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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청주여행1 -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와 수암골 벽화마을
민지홍(8기) 추천 0 조회 265 15.07.21 13: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청주 여행1 -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와 수암골 벽화마을 


友를 만나기 위해 대봉문(待鳳門)을 나서다


대학시절에 서클의 절친이었던 한 친구가 청주로 내려간 지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덕분에 친구를 만나러 청주에 여러차례 다녀왔기에 청주가 낯설지 않은데 최근에 한 명의 친구가 더 늘었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성 모 군이다. 밴드의 열풍으로 알게 된 동창 몇이 청주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부산에서 한 명 인천에서 두 명, 그러니 중간 쯤 되는 청주에서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은 작년에 모이려고 했지만 작년 가을 이후로 두 번이나 초상을 치룬 내 탓에 일정이 연기되었다가 다시 일정을 잡은 끝에 지난 5월 15일 만났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요즘 친구를 한 번 만나려면 여간해선 일정을 잡기 힘들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피곤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인지. 그러니 서로 멀리 떨어진 친구들끼리는 더욱 그러하다.


덕분에 같은 인천에서 살면서도 만나기 힘든 또 다른 동창 홍 모 여사가 함께 동행했다. 동창 밴드를 그만 두고 카톡으로만 성 모 군을 만나는 나와 달리 홍 모 여사는 여성답지 않은 강한 활동력으로 재경 동창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고, 나는 청주의 이 새로운 친구와 만나기로는 처음이지만 홍 여사는 성 모 군과 학창시절 짝지였기에 이미 친분이 있다.   


여행이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혼자가는 여행도 그렇고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도 그렇다. 석가모니는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설파했다. 물론 그것은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나 진리를 득하고 온전히 해탈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명언은 여행의 일반적인 의미나 목적과도 일치하기도 한다. 혼자만의 여행은 철학적으로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적 동물로서 속세의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때로는 함께 갈 수 있는 도반을 구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내게 있어서 여행이란 그런 의미이다. 홀로 호젓하고 느리게, 아무런 방해도 없이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며 떠나는 여행도 좋고, 의기(意氣)가 맞는 지인과 함께 가는 여행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어 좋다. 홀로 가는 여행이 자신과의 싸움이자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며 구도(求道)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도반(道伴)을 동행한 여행은 인생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줌과 동시에 우정의 향기를 더욱 짙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같은 길을 가는 친구, 마음에 맞는 친구, 한 잔의 술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공자도 이를 두고 "유붕자원 방래하니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學而編)"라고 말했거니와, 이것이 어찌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를 맞이하는 주인 된 자만의 즐거움일 것인가. 그런 벗을 찾아가는 객이 된 친구의 즐거움 또한 이에 못지 않으리라.


당일 날 오전, 홍 여사와 인천터미널에서 청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예전에는 시외버스가 고속버스처럼 품격이 높지 않았는데 언제부턴지 시외버스도 고급 버스로 바뀌어 여행이 편리해졌다. 좌석의 경우에는 45인석까지 있는 일반형부터 훨씬 안락한 25인승 우등형 시외버스까지 있다.


승용차가 많아지고 시외버스 이용률이 적은 오늘날 시외버스를 이용할 때 승객이 많지 않다면 굳이 우등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승객이 많지 않으면 2인석을 홀로 점유할 수 있어서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버스전용차로가 있어서 주말에도 밀리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어 더욱 좋다. 가끔은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여행이 주는 흥취에 빠져 젊은 남녀의 재잘거림이 눈에 거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조용한 여행을 즐기게 된다.


이런 정도의 안락한 시외버스라면 한(韓)나라 무제(武帝)가 신공(申公)을 모셔오기 위해 부들을 씌운 수레를 사용하여 모셨다는 안거포륜(安車蒲輪)이 굳이 필요치 않다. 정시에 출발한 시외버스가 고속도로를 타고 시 외곽으로 들어서자 넓은 차창을 통해 보이는 5월의 싱그러운 신록들이 피곤한 내 눈을 시원하고 새롭게 해준다.


