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7만 원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하는 ‘도이칠란트 티켓’
지난해 독일에서 대박 난 특가 상품이 ‘9유로 티켓’이다. 한 달간 9유로(약 1만3000원)를 내면 독일 내 거의 모든 열차와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독일 시내 대중교통 기본요금이 3유로이니 세 번만 타면 본전 뽑는 셈이다. 지난해 6∼8월 시범적으로 한정 판매됐는데 5000만 장 넘게 나갔다. 9유로 티켓의 흥행에 힘입어 1일에는 정규 상품인 49유로짜리 ‘도이칠란트 티켓’이 등장했다.
▷월 49유로(약 7만2000원)인 이 티켓이 있으면 고속열차(ICE), 도시 간 특급열차(IC), 고속버스를 제외한 모든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제한 탈 수 있다. 지자체별 월 정액권(100유로)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면서 독일 전국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는 열차 3번을 갈아타면 8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다.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300만 장이 나갔고, 외국인도 구매 가능해 배낭여행족의 필수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선 9유로 티켓이 등장하기 전에도 ‘1일 1유로 티켓’이나 ‘무상교통’ 실험이 이어져 왔다. 대중교통 이용을 늘려 기후위기를 막자는 취지에서다. 1km 이동 시 탄소배출량이 승용차는 210g인 데 비해 버스는 27.7g, 지하철은 1.53g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 위기에 물가가 폭등하자 서민들 교통비 부담을 덜어줄 겸 전국 단위의 월정액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9유로 티켓 시범 운영 결과 물가상승률이 0.7% 감소하고, 대중교통 이용률은 25% 증가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80만 t 줄었다고 한다.
▷무상교통을 도입하는 나라는 늘어나고 있다. 룩셈부르크가 2020년 세계 최초로 대중교통 요금을 폐지했다. 미국 캔자스시티, 프랑스 됭케르크, 에스토니아 탈린시는 무상교통을, 오스트리아는 월정액 제도를 부분 시행 중이다.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룩셈부르크는 무상교통 시행 후로도 자동차 이용량이 줄지 않았다. 독일 9유로 티켓 도입으로 걷거나 자전거 타던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기존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이동 거리가 늘었을 뿐 자동차에서 대중교통으로 갈아탄 수요는 미미하다고 한다. 재정적 지속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국내에선 세종시가 처음으로 2025년 무상버스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버스 이용을 장려해 서울의 두 배 수준인 승용차 수송 분담률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이 33%로 답보 상태이고, 대도시의 경우 교통 혼잡으로 인한 비용이 연간 43조 원으로 증가 추세다. 독일의 49유로 티켓, 세종시의 무상버스 실험이 혼잡도를 줄이고 기후위기도 막을 대안이 될지 주목된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