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러시아 여행기17편(하바롭스크 시내 돌아다니기)

[사막별(심재란)]

 8월　9일, 일요일 （20일째）
하바롭스크 시내 돌아다니기
 
새벽에 소란스러워 깨어보니 기차가 정차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아직 두시도 안 된 시간이다.
잠시 자다 다시 깨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천둥번개 소리를 두 번 정도 들은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촉촉이 젖은 시베리아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날씬한 생머리의 예쁜 처녀.
러시아 꼬마들은 움직이는 천사인형이다.
러시아 처녀들은 바비인형이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뚱뚱보다.
육류와 단음식과 마요네즈를 좋아하는 식습관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일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고 하늘은 잔뜩 흐리다.
그래서인지 열차 안은 습도와 높은 기온으로 엄청 무덥다.
누워 있으니 그나마 나은데 움직이니 땀이 줄줄 흐른다.
통로에 나가 땀을 식히니 시원은 한데 요동치는 기차에다 소리도 시끄러워 오래 있을 수도 없다.
다시 들어와 앉으니 또 덥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조사장님 칸으로 가니 루드밀라와 빅토리아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젯밤 탔는지 예쁜 여대생 두 명도 있다.
바오로님과 조사장님과 시원한 바람에 몸을 식히며 대화를 나누었다.
무척이나 덥더니 어느새 비가 내린다.
열차 안이 시원해진다.
비 오는 시베리아를 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엄청나게 큰 강이 열차와 딱 붙어 달리고 있다.
도착 시각이 다 되었으니 아무르강 인듯하다.
도착하니 비가 쏟아져 택시를 나눠 타고 숙소로 갔다.
작으나 깨끗한 호텔 Zapnha로.

인간회복.
며칠 만에 씻고 빨래하기.
한동안은 안 씻어서 편했고, 이제는 씻어서 개운하니 좋고.
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아무르강변 쪽으로 가니 작지만 예쁜 성당이 있다.
콤소몰 광장에서 투르제네프 거리 쪽으로 걸어가면 트랜스피구레이션 성당이 보이는데 언덕 위에 황금빛을 발하고 있어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오른편으로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광장이 있다.
이곳엔 2차 대전 기념탑과 커다란 벽에 사망자들의 명단이 있는데 여기 하바롭스크 뿐 아니라 이르쿠츠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벽에도 KIM 이라는 이름을 볼 수 있다하니 망국의 유랑민으로 시베리아까지 흘러 들어와 남의 전쟁에 동원되어 죽어 간 조선인들의 비애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르강이 내려다보이는 트랜스피구레이션 성당을 둘러보고는 우스뺀스키사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내려왔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공원을 지나 강변으로 갔는데 시원하고 넓은 강에 사람들이 여유롭게 쉬고 있었고 한쪽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라틴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저멀리 대금님과 현숙님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 감기 기운이 살짝 있다.
아무르강 내려가는 길은 북한 노동자들이 깔았다 하여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짐작되는 곳이 있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계속 우스뺀스키사원을  찾으러 걷다가 예쁜 지붕이 보여 가보니 아트뮤지엄이다.
하바롭스크 동상 주변에는 김정일 방문 기념물이 있어 과거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일고 보니 우스뺀스키사원은 우리가 처음 갔던 작고 예쁜 성당이었다.

아무르 강에서 콤소몰 광장 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다 눈에 익은 빨간 민소매 티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보여 자세히 보니 케이씨님이다.
이 양반은 여행 내내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민소매 티 두 개와 센달 하나로 버텼는데, 사람들이 저 사람은 돈 벌어서 쓸 일도 없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새 다른 일행들의 모습이 쏙 쏙 보인다.
저녁 식사는 분위기 좋은 고급 카페에서 맛있는 스테이크와 비싼 맥주로 이루어졌는데 며칠 동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최 하층민으로 지내다 갑자기 신분이 급상승하니 어리둥절하면서도 즐거웠다.
 
오늘은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이다.
다른 분들은 25일 일정으로 오셨지만 우리는 23일 일정이라 내일 밤 우리가 먼저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기 때문이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인정 많고 고마운 분들.
멋진 헤리티지 거리 야경을 보러 나왔다.
우스뺀스키사원과 트랜스피구레이션 성당의 조명이 멋지다.

감기 기운을 참고 언니들과 같이 밤거리를 나선 건 참 잘한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일행 분들이 타신다.
이날은 감기약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8월　10일, 월요일 （21일째）
하바롭스크여! 안녕!!