학창시절에 신록예찬을 배워서 그런 것인지, 사진을 많이 찍기에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중년인지라 청춘의 의미를 지닌 신록을 마음껏 보는 것은 항상 새롭다. 굳이 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5월의 자연을 시외버스의 너른 차창으로 마음껏 만끽하며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 참 좋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 그런지 항상 이런 날은 고속도로가 붐빈다. 회색빛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 정체성을 잃은 자신의 존재를 도심탈출로 찾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몸부림같기도 하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은 비록 인간의 삶을 풍유롭고 윤택하게 해주었지만 반대급부로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이 또한 음양이 항상 함께 하듯이, 장단점이 함께 공생하는 현대 문명의 단면이라 하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의 인간은 더욱 자연을 그리워하게 될 것임은 자명(自明)한 이치이다. 비록 이번 여행의 목적이 친구를 만나는 것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가서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나는 좋다.


써주는 곳이 없어 산업 전선에 나가지 못한 것이 벌써 3년이 넘었다. 퇴직한 이후로 지금까지 자고현량(刺股懸梁)하며 학습만 하는 내게 있어서 집의 현관문을 대봉문(待鳳門)으로 자칭했지만, 덕(德)과 인(仁)이 부족하여 友가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어서 이렇게 모임이 정해지면 현관문을 나서며 봉황(親友)들을 찾아가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여행까지 즐긴다.


도심을 탈출하는 수 많은 차량행렬이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선 시외버스는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그들을 비웃기나 하듯이 버스전용차로로 시원스럽게 달리더니 이윽고 청주 IC로 빠져 나온다. 청주 IC에서 터미널까지는 금방이다. 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친구와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수암골 벽화마을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수암골은 청주 시내에 있다. 이름으로 봐서는 청주시를 벗어난 어느 산의 계곡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상당산성 아래, 시내 방향으로 면하고 있어서 접근하려면 청주 도심을 관통하되 청주 시내에 속한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수암골을 향하는 길에서는, 이 또한 도심을 벗어나는 일종의 일탈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을 가는 것은 아니다. 같은 버스를 이용하는 청주 시민들의 아주 다양한 모습들과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들을 구경하며 여행지에서의 두리번 거림이 멎을 무렵이면 곧 도착한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의 개발의 붐이 해일처럼 밀려든 청주도 큰 도시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시골에서나 맛 볼 수 있는 흥취가 남아 있다. 그래서 청주를 올 때 마다 더욱 좋다. 보름 전에 문상을 위해 왔다가 들른 상당산성에 왔을 때도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수암골로 향하는 이정표가 없다. 어느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 버려진 느낌이다. 수암골은 청주시에서 관광지로 선정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외지에서 온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스마트폰의 지도찾기 기능을 이용하여 찾아가다가 지나는 시민들에게 물어서 가야했다.   


수암골 벽화마을 입구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


5년 전에 KBS에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시청률 40%를 넘기더니 한 때는 50%까지 넘긴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겨울연가, 가을동화와 같은 국민드라마가 되었던 셈이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나조차 안 사람과 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는 바람에 나도 휩쓸려 간간히 보았던 적이 있다. 그 드라마에는 인기배우 전광렬씨를 비롯하여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유진도 나오고 주인공은 윤시원이었다. 윤시원은 이 드라마로 인해 국민스타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기드라마의 촬영지는 어디일까? 아니 구체적으로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는 어디일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목에 나와있는 데로 청주에 있다.


물론 드라마의 촬영지가 한 곳인 경우는 별로 없다. <제빵왕 김탁구>의 경우에도 청주의 촬영지 말고도 또 다른 명소가 있는 데, 그곳이 바로 경기도 용인 능원리의 정몽주 선생 묘 인근에 위치한 유명한 커피 전문점 <쏠뱅>이다.


드라마 덕분에 촬영지가 관광 명소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지자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촬영지를 후원하는 경우가 많아져 드라마 제작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지가 드라마의 인기와 상관없이 관광 명소가 되지 못하여 울상을 짓는 경우도 많은데 청주의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도 내가 갔을 때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서 아주 한산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와 친구는 호젓하고 한적하게 촬영지를 돌아보는 힐링을 즐길 수 있었다.




