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0학번이다.
지방 국립대 토목공학과 나와 96년 11월 서울에 취직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큰 흉터로 남아있는 IMF..
그전의 사회 분위기와 직장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재 젊은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IMF 이전의 우리사회는 우리 학번 동기들이 공무원 지원하면 바보라 했던 시기였다.
과 수석이 동아건설에 지원했을 정도고 다들 취업도 잘되었던 시기다.
공무원은 고시 아니면 별로 들어갈 생각도 안했다.
IMF 전 사회에 진출한 우리는 모두 지금은 말도 안되는 평생고용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월급날이면 전 직원이 근처 호프집에서 일차로 생맥주 마신 후 끼리끼리 2차 가던 시기였다.
사회 전체는 활기가 넘쳤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다.
사회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평생고용으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것 같던 회사는 나의 다음 달도 보장해 주지 못했다.
이직하고 이럭저럭 버티고 버티면서 서울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이 있던 양재동 근처에 내곡동과 가까운
염곡동에 전세를 살면서 부동산에 대해 처음한 생각이 지금 생각하면 참 판타지에 가깝다..
당시 내 연봉은 1천6백 이었고, 전세는 집에서 보조해 줘서 2천5백이었다.
서울 변두리 25평대 빌라와 18평 소형 아파트는 1억을 넘지 않는 돈으로 살 수 있었다.
착실히 저축하고 오르는 월급을 감안하면, 30이 되기 전에 5천은 모을 자신이 있었고,
당시 결혼을 했다면 대출 조금 하여 넓은 빌라를 사거나, 미혼이면 소형 아파트 하나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IMF로 주변이 혼란스러워져 저축도 계획대로 힘들었고 직장 3년 동안 2천만원을 모으고
이직을 하면서 나의 첫 직장과는 인연을 끝냈다.
99년 두 번째 직장은 삼성역에 있었고, 전세금과 모은 돈을 털어 잠실 1단지 10평 아파트에
4천5백에 전세를 살았다. 이때 아파트 가격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무려 9천8백이었다.
두 번째 직장은 돈은 잘 주었지만, 이쪽 토목설계 계통이 야근이 많아 요령 없는
나로써는 정말 연애할 시간도 없고, 조금 나는 시간에 아가씨를 구워 삶지도 못했다.
이러다 장가 못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서울 올라올 때 생각이
사람이 서울생활은 한번 해봐야 할 것 같기에 올라온 것이고 언젠가는 고향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로 맘을 먹었고
마침 고향 근처인 대전에 일자리가 생겨서 낙향을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99년 1억을 넘지 않던 잠실 주공 1단지 아파트는 2002년 2억 4천으로 올라있었다.
여러 사정으로 이사해야 했던 나는 바쁜 직장생활 중 주변이 이렇게 변한 것을 몰랐었다.
만약 내가 5천만원만 대출을 받았다면 거기 있는 2년 동안 난 1억4천의 차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지난 6년간 저축한 돈이 4천5백이었던 것을 생각하니 너무 황당했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에 나는 너무 허탈했다.
단지 대출금 5천만원이 나의 지난 6년간 수많은 야근과 노고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이 나는 젊은 날 연애할 시간도 없이 나의 시간을 다 소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사할 지역으로 다시 예전 염곡동을 선택했다.
거긴 다행이 전세 값이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번 돈 모두를 수원 영통동에서 분양한
14평 아파트에 넣었다. 그리고 1년을 더 서울에 머물렀다.
7년 서울 생활을 접으면서 내가 손에 쥔 돈은 모두 1억 2천만원이었다.
내가 노동해서 번 돈은 5천2백이 조금 넘었다. 나머지는 수원 아파트를 처분하고
남긴 시세 차액이었다.
솔직히 난 2003년 11월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올 때 이건 상황이 어찌됐건
현재 상황은 미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노동한 7년보다 투기로 얻은 금액이 더 큰 것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사회생활을 통해 배운 것을 고려할 때 시류에 이길 수 없으니
일단은 분석하기로 했다.
사족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때 만난 책이 김광수 소장님의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1, 2”였다.
이때 김광수 소장님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옳은 소리란 생각은 있었지만,
정말 그때의 경고대로 세상이 이상해질까 하는 의문은 있었다.
그 사이 나는 고향 근처에 서울의 수익을 종잣 돈 삼아 원룸도 사고,
청주에 재건축 아파트도 매매했다.
