존의 조화이리라
나를 사랑하는 척도이리라
없음을 탓하지 말고
있음을 아끼게 되리라
정상에서 내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가온다
그곳에 오르고 싶다면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있고 없고는 아직 모른다
마지막 날이 오기전에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
이어지는 터널의 출구와 입구
그 모두를 사랑하고 싶다
이 생애 우리의 직업이기에....
호프맨작가의 산문시 <있음과 없음>
<햄릿>은 To be or not to be : 있을 것이냐? 없어질 것이냐?의 고민을 그의 '삶의 존재과 죽음(소멸)'의 철학자로 이 유명한 대사를 후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존재, 아니 주변의 모든 존재들의 의미, 사라지는 것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깊은 통찰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존재하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인지? 소멸해야 하는 것이 정답인가? 갈등하던 햄릿은 그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이 생애에서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비극은 철학의 질문과 답변이고, 새로운 탄생을 위한 비이성적인 디오니소스적인 연극이겠다. 결국 우리의 존재와 소멸의 성찰은 이성만으로 해결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생애 그 마지막 순간에는 그 답변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