먼저 사진 한 장을 올린다. 수암골 벽화마을 입구에 내 걸린 지도이다. 다음 블로그에 글을 올린 후 카카오스토리로 공유하면 맨 처음 사진이 올라가므로 첫 사진을 아래 사진처럼 시간의 진행에 따른 사진으로 올릴 수 없어서 올리게 된 사진이다.

그리고 지도 아래에 수암골의 연혁이 간단하게 적혀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던 달동네란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벽화마을이 가난한 마을들이지만 이렇듯 있어서는 안 될, 생겨서는 안 될 아픔이 빚어낸 한 서린 곳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북한 공산주의, 김일성 추종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 

 

이정표 하나 없어 물어물어 찾아가는 수암골 입구에 드디어 수암골이 지척임을 알리는 흔적이 있다. 수암골이 벽화마을임을 표현하듯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눈여겨 봐야 보인다. 그런데 차 타고 수암골이라니. 설마 나처럼 걸어서는 오지 말라는 뜻인가? 농담이겠지.ㅎㅎㅎ. 


간이 담장 끝에 또 다른 이정표. 참 지저분한 곳에 달아놓았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닥지 좋지 못한, 온갖 이기적인 홍보들, 이것도 스팸의 일종일까? 도심을 탈출하여 힐링하러 왔는데 기분이 묘해진다. 서둘러 벗어나고 싶어진다. 

 

드디어 도착한 수암골 입구, 수암골 벽화마을의 랜드마크처럼 한눈에 보이는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이다. 원래 이름은 팔봉제빵집이란다. 제법 연륜이 있는 제빵집이라고 들었는데 건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 느낌이라 조금은 실망스럽다.

 

아마도 처음엔 이곳이 출입구였나 보다. 지금은 폐문되어 있다. 문 위에 달린 현판이 그나마 빵집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예전엔 저렇게 목재에 음각하여 검은 글씨로 현판을 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래 층 건물 벽 사이로 빵집의 재료들을 진열해 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언덕 길을 조금 걸어서 그런지 땀이 났다. 땀도 식힐겸 친구와 함께 팔봉제빵집 내부로 들어섰다.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간 탓인지 쥔장은 손님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상관없도록 배려해준다. 1층은 넓은 편이 아니다. 작은 카페수준에 불과하다.

 

1층에 전시된 제빵왕 김탁구 홍보물들


협소하고 아늑하지 못한 1층, 과연 2층은 어떨지 궁금해서 올라가본다. 2층 출입계단에서 내려다 본 1층.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선형 계단을 만나면 무심코 카메라 샷을 누르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어난다. 특히 계단의 벽을 흰 색으로 칠했을 경우에는 뇌리에 저절로 흑백사진을 떠올리게 된다. 나처럼 사진을 오래했고 흑백 필름으로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며 오묘한 흑과 백의 대비와 조화가 주는 감동을 맛본 사진인들에게는 향수처럼 느껴지는 모습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어 이렇게 흑백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암실작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어쩌면 옛날식 향수에 빠진 사진인들의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팔봉제빵집의 연륜을 표현하는 데도 이렇게 흑백으로 전환하여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겸사하여 찍어 올린다.


개인적으로 팔봉제빵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이 나선형 계단이다. 천국을 향한 계단이 따로 있을까? 나무로 된 계단받침과 손잡이들, 지친 마음을 하얗게 만드는 흰 벽과 벽을 데코한 장식용 사진틀들이 강제적으로라도 힐링하게 만들어 준다. 이 계단에 팔봉제빵집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느낌이다.  



동행한 친구를 모델로 삼아 분위기를 살려봤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컴퓨터에서 암실작업^^


친구는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없어선지, 아니면 중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얼굴이 싫어선지 사진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지만 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의 얼굴에 자신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중년의 나이에 드러나는,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지 않는가. 비슷한 동년배의 대한민국 중년들은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는가.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노화되고 흰 머리가 늘어가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무공훈장이나 다름없음이니 자신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노력의 보상이 아닐까? 스스로 보상받지 못하는 인생은 남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년들이여 자부심을 갖자. 그리고 노년을 바라보자^^




플라톤은 말했다. "반짝인다고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고. 그 내면을 보라는 얘기다. 중년의 나이는 그래야 한다. 때로는 순수함을 잃지 않은 감정으로 한 떨기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더라도 살아가는 인생의 온갖 사연들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보이는 모든 것에 일희일비하고 부화뇌동하는 단순함이 없어야 한다.