옮긴 회사는 경기가 나빠져 결혼한 나에게 그럭저럭 입에 풀칠만을 허락해줬지만,
나름 수행한 투자는 이걸 보충해 주어 현재 중산층의 삶을 누리게 해주었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나의 삶을 쓸데없이 길게 쓴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나는 일단 운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정상이 아니란 생각에서다.
내가 처음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난 불알 두 쪽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노력만 하면 서울 한 구석에서 내 힘으로
터전을 잡고 살 수 있을 것이란 것에 아무 의심이 없었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의 경험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사회초년생 중 서울 어디 한구석에 자기 힘으로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과거 김광수 소장님의 예언대로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저출산, 고령화는 당연한 문제가 되었고, 나의 지난 15년이 최소한
안전한 대한민국이었다지만 향후 15년도 안전한 사회로 남아 있을까?
이렇게 쌓이는 내재된 사회적 갈등은 좀 더 경찰국가로 전환되지 않으면
수습 불가능하게 되어 미국에서 발생한 폭동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지난 과거 나의 수입을 보더라도 어째서 내가 정상적으로 일하여 번 돈이
투기와 투자로 벌어들인 단지 숫자로 표현되는 돈 보다 작았던 것인가?
이러한 불노소득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는 내가 번 불노소득이 한 푼 없었더라도 그 돈을 내 노동으로 벌 수 있었다면
그러한 사회가 훨씬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토목설계 하는 사람들 수많은 야근에 시달린다.
물론 IT 업종은 더 하단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도 기득권에 속해 합리화 하는 것이지만, 나 스스로는 지금의 불노소득이
이렇게 보상받지 못한 나의 노동의 댓가라고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는 사람 값이 올라간다면 난 나의 불노소득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사회체계에선 나의 불노소득이 없으면 나도 중산층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큰 불행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그 변화의 출발은
모든 사회체계를 왜곡한 부동산의 변화가 필수란 생각을 한다.
어디 하소연할 곳 없어 두서없이 쓴 글~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긴 넋두리 읽어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뭔가 사회가 변해야 하고 예전에 내가 느꼈던 희망찬 감정을 지금 사회초년생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에 마구 써봤습니다.
첫댓글 투기자금이 곧 정치자금이지요
저도 90학번인데 정말로 공감가는 얘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91학번 저도 공감가는 얘기네요
어찌하여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지
90학번..x세대들 여기 다 모이네요. 미툽니다. 반갑네요.
잘 읽었습니다.
지질이도 운없는 세대..
전 우리 세대가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다닐 때 경제성장의 결실로 부모님의 풍족한 지원을 받기 시작한 세대이고 보니
X-세대로 대표되며 386세대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웠으며,
사회진출 역시 3저 호황의 끝물에 그나마 가장 쉬웠던 세대입니다.
다만 진출 후 고생했다지만 지금 진출 자체가 어려운 젊은 세대와 비교하면
황송하지요...
근데 말입니다. 그 점은 다 자기가 느끼기 나름이라고(사람마다 다르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른법이에요. 그러니까 세대별로 딱히 비교할순없다고 봐요.
모 굳이 굳이 비교한다면야 노무현정권때가 한국건국이래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웠다는점이 있긴하겠지만요.
92 학번입니다.
변화무쌍한 시간을 살았지요.
덕도 보았지만
다들 그래서 생각없이 산 면도 있습니다
공감이 됩니다
저도 그 학번 .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학번들은 다 그래도 정규직 앤드... 다 먹고 살만한 것 같습니다. 우리시대는 그래도 대학들어가기 힘들었구요. 졸업후 딱히 취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는데도. 대학못간 친구들도 다들 나름 먹고 사네요. 근데 지금 졸업하는 친구들은 많이 힘든가 봅니다. 교대나 간호학과 또는 의사 약사이외에는 마땅한 직업을 찾는 여자애가 정말 적더군요. 공부 정말 잘했던 애도 취업이 안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물론 눈높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들어간 자리도 눈높이에 안맞았으니, 하여튼 우리친구들은 다들 그래도 먹고 살만합니다. 지금 졸업하는 친구들은 너무 힘들 것 같애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공감합니다.
노동 소득이 불로소득에 비해 엄청나게 적었던 시기였죠. 그리고 그런 불로소득을 투자 소득이라며 미화해왔습니다.
지금 불로소득없이 유지할수 있는 중산층이 물론 있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나요 줄어들고 있나요.
이곳에서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주장하시던 분들,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투자하고 계신가요? 말과 행동을 일치하고 그런 소리를 하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