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맹독의 코브라가 있다면 그대는 어쩌겠는가”
설봉스님이 보여주려 했던 코브라를 아직 찾지 못했다면,
당신이 있는 설두산 바로 ‘여기’에 있으니 잘 찾아보라.
그렇지만 코브라를 다루는 솜씨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
발밑을 보라! 이래도 모르겠다고?
이미 코브라에 물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친구로구먼…
현사 사비(玄沙師備)선사는 스승인 설봉선사를 따라 상골산에 들어가 수행 정진하던 중 <능엄경>을 읽다가 깨달았다. 설봉선사를 모시며 지내다가 매계장 보응원에 잠시 머문 뒤 다시 현사산으로 돌아와 생애를 보냈다.
➲ 본칙 원문
擧 雪峰示衆云 南山有一條鼈鼻蛇 汝等諸人切須好看 長慶云 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 雲門以拄杖攛向雪峰面前 作怕勢
僧擧似玄沙 玄沙云 須是稜兄始得 雖然如此 我卽不恁麽 僧云 和尙作麽生 玄沙云 用南山作什麽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설봉스님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남산에 코브라가 한 마리 있으니, 그대들은 모두 각별히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장경이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운문은 주장자를 설봉선사의 면전을 향해 내던지고는 두려워하는 모양을 지었다.
어떤 스님이 (뒷날) 현사스님에게 이 일을 설명하니, 현사스님이 말했다.
“모름지기 혜릉스님처럼 해야 한다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하진 않겠네.”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사스님이 말했다. “남산을 말해 무엇 하시렵니까?”
➲ 강설
설봉선사는 참 좋은 스승이시다. 멍청하게 시간만 보내는 후학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남산에는 물리기만 하면 바로 목숨을 잃게 되는 맹독의 코브라가 한 마리 있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발밑을 잘 살피고 다녀야 할 것이다.”
장경 혜릉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이 방안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그렇지! 코브라가 나타난 순간 대중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지. 하지만 너무 겁먹은 것 아닌가? 장경도 벌써 물렸구먼. 어떻게 살아나려나?
운문이 대뜸 나서서 주장자를 스승의 바로 앞에다 휙 던지고는 코브라를 보듯 두려워하는 모습을 하였다. 천하의 운문인지라 바로 코브라를 파악한 것이다.
“그 코브라가 바로 여기 있다. 대중들이여, 보라!”
과연 몇 사람이나 보았을까? 그렇지만 뱀에 발을 그리듯 지나치지 않은가.
어떤 스님이 이 자리에 없었던 현사스님에게 달려가 손짓 발짓을 하며 이 일을 설명하니,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한마디 했다.
“장경스님이 제대로 한마디 했구먼! 그런데 나라면 그렇게 하진 않겠네.”
얘기를 전한 스님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물었더니, 마치 스승 설봉스님을 대하듯 쏘아 붙였다.
“쓸데없이 남산을 말해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라고 했을 걸세.)
천하의 설봉스님도 말을 뱉고 보니 또 허물이 생긴 것이라. 괜스레 남산에 가서 헤맬 놈이 많구나. 그것을 놓치지 않고 현사스님이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현사 자신의 허물은 어쩔꼬?
코브라를 보았는가? 코브라를 잡았는가?
➲ 송 원문
象骨巖高人不到 到者須是弄蛇手
稜師備師不奈何 喪身失命有多少
韶陽知重撥草 南北東西無處討
忽然突出拄杖頭 抛對雪峰大張口
大張口兮同閃電 剔起眉毛還不見
如今藏在乳峯前 來者一一看方便
師高聲喝云 看脚下
➲ 송
상골산의 바위 드높아 사람이 오르지 못하니,
오르는 사람은 반드시 이 뱀 다루는 솜씨 있어야 하리.
➲ 강설
상골산에 주석하시는 설봉스님은 그 경지가 참으로 아득하여 보통 사람은 접근할 수가 없다. 스스로 목숨을 지키는 솜씨를 갖추지 못했다면 설봉스님을 만나는 순간 이미 죽은 목숨이다.
➲ 송
혜릉스님과 사비스님이 어쩌지 못함이라,
목숨을 잃은 자가 얼마나 많을꼬.
➲ 강설
설봉스님 앞의 대중들을 구하고자 혜릉스님도 사비스님도 최선을 다했다. 혜릉스님은 그 자리에서 “이 자리의 많은 사람이 코브라를 제대로 보지 못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하고 밝혔으며, 사비스님은 설봉스님이 남산이라는 말로 함정을 파고 있음을 밝혀 대중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자기 목숨 지키는 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님에야 어쩌겠는가.
➲ 송
운문스님 알고서 거듭 풀을 헤쳤으나
동서남북에 찾을 곳이 없음이로다.
갑자기 주장자를 불쑥 내밀어서
설봉을 향해 던져 크게 입을 벌리니,
크게 입 벌림이 번갯불과 같은지라
눈썹을 치켜 올려도 전혀 볼 수 없도다.
➲ 강설
운문스님 또한 곧바로 스승의 의중을 파악하였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코브라의 정체를 밝혀주려고 했다. 설봉스님을 향해 마치 코브라가 머리를 곧추세우고 큰 입 벌리듯 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솜씨를 간파할 자라면 어찌 당하고 있었겠는가. 하긴 그 코브라가 눈을 부릅뜨고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던가.
➲ 송
지금은 유봉 앞에 숨겨져 있으니,
오는 자 낱낱이 묘한 수단 잘 살펴보라.
➲ 강설
설두스님이 다시 기회를 제공했다. 설봉스님이 보여주려 했던 코브라를 아직 찾지 못했다면 당신이 있는 설두산 바로 ‘여기’에 있으니 와서 잘 찾아보라고 일러준다. 그렇지만 코브라를 다루는 솜씨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임도 밝혔다.
그런데 이 영감님이 약간 노망기가 있다. 하필 당신 있는 곳을 가리킬게 뭐람!
➲ 송
설두스님이 큰 소리로 외치셨다. “발밑을 보라!”
➲ 강설
설두 영감님은 노파심이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비밀을 누설하고 만다. “발밑을 보라!” 이래도 모르겠다고? 이미 코브라에 물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친구로구먼.