보이는 것에 나를 집중하고 나를 잊으면 보이는 것과 하나가 된다. 보이는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동체대비이다. 대자대비의 원동력이 동체대비에서 나온다. 그러면 보이는 곳의 내면까지 알게 된다. 그럴 때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힐링이란 다름 아님을.


사진에 대한 감상은 독자분들의 몫이다. 나는 그저 저 친구의 내면을 표현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솔직히 인물사진은 내 분야라 아니라 서투르기도 하다.



나들이 족들이 선호하는 곳은 주로 도심을 벗어난 곳,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조화로운 곳을 추구한다. 도시의 한켠에 비켜선 이런 곳도 멀리 가지 못하는 여행자들에겐 좋은 쉼터가 된다. 손님들이 하나도 없는 2층에서 친구가 사준 커피를 마시니 분위기가 낯설다.    



넓은 창 너머로 신록이 화사한데 2층 인테리어는 옛날 빵집의 의자와 테이블을 기본으로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 손님들이 없어선지 2층에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아 상당히 더웠다. 잠시 쉬었으니 다시 여행을 계속해 본다.


수암골 입구부터 도로 공사 중이라 분주하다. 수암골 골목길의 인도까지 함께 공사중이라 더욱 그러하지만 골목길을 트어하는데는 지장이 없어 다행스럽다. 수암골 벽화마을의 지도도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하여 아트적이라 반갑다.



이곳에선 제빵왕 김탁구만 촬영한 것이 아니라 다른 드라마도 촬영했다고......


이제 본격적으로 수암골 벽화마을의 벽화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 전에 기본적으로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독자분들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이런 달동네의 골목들은 긴 세월 동안 한을 간직한 사람들의 역사가 짙게 배여 있는 곳이다.


오색으로 예쁘게 벽화가 그려진 담장이나 집벽, 현관문 등은 이곳에 살던,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 위에 대조적으로 아트적인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러니 벽화마을의 벽화가 아무리 아름답고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수암골 대지와 오랜 건물들과 낡은 창문들이 묵언으로 말하는 것을 함께 보고 들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광곤(匡困)은 국가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스웨덴 같이 아무리 최고의 복지국가라고 해도 국민 전부를 가난에서 완전히 구제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가난을 벗어나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은 또한 아니다. 2014년에 국민 행복지수에서 덴마크가 1위를 했지만 부탄과 같이 가난한 나라들도 상위권에 속해 있는 것에서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의 단지 하나의 방편임을 알 수 있다. 행복에는 그 외에도 불요불급한 필요충분적인 요소들이 있음이다.


가난을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피난의 한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 속에는 그들만의 아픔 속에 또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행복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친구들 중에는 저런 달동네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지금은 물직적으로 옛날보다 훨씬 잘 살지만 그 친구들은 어릴 적에 달동네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시절의 추억을 오히려 그리워 하고 있다. 그 까닭을 아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니다. 인간은 인간 속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것. 때로는 얼굴을 붉히게 되고, 불협화음으로 온갖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삶에서도 결국 해답은 우리 자신 속에 있다는 것.


위 아래층의 층간 소음도 소통의 부재이고 이것은 결국 정(情)이 사라진 현상이다. 운전자들이 보복운전을 하는 이유도 결국 인간성 회복이 관건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 안에 해답이 있다는 얘기다. 무조건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속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웃사촌과 주먹다짐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뒤로 하고 법가를 내세워 통치했지만 불과 몇 십 년 가지 못했음을.


양보하는 사회, 배려하는 사회, 나부터 실천하는 사회로 돌아가야 ㅎ애복지수가 높은 국가의 국민이 되지 않을까? 생존경쟁만 해야하는 사회보다, 1등만 추구하고 최고만 인정하는 사회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그런 인성을 길러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흐름한 집을 어느 예술가가 임대한 것인지 갤러리로 꾸몄는데 현관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나도 이런 곳에 살고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이빨빠진 금강새라고 놀림을 받더라도 활짝 웃을 소년이다.