약기운에 밤새 잠을 푹 잤더니 컨디션이 완전 회복되었다.
훌륭한 호텔의 아침 식사를 끝내고 아홉시 반에 체크 아웃을 한 후 짐을 보관시켰다.
유재명님 부부, 애란님, 이숙님, 대금님, 조사장님이 로비에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신다.
1번 버스를 타고 콤소몰 광장에 내려 길을 걷다 도서관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잠시 구경만 하려고 했을 뿐인데 친절한 도서관 관리인들은 우리를 의자에 앉아 쉬라고 하더니 전화로 누군가를 부른다.
알고 보니 우리가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부른 것이다.

결국 그분들이 해 주고 싶었던 친절을 우리는 받을 수 없었지만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우스뺀스키사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 신부님이 우리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며 걸어오고 있어 나도 모르게 막 뛰어갔다.

성자처럼 근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부님과 사진을 찍었는데, 천주교 신자인 순애샘을 축복해 주셨다.
역사박물관 가는 길에 지나가는 버스에 타신 유재명님이 보여 손을 흔들었다.
역사박물관을 찾아가니 월요일이라 휴관이란다.
역사박물관에는 발해의 유물이 있다 해서 내가 꼭 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갑자기 힘이 빠진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을 조사할 때 이미 러시아는 월요일이 휴관일임을 알고 있었는데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지... 여행 끝 무렵이 되니 나도 정신 줄이 풀려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
모든 박물관이 휴관이라 할 게 별로 없다.
화장실을 찾으러 갔다 만난 선교사인 한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우리는 깨끗한 레스토랑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분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어 안달을 하셨다.
인정스런 한국인.
할 일이 없어 배를 타러 가니 배도 안 뜨는 듯 티켓 판매소가 잠겨있다.
그래서 강변을 좀 더 산책하다 레닌 광장으로 걸어갔다.
레닌광장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며 놀고 있는 예쁜 꼬마들을 지켜보다 디아모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디아모 공원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큰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인상적이다.
여기는 비둘기가 사람을 봐도 겁이 없고 먹이만 보면 달려드는데 히치콕의 공포 영화 ‘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솔직히 좀 무서웠다.

좀 더 앉아 쉬고 싶었지만 모기가 달려들어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갔는데 길을 걷다 반대편에 있는 애란님, 이숙님, 현숙님, 대금님을 만나 같이 가게 되었다. 
가다가 중간에 은행에 들러 환전도 하며.
시장 입구에서 남자 한인 선교사를 만났는데 이분의 안내로 비송님, 애란님, 나는 고려인 구역의 한국반찬가게와 한국상품 파는 가게, 생선 파는 곳 등을 구경했다.

비송님은 우리말을 잘 하시는 고려인 아주머니한테 토마토를 사고 나와 애란님은 김치를 한통씩 샀다.
그리고 우리는 모자를 샀는데 다른 건 좀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내가 물건 값 깎는 건 잼병이어서 상인이 부르는 대로 돈을 다 주고 사고 말았다.
나중에 보니 똑띠 미경샘은 비슷한 모자를 우리의 반값에 샀고, 나머지 분들도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샀으니, 결국 나 때문에 비송님과 애란님은 물건 값 한번 깎아 보지도 못하고 모자를 사게 된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찾고 택시를 불렀는데 한참이 지나도 택시가 올 생각을 안 한다.
그래도 난 느긋한데 일행 중 몇 분은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데스크로 가서 택시를 좀 빨리 오게 해 달라고 하니 5분만 기다리면 온다면서 종이에 택시 번호를 적어준다.
일단 세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난 뒤에 몇 분을 더 기다리니 데스크에서 택시가 왔다며 나를 부른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앞서 출발한 일행들이 막 택시에서 내리고 있고 케이씨님이 그 빨간 민소매 티를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부터 케이씨님으로 부터 완전히 떨어져서 일행들을 나 혼자 인솔해야 하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표와 호텔 바우처와 귀국 항공권 등을 건네받으니 완전히 우리끼리란 실감이 든다.
인정 많은 케이씨님은 가장 무거워 보이는 영순샘의 짐과 누군가의 배낭을 자신이 들고 앞장 서서 기차 탑승하는 곳으로 향한다.
한참을 걸어가니 우리가 탈 기차의 번호가 보인다.
여권과 티켓을 검사 받고 우리는 기차에 올랐고 케이씨님과도 작별을 했다.

그런데 똑 같은 3등실 인데도 기차 안이 깨끗하다. 
내가 사온 김치와 비송님이 지금까지 무겁게 끌고 다니 비장의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한 해 동안 먹을 라면을 이번 기차여행에서 다 먹었다.
이 기차엔 에어컨도 나와 우리는 쾌적한 상태에서 시베리아의 마지막 풍경을 즐겼다.
밤안개와 함께 어둠이 내리는 시베리아.
아홉시 반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불을 끈다.
어쩔 수 없이 이층으로 올라가 억지로 잠을 청했다.

[넝쿨(이이숙)]

부산 선생님들 덕분에 사진도 많이 찍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만날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