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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흰머리 독수리/ 김현희
은하수 추천 0 조회 64 17.11.07 20: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흰머리 독수리/ 김현희

 


결혼 피로연장
중앙에 자리 잡은 독수리 한 마리
금세 날아오를 듯 활짝 날개를 펼치고 있다

바람이 묻어있는 커다란 날개는
단숨에 하객들을 제압했다

 

갖가지 소음에도
칠캣*의 피를 물려받은 제왕의 품위가 의젓하다

 

초원을 지휘하던 날갯짓, 칼끝에서 다듬어진 깃털이 섬세하다
칠캣의 물맛을 기억하는 투명한 피
한 줌이 내장도 없는 독수리가 날카로운 부리를 들이댄다
냉동창고에서 부화된
싸늘한 야생의 발톱으로
그는 아직 무거운 날개를 쳐들고 있다

 

번뜩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풍경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달아오른다
연이어 터지는 플래시에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저 얼음제왕
굽은 부리가 서서히 녹고 있다

 


* 미국 알래스카에 있는 흰머리 독수리 보존 구역


- 계간문학마을2012년 가을호

................................................................

 

 흰머리독수리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북부, 그리고 북아메리카 동북부의 해안이나 호숫가에 주로 서식하는 하늘의 최상위 포식자로 미국을 상징하는 국조다. 동전에도 새겨져 있고 대통령 문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달러화에는 한쪽 발톱으로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쥐고 있고, 다른 쪽 발톱으로는 힘의 상징으로 13개의 화살을 거머쥐고 있다. 13개 화살은 미국이 독립할 당시 13개의 식민지 주를 의미한다. 또 부리에는 라틴어 문장을 물고 있다. ‘E pluribus unum’여럿이 모인 하나라는 뜻을 가진 미국의 건국이념이다. 이주민이 모여 구성된 미국은 서로 다른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란 뜻이다.


 독수리 중에 왕이라 부르는 흰머리독수리는 원래 인디언들이 우상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새였다. 1782년 미 의회의 국조 선정 과정에서 당초 흰머리독수리의 경쟁상대는 칠면조였다. 종교 박해를 피해 미 대륙으로 처음 이주할 당시 청교도들은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칠면조는 그 감사의 표시로 인디언에게 대접했던 음식이었다. 원주민에게 신성한 동물이었던 흰머리독수리와 초기 이민 시절 화합의 뜻을 가진 칠면조는 각각 원주민 박해와 학살의 과거를 반성케 하는 뜻 깊은 동물이었다. 선정을 위한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의회는 조류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두 새의 특징을 비교토록 했다.


 전문가들은 칠면조가 암컷 여러 마리를 거느리며 사는 새임을 알렸다. 의회는 칠면조의 일부다처제보다 암수가 한 쌍으로 평생을 사는 흰머리수리의 생활 방식이 청교도 윤리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논쟁 끝에 국조는 흰머리수리가 되었다. 성경에서 독수리는 신의 축복을 의미하는 새이기도 했다. 흰머리수리는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미국의 정신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건국정신을 훼손하고 다양성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어림없는 팍스 아메리카를 은근히 꿈꾸는지 모르지만 세계 질서까지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요즘의 문양에는 올리브를 향해 있으나 과거 1,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이 독수리의 머리가 화살을 향했던 적이 있었다. 독수리의 머리가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평화 드라이브냐 힘의 논리가 우선이냐를 가늠하기도 했다. 흰머리독수리는 미국의 막강한 파워를 상징하면서 날개를 활짝 펼치면 10미터 가까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공군력 하나만큼은 전 세계 공군력의 54%를 차지할 만큼 전투기 수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고 흰머리수리처럼 위협적이다. 공중급유 한번이면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에 폭탄을 투하해 웬만한 나라는 소멸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진 대당 2조원짜리 스텔스 폭격기 B220대나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생뚱맞게 결혼 피로연장에 이 흰머리독수리가 나타날 게 뭐람. ‘단숨에 하객들을 제압하며 겁을 주려했던 걸까. 물론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결혼식에 하객을 초대해놓고 부러 기를 죽이려는 의도일까만 그 분위기에 주눅이 들거나 알랑방구를 끼는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얼음제왕무거운 날개를 언제까지 쳐들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연이어 터지는 플래시에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저 얼음제왕굽은 부리가 서서히 녹는 데는 12일도 길다. 23일이 아니라고 징징거리는 한심한 얼간이들도 목격할 수 있었지만 번뜩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풍경’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달아오른다.’


권순진


Poetry Of The Bird - 12 Jours En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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