왜 수암골 벽화에는 아이들 그림이 많은 것일까? 가난해도 꿈을 잃지 않았던, 가난해도 순수했던, 가난해도 인정을 잃지 안고 살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때문일까? 건너편에 그려진 연꽃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연꽃은 어디에서 피는 것일까? 아이들이 연꽃의 씨앗이다.



애환의 무게와 삶의 무게를 짊어진 건물의 기단부가 집 주인의 함묵(含默)을 대변해 주고 있다.


달동네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런 화장실이다. 이른바 변소. 그것도 대문 밖에 있는 변소는 밤에는 무서워 가지도 못했었고 비라도 올라치면 냄새가 진동하여 근처에 가기도 싫었다. 변소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재미있다. 입구가 두 개다. 응가하다가 옆쪽 문이 열리는 우짤까나? 하지만 염려 마시라. 한쪽 문은 그림일 뿐이다.ㅎㅎㅎ.










꿈나무라고 타일을 붙여 놓았는데 꿈의 받침이 달라서 꿈이라 읽어야 할 지 의문스럽다.



개목걸이는 설치예술이고 강아지는 그림으로 그려 조화를 꾀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수암골 벽화마을을 골목골목 투어하다보면 이윽고 골짜기 위쪽 한켠에 신식 공중화장실이 있다.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공중화장실인데 그 벽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그림이다. 중국 고전 중에 일반인들은 잘 읽지 않는, 요즘 과학으로는 황당스럽기까지한 신화와 전설이 소개된 책이 있는데 산해경(山海經)이라 한다. 그 책에 비익조가 나온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홀로는 절대 날 수 없는 슬픈 새이다. 다시 말하면 암컷과 수컷이 일심동체가 되어야만 날 수 있는 것이니 한편으로는 부부의 두터운 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 그림은 무슨 의미일까? 달동네에서 꿈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느새 자라 청년이 되었는데 짝을 찾지 못해 슬픈 것인가? 아니면 꿈을 이루지 못한채 이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슬픔인가. 누구에게나 어릴 적에는 순수한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고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이론과 실제는 넘지 못할 무한한 경계가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우리 중년들이 저런 그림을 보면 마치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느낌도 들겠다.

  

비익조 건너편의 건물에 또 다른 그림은 비익조와 극히 대조되는 그림이다. 바로 천사다. 두 그림의 날개를 그린 색에서 알 수 있듯이 천사의 날개는 항상 흰 색이다. 밝음이고 희망이다. 건너편 그림의 비익조를 보다가 천사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절망의 늪에서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천사는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눈으로는 천사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존재하는가. 신은 천사를 모든 곳에 보낼 수 없어서 엄마를 아기에게 보냈다고도 한다. 그 엄마들조차 먹고 살기 바쁘다고 보모들을 다시 보낸 오늘날이다. 보모와 보육교사들은 엄마들을 대신해주는 고마운 천사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나눔의 천사들, 하다못해 무재칠시(無財七施)를 베푸는 천사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지 않는가. 이들 천사를 보고 못 보고는 자신의 역량에 달린 것 뿐이다. 거창하게 역량이라고 하였지만 결국은 마음이라는 소리다. 눈으로 보려하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는 소리다.


노자 강의로 유명 인사가 된 서강대 최 진석 교수는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라"고 했다. 간결하면서도 의미 심장한 명언이다. 왜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까? 사실 그대로, 보여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다양성이 존중되고 상대방이 존중되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러면 법 보다 주먹이 앞서지 않고 배려와 양보와 희생이 선행하게 되지 않을까?  


메테르링크의 '파랑새'가 가까이 있지만 그 울음을 듣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하면 파랑새라는 행복은 맛볼 수 없다. 아직 생존해 계신 노년의 어머니와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이고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천사들이 고맙다. 이 피곤하고 힘든 세상을 그래도 살 맛이 나게 만드는 이유는 이런 천사들이 많아서 일 게다.  


