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축제
강 문 석
가을서정을 대표한다는 국화꽃.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깊어가고 전국 곳곳에선 국화꽃축제가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국화는 형형색색의 모양과 색상에다 아름다움을 갖추고 향기까지 짙어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화가 가을축제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다른 꽃들에 비해 생명력이 길기 때문일 것이다. 국화가 축제로까지 사랑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 부산의 원예고등학교에선 해마다 시월 말을 택해 사흘 동안 국화꽃을 전시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빠듯한 예산에다 학생들이 틈틈이 만든 작품인지라 오늘날의 축제 작품과는 규모면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국화꽃으로 만든 그곳의 한반도지형이나 농기구 형상의 작품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교는 당시 살던 집과 가까이 붙어 있었고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우장춘 박사의 기념관도 인근에 있었다. 기념관 안엔 우 박사가 국화꽃 품종을 개량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인지 국화를 떠올릴 때면 먼저 고향이 생각난다. 드높은 하늘 아래 운동회가 열리던 계절에 초등학교 교정에 소담스럽게 피어나 향기를 떨치던 꽃이 국화였다. 국화는 또한 실내 장식이라곤 거의 없었던 고향집을 떠올리게도 한다. 늦가을이면 월동준비를 하느라 방문 문살에다 창호지를 다시 바르면서 문고리 부위가 쉽게 뚫리는 걸 막고자 문종이를 겹쳐서 붙였다. 그 안에다 국화 잎사귀를 펴서 깔았으니 밤마다 방안 불을 끄고도 달빛이 비추는 국화잎을 미술작품처럼 겨우내 바라볼 수 있었다.
국화에 대한 이러한 기억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꿈을 잃지 않았던 소년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생활이 나아지면서 자연적으로 국가의 재정도 늘어나고 또 지방자치제까지 시행되면서 지역별로 국화꽃축제를 펼치게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축제현장을 찾아 국화꽃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인상 깊었던 곳은 ‘마산 가고파’와 대구수목원이었다. 그 때문인지 마산은 올해도 국화꽃축제 규모면에서는 전국 일등을 달리고 있다고 한다. 카페에 게시할 수 있는 분량이 제한되어 이 글에 마산과 대구의 축제현장 사진을 붙이질 못하는 게 유감이다. 아마도 나처럼 노년에 접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화꽃에 대해서 누가 묻는다면 ‘국화 옆에서’란 미당의 시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한국 현대시 중에서도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서정주의 이 시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인간과 자연의 방황과 고통 시련을 절묘하게 노래하고 있는 절창이다. 비록 자그마한 국화꽃 한 송이이지만 그 탄생을 위해선 전 우주가 참여해야 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불교의 윤회설 위에서 성찰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대도시를 떠나 둥지를 튼 신도시에서는 해마다 시청광장에서 국화꽃축제를 열고 있었다. 원래 군청이 있던 곳을 약간 넓힌 시청청사인지라 광장은 그리 넓지 못했다. 비록 협소한 장소였지만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빼곡하게 들어찬 국화꽃을 만나는 것은 가을이 안겨주는 또 하나의 낭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신도시의 기반시설이 착착 갖추어지면서 분수공원인 워터파크가 문을 열어 국화꽃축제는 공원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공원은 집에서 가까워 아침저녁으로 산책코스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간이 넓은 공원으로 축제가 옮겨오면서 금세 입소문이 돌았던지 대도시 사람들까지 찾아오면서 축제행사는 그야말로 성황을 이루었다. 다보탑이나 타워 모형까지 만들어 국화꽃을 수놓으면서 탐방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랬던 축제가 금년엔 절반가량이나 줄어들었다. 도시가 산맥으로 양분되어 있어 소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재 너머 시민들을 배려해 두 군데로 나누어 행사를 펼친 때문이다.
‘2016 양산국화향연’을 만나보고 싶다면 부산지하철 2호선 종점인 양산역에 내려 역에 붙은 새들교 다리에 올라 양산천만 건너면 된다. 바로 그곳에 축제 행사장인 워터파크가 있고 11월 둘째 일요일인 오는 13일까지 축제는 이어진다. 가을철에 출하되는 과일 채소 등 지역특산품도 직거래로 만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겠다. 국화꽃처럼 꽃말이 많은 꽃도 드물 것 같다. 고결과 평화 절개 성실 청초에다 고상함까지 두루 가지고 있다. 색깔별로도 빨강은 사랑인데 반해 노랑은 짝사랑이며 분홍은 정조라고 하니 많이 헷갈리기도 한다. 무슨 게이트인가로 열 받는 현실에도 마음을 다스리고자 최면을 걸듯 보라색 국화꽃의 ‘내 모든 걸 그대에게’란 꽃말을 조용하게 속으로 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