비익조와 천사가 그려진 벽화 옆으로 예쁜 쉼터가 있다.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달동네의 비익조와 천사를 보면서 쉼터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이럴 때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톨스토이의 말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다." 오래 전에 본 것이라 번역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 옆에는 누가 있지? 지금 당신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추억의 골목에 하늘매발톰이 피었다. 가난한 창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재미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은 꿈이 많기 때문이리라. 당신도 어느 시절에 저런 꼬마 녀석이었을 게다.


갑자기 숨이 막혀 오는 듯한 아련함이 있다. 벽화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의 지붕이다. 스레트와 함석으로 이뤄진 지붕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멀리 도심의 빌딩과 대조를 이루니 문명의 발전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 수 있다. 어릴 적에 이런 집에서 살았던 친구들은 수세식 변기가 있는 집, 수돗물이 잘 나오는 집, 욕실이 딸린 집, 부엌이 집 안에 있는 집을 꿈꾸며 살았을 게다. 그리고 지금 그런 꿈이 실현된 집에 살면서 또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무너진 지붕,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우리들 마음이 저리도 삭막해지고 정신이 황폐해진 것은 아닐까? 고급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멋진 현대식 건물에서 살면서 그 반대급부로 잃어버린 것이 많지는 않을까? 갑자기 무거워지는 마음, 그러나 보이는 대로 현실이다.


수암골 벽화마을 가장 위쪽의 허스름한 집들을 지나면 부산의 산복도로 같은 도로가 나오고 그 길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가는 길 석축에도 벽화를 그려 넣었다. 산으로 향한 길에 바다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그려 넣은 것이 새롭다.  

 


박무가 심한 날씨라 그런지 전망대에서는 그닥지 볼거리가 없었다. 수암골의 옹기종기 달라붙은 달동네 모습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기엔 가깝지도 않고 미쁘지도 않다. 단지 전망대 오르기 전에 예쁘게 지은 카페들이 몇 개 있는가 하면 전망대가 설치된 산 중턱의 도로가 인상적일 뿐이다. 


전망대 옆에 카페 이정표가 있는 자리엔 안전운행을 위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박무로 인해 멀리 보이는 도시가 더욱 회색빛을 띄는 신기루같은 느낌인데, 촬영을 다니다가 이런 곳의 거울을 보면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에서도 그랬고,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등에서도 그랬듯이. 차량 운전자를 위한 거울이기 보다는 내 안을 비춰보는 거울인 셈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과 외로움에 전율하면서도 객관성을 지닌 냉정함으로 나와 세상을 한꺼번에 본다. 아마 저 친구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더해 요즘 대세라는 힐링을 생각해 본다. 오늘 나는 즐거운 여행을 했다. 좋은 친구와 함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곳으로 미리 와서 의미 있는 곳을 느리게 걸으며 또 다른 힐링을 한 셈이다.


힐링이란 곧 나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을 거닐며 느끼는 감정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시공을 일탈하는 즐거움, 도시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달콤한 행복, 자연과 동화되어 벌거벗은 자연인이 된 자유인으로서의 상쾌함 등이라면 그런 것은 올곳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주는 감정의 선물일 것이다.


거울은 현재의 내 모습을 비춰준다. 그런데 거기에 비친 나는 또 다른 나를 들여다 본다. 거울의 나는 중년이지만 거울 속의 나는 아직도 소년이다. 왜냐하면 꿈이 있으니까. 최소한 수암골 벽화마을처럼 달동네 벽화속에 그려진 꿈을 잃어버리진 않았으니까.


이런 거울이야말로 '마음'이라는 2차적 거울이다. 이런 거울은 외출 전에 치장을 위한 집 안의 거울과는 전혀 다른 거울이다. 순수의 감도를 가늠하는 거울이자 현재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면서 잃어버린 꿈을 생각하게 하는 거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도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기 바란다. 이제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꿈꾸던 어린 시절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오늘 저녁에 마시는 술 한잔은 참으로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그 술의 향기는 만리를 갈 것이다. 화향십리(花香十里)이고 인향만리(人香萬里)이므로. 함께 동행해준 홍 여사와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고맙다.


(참고로 수암골 벽화마을에서 가장 아트적인 곳은 이곳에서 생략했다. 다음편에서 소개하기 위함이다. 연탄이 소재가 되는 아트인데 발상의 전환이 새롭게 다가오는 아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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